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와 시민이 공동대응해야
        2009년 07월 24일 08: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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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적 기준으로 볼 때 발암물질은 400종 이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56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찾아내지 않으면 막을 수도 없다. 정부는 소극적이다. 전문가들과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여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발암물질 감시 운동의 중요성과 대책, 외국 사례, 현장과 결합된 활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전문가의 글을 7차례 연재한다. 이 글은 주간 <변혁산별>에도 동시에 실린다. <편집자 주>

    연재순서

    1. 들어가며 : 한국에서 발암물질감시운동이 시작되다
    2. 유럽 신화학물질관리제도 (REACH) 도입배경과 경과
    3. 유럽 시민사회단체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에 대한 적극적 대응
    4. 유럽 노동조합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에 대한 적극적 대응
    5. 다시 한국에서, 문제는 무엇인가?
    6. 한국의 발암물질목록은 시민과 노동자의 공동작품이 되어야한다
    7. 마치며 : 발암물질감시운동, 현장에서부터 함께하자

    이제 대책을 얘기할 시간이다. 두 차례에 걸쳐 얘기하려고 한다. 먼저 우리나라의 협소한 발암물질 목록을 어떻게 바꿔낼 것인지 얘기하고, 다음 글에서는 금속노조를 비롯한 노동자의 역할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그것 참 이상하다. 시민의 문제라고 하면 세상이 떠들썩하게 관심을 갖는데, 노동자의 문제라고 하면 시큰둥하다. 석면만 해도 그렇다. 탈크 중 석면에 대해서 사회가 보여준 관심도 뚜렷이 구분되었다. 의약품이나 화장품의 탈크, 베이비파우더의 탈크에 대해서는 연일 주요 뉴스로 보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탈크를 대량 사용하면서 노출되어온 노동자들의 얘기가 보도된 사례는 거의 없다. 여기에는 두가지 원인이 있는 듯하다.

    노동자와 시민을 갈라놓은 사회  

       
      ▲ 자료화면=MBC

    먼저, 시민의 영역과 노동자의 영역에서 문제 제기의 주체 역량의 격차가 크다는 점을 짚을 수 있다. 소비자운동을 하는 단체의 활동은 매우 적극적이며 치밀하다. 종류별로 화장품을 사와서 분석해보고 유해성분을 찾아내서 사회에 알려낸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학용품이나 장난감의 유해물질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폭로한다.  

    최근에는 환경운동단체들에서도 이러한 생활 속의 유해물질을 찾아내고 대책을 만들어내는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허위 광고나 유해성분을 숨기는 비양심적 기업행위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은 실로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문제를 찾아내고 드러내는 노력은 그렇게 많지 않으며, 기업의 허락 없이는 외부의 조사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노동자의 문제는 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의 인식이다. 조금 더 들어가면, 노동자라는 존재는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있는 듯하다.

    경제를 우선하면서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해왔던 자본과 정권이 수 십 년간 민중들에게 심어준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견고하며 잘 깨지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자 건강의 문제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노동자와 시민을 나누면 실패한다

    환경운동이나 소비자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조차 노동자들의 문제는 어렵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노동자와 시민을 나누어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시민의 유해물질 노출문제와 노동자의 유해물질 노출문제가 갈라놓을 수 없는 동일한 원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생필품의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것은 제조회사에서 유해한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는 핸드폰이나 각종 생필품 생산 기업마다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사용금지물질 목록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노동자들도 금지된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는 효과가 발생한다.

    한편, 노동자들의 건강문제 때문에 현장에서 특정 유해물질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 제품 속의 유해물질 또한 줄어들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공장의 굴뚝이나 폐수로 빠져나가는 유해물질 역시 감소한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시민과 지역 환경도 보호하게 되는 것이다.

    시민의 유해물질 감시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내부의 양심적 감시가 병행되어야 한다. 기업내부의 감시는 노동조합에 의해 수행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노출되는 발암물질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만 한다. 노동자와 시민을 나누는 길은 노동자와 시민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길이며,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노동자 시민 공동 목록 작성부터

    하지만, 나는 노동자와 시민이 서로를 활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지는 않는다. 그런 얘기는 오히려 싫어하는 편이다. 그저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꾸준한 문제제기를 하는 편이다. 나는 노동자와 시민이 서로를 다르게 인식하지 않는 것이 정말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위치에 따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다루는 정의로운 인식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시민이 하나라는 인식은 우리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향임이 분명하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동자와 시민의 공동 노력을 기획하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라고 본다.

    그래서 지난 몇 개월간 발암물질감시운동은 시민사회단체와의 간담회와 노동조합 워크샵을 통하여 공통분모를 만들어내는 노력을 추진했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와 시민이 공동으로 만드는 발암물질목록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석면을 우리의 목록에 넣게 될 때, 시민은 어떠한 문제 때문에 석면을 중요하게 보고 있으며 노동자는 왜 중요하게 보는지 분명해질 것이다. 결국 석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자와 시민의 공동노력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발암물질 목록부터 시작

    7월 10일 오후 4시부터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건물 1층. 십 여명의 전문가들이 발암물질목록작성 전문위원회를 열었다. 첫 번째 안건으로 누구를 위한 목록을 만들 것인지 의논하였다. 논의결과 시민과 노동자를 구분하지 않기로 하였다. 환경과 직업의 노출을 구분하지 않기로 하였다.

    시민과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발암물질의 목록을 우선 만들어내고, 이후에 생식독성, 잔류독성, 변이원성 물질이나 환경호르몬까지 넓혀나가기로 하였다. 약 2천여 종 물질부터 먼저 검토에 들어갔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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