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파-고용형태 넘어 정규직화 투쟁
    By 나난
        2010년 09월 08일 05: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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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2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불법파견, 정규직 지위 확인’ 판결을 내린 이후 현장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가입을 통해 조직된 힘을 모으고 있는데 이어 울산, 아산공장 등을 중심으로 정파와 고용형태를 뛰어넘은 모임이 결성되며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를 위한 구체적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일 현대차 아산공장 내 정규직 조합원들이 뭉쳐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나섰다. 12명의 현장 활동가가 ‘그래 맞다! 정규직이다’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분열된 현장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정규직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투쟁도 중요하지만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이제는 똑같은 동료로 가슴을 열고 받아들여야 한다”며 스스로가 현장 내 차별을 철폐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에 발생하고 있는 잘못된 인식을 변화시키는 게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래 맞다! 정규직이다"

       
      ▲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대법원 판결 관련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사진=금속노조)

    특히나 이 같은 활동은 노조 차원이 아닌 현장에서부터 정규직 조합원 스스로가 제안하고, 정파를 뛰어넘어 구성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래 맞다! 정규직이다’에서 활동 중인 권혁춘 조합원은 “각 조직의 틀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위원을 중심으로 제 조직을 뛰어넘어 모였다”며 “공동토론과 공동행동, 공동책임의 원칙으로 결속력을 맺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10년이 넘도록 고착화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뛰어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면서도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걸음씩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선다면 마침내 ‘노동자는 하나’라는 구호가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비정규직을 ‘정규직 고용 방패막’ 정도로 여기던 인식과 판결 이후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면 몇 년간 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등의 회사 측 유언비어, 무엇보다 “비정규직 모두 정규직화시키면 회사 망한다”, “기존 정규직이 쫓겨나는 거 아니냐”는 일부 정규직 정서를 없애기 위해 각종 유인물과 선전전 등을 펼치고 있다.

    ‘그래 맞다! 정규직이다’가 지난 7일 발행한 유인물에서 정규직 조합원 김유신 씨는 “96년에 입사를 했고, 결혼한 지 10년 만에 22개월이 된 소중한 자식 놈이 있다”며 “자라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장차 자식 놈이 겪어야 될 비정규직제도가 낳은 각종 차별과 불평등을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 아비가 산 세상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은 세상을 우리 자식들에게 돌려줘야 되지 않겠느냐”며 “그 시작은 우리 주위의 비정규직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것이고, 불법파견을 없애기 위해 함께 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금 동결된다, 정규직이 쫓겨난다’는 유언비어

    권 씨는 “모임명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하는 축하 인사의 의미를 담아 ‘그래 맞다! 정규직이다’로 정한 만큼 대법원 판결이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비정규직지회가 벌이는 교육이나 집회 등에 동참해 활동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도 의미 있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8월 19일 울산노동자배움터에서 22명의 현대차 원하청 노동자가 모여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 원하청 노동자 현장투쟁단’을 구성한 것이다. “불법파견 철폐,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쟁취하여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자”는 취지다.

    현장투쟁단은 유인물 대자보 발행, 출근투쟁, 비정규직 노조가입 확대 등 원하청 노동자가 함께 할 수 있는 실천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현장투쟁단은 지난 6일 배포한 유인물에서 정규직 조합원인 홍영출 씨의 사연을 소개하며, 원하청 간 연대를 통한 민주노조운동을 강조했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홍 씨는 현대차 소재생산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아들에게서 “정규직이 힘든 일 다 시키면서도 돈은 절반도 안 준다. 아빠가 하는 노동운동이 이런 거야?”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그는 “‘자본의 계획에 의해 도입된 파생물이고 정규직도 피해자일 수 있다’고 했지만 궁색한 변명처럼 느껴졌다”며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기 위해 누구든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현대차가 불법파견 판결 받았는데 ‘부끄러워 죽겠다. 내 회사는 내가 바로 잠겠다’고 나서야 한다”며 “정의롭고 당당한 아버지가 되어보자”며 정규직의 연대를 호소했다.

    "이빠, 이런 게 노동운동이야?"

    현장투쟁단에서 활동 중인 정규직 활동가 한기영 씨는 “현장의 제 조직을 막론하는 것은 물론, 지역 대책위 등과 함께 활동을 펼치고 있다”며 “추석 전까지는 매주 3일 울산공장 정문에서 출근투쟁은 물론 지역단위에서 집회 등을 개최하며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가입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사진=금속노조)

    이 같은 정규직 활동가들의 움직임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 역시 반기고 했다. 고지환 현대차 아산비정규직지회 교선부장은 “대법원 판결 이후 회사가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되면 고용이 불안해진다’며 노-노 간 분리 공작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활동가가 모임을 결성하고, 활동을 펼치는 것에 대해 비정규직 역시 힘을 얻는다”며 “정규직이 직접 나섰다는 측면에서 다른 정규직 역시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내 원하청 연대는 지난 2005년 불법파견 철폐,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 쟁취 투쟁에서 극에 달한 바 있다. 이에 대법원 판결 이후 소수 현장 활동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규직 연대가 제2의 원하청 공동투쟁으로 이어질 지 주목되고 있다.

    정규직 조합원으로 구성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비정규직 조합원으로 구성된 울산, 아산, 전주비정규직지회는 향후 간담회를 열고 현대차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교섭 요구 및 향후 대책 마련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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