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정활동, 법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2009년 07월 20일 11:50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의정활동 2년째 두 번째 구정질문을 하게 되었다. 의정활동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은 연습 없는 실전이라는 점이다. 의정활동은 예산안, 조례안, 행정사무감사, 구정질문,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이 모두 중요하다.

    일반 안건심의는 의원들과 함께 상임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구정질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원 개인이 준비하여 집행부로부터 원하는 답을 얻어 내야 한다. 다른 안건심의에 비해 구정질문은 심리적 압박감이 무시무시하다. 준비한 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므로 철저한 조사와 연구는 필수이다. 의정활동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구정질의, 의정활동의 꽃

       
      ▲이승희 의원

    구정질문 주제로 ‘장애인의 이동권’과 ‘접근권’을 다루기로 마음먹고 조사 작업에 들어갔다. ‘장애인 이동권’과 ‘접근권’을 잡게 된 데에는 어느 장애인의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의원님 울퉁불퉁한 보도블럭과 보도경계턱 때문에 몸살이 날 지경이에요. 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 중증장애인은 평행을 잡기가 힘들기 때문에 휠체어로 이동하다 자주 뒤집히고 엎어져요”

    내가 매일 걸어다니는 보도블럭과 자동차로 이동하는 차도가 그렇게 위험하다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휠체어를 손수 운전해보기로 하고 그 장애인의 휠체어를 빌려 탔다. 휠체어를 탄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위에 떠있는 작은 배 같았다면 그 느낌이 전해질까.

    2cm로 규정하고 있는 보도경계턱은 5cm가 넘는 곳이 다반사였고 휠체어는 이동을 멈추고 세게 기어를 잡아 턱을 올라채야 하니 휠체어는 앞바퀴가 들리고 몸은 뒤로 쏠렸다.

    40분 남짓 휠체어를 탔을 때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아! 이분들은 이렇게 목숨을 내놓고 거리를 다니고 있었구나, 때론 도로를 이용하는 그 분들의 용감무쌍함이 도로교통법에 보도로 다니게 되어있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다닐 수가 없는 길이어서 차가 다니는 도로로 내 몬 것이라는 것을.

    보도경계턱, 규정은 2cm… 실제로는  5cm 다반사

    한 달을 줄자와 디지털카메라, 필기도구를 챙겨서 북구 관내를 돌았다. 장애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북구 관내 5개 영구임대아파트 주변과 장애인 이동권 및 접근권에 대해 지도 감독 책임이 있는 북구청과 26개 동사무소를 주 조사대상으로 잡았다.

    조사하고 다니는 길마다 보이는 턱들이 어찌 그리 많던지 막히는 턱과 시설의 높은 진입로를 접할 때마다 답답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정을 요구하고 지도 감독해야할 동사무소와 구청사의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장애인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유효폭은 물론 경사로도 법에 걸리지 않게 만들어놓기만 했을 뿐,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었다.

    구청사 내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은 더욱 가관이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폭이 좁아 진입이 어려웠고 겨우 들어간 화장실 문은 아예 닫히지가 않았다. 다시 화장실을 빠져나올 때는 후진과 전진을 열 번 넘게 반복, 또 반복.

    무늬만 장애인 화장실일 뿐,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직접 휠체어를 타고 조사하는 것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그동안 장애인이 이용하는 화장실이라 생각했던 곳이 단 한곳도 사용할 수 없는 곳이었다니.

    행정관청의 무관심과 안일한 탁상행정의 결과였고, 제 몫을 다 하지 못한 의원으로서의 자괴감에 조사 내내 힘들었다.

    광주시 교통약자 현황을 보면 전체 인구의 약22%, 즉 10명 중 2명이 교통약자다. 교통약자를 위한 교통편의증진법,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등 편의증진보장을 위한 법률, 장애인 차별법이 제정되었다. 수많은 법에서 규정하고 보장되어 있어도 현실에 적용되지 않으면, 법안에서만 존재하는 죽은 법이다.

    아무리 좋은 조례를 만들어도 지켜지지 않으면 종이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일은 법을 만드는 일 못지않게, 만들어진 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의원으로서 조례를 만드는 실적보다, 주민들의 입장에서 실생활에 불편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한다.

    한숨 그리고 자괴감

    조사를 마치고 구정질문이 있는 당일, 같이 조사하고 휠체어를 기꺼이 빌려주셨던 많은 장애인분들이 본회의장 참관을 해주셨다.

    본회의가 열리는 의회는 3층에 있고 구청건물에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리프트카를 타고 본회의장에 입실해야 한다. 리프트카를 타고 휠체어장애인 1명이 3층까지 올라오는데 걸리는 시간만 8분 남짓. 휠체어 이용 장애인 7~8명이 이동하는 동안 본회의 시작 시간은 넘어서고 있었다.

    지켜보던 구청장은 공무원들을 향해 엘리베이터 설치를 채근했다. 집행부는 장애인단체나 장애인당사자와 협의하여 일을 추진하겠다는 답변을 하였고 즉시 보도평단성 작업 및 보차도 낮춤 사업이 시행되었고, 추경예산등에 반영되어 단계적으로 사업이 추진되었다.

       
      ▲이승희 의원이 지난해 광주장애인인권포럼(준)으로 부터 장애인정책우수의원으로 선정되어 상을 받고 있다.(사진=이승희 의원 제공)

    의정활동 초기엔 기초의회에서 하는 일은 파급효과가 미비할꺼라 소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판단이 오판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으로 시간과 노력을 얼만큼 기울였느냐 이지 국회에서 시에서 법률로 정하는 것과는 또다른 지역에서 바꾸려고 울리는 소리 또한 위로 향하고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는 것을 알게 해준 소중한 구정질문이었다.

    끝까지 함께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을 트이게 해준 장애인 동지들께 감사드린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