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참패, 당외 연대 한계 드러냈다
        2010년 06월 03일 04: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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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한나라 ‘완패’, 민주 ‘대역전’ "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달랐다.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됐던 선거는 의외로 민주당의 막판 대역전으로 끝났다. 민주당과 적극적인 연합전선을 펼쳤던 민노당도 진보진영 최초로 인천 동구와 남동구 두 곳 기초단체장을 획득하는 등 예상 외로 선전했다. 애초 진보진영에 있어 ‘역대 최악의 선거’로 예상됐던 6/2 지방선거는 독자후보를 표명했던 진보신당의 ‘최악의 선거’임이 판명됐다.

    진보신당 ‘최악의 선거’

    민노당의 일부 선전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 전체에게는 여전히 불안함이 남는다. 그것은 진보의 깃발을 전면에 앞세운 가운데 얻은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그늘 아래서 그들과 협조한 가운데 얻어진 부수적인 성과물이라는 데서 그러하다.

    이것은 지난 시기 ‘비판적 지지’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단기간엔 어느 정도의 전과를 거둘 수 있을 지라도 장기적으론 진정한 노동계급과 민중승리의 날을 기약하지 못하게 한다. 즉 ‘전술적 승리, 전략적 패배’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생겼을까?

    지금은 냉정히 진보진영 내부의 문제를 성찰해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 독자후보를 강조했던 진보신당도, 민주당과 타협에 앞장섰던 민노당도, 그리고 시종일관 선거에 무관심하면서 사회주의 독자창당에만 매진했던 사노위 그룹도 이 성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 진보진영의 분열을 가져왔던 민노당과 진보신당 간의 ‘당대 당’ 연대 형태는 금번 선거평가의 첫 번째 대상으로 떠올라야 한다.

    1. 6/2선거 참패는 ‘당외 연대’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간의 지방선거와 관련된 진보진영의 연대논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당외 연대’가 얼마만한 한계를 갖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장 먼저 이번 지방선거 관련한 연대논의에 포문을 연 것은 지난해 9월과 10월 학계 손호철과 조희연 교수를 중심으로 진행된 ’97년 체제논쟁’이었다. 이 논쟁에 이어 11월과 12월에 들어서 진보양당인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정책진이 참여하고 주변 시민단체들이 함께하는 각종 정책토론회가 열리면서 진보진영 내 양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치연대’가 가능한 듯 보였다.

    그러나 민노당 이정희 의원이 12월18일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민주대연합’을 공식 제기하면서부터 진보진영 내의 연대가 순탄치 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였다. 과연 2010년 새해 들어 얼마 지나지 않은 2월 10일, 소위 ‘5+4회의’가 개최되고 "반MB연대의 지방선거 공동대응을 추진키로 합의" 하면서, 이후 분위기는 완전히 민주당이 주도하는 ‘반MB연대’로 쏠려갔다.

    노회찬, 심상정 지지율 폭락의 배경

    그 결과는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비교적 선전하던 진보신당 노회찬과 심상정 두 후보의 지지율 폭락으로 나타났는데, 이 때문에 진보신당 내부에서 ‘5+4회의’에 심각한 회의가 일면서, 내부 공개정파인 진보정치포럼과 전진을 중심으로 "5+4회의에서 철수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었으나, 이미 기울어진 분위기를 역전시키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상의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는 선거전 ‘당외 연대’를 주장했던 논거들이 얼마만큼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었던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견해 하나를 다시 보도록 하자:

    "반면 연합전선의 정치에서는 차이와 경쟁이 당과 당 사이의 협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대중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공개 정치이고, 그 심판자는 결국 여론이다. 연합전선 내의 협상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대중정치이고, 이런 정치행위의 반복은 연합전선 참가 세력들의 집권 및 사회변혁 능력을 강화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런 협상정치를 반복하는 가운데, 하나의 당으로 발전적으로 통합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장석준, 2009년 12월 28일 레디앙 " ‘진보재구성’ 정치, 선거논리보다 우선"에서)

    이처럼 논자들의 주관적 의도와는 달리 현 시점에서 진보진영의 ‘당외 연대’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그것도 한번이 아니고 빈번히? 그것은 전통적으로 강한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보수야당과 왜소한 진보진영간의 역량 대비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지형은 해방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전통적으로 자유주의자로 대변되는 강한 보수야당과 그 영향력 하에 재야인사로 대변되는 쁘띠부르주아(종교 및 지식인 계층) 정치세력이 민중진영의 정치적대변자로 자리잡아왔다.

    범사회주의 정치세력의 등장

    80년대의 민주화투쟁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운동과 노동자 농민에 기반한 기층대중운동의 발전과 함께, 특히 노동계급의 이해를 전면에 내세우는 범사회주의 정치세력이 등장하면서부터 진보운동의 중도와 좌익세력이 정식 형성되었다.

    그러나 범사회주의세력으로 분류되는 진보운동의 중도와 좌익세력의 등장은 한국 정치무대에서 볼 때 시기적으로 얼마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들이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소련과 동구권 해체라는 격변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자본주의 내부에서는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복지국가모델’이 시장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모델’에 의해 주류적 자리가 한창 대체되어가던 무렵의 시대적 환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외부적 충격과 변화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 진보진영의 중도와 좌파에 있어서는 큰 시련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90년대 중반 이래, 급진적 변혁을 주장하는 정통 맑스 레닌주의 세력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내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사회복지모델의 사민주의세력 모두 대중적 지지의 극히 완만한 확산을 경험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이다.

    대중은 현재 사민주의와 정통 사회주의의 구분에 별반 신경쓰려하지 않는다. 양자는 모두 한국의 대다수 대중에게 있어 여전히 낯선 이방인이며, 설령 얼마간 알려져 있다하더라도 "이미 실패한, 문제가 많은" 정치파벌로 보일 뿐이다.

    이러한 결과는 이번 6.2지방선거가 진행되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번 선거 국면의 대체적 정치지형은, 여전히 대중적 영향력이 강력한 자유주의적인 보수야당과 이의 영향력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노동의 진보진영 우파, 그리고 지극히 미약한 정치세력으로서의 진보신당(진보진영 중도파)과 사노준 등(진보진영 좌파)이다.

    진보진영의 1차적 과제

    이러한 정치지형을 감안할 때 자본주의의 점진적 개혁적 방법이든, 급진적 변혁적 방법이든 간에, 궁극에 있어 반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진보진영의 중도와 좌파세력에게 있어서 무엇이 일차적인 과제인가는 자명하다.

    그것은 여전히 자유주의적 보수야당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동요하고 있는 민노당의 진보진영 우파세력을 확실히 붙잡아서 진보진영 전체의 단결을 확고히 하는 일이었다. 진보진영의 우파/중도/좌파를 아우르는 전체의 단결된 모습으로서만, 대중에 대해 보잘 것 없는 소규모 정파로서가 아니라 일정한 규모와 행동력을 지닌 집단으로서 최소한의 어필이 가능하며, 지난 2004년 선거 이래 확인된 13%의 고정된 진보진영의 지지표를 확실히 가져올 수 있었다.

    또 이러한 대중적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할 때만이, 보수야당과의 ‘반MB’ 연합이든 선거협상이든 어떤 형태로든 의미 있는 정치협상이 가능하였다. 이 모든 일의 핵심은 바로 진보진영의 중도와 좌파세력이 함께 민노당으로 대변되는 진보진영의 우파세력을 확실히 견인하는 일이다.

    현재의 민노당이 전통적인 재야와 종교 지식인, 그리고 농민과 도시빈민 등 쁘띠부르주아 계급계층을 여전히 광범위하게 대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노동계급의 진보적인 조직역량의 상당부분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정을 감안 할 때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의 대단결을 위한 구체적인 ‘형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현재의 한국 주요 계급간의 역관계와 정세조건을 고려할 때, ‘당외 연대’의 형식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이번 선거과정을 통하여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선거 국면과 진보진영의 동요세력

    선거 국면에서 사표를 꺼리는 대중심리는 지난해 출마선언 전 15.6%까지 기록했던 노회찬 후보의 지지율을, 6.2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둔 무렵에는 1~2%대로 끌어내렸다. 일단 선거 국면에 들어서게 되면 현실적인 ‘당선가능성’이 다른 모든 원칙과 심지어는 ‘상호합의’까지도 압도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그 규칙성은 예외 없이 발휘되었다. 보수야당은 입으로는 연대연합을 주장하면서 한편으론 광주에서 자기들만의 선거구 분할을 하는 등, ‘5+4회의’의 합의사항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렇듯 혼탁하고 당리당략이 난무하게 되는 선거 국면은 진보진영의 동요세력들에게 있어서 더 할 나위없는 좋은 기회이다. 진보신당과 민노당 간의 연대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해 12월 중순, 판을 깨기 위한 것인 듯 갑자기 튀어나온 민노당 이정희 의원의 발언이 그것이다.

    민주당과의 선거연대를 염두에 두는 듯한 그녀의 "우리를 넘어선 더 큰 연대"와 민노당 ‘거름’ 역할의 발언(2009년 12월 24일자, 레디앙 기사 참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진보진영의 분열은 보수야당이 각개격파 전술을 사용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고, 진보진영 내의 동요와 타협분자들이 쉽게 보수야당의 손짓에 야합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한다.

    만약 이번 선거 국면에 진보진영이 ‘당내 연대’ 형식 즉 하나의 통합당의 형태로 임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어떠하였을까?

    진보진영 전체의 단합된 모습이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힘(13%+알파), 그리고 이에 기초한 보수야당과의 선거협상에서의 유리한 입지는 차치하더라도, 진보진영 내 어떤 정파가 당권을 장악하든 보수야당과 차별되는 최소한의 진보진영의 합의된 내부적인 ‘공동강령’의 원칙만은 지금처럼 철저히 훼손되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당내 연대’가 중요하다

    선거 국면에 흡입된 대중들에게 진보진영의 이러한 ‘공동강령’이 마땅히 담고 있을 현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그 대안으로 진보세력이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공동강령’의 내용을 각인시켜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작업은 작금의 ‘금융위기’와 같이 통치계급의 위기가 심각하고 또한 대중이 피부로 고통과 실망을 느끼고 있을 때, 조금씩 우리의 힘을 키워갈 수 있는 확실한 정치적 자산이 된다. 또 이는 선거가 끝난 후 대중투쟁에 적극 개입하고, 앞으로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 보다 큰 전진을 이루기 위한 소중한 밑받침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진보진영은 스스로의 분열로 말미암아 진보진영의 강령도, 선거에서의 득표율도, 실제 당선자에 있어서도, 명분과 실리 모든 면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최악의 선거를 치르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선거 국면에 있어 진보진영의 ‘당내 연대’가 아니고서는, 결정적인 국면에 이르러서 진보진영 우파(현 민노당 주류세력)의 보수야당에로의 경사를 강인하게 견제할 수 없다. 그리고 진보진영은 이 부분 만큼을 앉은 채로 자유주의 부르주아세력에게 빼앗기는 셈이 된다.

    당내 연대를 통한다면 당내 절차를 통해, 당내 토론과 결의 과정을 통해, 그리고 당의 강령적 예속력을 무기삼아 진보진영 내의 동요와 타협분자들의 무기력하고 무원칙한 야합의 가능성을 최대한도로 줄임으로서(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지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이번 선거 국면에서 진보양당의 분열은 노동진영에도 큰 고통을 주어서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지방선거 개입 전략의 방향을 잡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은 선거전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진보양당의 재통합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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