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에 원서 넣지 맙시다”
        2009년 03월 20일 02: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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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의 고교등급제에 대해 글을 실은 다음, 제일 먼저 들었던 말은 “너무 어렵다”입니다. 예상했던 반응입니다. 고려대가 여러 개의 산식과 상수들을 동원하다 보니, 그걸 따라가면서 해석하는 글 또한 ‘이게 뭔 소리야’라고 하지 않을까 우려했었습니다. 여기엔 제 능력이 부족한 것도 한 몫 했을 겁니다.

    그래서 짧은 글을 다시 씁니다. 고려대가 어떻게 했는지 보다 쉽게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약간의 바이어스를 감수하고 원리 위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편하게 보십시오. 여기에서도 간혹 숫자나 도표가 나오겠지만, “이거 하나는 기억하세요”라는 단서가 없다면 길거리의 걸리적거리는 돌멩이 정도로 생각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핵심은 세 개입니다

    고려대의 고교등급제에서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학교평균 따위를 사용했습니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연좌제’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혼자 아무리 좋은 성적을 얻어도 다른 친구들이 죽을 쓰면 학교평균이 내려가지 않습니까. 그러니 학교평균을 활용하는 건 다른 사람에 의해 자기 운명이 결정되는 ‘연좌제’입니다.

    물론 다른 대학이나 수능에서도 평균을 활용합니다. 하지만 한 번 정도만 합니다. 두 번 세 번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려대는 두 번 세 번 사용합니다. 노골적으로 연좌제를 한 겁니다.

    둘째, 특목고나 일류고에 가중치를 많이 줍니다. 가중치는 학교평균과 표준편차(점수폭) 등 2가지를 활용한 겁니다. 고려대 모집요강에 있는 공식대로 하면, 가중치의 최소값은 0이고, 최대값은 2.25입니다.

    그런데 점수들의 범위는 대체로 -3에서 3으로, 점수폭은 6입니다. 곧, 전체 6의 범위에서 최대 2.25를 가중치로 준 겁니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37.5점입니다. 그러니 이것 하나는 기억하십시오. 고려대는 특목고나 일류고생에게 선물을 듬뿍 안긴 겁니다.

    셋째, 주요 공식이 모집요강에서는 마이너스(-) 처리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플러스(+) 처리했습니다. 이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는 뜻입니다. 마이너스(-)란 가중치를 뺀다는 말인데, 가중치는 특목고나 일류고생이 많습니다. 그러니 모집요강대로 빼기를 하면 특목고생의 점수가 많이 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고려대에는 특목고생이 많이 합격했습니다. 따라서 빼기 한다고 말해놓고, 더하기를 한 겁니다.

    사실 마이너스(-)와 플러스(+)를 발견하기 전까지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산식들의 의미를 얼추 해석했지만, 특목고생의 점수가 더 많이 떨어지는 풍경이 그려지니까요. 이 수수께끼의 답을 구하기 위해 며칠을 낑낑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과 출신으로 수학과 통계 지식이 미천하다 보니, 여럿 괴롭혔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제 전화를 받았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긴 말 싫어하고 “평균과 베타를 곱하면 특목고가 높은 원리니까, 빼기 하면 특목고가 많이 내려가는 거 맞죠? 그런데 왜 특목고 학생들이 많이 합격했을까요?”라는 식으로 바로 질문을 해대는, 까칠한 저에게 친절히 대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일반고 학생은 적게 떨어지고, 특목고 학생은 많이 올라갑니다

    일반고 학생과 특목고 학생의 점수를 가지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미 여러 경로로 공개된 학생의 점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특정 과목의 성적입니다.

       
      

    일반고 학생은 이 과목에서 1등급이고, 특목고 학생은 7등급입니다. 전체가 9등급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차이입니다. 하지만 당혹스럽게도 내신이 낮은 특목고 학생은 합격하고, 높은 내신의 일반고 학생은 떨어집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위 표의 6개 점수들만 가지고 고려대의 산식에 따라 표준점수들로 변환시키면 이렇게 됩니다. 고려대의 실제 변환점수가 아니라 모집요강에 나와있는 고려대 방식을 원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일반고 학생의 원점수 95점이 1.53점으로, 특목고 학생은 88점이 -0.35점으로 변환됩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일부 대학들도 합니다. 하지만 고려대는 손을 더 댑니다. 그 핵심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숫자, 도표, 산식 따위를 길거리 돌멩이로 생각하시라구요. 잠시 유체이탈하여 원더걸스 또는 구준표를 생각하신 후 돌아오십시오.

    이 과목에서 일반고 학생은 [산식 1]을 적용받습니다. 그리고 특목고 학생은 [산식 2]를 적용받습니다.

    고려대의 산식에서 가중치 β의 원리는 학교 표준편차(W)가 적을수록 1에 가까운 값입니다. 특목고일수록 1이고, 일반고일수록 0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β값을 구하는 고려대의 공식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원리에 입각해서 임의로 넣어도 됩니다. 이 계산에서는 특목고 학생에게는 0.9을, 일반고 학생에게는 0.2을 줘보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가중치 학교평균의 표준점수(Z*)는 그대로 대입하면 됩니다. 물론 이 글의 예시에서는 -1과 1이라서 절대값으로 하면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특목고생이 더 높습니다.

    고려대 방식으로 계산이 어느 정도 끝나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나옵니다. 원점수의 표준점수(Y)가 변화하는 방향과 각도를 유심히 보십시오.

       
      

    두 개의 그래프를 보시면, 어떤 경우이든 특목고생이 변화하는 폭이 큽니다. 일반고생보다 각도가 심합니다. 가중치를 많이 부여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집요강대로 한 왼쪽 그림을 보면, 일반고생이나 특목고생 모두 떨어집니다. 모집요강에 나와있는 [산식 1]과 [산식 2]는 모두 마이너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특목고생이 일반고생보다 많이 떨어집니다. 그러면서 일반고생과 특목고생의 격차는 벌어집니다.

    고려대가 대교협에 제출한 추가소명서는 아시다시피, [산식 2]가 플러스(+)입니다. 그래서 오른쪽과 같은 그림이 나옵니다. 일반고생은 적게 떨어지고, 특목고생은 많이 올라갑니다. 그러면서 일반고생과 특목고생의 격차가 줄어듭니다.

    그러니까 모집요강대로 했다면, 특목고생은 도저히 합격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비교과에서 당락이 갈렸다고 고려대가 주장하여도, 교과 점수가 더 벌어지는데 고작 10%의 반영비율에 불과한 비교과로 역전시킨다는 건 오직 신만이 가능합니다.

    [산식 2]를 모두 적용받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는 일반고 학생과 특목고 학생이 모두 [산식 2]를 적용받는 경우입니다. 고려대에 지원한 학생의 약 89%가 [산식 2]를 적용받고, 그 안에는 일반고 학생과 특목고 학생이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앞서 학생들의 다른 과목 점수와 변환점수입니다.

       
      

       
      

    이걸 모집요강과 추가소명서에 나와있는 서로 다른 [산식 2]에 따라 계산하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β값은 특목고생 0.9와 일반고생 0.2로 동일하게 줬습니다. 역시 원점수의 표준점수(Y)가 변화하는 방향과 각도를 유심히 보십시오.

       
      

    모집요강대로 하면, 특목고생은 아예 음수값(-0.47)이 됩니다. 하지만 추가소명서대로 하면, 특목고생이 확 올라가 일반고생과 거의 비슷해집니다. 이 과목에서 일반고생은 내신 2등급이고 특목고생은 5등급인데, 차이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렇다면, 특목고생과 일반고생이 모두 [산식 1]을 적용받는 경우는 어떨까요. 모집요강이나 추가소명서나 같은 공식으로 마이너스(-)이니까요. 물론 [산식 1]에서는 특목고생이 일반고생보다 더 떨어질 겁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함께 있을 때만 그렇겠지요.

    [산식 1]의 적용을 받는 학생들이 대부분 일반고 상위권 학생이고 특목고 학생은 띄엄띄엄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점수가 떨어지는 학생들은 주로 일반고 상위권 학생들이겠죠.

    부호 하나의 차이는 큽니다

    고작 부호가 다를 뿐입니다. 고려대가 모집요강을 통해 전국의 고등학생과 선생님들에게 예고한 산식에서 고작 부호 하나가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마이너스와 플러스의 차이는 ‘고작’이 아닙니다. 180도 다른 결과를 의미합니다.

    지금은 특목고 학생이 합격하고 일반고 학생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180도 다른 결과라면 무엇을 의미할까요. 3월 신학기를 맞아 고려대 신입생으로 교정을 누비고 있는 누군가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아야 할 학생이고, 그 반대의 누군가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당한 학생이라는 뜻입니다. 더구나 고려대의 수시 일반전형 정원은 1319명입니다.

    어떤 분은 추가소명서에서 고려대가 밝힌 플러스(+)가 오타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모집요강대로 처리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미 보신대로 특목고생의 점수가 더 많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특목고생의 합격률도 떨어져야 합니다.

    다른 분은 모집요강의 마이너스(-)를 오타가 아닐까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도 오타를 정정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지난 1년간 잘못된 모집요강을 안내했다는 뜻인데 이건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잘못된 모집요강을 믿고 원서를 넣은 지원자는 뭐가 될까요.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가능성도 없는 수만 명이 몰리는 바람에, 고대의 전형료 수입은 짭짭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특목고생이 공부를 잘 하니 어느 정도 우대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라고 이야기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능이 있고 정시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 문제가 된 전형은 내신 위주의 수시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대학의 행위는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번에 고려대가 보내는 신호는 진상이 어떻게 규명되던 간에, ‘특목고로 진학’하라는 겁니다. 일반고 학생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다른 친구들 때문에 떨어진다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이런 신호는 나비효과도 지니고 있습니다. 고려대가 특목고 입시 열풍을 부채질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최고의 대처방법은 고려대를 무시하는 겁니다. 특히 일반고일수록 고려대에 원서를 넣기보다는 다른 대학들로 시선을 돌리는 게 좋습니다. 마트가 뭔가를 속인다고 여겨지면 발걸음을 동네 슈퍼로 옮기는 것처럼, 고려대는 세상에서 증발했다고 여기는 게 편합니다. 최소한 전형료, 교통비,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그리고 최대 몇 년의 준비기간과 노력만 괜히 날리지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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