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 위기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2010년 06월 12일 11: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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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거의 일상적으로 쓰는 말 중의 하나는 ‘인문학의 위기’일 것입니다. 국내든 세계 어느 나라든 그 말은 그대로 들리지만, 그 뜻은 물론 나라마다 조금씩 달라집니다.

    노르웨이 같으면 인문학의 위기란 크게 세 가지 뜻이죠. 하나는 인문학에 투자가 비교적으로 없단 이야기입니다. 노르웨이 학술진흥재단의 지원금의 3%만이 인문학에 투입되고, 저희 교내에서도 교수 증원이 이루어진다 해도 아주 어렵게 이루어지고 연구지원이 매우 취약한 편입니다.

    인문학 위기의 수준들

    또 하나는, 학생들의 취직은 비교적으로 잘 된다 해도 전공과 대개 무관하다는 점이죠. 전형적으로 철학 전공자이었던 학생이 노동복지공단(http://www.nav.no/English ) 사무원으로 취직하는 것인데, 결국 3년 동안(여기는 학사과정은 이제 3년으로 축소됐습니다) 칸트와 헤겔을 읽은 것은 일종의 ‘직장 생활 이전의 교양 쌓기’ 정도 되는 것입니다.

    교양으로 충전되고 그 다음에 다소 재미없는 공공부문 사무직으로 가도 나중에 틈틈이 철학이나 읽을 수 있다면 그게 인생의 낙이라는 건 이 쪽의 일종의 통념이 된 셈에요.

    그리고 가장 심층적 차원에서는 인문학 안에서는 ‘역학관계’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희 학교 같으면 노르웨이/스칸디나비아 역사 쪽에서 그 유명한(?) 바이킹 시대나 중세보다, 근대사도 아닌 현대사 경우 교원이 증원되고 각광을 받지만 전근대사는 ‘찬밥’ 신세에서 벗어날 희망도 안보입니다.

    대체로 ‘실용성’으로 이해(내지 오해)되는 ‘현재성’이 폭력적으로 강요되는 가운데에서 한 과목의 ‘기초’를 이루는 부분들이 뒷전으로 밀립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인문학 전체가 어려운 가운데 그 안에서는 ‘시의적’ 내지 ‘현재적’이라는 판정을 받을 가망이 있는 일부가 자구지책으로 “고리타분한”, “실용성이 없는” 동료들을 주변화시키면서 얼마 되지도 않는 지원을 독점하려는 겁니다.

    크게 봐서는 ‘주류’ 사회 시각에서는 우리 모두가 다 ‘주변 분자’이지만, 그 중에서 일부는 ‘주변 중의 주류’가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죠.

    야만적 영국의 인문학 멸종시키기

    노르웨이에서 위기의 주된 특징이 ‘주변화’라면 보다 야만적 신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아예 ‘멸종 위기’가 다가오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국내에서 전혀 보도가 안돼 모르시는 분들이 많지만, 최근 영국 미들섹스대에서 철학과 폐과, 교수 전원 해고 계획이 문제가 돼 그 철학과를 살리자는 국제 연대 운동도 일어났습니다.(http://savemdxphil.com/ )

    그쪽 철학과는 학계에서 원래부터 하도 이름이 많이 났기에 결국 해고 당한 교수들이 런던의 킹스턴대에 옮길 수 있었지만, 학생, 동료들에게 최고 점수를 받아온 한 인문학 기관이 이렇게 쉽게 하루밤에 날라 갈 수 있다는 걸 보니 공포감을 느끼죠.

    그 과는 하도 인기가 높아 통상적으로 적자가 아니었음에도 경영측이 “같은 돈으로 보다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과를 지원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철학을 죽여버렸대요. 즉, 존속시켜도 손해는 안보지만 없앰으로써 이득을 보자는 주의이었어요.

    이게 요즘 영국에서 인문학이 당하는 ‘이지메’의 정도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서섹스대, 켄트대, 킹스칼리즈 등에서 학생들이 용감히 막아서 철학과 등 ‘위험도 높은’ 전공 교수들의 강제 해고들을 겨우겨우 모면할 수 있었지만, 광적인 긴축 분위기에서는 철학과, 문학과, 언어과, 문헌학 등의 교수들은 거의 그 앞날을 내다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기성 교수들 밑에서 ‘의자가 흔들리는’ 상황이지만 신입자들의 고생이란 이루 말할 수도 없는 것이죠. 노르웨이에서는 주변화 정도 당하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무용지물’ 취급 당하고, 늘 ‘멸절의 위기감’을 느끼면서 살아야 되는 정도입니다. 물론 옥스퍼드, 캠브리즈 등 ‘지체 높은’ 학교들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말씀에요.

    인문학과 귀족의 스승

    이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결국 인문학의 사회적, 담론적 ‘존립 기반’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강단 인문학이란 소수 사회귀족들에게 최고급 ‘교양’을 공급해주고 그들의 문화자본 축적을 지원해주는 ‘귀족의 스승’ 지위였습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지향했던 구미인에게는 라틴어, 희랍어, 불어 정도는 필수이었고, 적어도 늙어서 회고록을 멋지게 잘 쓸 정도의 모국어 문장 실력도 있어야 했는데, 그걸 제공해주는 건 대학 인문학이었습니다.

    물론 소수의 인문학자는 급진파적 성향은 있었지만, 발터 벤야민처럼 대개 대학에서 임시직 이상으로 올라가기가 힘들었어요. 강단 인문학의 핵심어 중 하나가 ‘귀족성’이었다면, 또 하나는 ‘민족’ 내지 ‘국민’이었습니다.

    역사, 언어, 문학 등의 ‘민족화’ 내지 ‘국민화’는 별로 어렵지도 않았지만 철학처럼 보편성이 강한 학문이라 해도 대개 ‘본국 철학 전통 계승’식으로 해서 ‘민족적’ 색채를 띠곤 했어요. 뭐, 그게 어떤 것인지를 마틴 하이데거나 그의 일본인 친구이었던西田 幾多郎(니시다 키타로)이나 그의 한국인 흠모자이었던 박종홍을 보시면 알 것입니다.

    상황을 많이 바꾼 건 제2차대전 이후의 대학의 대대적 확장과 진보의 대세화이었습니다. 주로 중산층이나 중산층 이하 학생들의 새로운 스승들은, 마르쿠제나 알튀세 같은 진보적 인문, 사회학자이었습니다. ‘민족 문화’의 대의는 그대로 유효했지만, 동시에 인문학이 ‘소외를 극복하는’ 하나의 사회적 힘으로 작동되기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의 확장과 진보의 대세화

    아도르노나 마르쿠제와 같은 교수들은, 비록 개인적으로 ‘얌전한 먹물’ 타잎이었지만 사실 그 강단에서 1968년의 혁명을 준비했다고 봐야 합니다. 1970년대의 구미 같으면 (대개 진보적 경향의) 철학은 쿨하고 멋진 공부거리였고, 조선반도를 분단시키고 전쟁이 일어날 제반 전제 조건들을 만들어놓은 미제, 즉 자기 나라의 범죄사를 연구하는 브루스 커밍스와 같은 신진기예 사학자들은 열성에 가득찬 분위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인문학의 황금시대를 뒷받침하는 것은 첫째 완전고용을 보장해주었던 1945~1974년간 복지 자본주의 황금기이었고 둘째 ‘미래, 진보’에 대한 대중적 열의이었어요. 자본주의도 자연스럽게 성장돼갔지만 이를 극복하려고 서로 연대하는 젊은이들의 열기도 자연스러웠어요.

    이 분위기가 결정적으로 바뀐 건 1980~90년대에요. 성장은 둔화됐고 완전고용은 깨졌고 연대 대신에 원자화된 사회에서의 ‘개인 경쟁’이 왕성해지고, 사회적 미래보다 개인적 미래에 대한 각자의 불안은 우선시되기 시작됐어요.

    그리고 범사회적, 연대적 미래 프로젝트가 없는 이상 어디까지나 ‘개인’뿐만 아니라 ‘전체’까지 다루는 철학이나 ‘전체’의 시공적 변이를 탐색하는 사학 등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죠. 대신에 오는 것은 개인의 끝이 없는 불안과 소외를 잠재울 수 있는 각종 ‘마취제’들입니다.

    잘되면 요가 정도고, 못되면 옴진리교 정도지만, 결국 그렇다고 해서 불안은 절대 없어지지도 않아요. 원자화된 개인은 매일 절에 가서 명상하든 웰빙으로 백세 살든 파도가 높은 바다에 던져진 지푸라기일 뿐이기 때문에요.

    결국 인문학의 위기란 사회성의 위기죠. 승자독식의 ‘공부의 신’의 사회에서는 인문학은 없어요. 그리고 사회의 재건은 정치적인 진보, 즉 사회주의적 정치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제가 – 정치 자체에 대해서 별로 재미를 안느끼면서도 – 진보신당을 변함없이 지지하는 이유는 결국 이거에요. 서로 경쟁하느라 바쁜 개인들의 사회에서는 저 같은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갈 구석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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