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껍데기는 가라
        2009년 04월 29일 03: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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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이 산하에 어김없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1960년 4월, 독재에 맞선 젊은이들의 함성, 총탄에 뚫린 그들의 순결한 피를 기억한다. 그리고 신동엽 시인의 해묵은 싯구를 다시 떠올린다. 1967년 세상에 나온 뒤 군부독재 아래서 불온시된 이 작품은 6월항쟁 직후인 1988년 MBC <명작의 무대> 씨리즈에서 처음 방송했다. 21년 만이었다. 그후 다시 21년이 흐른 2009년 봄의 방송계를 보면 이 시는 놀라울 정도의 ‘현재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방송계를 억누르는 껍데기 군상

    4월 15일 저녁 <PD수첩> 김보슬 PD가 검찰에 연행됐다. 결혼을 나흘 앞둔 시점이었다. 김보슬 PD의 죄는? “단 1%라도 광우병 위험이 있으면 이를 알리는 게 언론의 의무”라는 소박한 사명감뿐이었다. 국민건강을 지키고 검역주권을 세우라고 촉구한 것뿐이었다. 송일준, 조능희, 이춘근 PD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고, 다른 어느 PD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사소한 실수를 빌미로 정당한 언론행위를 수사하고 PD를 연행하고 압수수색을 시도하는 검찰, 그들이야말로 껍데기다.

    껍데기는 또 있다. 다음날 조선일보에는 “김보슬 PD, 결혼 앞두고 의도적으로 자진 체포?”라는 제목의 야릇한 기사가 실렸다. ‘김 PD가 자신의 체포 장면을 캠코더에 담아 언론탄압 이미지를 알리려 한 것 아니냐’는 검찰 일부의 시각을 확대해서 쓴 것.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체포될 위험을 무릅쓰고 결혼 준비를 위해 부득이 나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지 않을까. 이 신문은 노무현정권 당시 미국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앞장서서 보도하다가 이명박정권 들어서 180도 논조를 바꾸었다. 부당한 언론 탄압을 비판하기는커녕 사안마다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이 신문도 껍데기에 불과하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공직자 개인의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외국의 사례도, 촬영 원본에 대한 압수수색이 취재원 보호에 위배된다는 설득도, 검찰 수사에 응할 경우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가 위축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리라는 지적도 그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였다.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지극히 상식적이었고, 검찰 수사를 거부한 것 또한 당연했다. 상식도 염치도 인륜도 없이 권력의 주구를 자임한 검찰, 그리고 앞장서서 강경 수사를 주문한 일부 신문, 그들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껍데기다.

    KBS와 YTN의 경우

    KBS 장악과정을 일일이 돌이켜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장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임면권’이라고 우겨서 정연주 사장을 강제 해임한 주역들, 이 껍데기의 이름은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과 그에 빌붙은 기회주의 군상들이다. 이들은 특별감사는 물론, 국정원이 참여한 ‘KBS 대책회의’까지 가동했다. KBS 이사진을 친여 인사 위주로 물갈이한 과정을 보면 이들의 파렴치를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이들은 당시 KBS 이사 신태섭이 ‘교수직에 소홀하다’는 이유로 동의대에 압력을 넣어 교수직을 박탈했다. 이어서 ‘교수직이 없다’는 이유로 KBS 이사직마저 박탈했다. 놀부 뺨치는 행태다. 이들도 좀 켕기기는 했는지 8월, 올림픽 열기를 틈타 ‘국민 몰래’ 정연주 사장을 해임했다.

    정권의 낙점을 받은 이병순은 ‘사원행동’을 주도한 인물들을 중징계하고, 적극 가담한 기자와 PD들을 한직으로 보내고, 눈엣가시였던 프로그램들을 폐지하고, 주요 진행자들을 교체하고,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노조는 어정쩡한 스탠스로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사원행동’은 열심히 노력했지만 임의단체라는 한계 때문에 큰 힘을 쓰지 못했다. 관제사장이 현실적으로 KBS를 평정한 셈이다. 켜켜이 쌓인 껍데기의 무게 아래 KBS 구성원들이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YTN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작년 7월 17일 구본홍이 날치기 주총으로 사장에 임명된 뒤 만 9개월이다. 당선자의 특보였던 사람이 언론기관의 수장이 될 경우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했고, YTN 기자들의 ‘낙하산 거부’는 그래서 당연한 것이었다. 평범한 언론인들의 최소한의 양심과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구본홍은 6명 해고, 33명 중징계 등 초강수로 맞섰다. 올 3월에는 노종면 위원장을 구속까지 했다. 구본홍은 해고자들을 인질 삼아 사장 자리를 유지하는 데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악취를 풍기는 껍데기들

    KBS와 YTN 구성원들이 패배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승리’나 ‘패배’는 이들의 기준이 아닐 것이다. 옳은 방송을 위한 노력이 모든 뉴스와 프로그램을 통해 배어나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극한투쟁을 잠시 유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껍데기들은 ‘승리’했다는 착각에 취해 있다.

    그들의 가장 큰 해악은 ‘옳든 그르든 무조건 우기면 된다’는 시정잡배의 논리,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되는 게 없다’는 정글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YTN과 KBS의 경우, 껍데기는 내부에도 자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외부에서 날아온 껍데기에 영합하여 후배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선 일부 선배들, 이들 또한 썩은 냄새를 풍기는 껍데기의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MBC, 일단 갈등은 봉합했지만

    얼마 전 일부 진행자 교체 문제와 봄 개편 공영성 훼손 논란으로 인한 MBC 내부 갈등은 심각한 우려를 낳았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 김미화의 교체는 라디오 PD들의 제작거부 끝에 백지화됐지만 MBC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는 결국 교체됐고, 젊은 기자들은 이에 항의하여 일주일이나 제작거부를 벌였다. 엄기영 사장은 “뉴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앵커를 교체한다”고 밝혔지만 대다수 사원들은 “권력 눈치보기 아니냐”고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봄 개편안도 논란을 낳았다. <W> <불만제로> 등 주요 교양 프로그램들을 변방으로 밀어내는 개편안에 교양 PD들이 분개한 것. 불경기와 광고 격감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일부 교양 프로그램을 ‘고비용 저효율’로 낙인찍어 홀대하는 것은 MBC의 공영성을 스스로 훼손하여 재벌과 신문의 방송 장악을 불러들이는 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생존을 위해 권력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품위와 원칙을 훼손한다면 재벌, 조중동 방송을 막아내기는커녕 스스로 ‘민영화’를 앞당기지 않겠느냐는 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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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그러운 흙가슴, 알맹이는 살아 있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족벌 신문이 권력화되고 KBS와 YTN이 낙하산 사장에게 일시 장악된 지금, MBC마저 무너지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질식사할지도 모른다. 4월에 MBC를 뒤흔든 내부 갈등은 보도국장 사퇴로 일단 봉합됐다. MBC의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는 외압에 흔들린 사장과 부사장의 해임안을 제기했지만 ‘회초리를 들었다’는 효과를 거두었으므로 이내 취하했다. 앞으로 닥칠 시련에서 방송의 독립성을 꿋꿋이 지킬 것을 주문한 것. PD와 기자들은 방송을 통해 공영방송의 위상을 지킬 것을 거듭 다짐했다.

    그러나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PD수첩>의 27일 제작 복귀를 선언하고 퇴근한 송일준, 조능희 PD와 김은희, 이연희 작가가 체포됐다. 프리랜써 작가를 체포하여 수사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PD수첩> 수사의 부당성을 인정하고 사퇴한 임수빈 검사의 말처럼, 이번 수사는 “헌법에 보장된 언론 자유를 검찰 권력이 얼마나 침해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프리랜써 작가들마저 ‘노트북을 버리고 거리로 나서게 하는’ 황당한 공권력 남용이다.

    몰상식, 파렴치가 판치는 이 씨스템이 돌아간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누가 보더라도 부패한 인물이지만 단지 ‘최고 권력자’이기 때문에 그 주위에 빌붙는 인간 군상이 많다는 게 새삼 기가 막힌다. 지금, 껍데기의 무게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다. 지금은 숨죽이고 있지만 알맹이의 숨결, 향그러운 흙가슴의 힘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4월 29일은 <PD수첩> 광우병 편이 방송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그 1년은 알맹이와 껍데기가, 상식과 몰상식이 힘을 겨룬 나날이었다. 4·19혁명은 껍데기를 물리친 알맹이의 승리였다. 껍데기가 아무리 두꺼워도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질식시킬 수는 법이다. 민주주의의 초석을 지키기 위해 방송인들이 제대로 노력할 때, 국민이 이를 외면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신동엽의 다른 싯구 하나를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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