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위터, 거대 언론 독점 해체할 것"
        2010년 07월 07일 04: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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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7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지난 6일이 자신의 트위터 개통 1주년임을 밝히며 1년여간 트위터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해 온 소감에 대해 밝혀 눈길을 끌었다. 노 대표는 7일 현재 61,583명의 팔로워를 보유해 정치인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팔로워(1위 유시민 참여당 주권당원 69,538명)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반면 팔로잉은 노 대표가 63,786명으로 유시민 주권당원의 122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팔로잉은 상대방의 트윗을 자신이 구독하는 것으로 ‘듣는 것’에 속하며, 팔로워는 자신의 트윗을 구독하는 사람들의 수로 ‘말하는 것’에 속한다.

    노 대표는 이날 블로그 글을 통해 “나에게 7월 6일은 또 하나의 생일”이라며 “새로운 삶의 방식, 삶의 관계 속에서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제대로 느낀 것은 트위터 생활 6개월도 더 지나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위터의 진수는 역시 온라인에서의 소통”이라며 “많이 듣는 것 또한 소통의 필수 요건이다. 팔로워 수를 가지고 영향력 운운하는 것은 마치 은행잔고나 몇 평짜리 집에 사느냐를 따지는 것처럼 민망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노 대표는 트위터를 “마을광장”에 빗대 “이제까지의 사회적 소통방식 중에서 가장 진화한 것”으라고 말하면서 “권력화한 몇몇 거대 언론사들의 독점적 지위가 장기적인 해체될 것”이라 전망했다. 아울러 이것은 “단순히 소통방식의 진화를 넘어 민주주의의 토대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표는 “그간 낡은 수익 모델을 고집한 통신업체와 이를 방조해온 정부의 IT정책, 그리고 영어문제로 인한 진입 장벽 등이 트위터 대중화를 가로막아 왔다”며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다시 태어난 듯한 첫돌은 기쁘고 내 인생은 트위터 이전과 이후로 나누게 되었다”고 말하며 ‘트윗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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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대표 글 전문

    7월 6일생

    나에게 7월 6일은 또 하나의 생일이다. 원래 태어난 날이 8월 31일이니 나는 두 번 태어난 셈이다. 물론 2009년 7월 6일, 생소하기만 한 트위터를 시작할 때 나는 내가 새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알 수 없었고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7월 6일 이후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삶의 관계 속에서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제대로 느낀 것은 트위터생활 6개월도 더 지나서였다.

    트위터를 통한 변화 중 가장 감동적인 것은 새로운 만남이었다. 물론 트위터가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한 만남이었다. 트위터를 시작하자마자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미디어법 강행처리 마시라는 트윗을 날렸다가 며칠 후 제헌절 기념식장에서 잘 읽었다는 육성답변을 들었을 때 트위터가 아니면 불가능한 대화라 생각하며 신기해했다.

    밤 12시가 넘은 늦은 시각에 트위터에 들어갔다가 그 시각까지 트위터를 즐기고 있던 정동영의원과 우연히 대화를 나누며 막걸리나 한잔 하자는 인사성 대화를 하다가 급기야 며칠 뒤 막걸리회동까지 이어지며 이것이 트위터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감동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던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우석훈박사 집마당에서 고기 몇점 구워먹은 걸 자랑삼아 올렸다가 ‘우리 회사 마당에도 감나무가 있는데 거기서 고기 한번 구워먹자’는 어느 트윗친구의 제안에 그러자고 했다가 말이 씨가 되어 그 회사까지 방문하였다. 나중에 그 회사 직원들 대부분이 트윗친구가 된 것은 물론이다.

    온라인상의 소통만으로 만족 못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였다. 우연히 트위터로 그림 얘기 나누다가 트윗친구들과 인사동 전시회번개까지 진출한 적도 있었다. 밤 9시에 올 수 있냐는 연락와서 11시 넘어 찾아간 이수파 번개자리에는 20대부터 40대까지 나의 직업과 행동반경 속에서는 평소 도저히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직업과 경력을 가진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미삼아 올린 식탁사진 구석에 있는 막걸리병을 보고 남원의 트윗친구가 막걸리 한 박스를 보내준 일. 그 막걸리 처분하느라 번개 때렸다가 70명이 오는 바람에 십 여분만에 막걸리가 동이 난 일은 지금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트위터의 진수는 역시 온라인에서의 소통이다. 그리고 소통이란 말을 나누고 섞는 일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많이 듣는 것 또한 소통의 필수요건이다. 팔로워 수를 가지고 영향력 운운하는 것은 마치 은행잔고나 몇 평짜리 집에 사느냐를 따지는 것처럼 민망한 일이다. 트위터 입문 1년을 기념해서 맞팔율을 계산했더니 98%로 나왔다.

    물론 팔로워보다 팔로잉 수가 더 많다. 둘다 소중한 친구들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소중하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 말을 듣고자 나를 따르는 분들보다 그분들 말을 듣고자 내가 따르는 분들이 더 소중하다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그리고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신문, 방송과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렇게 생생하고 풍부하고 신속한 얘기들을 해주는 분들보다 누가 더 소중하단 말인가? 간혹 악의적인 말을 던지는 친구들도 몇몇 있었지만 나는 블락이나 언팔은 생각도 않고 있다. 그런 사람 그러한 생각도 있다는 것을 내가 잊지 않기 위해서도 그런 친구들 얘기까지 들어야 하는 것이다.

    트위터 입문 일년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그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트위터를 직접하는냐는 물음이었다. 당연히 비서나 보좌관의 도움을 받으려니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처음부터 나의 대답은 같을 수밖에 없었다. “키스를 다른 사람에게 대신 시킵니까?”

    트위터의 기능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경우 가장 초보적인 기능만 이해하고 트위터 동네에 들어왔다. RT 할 때 12자 정도는 비워야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이사 오고 한 달이나 지나서였다. 나머지 기능도 모두 트위터를 하면서 트위친구들로부터 하나씩 배웠다. 걸음마 시절부터 함께 자란 동네처럼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트위터는 일종의 마을광장이다. 나의 트윗친구 중엔 슬로베니아에 살고 있는 분도 두사람 있다. 지리적 차이를 떠나 트위터라는 동일한 사이버공간에서 만나는 동네친구들이다. 이들이 광장에서 나누는 소통방식은 다양하다. 일 대 일 대화도 있고 일 대 다수 연설도 있고 다수 대 다수 야단법석도 있고 밀담도 가능하다.

    그래서 트위터의 복장은 반바지에 남방하나 걸치고 슬리퍼 신은 모습이 딱이다. 어슬렁 걸으면서 사람들 얘기 듣기도 하고 말참견도 하고 필요하면 서서 한참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누가 큰 소리로 떠드는 소리도 듣기도 하고 외치고 싶을 때 한번씩 소리도 지르는 곳이다. 모든 얘길 다 들을 수도 없지만 다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간혹 정치인들이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와서 140자짜리 글을 대여섯개씩 날리며 엄숙하게 일장 연설을 하지만 어쩐지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트윗동네에서 지나가다 한마디 한 것 가지고 국가원수모독죄 운운 하는 것 역시 진짜 트위터도 제대로 모르고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짓이다. 최근의 선거과정에서 후보들의 일방적 홍보가 트위터에서 난무하지 않은 것은 선관위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어서가 아니라 도대체 그런 일방적 행위가 트위터동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고 따라서 호응이 작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트위터가 훨씬 활성화된 미국의 연방법원이 트위터상의 선거운동에 대해 새로운 사회적 소통방식인 만큼 좀더 지켜보자며 선거법상의 제재를 가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당국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전에 국산제품이 없었을 때 카네이션이라 부르고 요즘엔 프림(프리머)라 부르는 것은 실은 커피에 넣는 크림의 일종이고 상품명에 불과한 고유명사이다. 트위터 역시 트위터사가 만든 사회적 소통서비스(SNS)의 한 종류 일뿐이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트위터는 이제까지의 사회적 소통방식 중에서 가장 진화한 것이며 따라서 더 진화한 다른 방식으로 언젠가는 극복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가장 진화한 형태라 해서 트위터가 사회적 소통의 모든 것은 아니다.

    특성상 트위터는 길거리나 광장에서 낯선 이들을 만나 스스럼 없이 대화할 태세가 되어있는 3-40대의 참여율이 높으며 (물론 나의 트윗친구 중엔 중학생도 있다!) 오히려 10대나 20대의 일부는 광장에서의 만남보다는 자신이 꾸민 독자적인 공간에서 친숙한 지인들과의 보다 긴밀한 소통을 더 중시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트위터로 상징되는 사회적 소통의 활성화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변화를 강제하고 있다. 신속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의 고유한 기능은 사회적 소통의 활성화로 분산되고 있다. 권력화한 몇몇 거대 언론사들의 독점적 지위 역시 장기적인 해체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천만원씩 들었던 일인방송국이 수십만원대 스마트폰 한대로 큰 비용 없이 전 세계로 중계하는 현상은 단순히 소통방식의 진화를 넘어서서 민주주의의 토대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트위터 가입자는 이미 백만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일상적 사용자 수는 40여만명 남짓이라는 보고가 있다. 미국이나 일본보다도 한참 뒤쳐져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턱없이 비싼 통신요금에 의존해서 낡은 수익모델을 고집한 통신업체, 이와 영합한 단말기 제조업체 그리고 이를 방조해온 IT정책의 문제가 있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휴대폰 보급률을 자랑하면서도 그 휴대폰이 음성통화 외엔 디카나 게임용으로만 사용될 뿐 사회적소통 서비스를 이용하기엔 한없이 불편한 상태를 오랫동안 방치한 결과이다. 또한 <영어문제>로 인한 진입장벽도 한국에서의 트위터 대중화를 가로막는 중요한 장벽이다.

    이 장벽을 허무는 새로운 틀들도 개발되고 있지만 일본어와 달리 한국어가 공식언어로 지정되지 않아 생기는 벽을 다 허물진 못하고 있다. 트위터가 사회적 소통의 활성화를 통해 결국 민주주의의 질적 고양이라는 문명사적 전환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이처럼 작지 않다.향을 생각할 때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이처럼 작지 않다.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첫돌은 기쁘다. 다시 태어나듯 해서 더 기쁘다. 이제 내 인생은 트위터 이전(before twitter)과 트위터 이후(after twitter)로 나누게 되었다. 새롭게 만난 트윗친구 모두에게 감사의 큰 절을 올린다. 시루떡도 한접시씩 돌리고 싶다. 누가 아는가? 트윗환갑까지 트위터 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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