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서 안에서 억눌린 자들
    By 나난
        2010년 07월 31일 09: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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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성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현대 세계의 가치관에 아직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로 대표되는 성서의 윤리적 교훈이 주는 울림이 깊고도 넓기 때문이다.

    <성서>의 주연과 조연

    그런데 이러한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에는 엄연히 주연과 조연에 해당하는 구분이 있다. 주연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주로 남성이고, 권력자이며, 이스라엘의 보수적 전통에 충실한 경우가 많다. 반면 조연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흔히 여성이고, 가난하며, 힘이 없고, 이스라엘의 전통에 대해 반항적이다. 그래서인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서조차 이들 조연을 무시하고 소외하며 심지어 익명으로 처리하기까지 한다.

       
      ▲ 책 표지.

    하지만 예수는 바로 그렇게 힘없는 이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런 뜻에서 본다면 성서의 진정한 메시지는 바로 오만한 성서에 맞서 새로운 방식으로 성서를 읽어야 발견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신간 『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삼인, 12000원)는 ‘성서 안의 은폐된 또는 억눌린 이들의 목소리를 되살려 내자’는 기치를 내건 책이다. 『인물로 보는 성서 뒤집어 읽기』의 저자 김진호는 하갈과 사라, 에서와 야곱, 삼손, 에스더, 엘리야, 유다 등 성서 속 문제적 인물들을 차분하게 분석하면서, 성서에 반하는 성서 읽기를 시도한다.

    저자가 뒤집어 읽은 성서에는 성적 억압, 가부장주의, 보수적 민족주의, 보복의 정치, 권력과 지배 이데올로기의 야합, 다수성을 용인하지 않는 공동체주의 등이 판을 친다. 이에 저자는 그런 야박한 현실에 짓눌리고, 스러져 간 이름 없는 인물들의 삶을 되살려 낸다.

    조연과 무명인들 되살려내기

    곧 천상의 복음 아래 은폐된 폭력을 해부하고, 일개 조연으로 또는 무명으로 사라져 간 성서 속 인물들을 복권해, 성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성서를 읽으려는 것이 책의 주제다.

    성서는 거룩한 어조로 야훼의 영광을 말한다. 그러나 그 거룩한 언어에 무참히 난도질당한 사람들이 성서에는 수두룩하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 나오는 하갈이라는 여인은 아브람의 씨받이 노릇을 하고, 아브람의 아내 사래로부터 학대를 받은 뒤, 쓸쓸히 쫓겨난다.

    야곱의 두 여인 가운데 레아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괄시를 받고, 라헬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고통 받다가 결국 두 명의 아들을 낳았으나 죽고 만다. 다단과 아비람, 고라는 모세에게 정치적으로 저항을 했다는 이유로 추방과 화형을 당한다.

    유명한 삼손의 이야기에서는 어떠한가. 삼손의 첫사랑은 성서 속에서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그저 딤나라는 곳의 여인으로 묘사가 된다. 삼손의 마음을 설레게 한 죄밖에 없는 그녀는 동족 간 갈등에 의해 불에 타 죽는데, 바로 그 종족적 편견 때문에 성서의 화자로부터도, 이스라엘의 신앙사로부터도,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고 철저하게 묵살된다. 요부 데릴라는 사람들의 입에 무수히도 오르내리는데도 말이다.

    그 외에 저자는 남성 권력자의 변덕에 자신의 명을 걸 수밖에 없는 밧세바와 에스더의 이야기, 그저 악마로만 표상되는 가룟 유다, 유아기로의 퇴행을 부추기는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 노예해방론자로 인식되는 바울의 적나라하면서 이중적인 진실 등을 분석하면서 성서가 어떻게 힘없는 이들, 여성들, 무지렁이 대중의 삶을 난도질하는지 보여준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강의 원고를 토대로 한 이 책의 초고는 10년이 넘는 기간에 걸친 수정과 보완 끝에 이번에 빛을 봤다. 소외받는 대중의 입장에서 성서를 읽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선 전형적인 민중신학의 모습을 보인다. 아픈 자의 눈물을 닦아준다는 성서조차 외면한 이들의 그늘진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눈길이 세심한 것도, 바로 그런 민중신학적 면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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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김진호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제도권 신학의 공간 밖을 떠도는 신학의 방외자로서 20여 년을 유랑하였다. 한백교회 담임목사로 7년간 일했고, 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 계간 『당대비평』 편집주간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재야 신학 연구단체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민중신학 연구자이자 ‘역사의 예수’에 관한 연구자로서 여러 권 책을 냈으며, 다양한 영역의 매체에 많은 글을 썼다.

    『반신학의 미소』, 『예수역사학』, 『예수의 독설』,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등의 책을 썼으며, 다른 이들과 함께 쓴 책으로는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 『우리 안의 파시즘』,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무례한 복음』, 『우리 안의 이분법』, 『함께 읽는 구약성서』, 『함께 읽는 신약성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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