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란 이후의 반란
        2009년 01월 04일 09: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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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억수씨

    황건당 하남 집중군이 관군에게 대패하자 황건군 내부에는 패배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황건군의 총 지휘관이던 장각은 이때 이미 병으로 누워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지휘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장량과 장보가 겨우 목숨만 부지해 도망쳐오자 장각은 병세가 깊어져 얼마 후 숨을 거둔다.

    장각이 죽자, 소리 없이 이탈하는 농민군이 생기고 여기저기 흩어진 대오들도 재집결할 의욕을 상실하게 되었다. 특히 전역에 흩어져 봉기에 참여했던 황건당 청년파는 봉기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크게 실망해 대부분의 대오가 아예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황건군의 몰락과 청년파들

    유비는 정세의 막판을 감지하고 뭔가 공을 더 세우기 위해 이리저리 옮겨 다녔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특히 유비를 밀어주던 옛 스승 노식은 황건군의 주력 부대와 오랫동안 대치만 하다가 결국 아무런 전공을 세우지 못한 채 중랑장 자리에서 경질되고 만다.

    조정은 노식이 전문 군인 출신이 아니라 아무래도 전공을 세우지 못했다는 판단을 하고 노식을 경질 해버렸다. 노식을 대신하여 황건당 하북 집중군과 맞서게 된 장수는 ‘동탁’이라는 장수였다. 동탁은 특히 변방의 ‘오랑캐’들과 오랜 전투를 벌여 많은 싸움을 승리로 이끈 전문 무신이었다.

    노식은 신임 중랑장으로 자신을 대체하게 된 동탁을 앞에 두고 말했다.
    "이보시오. 동장군, 떠나는 마당에 한 가지 꼭 드리고 싶은 고언이 있소."
    "무엇입니까? 노선생"

    "농민반란군은 장군이 주로 상대해왔던 서북부 오랑캐들과 많은 차이가 있소. 섣불리 접근해 엉겨붙어 싸우지 말고 반드시 질서 있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오. 내가 황건당과 전투를 회피하고 시간을 끌었던 것은 이 때문이오. 여기 민란에 관한 비서(秘書)를 하나 드릴테니 이를 꼭 참고하셔야 하오."

    노식과 동탁 그리고 ‘명박병법’

    노식은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며 소맷자락에서 뭔가 너절한 종이 뭉치 같은 것을 꺼내어 동탁에게 건냈다. "명박병법이라.."

    동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책의 제목을 한번 읽어보았다. 별로 들어 본 적이 없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동탁은 책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책을 책상 위에 휙 던져놓고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자 노식은 더 안달이 나서 동탁에게 계속 같은 고언을 했다. 노식은 군인이 아니라 병서를 많이 읽은 학자 출신이었다. 그래서 노식은 자기 머리 속에 그려진 그림대로 현실이 굴러가지 않으면 답답해했다. 그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조급증이었다.

    그래서 노식은 경질당하는 판국에도 동탁을 잡고 계속 자기 군사노선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또 역설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탁이 이를 귀담아 들을 리 만무하였다. 동탁은 패장이나 다름없는 노식이 자신은 들을 준비도 안 된 얘기를 한참이나 늘어놓자 그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중에는 소리를 버럭 질러버렸다.

    "다 알아들었으니, 이제 그만하고 낙양으로 돌아가시지요!"

    동탁의 때늦은 후회

    그러나 노식 앞에서 자신만만하던 동탁 역시 황건당 주력 부대를 제대로 요리하지 못했다. 동탁은 오히려 기가 꺾인 황건군에게 패전을 거듭했다. 동탁은 중원의 서쪽 변방에서 주로 강족이라는 오랑캐들과의 전투를 벌여 전공을 많이 세웠는데 중원 한복판에서 벌어진 농민 반란군과의 싸움에 대해서는 그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탁이 패전을 거듭하자 조정은 다시 동탁을 경질하고 황건군과의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낸 황보숭에게 병권을 맡긴다. 그리고 황보숭은 황건군 주력 부대를 본격적으로 격파하기 시작했다.

    동탁은 앞의 노식이 그랬던 것처럼, 중랑장 자리를 내놓고 다시 자신이 있던 서북지역으로 좌천당한다. 동탁은 좌천당해 돌아가는 수레 위에서 우연히 노식이 건네준 명박병법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다시 읽어보니 참으로 맞는 말이 많은 것 같았다.

    ‘내 진작 왜 이를 참고하지 않았을까? 그 노인네 말을 들을 것을..’ 임지로 돌아가는 수레 위에서 동탁은 후회가 밀려왔다.

    한편, 동탁을 이어받은 황보숭은 장각이 죽은 후 장량이 지휘하던 황건당 부대를 다시 한 번 크게 패퇴 시켰다. 이 싸움에서 황보숭은 장량과 3만명 이상의 농민군을 죽이고 황건당 주력부대를 해산 시켜 버렸다. 황건당 15만 대군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부관참시

    황보숭이 황건당 주력군의 진채를 접수하자 진영을 수색하던 부관이 와서 말했다.
    "장군, 장각이 벌써 죽어서 관속에 들어가 있다고 하옵니다."
    황보숭이 말했다.
    "알고 있다. 그러나 죽었다 해도 장각의 목은 꼭 베어야 한다! 아무리 시체라 한들 나의 칼을 피해갈 수는 없다."

    황보숭은 장각의 무덤을 파헤친 다음, 죽은 시체의 목을 베어 낙양으로 압송해갔다. 이것은 원한 때문이 아니었다. 칼의 시대에 목을 벤다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조치였다. 그것은 어떤 변수가 확실히 정리되었다는 ‘상징적 표시’ 였다. 아무리 죽었다 한들 산 사람들의 정치적 공간 안에 육신이 존재하는 한, 이 조치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 때,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가던 농민 반란은 급속히 위축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물론, 장각 형제들이 죽었다고 해서 농민반란이 완전히 사그러든 것은 아니었다. 각지에서 흩어진 농민군이 재집결과 해산을 반복하면서 싸움을 이어가기는 했지만, 이미 대세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조정은 벌써 논공행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각의 죽은 머리가 낙양으로 압송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가지 큰 사건이 터진다. 그것은 황제의 죽음이었다.

    장각의 죽은 머리가 낙양으로 압송되자 마지막으로 이를 확인해 줄 의무가 있는 사람은 황제였다. 영제는 평소 비위가 약해 죽은 머리를 확인하는 이런 절차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장각의 머리를 베어오라는 명을 내린 바 있기 때문에 잠시 이런 절차를 밟아야 했다.

    죽은 장각, 황제를 죽이다

    그런데 장각의 머리는 이미 죽어있던 시신에서 베어온 것이라 심하게 부패 되어있었다. 영제는 상자가 열리면서 그 끔찍한 얼굴이 드러나자 순간적으로 가슴이 콱 막히면서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으헉… 캐캐캑"
    그날 이후 시름시름 하던 영제는 갑자기 노환을 앓기 시작했다. 하긴 이미 그의 나이 환갑이 넘었을 때였다. 영제에게는 본래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 하나는 14살 변(辨)이고 하나는 9살 협(協)이었다. 변(辨)은 하태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고, 협(協)은 왕미인의 소생이었다.

    변(辨)의 어머니 하태후는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름다운 외모로 황제의 눈에 들어 원래 있던 황후를 몰아내고 자신이 황후가 되었다. 성이 하씨라 사람들은 그녀를 하태후라 불렀다.

    그러나 황제의 사랑은 권력에 기반 한 사랑인지라 늘 들락날락 하는 것이었다. 황제는 몇 년 뒤, 또 다시 아름다운 궁녀를 후궁으로 들이니 그녀는 왕미인(王美人)이라는 젊고 예쁜 여인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왕미인이 아들을 낳으니 그 아이가 바로 협(協)이다.

    왕미인이 아들을 낳자 가장 심사가 뒤틀린 사람은 하태후였다. 하태후는 왕미인이 자신이 과거에 했던 것과 똑같은 길을 걷는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놓아두면 자신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왕미인이 자신을 몰아내고 황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태후와 왕미인

    사람이란 본시 자기가 한 짓은 용서가 되어도 남이 하는 짓은 용서가 안되는 법이다. 그래서 하태후는 몰래 왕미인을 독살하고 만다.

    이 독살 사건은 하태후가 한 짓이라는 물증을 찾지 못해 병사(病死)로 처리되었지만, 심증만큼은 너무나 확고했다. 이 때부터 황제는 하태후를 증오하게 되고 왕미인의 아들인 협(協)을 더 총애하게 된다.

    그러던 중 황제가 쓰러지자,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환관과 외척이라는 양대 세력은 긴장관계에 돌입한다. 양대 세력이 황제의 두 아들 중 누구를 다음 황제로 할 것인가? 라는 후계 문제를 두고 크게 갈라진 것이다.

    우선 외척세력은 당연히 하태후의 아들인 14살짜리 변(辨)을 지지했다. 하태후는 오빠인 하진을 대장군 자리에 앉히는 등 조정에 광범한 자기 식구들을 들여놓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독살한 왕미인의 아들이 황제가 된다면 하씨 집안은 풍비박산이 날것이 확실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반면, 환관들은 죽은 왕미인의 아들인 9살짜리 협(協)을 지지하고 있었다. 황제의 측근이던 환관들은 황제의 옆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황제와 함께 협(協)을 지지하는 각종 공작에 임해왔다. 하여 이미 하태후 측과는 사실상의 정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외척과 환관들의 목숨 건 혈전

    두 세력은 황제의 죽음과 동시에, 기존의 공생관계에서 적대적 관계로 급히 전환했다. 환관들의 미움을 사 관직을 박탈당한 조조를 다시 낙양으로 불러들인 것도 하태후 측 조치였다. 적의 적은 우리편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큰 문제는 황건 농민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하태후의 오라버니인 하진을 대장군에 임명해 낙양을 지키도록 한 조치였다.

    황제는 반란 진압군 책임자를 임명하면서 그들을 믿지 못해 병권을 셋으로 나누어 주고 그래도 못미더워 동시에 태후의 오빠를 대장으로 하는 대규모 낙양 수비군을 준비시킨 것이었다. 이 낙양 수비대는 8개의 정예부대로 구성되었는데 이를 8교위라 했다. 이로써 외척세력은 유사시 황제를 장악할 수 있는 강력한 물리력을 갖게 되었다.

    영제가 살아있을 때는 외척과 환관이라는 양대 축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했으나 영제가 죽고 이 균형자가 사라지자 갑자기 정치 지형은 극도의 불안정 상태로 전환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대개 이런 경우, 누가 먼저 칼을 뽑느냐? 라는 시간경쟁이 되고 만다.

    중평 6년 4월. 노환으로 누워 있던 영제가 죽기 직전 궁궐 내부 정보에 빠른 환관들이 먼저 행동을 시작한다. 환관 건석(蹇碩)은 황제가 죽기 직전, 장자 변(辨)이 아닌 차남 협(協)에게 대권을 잇게 하라는 밀명을 내리자 이렇게 말한다.

    "폐하, 만일 다음 자리를 협(協)에게 물려주시려면 대장군 하진을 먼저 베어버려야 하옵니다. 그러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황제가 죽기 직전 이 계책을 승인하자, 환관 건석은 황제의 어명을 빌려 하태후의 남동생인 대장군 하진을 궁궐로 들어오게 한다. 하진이 궁궐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를 주살하고 차남 협을 황제로 옹립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원소의 의구심

    그러나 외척 세력이라고 바보들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황제라는 균형자가 사라지기 직전 상황인지라 권력투쟁의 칼바람은 이미 현재 진행중이었다.

    황제의 죽음이 임박하자,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하진은 자기 집에 8교위를 비롯한 휘하의 장졸들을 소집해 놓고 궁궐 안에 박아놓은 첩자들로부터 실시간으로 상황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자기 누이의 아들인 변(辨)을 옹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8교위(校尉)의 주요 장수들 중에는 사예교위(司隷校尉) 원소, 전군교위(典軍校尉) 조조 등이 있었다.

     이때 환관 건석이 보낸 어명이 전해지자 대장군 하진이 입궁할 준비를 서둘렀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하진의 궁내 첩자로부터 황제가 죽었다는 정보가 전해진다. 하진 측은 순간적으로 경악한다.

    "건석 이놈이 황제의 사망 사실을 숨기고 날 불러들이다니….누가 나가서 변(辨)황자를 즉위 시킬 것인가?"
    "제가 하겠습니다.!"
    씩씩하고 큰 소리에 대장군 하진이 고개를 들어보니 사예교위 원소였다.

    이때 하진의 명령을 받은 원소는 5천의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진입해 신속하게 변(辨) 황자의 즉위식을 거행하고 환관 건석을 죽여버렸다. 이 변(辨) 황자가 바로 후한의 소제(少帝)다. 하진은 변(辨)을 황제 자리에 앉힌 다음 왕미인의 아들 협(協)을 동류왕이라는 황제보다 한 단계 아래의 자리에 앉혀 버린다.

    그러나 환관 건석을 제외한 다른 내시들은 아직 죽지 않았었다. 원소는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쪽이 먼저 칼을 뽑았는데 왜 아직 다 죽이지 않고 내버려 둔단 말인가? 무슨 이런 어리 숙한 권력투쟁이 다 있담?"

    원소는 계속해 하진에게 나머지 내시들도 빨리 죽이고 협(協)도 제거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하진은 우유부단했다. 하진은 누이인 하태후가 나머지 내시들을 모두 죽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자 답답해하던 원소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대장군, 정 그러시다면 우리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남의 칼을 빌려 내시들을 처단하는 방법이 있사옵니다. "

    "그것이 무엇이냐?"

    하진은 갑자기 귀가 솔깃해짐을 느꼈다.

    "지방의 자사와 태수들에게 밀조를 내려 병력을 이끌고 낙양으로 오라고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자사와 태수들이 나머지 환관들을 모두 주살하게하면 태후 마마에게 할 말도 있고 내시놈들도 모두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하진은 그 계책이 괜찮은 것 같았다. 자신은 슬그머니 빠지고서 큰 걱정꺼리 하나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조조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정말 위험한 발상이었다.

    조조는 대놓고 반대했다.

    "이 일은 제3세력을 끌어들여 해결할 일이 아닙니다. 복잡한 전략은 늘 문제를 일으킵니다. 좋은 전략일수록 단순하기마련 입니다."

    원소가 탐탁치않다는 투로 말했다.

    "그럼 그대의 단순한 전략은 무엇이오? 황후가 반대하기 때문에 이런 불가피한 계책을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대도 알면서 왜 이러시오?"

    "모름지기 어떤 전략이건 그에 따른 부담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저런 부담을 모두 회피하려다 보니 이런 복잡한 전략이 나오는 것입니다. 전략적 부담을 피해 다녀서는 안됩니다. 결국 전략이란 어떤 부담을 감수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조조가 굽힘없이 자기 주장을 반복하자, 원소는 말이 안 통한다 싶었는지 대화를 포기하고 확 나가 버렸다.

    조조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진과 원소는 복잡한 전략을 좋아하니.. 필시 세상을 어지럽힐 인간들이다.’

    이러한 조조의 분석은 머지않아 맞아 떨어진다.

    전국에 군대를 이끌고 낙양으로 들어오라는 대장군의 통문이 전해진다. 다른 주의 태수와 자사들은 대체 영문을 몰라 군사를 움직여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서주자사 동탁이 신속하게 움직인다. 동탁은 황건적 진압군 대장에 임명되기 위해 낙양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그런 동탁이 느끼기엔 군대를 이끌고 낙양으로 들어오라는 대장군의 통문이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환관들도 바보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하진의 이 밀명은 새어나가 환관들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환관들은 다시 한번 선제공격을 하기로 한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어명을 가장해서 하진을 불러들이려다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하태후의 명령을 핑계로 하진을 불러들이기로 한다.

    원래 하태후에게는 잘 아는 환관이 있었다. 장량이라는 환관이 하태후가 사가(私家)에 있을 때 그녀를 궁녀로 데려와 결국 황제의 눈에 들게 된 것이었다. 그런 환관 장량이 없었다면 그녀는 태후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환관세력과 외척 세력이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이 된 뒤에도 그녀는 장량을 통해 환관측과 대화 통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환관 세력과 외척 세력은 서로 건너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을 때였다. 하태후는 과거의 인연에 눈이 어두워 새로 만들어진 정치적 관계를 혼동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적 착시는 곧 그녀와 가문의 몰락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하태후가 환관 장량의 부탁을 받아 하진에게 혼자 빨리 입궁하라는 전갈을 보내자 원소와 조조가 하진을 말린다.

    "이는 필시 내시놈들의 음모일수 있습니다. 궁궐은 저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혼자 들어오라는 것은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합니다."

    "허허… 그럴리 없다. 죽은 황제였다면 몰라도 내 누이가 어찌 날 죽이려 하겠느냐!?"

    "그렇다면 장군, 저희들이 궁까지 호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원소와 조조는 정병1천을 뽑아 하진을 호위해서 궁궐로 간다. 그러나 청쇄문 앞에 이르자 문지기가 궁 안에 군대를 끌고 들어올 수는 없다하여 대장군 하진과 조조, 원소 그렇게 3사람만이 장락궁 앞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장락궁 앞에 이르자 문을 지키던 환관이 원소와 조조를 막아선다.

    "태후께서 대장군 홀로 들라 하십니다."

    결국 장락궁 안으로 하진 혼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후 장락궁 담장 안쪽에서 무슨 웅성웅성 소리가 나더니 은은한 달빛 아래로 뭔가 묵직한 것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툭 떨어진다. 원소와 조조가 자세히 다가가 보니 다름 아닌 하진의 목이었다.

    원소와 조조는 육체와 분리된 하진의 머리를 확인하는 순간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이미 이런 상황을 예감하고 있었던 데다가 가까운 곳에 1천의 정병들이 완전무장으로 대기 중이었다. 더군다나 조조는 지난번에 환관들 때문에 관직에서 잠시 쫓겨났던 적이 있었다. 이번 기회에 그 환관놈들을 모조리 처단할 수 있다면 자신으로서는 눈엣 가시 같던 고정적 반대파를 이번에 완전히 제거 할 수 있었다.

    조조와 원소는 곧바로 청쇄문 밖의 1천 군사를 끌고 들어가 모든 내시들을 일제히 참살하기 시작한다.

    "환관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궁궐에 진입한 1천 군사는 청쇄문과 장락궁에 불을 지르고 환관이란 환관은 씨를 말리기 시작한다. 궁궐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고 여기저기서 목 없는 시체들이 나뒹구는 참상이 빚어진다.

    이 때 병력에서 밀린 내시들은 숨어 있다가 원소군을 간간히 공격하였다. 흥분한 원소군은 내시인지 아닌지? 확인도 잘 안하고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였다. 아예 수염이 없는 남자들, 여자처럼 곱상하게생긴 남자들은 모조리 도륙 당했다.

    이 때문에 남자 궁인들은 환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진입한 원소의 군사들 앞에서 바지를 벗기도 했다.

    이 때, 벌써 10여명의 내시들을 참살하고 씩씩거리며 흥분상태로 돌아다니던 원소군의 한 장수가 장락궁의 한 부속건물에 들이닥쳤다. 그 자리에 있던 남자 궁인은 당황한 나머지 모두들 바지를 확 내려버렸다.

    그 장수는 궁인을 장검으로 베려고 칼을 높이 들었다가 갑자기 아랫도리를 보더니 내시가 아닌 것이 확인되자 찌푸린 얼굴을 풀지도 않고 다시 왔던 문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장수는 나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 말했다.

    “사라지지 않은 너의 욕망이 네놈의 목숨을 살렸다.!”

    (계속 8편, 동탁의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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