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차원 안건과 젊은 당원들"
        2009년 03월 03일 03: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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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의 대의원대회를 취재한 적은 이번이 두 번째에 불과하나, 그 토론과정을 모두 지켜보다 보면 온몸에 힘이 빠지곤 했다. 10시간이 넘게 안건지를 쳐다 보고, 찬성과 반대 의견을 듣고 있으면 ‘지금이 몇 페이지인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2~3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두께의 자료집이 주는 압박, 원안에 대한 찬반토론과 혹시나 나오는 수정동의안에 대한 찬반토론, 수정동의안의 수정안, 수정안 발의 성립표결, 그리고 표결, 그런데 혹시라도 번안동의(이미 처리된 안건에 대한 취소)라도 나오는 날에는, 어느 개그 프로처럼 ‘어휴…’

       
      ▲ 지난 1일 용산구민회관에서 진행된 진보신당 1차 당대회 모습 (사진=진보신당) 

    1일 용산구민회관에서 열린 진보신당의 대의원대회는 게다가 사전 발의된 수정동의안만 무려 11건이었다. 여기에 진보신당 확대운영위원회가 제출한 원안 자체도 당헌당규에 대한 전면적인 재개정안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축조심의(하나하나 짚어가며 심의하는것)를 해야 했다.

    사전 발의 수정동의안만 무려 11개…

    예상대로 이날 대의원대회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었다. 10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기사를 작성하고 집에 오니 다음날 새벽 1시 정도가 되었다. 그 사이 먹은 저녁은 대변인실이 찔러준 김밥 두 줄. 김밥 두 줄 먹어서 만족감을 느낄 위장이 아니지만 허기짐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정신적 피로 때문이었다.

    그만큼 길고 복잡했던 이날 진보신당의 대의원대회에는 ‘처음’이란 단어가 갖는 무게감 만큼 기대도 컸고, 아쉬움도 컸던 대회였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탄생’을 부르짖었지만 그동안 고착화되었던 회의규정 방식은 변화도 없었고 변화할 생각도 없었다.

    원래 오후 1시에 시작키로 한 대의원대회 사전행사는 무려 1시간 반이나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게다가 어설프게 올라온 ‘당명’ 안건을 둘러싸고 의미 없는 전력질주가 2시간이나 지속되었고, 이로 인한 후반 체력 저하로 막상 추첨제 등 쟁점 안건들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확대운영위의 안건준비 미흡으로부터 비롯된다. 시작과 동시에 대의원대회를 공황상태로 몰아넣은 당명개정 문제가 특히 그랬다. 사실 당명은 지난해부터 당 게시판과 각 지역 토론회를 뜨겁게 달궈왔던 사안이다. 진보‘신’당이란 이름이 가진 한계가 있기에 당명개정은 제2창당 과정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었다.

    그런데 14차 확대운영위원회 당시 집행부는 애초부터 대의원대회 안건심의에서 당명개정안을 제외했었다. 그런데 이를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상정키로 한 것이다. 즉, 준비된 다른 안건들과는 달리 당명개정 안건에 대한 준비는 전혀 없었다.

    특히 당명개정은 진보신당 강령과도 맞닿아 있어, 오랜 기간 철저히 준비된 안건이 아니라면 심각한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 시기를 놓쳤고, 결국 대의원 대회에서는 안건에 대한 아무 설명 없이 ‘당명을 논의해 주세요’라는 ‘4차원’ 안건이 올라와 대의원대회를 초토화시켰던 것이다. 

    물론 이번 대의원 대회가 아쉬움 속에서 끝난 것만은 아니다. 하나의 긍정적인 모습은 사전에 제출된 11건의 수정동의안 중 무려 10건을 제출했다는 젊은 당원들의 약진이다. 이들의 수정안 중 ‘여성할당제 축소’와 같이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지만 패권주의와 당내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이들의 고민은 수정동의안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그냥 논의해달라는 ‘4차원’ 안건

    이들은 새로운 당원, 민주노동당 소속이었으나 이른바 ‘페이퍼 당원’, 학생당원들이 중심이 된 사람들로, 이들은 대의원 대회 일정이 확정되고 회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짧은 시간동안 각각 당 게시판 등을 통해 자신들이 발의하는 수정동의안의 문제의식을 공유시키고 서명을 받는 성실함을 보였다.

    아쉽게도 이들의 수정동의안은 단 한 건도 통과되지 않았지만 2~30대가 중심이 된 이들 당원들은 앞으로도 진보신당 안의 건강한 비판세력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당내 건전한 비판의식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날 진보신당의 대의원대회는 의미 있는 자리일 수 있다.

    진보신당의 다음 대의원대회는 3월 29일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당헌당규만큼 뜨거운 강령과 당명이 논의된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제2창당을 외부에 천명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제 진정한 ‘새로운 진보정당’을 보여줄 차례다. 새롭게 등장한 젊은 비판세력처럼, 진보신당 대의원대회도 조금이라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가?

    요즘 유행하는 리플이 있다. "자, 이제 새로운 당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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