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르코지 만나려던 발레오 노동자들…
    By 나난
        2010년 11월 12일 05: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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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택호 씨의 사지가 들렸다. 경찰은 그의 손과 발을 하나씩 들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데려갔다. 마치 학창시절 무서운 선배가 ‘돈을 뜯기 위해’ 구석진 골목으로 후배를 끌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12일,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이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발레오 한국노동자의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가 머무는 서울 강남의 리츠칼튼서울호텔로 향했다. 하지만 이들은 호텔을 약 100m 앞둔 지점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아닌 한국경찰과 조우해야 했다.

    이들은 이날 발레오 사태 관련 기자회견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탄 차가 호텔 인근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에 들어서자마자 경찰이 이를 막아섰다. 노동자들은 차들이 달리는 도로에서 황급히 뛰어내려 “발레오 사태, 프랑스 정부가 나서 직접 해결하라”고 외치며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인도 쪽으로 뛰었다.

       
      ▲ 경찰이 리츠칼튼서울호텔 앞 사거리에서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의 차량을 막아서고 이들의 기자회견을 봉쇄했다.(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은 이날 "발레오사태 프랑스정부가 나서 직접해결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개최하려 했지만, 플랜카드조차 제대로 펼 수 없었다.(사진=금속노동자 ilabor.org>제공)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일순간 경찰은 이들을 잡기 위해 뛰어 들었고, 이들은 경찰을 피해 뛰기 시작했다. 한 노동자는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기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경찰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도로 위를 뛰어야 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을 위해 준비한 플랜카드를 펼치기도 전에 경찰은 이를 막아섰고, 기자회견문과 타고 온 차량의 열쇠도 빼앗겼다.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은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왔다”, “비켜라”, “한국정부와 프랑스정부가 발레오 사태 책임을 져라”며 소리쳤고, 경찰은 이들을 난간에서 끌어내리고, 감쌌다. “불법집회다”, “다 막아버려라, 검거하라”란 소리도 이어졌다. 이택호 금속노조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장의 사지가 경찰에 붙들린 것도 그때였다.

    도로 위의 난장판

    그는 경찰에 둘러싸인 상태에서도 “지난해 프랑스 발레오자본의 일방적 공장 청산으로 100여 명의 노동자가 해고됐다”며 “사르코지 대통령이 발레오 사태를 해결하라”고 소리쳤다. 이에 경찰은 이 지회장 외에도 3명의 노동자의 사지를 들어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이 지회장은 “우리는 지난 1년간 발레오사태 해결을 위해 프랑스 발레오본사에 교섭을 요청했지만 단 한 차례도 이뤄진 적이 없다”며 “우리는 단지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우리의 상황이 담긴 편지글을 전달하러 왔을 뿐”이라고 소리쳤다. 이어 “단지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건데 왜 막느냐”며 “기자회견을 존중하고, 빼앗아간 기자회견문을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경찰은 골목으로 이동한 후에도 여전히 이들을 둘러싸고 이동을 금지했다. 이 지회장은 “다른 나라 기업이 먹튀 행각을 벌이고 자국의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해고했는데도, 한국정부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기자회견도 못하게 한다”며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고, 어느 나라 경찰이냐”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발레오그룹은 출근 당일 해고를 통보하고 그것도 모자라 퀵서비스로 해고통지서를 발송했다”며 “프랑스 기업의 잘못된 행태를 문제 삼고 해결해야 할 이 나라 정부가 경찰을 동원해 우리의 요구조차 전달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 경찰에 사지가 들린 이택호 금속노조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장이 발레오사태의 문제점을 호소하고 있다.(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 이날 경찰은 경호안전특별법을 이유로,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의 기자회견을 "불법시위"라고 못 박았다.(사진=이명익 기자 /노동과세계)

    이 지회장이 스크럼을 짠 경찰들을 밀며 자리를 옮기려 하자 경찰은 “가만 좀 있어라”, “불법집회”라며 그를 밀쳤다. 이에 이 지회장은 “니네가 하루아침에 해고돼 봐라”며 “5,00여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아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온 것”이라며 호소했다.

    또 다른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 역시 “우리가 공격적인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기자회견을 하러 왔을 뿐인데 이토록 폭력적으로 막아서느냐”며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마라”, “기자회견을 보장하라”고 소리쳤다.

    경찰은 경호안전구역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들의 기자회견도 모두 봉쇄했다. 이유는 “기자회견을 빌미로 시위를 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차를 막아서며 위협적인 행위를 한 것은 경찰”이라고 항의했지만, “기자회견을 방해한 게 아니라 시위를 먼저 했기 때문”이라며 “경호안전특별법을 위반했다”고 답했다.

    "기자회견도 금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날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은 차량에서 내리기도 전에 경찰의 저지를 받았으며, 기자회견 때 사용할 플래카드를 펼치기도 전에 경찰은 이를 막아섰다. 경찰은 “경호안전구역에서는 기자회견도 금지돼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지금 말할 수 없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하지만 경호안전특별법에 따르면 경호안전구역 내 기자회견은 가능하다. 이 지회장은 “불법적인 행위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이 먼저 불법적 행위를 하고 있다”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결국 이날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의 기자회견과 이택호 지회장이 쓴 편지글 전달은 좌절됐다.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은 지난해 10월 26일 갑작스런 프랑스 발레오그룹의 공장청산으로 해고됐으며, 이후 발레오그룹의 아시아지사가 있는 일본과 프랑스 본사에서 5차례에 걸쳐 원정교섭 투쟁을 벌인 바 있다.

    이들은 지난 10월 27일부터 서울 주한프랑스대사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이며 프랑스정부에 발레오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발레오 한국노동자 대표 이택호 지회장 편지

    친애하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께

    저는 프랑스 기업인 발레오의 한국 내 계열사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조합 대표를 맡고 있는 이택호입니다. 저는 아내와 15살, 11살짜리 아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노동자이고 그동안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가장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발레오공조코리아에 16년을 근무하였으며 올해로 40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가정에게 이제 어떤 희망도, 미래도 사라져 버린 지 오래입니다. 발레오 경영진이 사전에 아무런 통보 없이 2009년 10월 26일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출근하여 일하던 저희에게 당일부로 공장폐업통보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퀵서비스로 일일이 가정에 해고통지서를 보내며 제 아들의 손에 아버지의 해고통지서를 받게 한 것이 바로 프랑스 기업 발레오였습니다. 또 저희가 생산하던 똑같은 제품이 제3국을 통해 발레오라는 브랜드를 똑같이 달은 채 한국의 완성차회사에 납품되는 것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는 참담한 심정을 아십니까?

    한국의 기업들도 최소한 사전에 노동자들과 협의를 하는데 발레오의 처사는 너무 일방적이었으며, 너무 치명적이었습니다. 흑자를 기록하며 커왔던 회사가 일순간 청산이 되고 전원이 해고가 되었다면 이 글을 읽고 있을 대통령께서는 어떠실지 오히려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우리 가족과 동료로서 함께 일하던 노동자의 가족 500여명의 생계는 한순간에 길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이곳에서는 해고는 곧 살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프랑스 사회 보다 더 심각하게 해고는 바로 가정 파탄으로 이어집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라는 나라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자유와 민주, 정의가 살아 있는 나라…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과 노동자의 권리가 소중하게 지켜지도록 치열한 토론을 하는 나라… 소통과 낭만, 열정이 살아 숨 쉬는 나라… 기회가 된다면 가족들과 프랑스 여행을 가자고 저희 가족들과 약속도 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말씀드리면 저희는 프랑스 경영진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앵무새같이 청산 통보만 반복하는 한국청산대리인이 아닌 진지하게 왜 회사가 폐업을 해야 했는지… 도대체 우리가 생산하던 제품을 다른 나라에서 들여와 납품하면서 왜 이 공장을 그토록 일방적으로 청산해야 했는지… 실질적 책임이 있는 발레오 본사 프랑스 경영진들로부터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재 발레오 본사 경영진은 노조의 대화 요청을 전면 거부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너무나 답답해서 이렇게라도 사르코지 대통령께 편지를 보내는 바입니다. 프랑스 정부와 대통령께서 적극 나서 주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 합니다. 그래서 해고된 채 절망에 빠진 한국노동자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합니다.

    1년이 넘는 생존권 투쟁 생활과 길거리 노숙 농성에 경황이 없어 급하게 한글로 보내는 점 널리 양해해 주시고 이후 지인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2010년 11월 11일
    금속노조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지회장 이택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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