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학사정관제, 절대 안 된다”
        2009년 07월 29일 09: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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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입학사정관제를 100% 실시하겠다고 해서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입학사정관제를 우려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입학사정관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대체로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속도의 문제. 왜 이렇게 빨리 추진하는 것이냐, 현장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졸속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혼란에 빠질 것이다, 뭐 이런 얘기들이다.

    둘째, 대통령 독주의 문제. 왜 갑자기 대통령이 입학사정관제로 칼춤을 추느냐, 뜬금없다, 포퓰리즘이다, 교육부 실세 차관 이주호마저 제동을 걸 지경이다, 여태까지 학교다양화라든가 자율화라든가 떠들다가 갑자기 입학사정관제를 툭 던지면 어쩌란 말이냐, 대통령의 오버다, 이런 정도의 얘기들.

    이명박 대통령도 참 답답할 것 같다. 입학사정관제는 지금 갑자기 툭 던져진 게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기 전부터 주구장창 제시해왔던 정책대안이었다.

       
      ▲ 사진=청와대

    이명박 정부 초기에 3불정책 폐지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러자 비판세력은 ‘그러면 본고사를 부활한다는 말이냐!’라고 따졌다. 이명박 정부는 본고사를 부활하는 건 절대로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온 것이 입학사정관제였다.

    “입학사정관들이 학생부에 있는 정보를 충분히 활용해서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생활한 아이들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 이명박 정부에서의 3단계 자율화 계획의 핵심은 대학의 학생선발의 역량을 키워드리겠다는 겁니다. 입학사정관이 필요하시면 저희들이 인건비 보조까지도 해드린다는 겁니다.” – 이주호 차관의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발언

    이미 자율화 계획의 핵심이 입학사정관제에 있다고 정권 초기부터 누누이 밝혀왔는데 이제 와서 사람들이 깜작 놀란 체하니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비판세력은 여기에 귀를 막고 ‘난 몰라 난 몰라 본고사 반대 본고사 반대’ 이 말만 하다가 이제 와서야 입학사정관제 얘기를 하고 있으니, 참 멀게도 돌아왔다.

    우왕좌왕 민주화세력

    입학사정관제는 노무현 정부의 목표이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자율성과 분권화를 금과옥조처럼 여겼기 때문에 각 대학에게도 자율성을 주려 했고, 입시분야에서 그 자율성이 구현된 이상이 입학사정관제다.

    한 마디로 각 대학이 ‘엿 장수 마음대로’ 신입생을 선발하라는 얘기다. 여태까지는 학력고사 점수에 구애를 받았다면 앞으로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아니 신경을 쓰든 신경을 안 쓰든 그것까지 포함해서 ‘니들 마음대로 하세요’가 입학사정관제란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이런 식으로 자율성을 신봉했기 때문에 각 대학들은 노무현 정권 치하에서 마음대로 깽판을 쳤다. 논술 파동, 고교등급제 파동, 특별 전형 파동 등 교육환란들은 그렇게 생겨났던 것이다.

    입학사정관제가 그 자율성의 완성형이므로, 노무현 정부보다 더 극단적으로 자율성을 신봉하는 이명박 정부가 입학사정관제를 추진할 거라는 건 안 봐도 DVD인 상황이었다. 입학사정관제에 깜짝 놀라면서 속도조절을 주문할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자율화 반대를 일관되게 견지할 일이었다.

    황당한 건 비판세력도 입학사정관제에 찬성한다는 점이다. 교육토론에서 참여정부 측 인사는 입학사정관제는 원칙적으로 옳은 방향이지만, 서서히 추진하는 게 좋다는 식으로 말했다. 오바마가 당선됐을 때 한국의 비판언론들은 오바마를 일류대생으로 받아준 미국의 입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었다. 미국의 입시제도라는 게 바로 입학사정관제다.

    기득권 세력은 입학사정관제를 실현하기 위해 돌진하고 있고, 비판세력은 어정쩡하게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다. ‘그게 방향은 맞는데 지금 당장 현실하고는 좀 안 맞고, 어? 뭘까 뭘까 뭘까?’ 이런 식이면 한국 교육에 미래는 없다.

    입학사정관제는 무조건 안 되는 것

    속도나 대통령 독주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빠르게 추진하든 느리게 추진하든, 졸속으로 추진하든 용의주도하게 추진하든, 독선적으로 추진하든 합의에 의해 추진하든 입학사정관제는 절대로 해선 안 되는 것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에서 어떤 기준으로 학생이 선발되는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모든 국민에게 정해진 학습을 시켜주는 공교육이 이 복잡한 시스템을 어떻게 쫓아가나? 결국 사교육만 살 판 난다. 그리고 복잡한 입시제도를 연구할 수 있는, 돈 많고 시간 많은 강남의 고학력 전업주부들만의 잔치가 될 뿐이다.

    입시와 운영이 자율화된 학교는 자기들 멋대로 선발권과 경영권을 행사해 최대한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입시부문에선 모든 학교가 일류학생과 부잣집학생을 차지하려 경쟁하게 되는데 당연히 서울지역 명문대들이 승리한다. 온갖 전형방식을 조합해 자기들 학교가 귀족학교가 되는 데 보탬이 되는 학생들을 독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통해 대학서열체제는 더욱 강고해져 그들은 차원이 다른 귀족학교가 된다.

    미국 대학들은 그래도 약간의 품위를 유지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조금은 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식 대학제도에서 교육은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핵심 기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은?

    한국의 명문대들이 과연 자신들에게 주어진 무한한 자율성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미국 명문대만큼이라도 공공적 책무를 지키려 할까? 천만에! 상속세를 굳이 내려 하는 미국 부자들과 손톱만큼의 부동산세도 안 내려 하는 한국 부자들의 차이 이상으로, 한국 명문대들의 품위는 극악의 수준이다.

    그런 한국 명문대들에게 자율성? 니들 맘대로 학생 뽑으세요? 미국식 사회양극화 입시제도만도 못한 개판5분전 입시제도가 된다. 명문대들이 자기들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멋대로 선발 깽판치는 것 때문에 해마다 교육환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 이슈들로 갑론을박하는 사이에 점점 명문대들은 귀족학교로 승천하고 한국은 귀족사회로 재편될 것이다.

    속도, 독주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입학사정관제같은 입시자율화는 무조건 해선 안 된다. 거꾸로 가야 한다. 강력한 입시규제, 더 나아가 입시철폐. 이것만이 교육을 정상화시킬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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