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여자 '또라이'라며?"
        2008년 11월 10일 09: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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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은 이번 주부터 매주 월요일 진보정당 지방의원들이 직접 쓰는 ‘의정일기’를 싣습니다. 중앙정치도 중요하지만 지역 풀뿌리 정치의 중요성이 그 어느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시기에, 진보정당 지방의원들이 전달해주는 생생한 현장 정치, 진보 정치의 모습이 여러분들 찾아갑니다.

    지역 주민들, 다른 정당의 지역조직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과 부대끼면서 오늘도 진보정치의 씨앗을 일구어가는 지방 의원들의 노력에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리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2006년 5월 31일 지방선거에서 구의원으로 당선되고, 7월부터 임기가 시작되었으니까 구의원으로 27개월 가량을 지내왔다. 출마할 당시 임신 중이었고, 당선되고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딸아이를 낳은 터라, 제법 높은 미끄럼틀도 혼자 타고 노는 딸아이를 보면서 ‘벌써 이렇게나 시간이 많이 흘러갔구나’ 하곤 한다.

    그 여자 ‘또라이’라며?

    민노당 구의원이 지역구에서 당선된 것만으로도 필자는 화젯거리였다(분당 후 진보신당으로 당적 변경). 이미 예비 후보 활동을 하는 중에 임신을 했던 터라 본격 선거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임신 8개월에 접어들어서 임산부 후보였다는 것 때문에 ‘독한…’ 또는 ‘에궁, 불쌍해라’라는 지역 주민들이 많았는데, 명함에 찍혀있는 민주노동당이라는 당 이름 때문에 한 번 더 바라 봐주었던 듯하다.

    게다가 당선까지(?) 되고나니, 구청과 의회에서는 얼마나 걱정이 많이 되었겠는가. 올해 초 구청 간부와 소주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술이 들어가 혀가 약간 꼬부라진 그 간부는 말했다.

    “아이고, 첨에 당선되고 나서 구청에서는 죽을 맛이었다니까요. 민노당 구의원으로 당선된 젊은 여자가 완전 ‘또라이’라고 소문이 쫙 퍼져서…”라며 목소리를 높이다가, 아차 싶었던지 내 눈치를 보는 거다. 내가 되물었다.

    “그럼 지금은요?”
    “지금요? 아시잖아요…….ㅋ”

    의원이 없을 때부터 ‘방방’ 떴으니

       
      ▲최선 강북구의회 의원
     

    구청에서 이른 바 ‘또라이’라는 나에 대한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었을까? 우선, 구의원으로 당선되자마자 나온 별칭이므로 의정활동 기간은 논외로 하자. 생각해보니, 구의원이 없었을 때부터 강북구에서는 당 이름으로 구청과 몇 번의 ‘맞장’을 떴었다.

    이른바 ‘꿀꿀이죽 사건’이 터졌을 때도 수만 장의 유인물을 가가호호 배포하고 결국 구청에서 소식지에 반론을 싣는 것도 모자라 별도의 삐라를 만들어 통반장을 동원해 배포까지 했지만 결국 1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영유아보육조례전면개정조례’를 주민발의 해냈다. 

    당의 현수막을 함부로 철거하는 구청에 항의하기 위해서 구청장 참석행사에 집회신고를 내고 항의하려 하자 구청 간부가 와서 직접 사과하게 만들었다. 

    주민들 혈세로 보훈가족들에게 선심 쓰기 위해 현충비를 건립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구청장이 참석하는 행사장을 따라다니며 서명운동, 선전전을 펼쳤다. 지역에 우리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매우 평화롭게(?) 구정을 펼치던 구청장과 구청 간부들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또라이’로 보일만도 했겠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아이엄마로서 구의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출산 후 한 달여 만에 의회에 출석했다. 모유 수유 중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두 시간에 한 번 씩은 유축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의회에 마땅한 장소가 없는 거다.

    화장실에서 모유 유축을 하다가 울어버렸다는 선배 얘기가 떠올랐다. 6명이 함께 사용하고 있는 상임위원회 의원실의 방화문을 잠그고 구석 책상에 앉아 모유 유축을 했다. 문밖에는 ‘모유 유축 중이니 정숙’이라는 메모를 적어놓고.

    구청에서 행정사무감사를 진행하는 동안 오전부터 밤까지 적어도 5번 이상 모유 유축을 해야 했는데, 그때만해도 나는 설마 ‘구청씩’이나 되는데 여성휴게실이 있겠지 생각했다.

    “여성휴게실이 어딘가요?”
    “없어졌는데……. 얼마 전에……. 왜 그러시는데요?”
    “제가 모유수유 중이라……. 마땅한 장소 없을까요?”

    한참을 고민하던 여직원이 안내한 곳은 청소도구가 쌓여 있고, 라커가 설치되어 있는 창고 겸 탈의실이었다. 청소도구를 가지러 오거나 갖다놓기 위해 오가는 아주머니께 행정사무감사가 끝나는 날까지 필자는 한쪽 가슴을 풀어헤치고 인사를 드릴 수밖에 없어서 뻘쭘해 하곤 했는데, 곧 익숙해져서는 일용직, 공공근로하면서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얘기하면서 개선을 위해 힘써달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소수정당으로서 성과 있는 활동을 벌이기까지

    영세자영업자 카드수수료인하안 촉구결의안 발의, 쓰레기봉투값 인상저지, 의정비인상 반대, 의정비인하 주민조례 서명운동과 의정비 인하 결정까지 모든 성과는 물론 필자만이 아닌 당력을 모두 기울여 결과이다. 의정비 인하 주민조례 서명운동은 진보신당 상근자들과 당원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의정비 인하 결정 이후 언론에서는 주민들의 승리만을 부각해서 보도했지만, 의정비인상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계획과 지역에서 주민발의라는 제도를 통해 주민들의 뜻을 모으는 과정을 이끌어온 핵심은 진보신당 강북구위원회의 상근자들과 당원들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사실 진보신당의 활동으로 성과를 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정당공천으로 당선된 다른 당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좋은 구도가 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승리로만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을 보며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의정비인하결정 이후 구정 질문 

    지난 10월 9~10일 정례회에서 나는 구정 질문이 진행되었다. 이틀 동안으로 첫날은 의원들이 일괄 질문을 하고, 다음날 구청에서 일괄 답변, 다시 보충 질문의 순서로 진행된다. 일괄 질문, 일괄 답변의 형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현장의 긴장감(?)은 국회에 비하면 다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구정 질문이라는 의정활동이 갖는 의의가 있기 때문에 모든 의원들이 구정 질문의 준비는 열심히 하는 편이다. 

    의원들의 구정 질문은 질의 날짜를 이틀 앞두고 구청에 전해지는데, 질문 내용 중에 더러 껄끄러운 것이 있으면 담당 공무원이 해당 의원들에게 열심히 로비를 해서 그 질문내용을 빼 달라는 경우들도 종종 있는데, 의원의 정치력(?)에 따라서 그 질문 내용을 빼는 조건으로 의원이 해결해야 하는 민원을 구청이 해결해주는 조건을 거는 등 막후 협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것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은 각자 하겠지만, 의원이 의사일정에 따른 자기계획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 9월 최선 강북구의원(오른쪽에서 세번째)과 진보신당 서울시당 관계자 등이 의정비 인하조례통과를 자축하고 있다.(사진=진보신당)
     

    필자의 경우 10개의 구정 질문사항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구체적인 확답을 요구했던 것은 강북구 관내 공부방 지원을 확대 실시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사전에 강북구 공부방 협의회 대표와 상의해서 이번 구정 질문을 통해 앞으로 진행할 공부방지원 조례제정운동을 함께 펼치는 것과 동시에 일단 올해부터 공부방 협의회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예산을 지원하라는 요구였고, 두루뭉술한 구청의 답변에 대해 보충 질문까지 이어진 결과 관철되었다.

    구정 질문에서 필자가 관철시켜야 했던 여러 요구 사항들과 구청의 답변 결과를 평가해볼 때 지금까지의 구정 질문 중 가장 알찬 구정 질문이었다고 ‘감히’ 자평을 해본다.

    다시 동네에서 마당 쓸기

    구정 질문 이후 요즘은 매일은 못하고 있지만, 오후에 두 시간 정도씩 지역순회를 진행하고 있다. 나름 의정 활동이나 지역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동네를 가보면 필자가 누군지 모르거나, 아직도 민노당 구의원으로 알고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선거 운동 기간이 아닌 때에 명함을 돌리고 인사를 하는것에 익숙하지 않은 주민들이 흔히 하는 말. 

    “언제 투표야? 벌써 선거하나?”
    “평소에 예습 복습을 열심히 해둬야 성적이 잘 나오잖아요!”라고 말씀드리면
    “어, 그래 알았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드라고.”라며 덕담을 잊지 않는다. 

    이미 지역에서 20년 넘게 터를 잡고 살아오고 있는 한나라당, 민주당 의원들과 경쟁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수공업적이고, 쫌 뻘쭘하더라도 골목골목에서 이삭이라도 줍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最善)이라는 생각이다.

    최소한 지인 명부를 3천 명 이상은 확보해야 지방선거에서 안정권이라고들 한다. 필자는 아직 1,500명도 안 되니, 앞으로 2010까지 3,000명 이상을 확보하려면 갈 길이 한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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