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세금일세, 이 사람들아"
        2011년 01월 03일 12: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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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얘기는 대충 들어도 된다. 왜냐하면 어차피 수십 년 째 똑같은 논리 위에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21>이라는 다함께 계열의 계간지가 서평을 통해 장호종은 오건호의 신작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레디앙)와 『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도서출판 밈)를 비판했다. 그 비판의 핵심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대충 들어도 되는 논리?

       
      ▲책 표지들. 

    오건호가 제출한 위 2권의 신작은 진보적인 시각에서 국가의 조세-재정문제를 재조명하고, 그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이 책들은 계급적 증세보다는 보편적 증세를 강조한다.

    부담체계 자체의 상향 조정을 통해 (즉 소득세 세율 체계의 일반적 상향 조정) 전반적인 증세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담자의 선도적 부담선언(건보하나로)까지도 감수한다.

    이에 대한 구좌파의 비판은 “부자들한테 더 내라고 해야지 왜? 우리가 더 낼 생각을 하냐?”는 것이다. 즉 ‘모든 문제를 부자들한테 빼앗아 와서 해결한다’는 임꺽정식 기본논리를 다시 제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계급투쟁이라고 부른다.

    2002년에 민노당의 권영길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부유세를 제기했다. 그 때 사회당이 이렇게 말했다. “세금 더 올린다고 자본주의 없어지나?” 나는 지금 똑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왜? 옛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세금 문제를 얘기하는가? 소유권을 문제 삼아야 하지 않나? 이런 개량주의자 같으니라구!”

    물론 요즘에는 이렇게 "세금 올린다고 자본주의 없어지나?"라고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옛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겉으로는 계속 계급투쟁 타령을 하면서 실제로는 소리 없이 조금씩 전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은 계급타협적 장치

    원래 세금은 그 개념 자체가 계급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타협적인 개념이다. 즉 적당히 적대적 계급의 존재를 인정해 주면서 돈이나 더 받아내기 위한 접근법인 것이지, 자본주의의 타도를 목표로 하는 접근법이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계급 공존은 국가, 즉 부르주아 집행위원회를 매개로 한 공존이다.

    따라서 계급투쟁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정파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황당한 주장이다.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에 대한 비판 서평을 게재한 <마르크스21>은 이 모순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21은 “오건호가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와 『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에서 제시하는 대안이 계급투쟁이라는 고리를 상실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부유층만을 상대로 세금을 더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모순이다. 진정한 임꺽정식 접근 방법이란 세금 조금 더 받아내는 개량적인 목표를 설정해서는 안된다. 소유권(즉 지대) 자체의 완전 소멸을 추구해야 진정한 계급타도적 관점인 것이다.

    ‘건강보험 하나로’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얼마 전, 민주노동당의 정치 홍보물을 보고 실소(失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선전물에는 “건강보험 하나로 무상의료실현”이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강보험 하나로는 건강보험료를 더 내자는 운동인데 이게 무슨 무상의료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볼 때 그 홍보물은 논리적인 맥락도 모르고, 요즘 유행하는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여 놓은 우스운 홍보물이었다.

    임꺽정식 관점

    ‘건강보험 하나로’는 무상의료가 아니다. 건보료를 더 내자는 것이 어떻게 무상의료인가? 완벽한 무상의료가 실현되려면 ‘병원 국유화!’를 주장해야 맞다.

    임꺽정식 관점에서 건강보험 하나로를 비판하는 논자들은 "왜 우리가 더 내냐? 가진 자들이 더내야지!"라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는 이해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 대안으로 건보료 인상이 아니라 "세금을 더 걷어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과연 자기논리의 일관성을 잘 추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무상의료를 하려면 ‘병원 국유화’를 주장해야 맞다. ‘세금’은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계급 타협 장치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의 주문은 계급 타도 전략인지? 계급 공존(관리) 전략인지? 논리적 일관성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계급 타도 전략이라면 세금의 ‘세’자도 꺼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거의 완벽한 계급 공존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급 공존(관리) 전략이라면 <마르크스21> 측은 오건호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야 한다. 오건호야 말로 진보진영에서 몇 안되는 조세-재정 분야의 전문연구자이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마르크스21>은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소유중심 해법에서 세금중심 해법으로

    나는 <마르크스 21>이 오건호의 책을 열심히 읽고 소유중심 해법에서 세금중심 해법으로 완전 전향해주기를 기대한다.

    계급투쟁이 어려운 이유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적대 계급 자체를 아예 지구상에서 없애 버리는 것은 몇 백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투쟁이다. 이것보다 조금 낮은 수준의 계급투쟁이 적대 계급과 공존을 추구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그 쪽 계급의 부담금 즉 세금을 높이는 것인데, 이것도 사실상 매우 길고 오랜 투쟁이 필요하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럼 그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의료사각지대는 방치되어야 하는가? 그 긴 시간동안 아픈데 돈 없는 사람들은 계속 계급투쟁 구호만 외치다가 죽어갈 것인가?

    ‘모든 보험료를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부담 주체가 먼저 사회적 자기 부담 즉 연대분담금을 올리자는 운동이다. 이렇게 우리가 먼저 내자고 주장하는 순간 ‘상대가 있는 게임’의 한축이 크게 무너지면서 실현가능성이 크게 높아지는 것이다.

    최근에 들리는 얘기로는 복지부 공무원들조차 건강보험 하나로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한다. 입으로만 떠드는 계급타령에 비하면 이것은 얼마나 신선한 전략인가?

    사회연대 전략은 3가지 효과가 있다. 첫째는 실현가능성을 높인다. 계급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문제 해결이 안 될 때, 자기가 먼저 희생과 헌신을 감행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를 통해 다른 계급에게 감동을 준다. 즉 계급간 심리적 반발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셋째는 이를 통해 결국 자기 계급을 강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계급형성 전략

    여기서 세 번째 효과를 오건호는 ‘계급형성론’이라고 불렀다. 사회연대 전략을 계급형성 전략이라고 파악한 것은 매우 정확한 분석이다.

    언제 부턴가 강남 3구의 투표성향은 노골적인 계급투표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왜 강남3구는 계급투표를 시작했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이다. 정치적 세력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세금의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정치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정당에 표를 던지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국가의 혜택을 받는 경우는 있어도 세금을 내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나랏님은 작은 돈이지만 통장에 조금씩 돈을 꽂아주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경제적 계급은 잠재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정치투쟁을 일으킬 현실의 계급은 정치주체에 의해서 끊임없이 형성되어야 하는 계급이다. 세금을 내고 사회적 부담에 참여해야 계급적 관점이 발생하고 확대된다. 세율이 높을수록 그의 사회연대 공헌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순수한 공산주의 사회란 소득세율 100%의 사회이고, 순수한 자본주의 사회는 소득세율 0%의 사회라는 구분법을 제기한 바 있다. 물론 우리가 사는 현실의 사회는 소득세율 5%~90% 사이의 어떤 구간일 뿐이다. 조세-재정문제는 이렇게 계급의 형성이라는 맥락에서 매우 중차대하고 풍부한 의미를 지니는 문제이다.

    혁명은 쉽고, 개량은 어려운 것

    사실 혁명은 쉽고 개량은 어려운 것이다. 혁명은 아무데서나 그냥 말로만 하면 된다. 예전에 합법정당을 주장하면 ‘개량주의’라는 욕을 많이 먹었다. 한 가지 우스운 것은 그런 비판을 하던 사람들은 그냥 ‘혁명’자만 붙이면 욕을 안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바보 같은 혁명가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빈틈을 이용해 합법당 운동을 하던 우리를 자칭 ‘혁명적 개량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요즘에도 이렇게 아무데나 계급투쟁만 붙이면 좋아하는 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공장구경도 못해본 사회주의자들을 우습게 여기는 버릇이 있다. 입으로만 계급타령, 투쟁타령을 늘어놓으면서 실질적인 사회발전에 무슨 공헌을 했는지 의심스러운 사회주의자들이 많다.

    나는 그들이 소유중심 해법에서 세금중심 해법으로 전향했다면 전향서라도 발표해주기 바란다. 제발 병원 국유화를 주장하지도 않으면서, 건강보험 하나로는 반대하는 애매한 포지션은 이제 그만 해주길 바란다.

    용접봉 한번 못 만져본 자칭 계급투쟁 종사자들은 이런 슬로건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바보들아! 문제는 세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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