• "한겨레도 정파적 시각에 갇혔다" 내부 비판
        2011년 04월 18일 04: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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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 직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 보도와 관련해 한겨레신문 내부에서 정파적 보도의 대표적인 사례로 문제 제기가 나와 주목되고 있다.

    신공항 백지화 발표 직후 박근혜 전 대표의 반응을 놓고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함께 읽은 독자라면 헷갈렸을 것이다. 한 쪽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직접 공격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고, 다른 한 쪽은 이를 이 대통령에 대한 ‘정면 비판’이라며 ‘결별까지 각오한 경고’라는 해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4월 1일자 1면 <살짝 비켜간 박>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인 동남권 신공항을 백지화한 데 대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 유감스럽다"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놓고 "얼핏 보면 박 전 대표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을 정면 비판하고 백지화를 뒤집으려는 것처럼 비쳤"지만 세종시 때 "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날선 비판을 쏟아냈"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이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4월 1일자 조선일보 1면.

    반면 한겨레는 같은날자 1면 <MB와 결별 각오 대선길 ‘홀로서기’> 기사에서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약속 파기’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동남권 신공항을 내년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세울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박 전 대표의 발언과 관련해 "‘약속 위반’을 거론한 것은 누가 봐도 이 대통령을 겨냥한 대목"이라며 "다가오는 대선 경쟁에서 스스로 후보를 쟁취하겠다는 ‘홀로서기’ 선언으로 들린다. 최근까지 지속된 이 대통령과의 유화 국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게 기대거나 얹혀 가지는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선 ‘결별’도 각오하겠다는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4월 1일자 한겨레 1면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놓고 두 신문이 서로 다른 분석 기사를 내놓은 데 대해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조선일보가 신공항 백지화 후폭풍을 잠재우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한겨레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을 ‘제대로’ 해석한 것일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 진보언론실천위원회(진보언론실천위)의 판단은 ‘아니다’이다. 조선일보와 논조는 다르지만, 그러한 분석 기사를 쓴 ‘배경’은 매우 닮아있다는 게 진실위의 시각이다.

    진보언론실천위는 지난 14일 펴낸 진실위 소식지 <진보언론>에서 "당시 취재 현장에서는 한나라당에서 결별이라는 말은 친이-친박간의 분당과 직결되는 의미로서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놓고 결별을 각오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며 "이튿날 이명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표가 지역구 가서 한 발언 이해한다’는 톤의 발언이 소개되면서 결국 결별이란 해석은 머쓱해졌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 이후 지금까지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 ‘결별’하려 한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한겨레 정치부의 한 기자는 <진보언론>에 "결별은 너무 나간 해석이다. 차별화 내지 선긋기 정도가 맞다"며 "수차례 결별 해석 부분을 제목과 본문에서 빼달라고 건의했으나 그대로 나갔다"고 말했다.

    보도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를 <진보언론>이 작심하고 비판하고 나선 데는 한겨레의 ‘확대 해석’이 이번 건에 그치지 않은 데다, ‘정파적 보도’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봤기 때문이다.

    한겨레 노조 <진보언론>은 "한국 사회에서 한겨레를 포함한 기성 언론들은 사실상 특정 정치 세력과 이념적으로 가깝고, 각 정파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정치 공학성’ 보도를 일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며 "이번 사태에서도 조선일보가 친이-친박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해 화해를 유도하는 관점에서 사태를 해석했다면 한겨레는 두 진영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길 희망하는 프레임에 갇혔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의 내부 갈등을 바라보는 한겨레의 ‘정치적 시각’이 너무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인 셈이다.

    특히 <진보언론>은 "대운하에 대해서 한겨레의 보도태도는 잘못된 공약은 당선됐다하더라고 실행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고, 동남권 신공항에서는 약속의 이행 여부와 이에 따른 혼란상을 묻고 있다. 이는 명백한 이중잣대"라는 한 조합원의 지적을 전하며 대운하와 동남권 신공항을 바라보는 한겨레의 ‘이중성’을 꼬집기도 했다.

    <진보언론>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백기철 정치부장은 "신공항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쓴 것은 아니다. 다만 ‘동남권 신공항 건설’ 자체보다는 정치 지도자의 약속 위반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렇게 비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민했다. 이 대목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표가 ‘장기적으로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부분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들어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라고 밝혔다.

    <진보언론>은 특정 정치현상과 관련해 여러 차례 조선일보와 정반대의 해석을 내놨던 한겨레의 보도에 대해 "이런 경우 그동안에는 한겨레의 입장이 장기적으로 옳았음이 입증되는 사례가 많았지만, 이번 경우는 ‘판정패’를 당한 듯 하다"고 비판했다.

    백기철 한겨레 정치부장은 이에 대해 18일 "사안 자체가 갖는 정치적 폭발력에 대한 가치 판단은 지금도 맞았다고 본다. 다만 ‘제목을 좀 더 중립적으로 뽑아야 했던 것 아닌가’라는 지적에는 공감한다"고 말했다. 백 부장은 ‘4대강’과 ‘동남권신공항’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에 이중잣대가 적용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신공항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도한 것이 아니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 자체 보다는 정치 지도자의 약속 위반에 초점을 맞춘 보도였고, 그러다보니 (‘4대강’과 ‘동남권 신공항’에 이중잣대가 적용된 것처럼) 그렇게 비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민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박 전 대표가 ‘장기적으로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부분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들어 비판적으로 보도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백 부장은 <진보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우리 신문이 결별 등의 표현을 써가며 한발 앞서 나갔다는 지적은 받아들이겠다"며 "당시 현장 기자도 다른 의견을 전해 오고 결별이라는 표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고민 끝에 다른 대안을 생각해내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 당시 한겨레 기자가 박 전대표의 전날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자 "지금, 한겨레 신문이죠?"라고 되묻고 "박 전대표와 관계를 너무 그렇게 보실 필요 없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된다"고 말해 발언의 의미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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