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정부, 최선 다해 국제기준 역행"
        2009년 11월 10일 09: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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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자 임금지급은 노사 교섭으로 해결하는 게 상식이다. 정부가 특정 저의나 의도가 있지 않고선 노사 자율적 교섭에 왜 개입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국제노동기준을 무시하는 것은 국제사회와 ILO, 유엔을 무시한 것이다.”

    스티븐 베네딕트 ITUC(국제노총) 노동기본권, ILO기준 담당자는 한국 정부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법으로 규정한 것과 관련해 이 같이 말하며 “전임자 임금지급을 법적으로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실제로 이를 지급하는 회사를 불법화하는 법은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부 vs 노조, 국제기준 놓고 정반대 해석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놓고 정부와 노동계가 국제기준 해석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정부는 그간 13년간 유예된 복수노조 허용 및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2010년 시행을 주장하며 국제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날 역시 노동부는 성명을 통해 “전임자 급여 지원 금지가 ILO 기준에 전적으로 부합한다”고 주장하며, “노동계가 급여 지급의 근거로 주장하는 ‘ILO 협약 제135호’에는 노조대표에 대해 제공하도록 한 ‘적절한 편의’에는 타임오프(time-offㆍ유급 근로시간면제)가 포함되며, 부여된 타임오프에 대한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는 법률, 단협 및 관행에 따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현행 법규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노동계의 주장은 정반대다. 노동계가 내놓은 국제기준에 따르면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법으로 규정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으며, ILO는 10여 차례에 걸쳐 “노조전임자 급여지급의 금지는 입법적 관여사항이 아니므로 현행 노조법 상의 관련규정을 폐지할 것”을 권고해 왔다.

       
      ▲ 9일 양대 노총 주최로 ‘노조전임자의 위상과 국제기준에 관한 국제세미나’가 여의도 CCMM에서 열렸다.(사진=이은영 기자)

    9일 오후 2시 여의도 CCMM, 양대 노총 공동주최로 열린 ‘노조전임자의 위상과 국제기준에 관한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국제노동 전문가들은 역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법으로 규정할 사안이 아니며, 이는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노동계의 입장에 힘을 실었다.

    팀 드 메이어 ILO 방콕사무소, 노동기본권 담당자는 “전임자는 노사관계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처리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며 “이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분명한 노동이며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전임자 비율, 전 직원 수가 기준돼야

    그는 “특정 업무를 노조 전임자가 해야 하는 일인지를 법적으로 명시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며 “정해진 시간에서 회의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뿐만 아니라 일년 내내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며 단체협약 이행 감시, 고충 처리, 특히 경영실적과 관련된 정부를 조합원들과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부와 경영계가 “한국의 전임자 수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전임자 비율은 조합원 대비 전임자 수이지만, 전임자들이 하는 일은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지 않은 직원 모두에게도 적용된다”며 “굳이 전임자의 수를 비율로 따지고자 한다면, 조합원 수가 아닌 전체 직원 수로 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복수노조 허용과 연동돼 법이 제정된 것과 관련해 “복수노조는 노동자들이 어떠한 계층에 있건 자신의 특수한 상태에서 여러 개의 노조를 선택하고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임금지급 문제와 연동될 수 없다”고 말했다.

    스티븐 베네딕트 ITUC 노동기본권, ILO 기준 담당은 “한국은 ILO의 역할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최선을 다해 국제기준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지난 6월 고용창출을 통해 경제위기 방안을 모색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노동자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추구할 권한을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라며 “노사가 임금협상을 하듯 전임자 임금도 노사 협상으로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노동부 "해당 국가 특수성 감안해야"

    롤랜드 슈나이더 OECD TUAC 선임정책자문위원 역시 “노조 간부 및 노동자 대표에 대한 재정지원은 각국의 노사관계제도에 따라 다르지만 사용자들이 상당부분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사용자에 의한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강행하려 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전임자 임금은 정부 개입이나 강제 법률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사 간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단체교섭에 맡겨야 한다는 ILO의 성명을 지지하고 있다”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상의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조항을 즉각 폐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김경선 노동부 노사관계 법제과장은 “한 나라의 법은 그 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특수성에 기초한다”며 “물론 결사의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보장하는 게 필요하고, 그 부분에 대해 한국 역시 헌법으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결사의 자유라는 것 역시 한 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과장은 “현행 노조법상의 임금지급 제한 규정은 원칙의 문제”라며 “노동조합의 핵심적 요건은 자주성과 민주성으로, 이때 자주성은 사용자로부터 독립이라는 점은 누구보다 여러분이 잘 알 것”이라고 말하며, “한국의 노동조합은 노동운영비의 대부분을 사용자에 의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전임자가 수행하는 활동에 대해 사용자가 관여할 수 없는 상황으로, ILO는 고충처리, 단체협약 등의 활동을 보장하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한국은 전임자 자체를 보장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이에 한국의 실태는 ‘근로자 대표에 대한 편의 제공’이라는 135호 협약을 위배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이 유일한 나라"

    이에 대해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고충처리, 단체협약을 전제로 한 타임오프제는 최소한 지켜져야 할 부분이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위한 규정으로 악용할 부분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노동조합 운영에 대한 재정지원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 일본, 캐나다 등 극히 일부국가이며, 전임자 임금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미국, 캐나다, 일본의 경우도 단체협약으로 정한 조합활동은 폭넓게 유급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 문제는 노조의 자주성을 상실하게 하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해석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전임자 임금지급은 당연히 노사 자율에 맡겨져야 하며, 오늘 이 세미나조차 필요 없는 항목”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전임자 임금 지급 여부를 따지고, 지급하면 처벌하겠다는 것은 노조 간섭이고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임 위원장은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노동3권을 누리는 데 있어 노동조합이 충분한 재정 자립을 누릴 때까지 적어도 복수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 노조 문제에 대해 정부가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 역시 “한국정부는 국제기준을 내세워 전임자임금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노동악법을 강행 실시하려 한다”며 “하지만 지난 10월 한국노총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OECD 30개국 중 전임자임금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장 위원장은 “이처럼 사실과 전혀 다른 외국의 사례를 거론하며 ILO를 비롯한 국제단체의 수차에 걸친 권고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정부가 국제기준을 운운하는 것은 노동운동 자체를 말살하려는 기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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