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2010년 08월 31일 10: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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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따라온 듯 옆에서 안동천이 함께 달리고 있다. 강을 따라 길이 있고, 길을 보며 강이 흐른다.

    지율스님의 ‘비포 앤 에프터’를 통해 먼저 만난 구담습지로 가고 있다. 차창 밖 논배미마다 강바닥에서 퍼낸 모래가 쌓여 있다. 모래무덤을 보던 스님이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내쉰다.

    “현장에 가까이 오니까 얘기를 못하겠네요. 진짜 우리가 역사의 현장에 서 있어요. 김종철 선생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나라를 뺏기는 것보다 더 억울하고. 물론 비유입니다. 나라를 뺏기는 것보다 더 슬프다는 것엔 비장함이 있어요. 나라를 빼앗길 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냐는 거죠.”

       
      ▲ 사진=이상엽 작가

    강에서 퍼낸 모래는 농지에 복토하고 있다. 정부는 농민들에게 2년치 농사 수익금에 대해 보상하고 있다. 농민들은 대체로 이를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복토한 흙이 다시 농토가 되는 데에는 4, 5년가량 걸린다고 한다. 스님이 길에서 만난 농부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앞으로 농사짓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살려고요?”
    농부가 대답했다.
    “논에 있는 모래를 팔고 살면 되죠.”
    스님은 할 말을 잃었다.

    “오랫동안 퇴적돼서 돌 하나 없는 땅들이에요. 진토라고 하죠. 근데 강에서 퍼올린 모래들은 1/3은 돌이에요. 그런 거하고 섞여서 농사지을까 싶어요. 특히 유기농하시는 분들은 더 걱정되는 게 모래땅에는 영양분이 없어요. 저렇게 모래를 5미터 이상 올리면 물이 얼마나 잘 빠집니까?”

    모래 팔고 살면 되죠…

    안동천을 따라 구담습지에 도착했다. 이곳엔 2미터 높이의 보가 들어선다. 강바닥은 2미터 깊이로 준설하고, 수위는 1.5미터 올려 배가 다닐 수 있는 4미터의 수위를 유지할 예정이다. 구담보 자리는 콘크리트가 깔려 있다. 포크레인이 흙을 다지며 제방공사를 하고 있다.

       
      ▲ 사진=이상엽 작가

    강 이쪽은 초록의 풀이 가득한 초지이고 강 건너는 나무가 무성한 숲이다. 이쪽도 원래 숲이었지만 작년 겨울, 나무를 베어내 한 그루도 남아 있지 않다. 멀리 보이는 산 하나가 반 가까이 깎여져 있다. 지난해부터 제방공사를 위해 저 산을 파헤치고 있다고 한다.

    “4대강 유역 가까운 곳 어딘가는 저렇게 산이 깎이고 있어요. 여기만 해도 몇 군데 산이 저렇게 절단되고 있어요. 앞으로 2천 킬로가 넘는 구간에 제방을 쌓게 되면 몇 개의 산이 깎일지 몰라요. 종합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강과 숲, 산, 또 문화까지.”

    하회마을을 향해 가고 있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강변엔 나무를 베어낸 곳마다 초지가 들어서 있다. 일행은 하회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부용대로 향했다. 하회마을의 아름다움은 한 바퀴 마을을 돌며 흐르는 물길이 으뜸이다. 물 하, 돌 회. 강이 한 바퀴 돌아가는 마을. 그래서 물도리동이라고도 불린다.

       
      ▲ 사진=이상엽 작가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을 내려다본다. 산 너머에 다음 답사지인 병산서원이 있다. 64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강이 있고, 모래사장이 있고, 소나무 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마을이 있다.

    한 장의 엽서 같다. 옛 기와지붕과 초가지붕이 어울려 사는 마을을 강물이 끌어안고 있다. 강은 햇빛을 은빛으로 반사한다. 강변에서 여행객들이 물놀이하고 있다. 아이들은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모래사장을 뛰놀고 있다. 수심이 얕은 이곳도 강바닥을 준설하고 배를 띄울 예정이다.

    하회마을 앞에 설치하려 했던 3미터 높이의 하회보는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발로 백지화되었다. 그리고 올해 8월 1일 하회마을은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회보 건설을 무산시키지 않았으면 지정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 주변에서 준설작업을 하고 있고 자전거 도로를 만들 예정이다. 하회 마을 위쪽엔 영주댐이 건설되고, 아래쪽엔 구담보가 들어선다. 그 영향으로 모래 유출량이 줄어 넓은 모래톱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 사진=이상엽 작가

    스님은 ‘이런 모습은 앞으로 전설이 될 것’이라며 사진을 찍어둘 것을 요청한다.
    부용대 아래 나룻배 한 척이 고즈넉하게 강물 위에 떠 있다. 마을과 부용대 사이를 오가는 배이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서 나룻배에 모터엔진를 달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삿대로 강바닥을 밀며 오가던 배다. 스님은 무척 서운한 눈치다.

    “저 엔진보트는 타고 싶지 않네요. 관광보트나 저런 것들을 위해 사대강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요. 하회마을은 민속마을인데, 안에는 거의 민박집과 상가에요. 집집마다 마당에 자판기가 있고. 들어가면 실망을 많이 하게 됩니다. 작년에 많이 놀란 것 중 하나가, 저곳이 비경이거든요, 그런데 그 비경 앞에 저렇게 주차장을 만들었어요.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 마을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편리를 위해 경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지역 주민들 말에 따르면, 안동댐을 건설하기 전엔 어제 본 내성천보다 이곳이 수량이 훨씬 더 풍부한 곳이었다고 한다.

    “어제 상주도 그렇고, 낙동강 전 구간이 위에서 보면 물 밑의 모래와 물고기들이 이만큼의 거리에서는 다 보였어요.

    이렇게 물이 빙 돌 때 어느 한쪽으로 물길이 바뀌면서 물이 쏠려가요. 올해는 이쪽이 모래고, 내년엔 건너편이 모래고. 모래가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이렇게 물이 빙 돌아가는 마을들은 물난리가 없어요. 물이 가까워도 수몰이 안 됩니다. 왜냐면 물이 3. 14배로 돌으니까, 돌은 만큼 면적이 넓어지니까요.

       
      ▲ 사진=이상엽 작가

    하회도 그렇고, 회룡포도 그렇고, 경천대도 그렇고 도는 마을들은 홍수가 없죠. 그러니까 이렇게 오래된 마을과 집들이 태풍이 와도 피해를 안 입고 계속 유지가 됐죠. 자연스런 물의 흐름을 존중하면 직강하천일 때보다 홍수 위험이 적어요.”

    ‘풍산들’, 이 아름다운 들녘 때문에 거리로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서애 유성룡의 위패를 간직한 병산서원 가는 길에서 최김경호 씨가 마이크를 잡는다.

    “제가 학부 때 건축과를 다녔는데 한국 건축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병산서원입니다. 중국은 산과 호수를 직접 파서 건물을 만들고, 일본은 그걸 축소해서 모형처럼 두는데, 한국은 차경이라고 해서 경치를 빌려옵니다. 만대루에 앉으시면 낙동강이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풍성한 기운을 느끼실 텐데요. 건물 자체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자연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지율스님은 병산서원의 건물도 아름답지만 백미는 물길이라고 말한다. 길옆으로 보이는 너른 들녘은 ‘풍산들’이다. 예전엔 낙동강물이 이곳까지 들어왔다. 광활한 이 들녘 역시 준설토 적치장이다.

    몇 해 전 겨울, 생사를 넘나드는 단식 끝에 스님은 안동을 찾아왔다. 어느 환경운동가가 스님을 등에 업고 풍산에 다다랐다. 그날 본 ‘풍산들’과 안동천의 아름다운 풍경이 잊히지 않았다. 스님은 바로 이 아름다운 들녘 때문에 거리로 나서야겠다고 다짐했다. 또 하나의 천성산이다.

       
      ▲ 사진=이상엽 작가

    “강을 공부하는 데는 강 주변의 들을 잘 보는 게 중요합니다. 이 강에서 저 들녘 끝까지 물이 찼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이런 홍수터가 없어져서 범람이 계속됐어요. 제방을 여기에 쌓기 시작했고, 제방 안쪽에서 지금 준설을 하고 있습니다.”

    들녘이 한 눈에 보이는 풍산습지 앞에서 내렸다. 풍산습지는 제방을 쌓기 전 많은 새들과 수달, 원앙이 찾던 숲이었다. 스님이 이 근처에서 만난 수달을 찍은 영상이 방송국 뉴스에서 보도하기도 했다. 영상에서 수달은 무엇엔가 쫓기듯 모래사장을 힘껏 달리고 있었다.

    낙동강이 긴 세월 흙을 쌓아 만든 광활한 곡창지대 풍산들은 강에서 파낸 모래로 채워질 것이다. 한때 바다 같았던 들녘을 상상하며 스님이 말했다.

    “이 풍산들은 예전에 하회마을의 양반들을 먹여 살린 들이에요. 하회마을에서 본 초가집들은 여기서 농사를 짓는 노비들의 집이었어요. 여기 사는 어느 분은 이 들녘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들인 줄 알고 살았대요. 학교 다닐 때 비가 오면 저 산 끝까지 물이 차서 마치 바다와 같았다 이렇게 얘기하시드라고요. 끝도 없습니다.

    저 숲속에 있는 것들은 거의 다 야생동식물입니다. 조사가 한 번도 안 돼 있고요. 습지는 생태계의 자궁이다. 살아있는 유전자 박물관이다. 이런 얘길 많이 해요. 습지가 다른 곳보다 생물 다양성이 훨씬 더 많아요. 그동안 제가 강을 다니면서 알려진 곳보다 알려지지 않은 곳이 더 아름다웠단 생각을 많이 해요.”

    낙동강 습지 1/3이 사라진다

    4대강 사업을 통해 낙동강 전체에 형성돼 있는 습지의 1/3 가량이 사라진다. 남은 습지도 강바닥 준설이 야기한 침식으로 서서히 사라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지질학을 전공한 장세명 씨가 한동안 습지를 바라보다 말을 이어받는다.

       
      ▲ 사진=이상엽 작가

    “조그만 강들은 다 습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습지를 없앤다는 건 자연이 준 정수기를 파괴하는 겁니다. 그걸 인위적으로 깨끗하게 하려면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됩니다. 한국에 홍수가 많이 나는 원인 중 하나는 습지가 없어지기 때문인데, 물이 지상으로 떨어지면 숲이나 이런 습지에서 일정 부분 보관하고 조금씩 흘려보내면서 홍수를 예방하는 건데 그게 다 파괴되면서 물이 일시적으로 강으로 다 쏠리는 거죠.”

    언젠가 안동댐에서 대량의 물을 방류한 적이 있다. 그때 많은 물들이 이곳에 잠겼다. 홍수터인 이곳이 잠기지 않으면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앞으로 강을 직강화하고 댐을 건설하고 숲과 논이 사라지면 홍수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다시 길 위에 오른다. 길은 매우 좁다. 버스는 조심스레 언덕을 넘고 산길을 헤쳐나간다. 널리 알려진 유적지 가는 길치곤 보기 드문 구불구불한 신작로길이다. 이 길이 흙길인 것은 마을 주민들이 풍광을 헤친다는 이유로 아스팔트를 놓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란다.

    버스 밖으로 죽은 나무들이 쌓여 있다. 작년엔 톱을 이용해 나무를 베었지만 지금은 포크레인으로 나무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없앤다고 한다.

    공사구역을 표시한 빨간 깃대가 일직선으로 꽂혀 있다. 저 깃대가 꽂힌 곳이 강이다. 얼마 전 강을 잃는 것을 속상해한 지역 주민들이 깃대를 뽑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올해 3월, 스님이 이곳에 왔을 때 제방을 쌓고 있었다. 그때 주민들은 제방을 쌓는 이유를 ‘모른다’고 대답했다. 지역 주민들도 모르게 공사는 아찔한 속도로 진행됐다.

    스님이 만난 서원 앞 식당 주인의 말에 의하면, 예전엔 이 벼랑길에서 매년 추락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다친 적은 없었다. 사고가 날 때마다 나무들이 받쳐주었다.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 나무들이 사라지고 있다. 풍산 들녘을 자유롭게 노닐던 그 많던 철새들도 사라지고 있다.

    스님이 길 왼편의 강변을 바라본다. 강이 아니라 공사장이다. 떼죽음당한 물고기들처럼 배가 뒤집힌 모래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보니까 기분이 안 좋죠? 저는 굉장히 기분이 안 좋습니다.”

    병산서원에 도착해 서원 앞을 흐르는 강을 향해 걷는다. 이곳에도 드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병산이라는 이름은 앞산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는 모습에서 얻게 된 이름이다. 강 너머 산이 가파르다. 산은 병풍을 치고 외부의 침입자들로부터 강을 지키고 서 있는 듯하다.

    나뭇잎이 떨어진 후라야 병풍 같은 절벽이 드러난다고 한다. 스님은 그 풍경을 봐야 진짜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이번에도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한 사람이 물수제비를 강에 띄웠다. 두 사람, 세 사람이 물수제비 만들기에 동참하는가 싶더니 곧이어 거의 모든 일행이 돌멩이를 날리고 있다. 세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오랜 세월 강물에 실려와 납작해진 돌멩이들이 물 위를 퐁, 퐁, 퐁 달려간다.

    근사하게 돌을 날리던 장세명 씨가 ‘물수제비 잘 뜨는 법’에 관해 열띤 강의를 한다. 금세 실력이 는 듯 돌멩이는 강물을 박차며 달아난다. 준설과 함께 사라질 돌멩이들이다.

    병산서원 앞에서 점심을 먹고 낙동강 마지막 답사 장소인 마애습지로 향했다. 길 옆으로 다시 풍산 들녘이 푸르게 차창을 물들인다. 길가에 노란 개망초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다. 스님이 개망초가 많은 이유를 설명한다.

       
      ▲ 사진=이상엽 작가

    “저 개망초꽃이 일제시대 을사조약할 때 들어왔다고 그래요. 농사를 짓지 않는 황폐한 곳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꽃입니다. 망초. 즉 나라를 망하게 하는 꽃이다 얘길 하는데 지금 전국에 저 꽃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들, 풍산 들녘을 달리고 있다. 길옆을 함께 달리는 강이 길안내를 하는 듯했다. 낙동강은 ‘강의 죽음’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전시관이다. 마애유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골프장이 들어선다.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느냐?

    마애교 아래 하중도 모래에서 수달 발자국을 발견했다. 그만큼 물고기들이 많던 곳이다. 하지만 고개를 숙여 관찰해도 물고기 한 마리 볼 수 없다. ‘물’고기 없는 ‘물’은 상류의 공사로 탁하다. 상류에서 공사를 하기 전엔 많은 낚시꾼들이 마애교에 줄지어 앉아 낚시대를 드리웠다고 한다.

    다리를 다 건널 즈음, 눈앞에 부처님 한 분이 앉아 계신다.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마애동 석조비로자나불 좌상. 결가부좌한 돌부처는 파헤쳐지는 낙동강을 입술을 굳게 다물고 바라보고 있다.

    1박 2일의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풍산면소재지로 향한다. 지율스님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면 소재지에 도착하자 스님이 이별의 말을 건넨다.

    “제가 기억하는 책 제목이 있어요.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하인리히 뵐)라는 책입니다. 2차 대전, 전쟁의 포화속에서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하고 묻는 내용인데요. 천성산 문제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 자신한테 계속 묻는 질문 중에 하나는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겁니다. 제가 있어야 할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그것이 아픔의 땅이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감사하게 생각을 해요.”

    버스에서 내려 터미널로 걸어가는 스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1박 2일 함께 하며 정든 시간이 아쉬운 듯 우리를 향해 뒤돌아본다. 왠지 스님이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짐을 우리가 나눠 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는 사이 버스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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