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스님과 정씨네 & 연대와 욕망
        2010년 03월 15일 09: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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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2일 아침이었습니다. 열반에 드신 법정 스님의 자비로우면서도 결연한 듯한 얼굴을 보았습니다. “장례의식을 행하지 마라. 관과 수의도 따로 짜지 마라. 사리도 찾으려고 하지 마라.”고 하신 유언을 들으며 오래 전 읽었던 『무소유』를 떠올렸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는 법정 스님의 마지막 유언은 ‘돈에 미친 사회’에 큰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이름마저도 소유하지 않고 떠나시길 원했던 스님은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하셨고, 주식과 펀드, 로또와 부동산투기의 광풍에 휩쓸려 ‘일확천금’을 꿈꾸어왔던 ‘어리석은 중생’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들을 부끄럽게 만든 깨우침

    큰 스님의 큰 깨우침이 중생들의 마음을 울리던 3월 12일, 그 날 저녁이었습니다. 트럭과 버스를 만드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의 정규직 노동자 3,500명이 비정규직 노동자 18명을 해고하지 말라며 2시간의 잔업근무를 거부했습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잔업수당 2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가 쫓겨나는 걸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 사진=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회사는 비정규직 쫓아내고, 잔업과 특근 ‘한 대가리’ 더 하자고 꼬드겼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전주공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3월 5일에도 잔업을 마다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버스부 노동자들은 3월 2일부터 잔업과 휴일근무까지 일주일간의 적지 않은 임금 손실을 감수하며 비정규직 해고에 맞섰습니다. 지난 2월 24일부터 매일 아침 전주공장 정문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수백 명이 "단 한 명도 해고하면 안 된다"며 ‘의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연대는 하방연대

    “연대만이 희망입니다. 물은 낮은 곳을 흘러서 바다가 됩니다. 진정한 연대는 하방연대입니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님의 말씀처럼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는 더 큰 연대를 낳았습니다. 3월 13일 노동조합에 가입한 2백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협에 처한 18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주말 철야근무를 거부하고 공장 앞 공원에 모였습니다.

    이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철야근무 거부로 트럭은 절반도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해고될 18명의 명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노조에 가입할 용기’가 없는 비정규직 동료들을 위해 철야근무 수당 15만원을 선뜻 포기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는 ‘아름다운 연대’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큰 스님의 ‘무소유’가 우리 사회에 큰 깨우침을 주던 3월 12일 아침 9시.

    우리나라 제 2의 재벌회사인 현대·기아차그룹 본사에서 현대자동차의 주주총회가 열렸습니다. 매출액 31조8천억원, 순이익 2조9651억.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한 현대자동차는 정몽구 회장에게 328억9천만원을 배당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받은 배당금 328억9천만원은 현대자동차가 해고하려는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18명의 73년치 월급(연봉 2500만원 기준)이며, 울산과 전주공장에서 해고하려는 12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11년치 봉급이었습니다.

    이날 주주총회에서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자동차 회장은 등기이사가 되었고, 이사의 보수한도를 10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인상됐습니다. 폐차보조금을 비롯해 국민의 세금과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피땀은 아무 말 없이 정몽구 회장 일가의 ‘소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맑고 향기로운 사회 구현을 위해

    법정 스님은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는 3월 11일부터 “전주공장의 노동자는 단 한 명도 나갈 수 없다”며 ‘총고용보장 쟁취를 위한 원․하청 공동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굳세게 연대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노동자들의 ‘낮은 곳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연대’가 법정 스님의 큰 가르침과 함께 우리 사회를 ‘돈에 미친 사회’가 아니라 사람의 향기가 묻어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작은 희망의 촛불이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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