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운동 가스실 끌려가는 이유
        2010년 01월 07일 09: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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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 정부 2년이 지나면서, 현 정부가 강조해 온 친기업정책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라는 명목을 찾아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단독 사면한 것은, 박정희 전두환을 포함해, 역대 어느 정권도 감히 하지 못했던 역사적인 친기업정책의 기념비였다.

    뒤이어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무산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농민들에게 강제로 수용한 땅을 기업들에게 적정 가격의 1/6의 수준으로 공급하고, 입주하는 기업들이 마음대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파격적인 친기업정책도 발표되었다. 국가균형발전 정책이 졸지에 친기업정책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노동관계법 개정의 의미

    미디어 법 통과로 힘을 얻은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입을 모아 노조의 정당한 단체행동을 불온시하고, 검찰과 경찰 등 동원 가능한 모든 공권력이 참여하여 기업들을 지원하는 총력 동원 체제도 구축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핵심적인 정책은 지난해 마지막 날, 4대강 예산을 날치기 통과시키면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함께 통과시킨 노동관계법일 것이다.

    이 법에 따라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은 올해 7월 1일부터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근로시간 면제심의위원회에서 허용하는 교섭, 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및 건전한 노사관계의 발전을 위한 노조 유지 관리 업무 등의 친기업적인 노조활동 외에는 급여 지급이 불가능해지고, 심지어는 정부가 정한 기준을 초과하여 노조를 두둔한 기업체를 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법에 따라 노조 전임자 숫자의 감소와 노동조합 활동의 위축이 충분히 예견된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복수노조’ 허용에 따라 근로자협의회, 상조회 등의 어용조직이 제2의 노동조합으로 합법적인 전환을 꾀할 것이 예상된다. 2012년 6월이 지나면, 사업장 단위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되어 있는 법 조항에 따라 기존의 노동조합을 제치고 친기업 노조가 교섭 주체로 나설 가능성도 열려 있다.

    동일 산업군 간의 근로조건 균등화,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 약자의 보호 등으로 노사교섭의 모범을 보여주었던 산별노조들도 이번 노동법 개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결국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제도적 후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업에서는 무조건 이익인가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일련의 노동법 개악 조치가 결코 기업의 입장에서 유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충고를 하고 싶다. 물론, 당장은 기업의 입장에서 오늘날과 같은 노동관계법의 개정이 기업 활동에 유리한 조치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나라 경제는 과거 산업화 시대의 그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더 이상 저가 노동력 중심의 ‘요소투입 형 경제’가 아니고, ‘지식기반 형 경제’로 전환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조건 하에서 ‘좋은 노동조건’ 이란 단순히 임금을 많이 주거나 복리후생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지식노동자들은 자신을 기업의 중요한 일원으로 인정해 주고, 노동조합이라는 합법적인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의견이 회사에 수렴되며, 결국 회사 운영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조건이 보장될 때 비로소 자기 회사에 대한 소속감과 사명감을 가질 수 있고, 그 때에만 창의적 노동이 가능해진다.

    즉, 글로벌 경제가 일상화된 환경에서는 대기업들이 노동자를 단순한 사용대상이 아니라, 기업의 중요한 파트너이자 주요 고객으로 인식하는 기업문화를 주도해 나갈 때, 마침내 세계를 선도하는 최고 수준의 기업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법 개정을 계기로 우리가 얻은 값비싼 교훈이 있다. 그것은 지금처럼 단순히 근로조건 개선만을 요구하는 수준으로는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준엄한 현실이다. 따라서 노동자들도 이제는 각종 사회적인 이슈와 정치적인 주제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대중적 이익집단으로써 갖게 되는 여러 가지 한계로부터 전략적으로 벗어나 사회 제 분야와의 연대와 단결에 기초하여 노조의 공익적 기능을 크게 높일 수 있도록 노동운동 지도부는 더욱 고민해야 한다.

    반노동 공세의 쓰나미

    단지 눈앞의 단기적 이익에만 급급하다면, 같은 직장에 있는 비정규직 동료의 아픔에 귀를 막고, 용산참사를 보면서 눈을 막고, 양심적인 언론인들에 대한 탄압도 외면하면서, 노사협상에서 기본급의 인상보다는 실질 수령액의 인상을 합의한 최근 특정 노조의 선택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다수의 일용 근로자들이나 힘겨운 처지의 자영업자, 8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들에게는 주로 노조 전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번 노동관계법의 개정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이 퇴보는 향후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반 노동 공세의 쓰나미가 되어 우리를 덮쳐올 것이다. 나치에 의해 끌려가는 가스실의 문턱에서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라고 뒤를 돌아보며 항의하던 유태인에게, 누군가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가스실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라고 일러주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대책 없이 예결위장 점거농성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일이 잘못되고 나서야 같은 당 국회의원인 환경노동위원장을 윤리위에 회부한 민주당이나, 개인적인 성과에 급급하여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준 추미애 의원이나, 날치기 통과 후 무력하게 눈물 흘리는 민주노동당이나, 효과적인 반대투쟁과 대안을 조직하는 데 실패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 이 모두 주체들은 이번 일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노동운동과 복지국가

    우리는 이제 노동조합의 역할과 기능, 방향과 목표를 재정립할 필요성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개별 사업장 단위의 임금인상과 복지확충에 머무는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엄중한 반성이 요구된다. 노동운동의 범위를 산별수준으로, 그리고 국가수준으로 넓혀 나가야 한다. 보편주의 제도적 복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임금 인상”으로 투쟁의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는 바, 그것이 바로 복지국가 운동이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도입과 보육과 교육, 의료와 주거, 노후 소득 보장 등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사회경제정책의 전 분야로 노동조합의 관심 영역을 확장하고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가야 한다. 이렇게 될 때 국민들이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노동조합이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 시작할 때 정치권에서도 전국구 의석 하나 정도 던져주면 될, 가벼운 포섭대상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중요한 주체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이렇게 할 때만 실질적인 근로조건의 개선을 이루어 낼 수 있다.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정치화, 그 한 가운데에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이 놓여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10년 1월 07일
    사단법인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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