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유주의 끝, 하지만 그후는 모른다
    "MB, 3년 안에 나라 망칠 것" 예상대로
        2008년 10월 30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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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국 금융위기의 성격

    1) 금융세계화와 증권화

    차르르 파고든 한 줄기 냉기에 옷깃을 여미며 올려 본 그 곳엔 빨간 꽃사과가 있다. 지난 여름, 나뭇 잎 사이에 꽁꽁 숨어 있던 푸릇한 어린 열매를 이제는, 뛰어나게 눈 밝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만사가 그렇다. 때가 되면 본 모습을 드러낸다.

       
      ▲정태인(사진=레디앙)
     

    루비니 교수(뉴욕대)나 스티글리 츠교수(컬럼비아대)처럼 냉철한 이들이 이미 2년 전부터 경고해 왔던 그 사건도 드디어 터졌다.

    2006년 말 이후 모기지 회사, 투자회사, 증권회사가 줄줄이 파산설에 시달리거나 인수 합병되고 급기야 금년 3월 베어스턴스에 2000억 달러의 긴급 자금 지원이 이뤄졌을 때까지도 대부분의 증권가 사람들, 그리고 경제학자들은 이제 "이제 코너를 돌았다"고, 즉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진단했다. 꽃사과는 기어코 찬바람이 분 후에 뚝뚝 떨어질 때가 되어서야 존재를 인정받았다.

    이제서야 만발하는 온갖 원인 진단과 처방에 한 줄 더 보탤 생각은 없다. 시장만능의 신앙을 탓하기에도 너무 지쳤다. 다만 급할수록 돌아라가라는 오래 묵은 지혜에 따라 한 걸음 물러서서 과거와 미래를 멀리, 또 넓게 바라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2년 전부터 경고해왔던 사건이 터진 것

    80년대 초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정권을 잡은 이래 시장만능의 정책기조가 자리를 잡았고 미국에서부터 금융규제가 풀려 금융 세계화가 각국의 규제를 무너뜨리고 자산 증권화(유동화)의 기법이 나날이 교묘해졌다.

    실리콘밸리의 신화와 스톡옵션의 비밀이 보통사람에게도 로또의 꿈을 심어준 것은 90년대였다. IT 열풍은 거품을 부풀렸고 21세기의 개막과 더불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마술사 그린스펀(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재빨리 움직였다.

    월스트리트의 연금술사들로 하여금 땅으로도 금을 만들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깨우쳤고, 사상 최저의 이자율로 그들을 응원했다. 부동산 거품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듯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부동산 금융이 거품을 만들고 또 터지는 경험은 미국에서도 80년대 말 S&L 사건으로 이미 겪었다. 그 때도 5년 넘도록 수천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한 끝에 정리된 바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경제학 교과서들은 3중의 도덕적 해이의 대표 사례로 이 사건을 기록했다.

    땅으로 금을 만든 월스트리트 연금술사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때와 확연히 다르다. 89년 S&L(저축대부조합) 사건을 기억하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88올림픽 다음 해라서 뭔가 일어 터졌다면 ‘호사다마’ 식으로 기억에 남았을텐데도 말이다. 그런데 20년 후인 지금은 어째서 달러는 물론 주식 한 장 없는 사람 조차도 저녁이면 코스피와 환율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게 되었을까?

    단순히 걱정이 아니라 유럽에서는 실제 상황이 벌어졌다. 금년 초 미국의 부동산 위기가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올 때 영국의 노던록 은행이 파산한다든가 프랑스의 BNP 파리바가 펀드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1989년과 2008년의 차이는 어디에서 유래됐을까? 바로 금융세계화와 그 기법인 증권화에 해답이 있다. 90년대와 2000년대는 가히 금융의 천국이었고 투자은행의 파생상품은 이 시기의 총아였다.

    모기지 회사가 장기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발행한 위험한 MBS(주택저당증권)를 인수한 투자은행은 여러 채권을 섞은 CDO(부채담보부증권)를 합성했고 금융기관의 신용을 회피하기 위한 CDS(신용부도스와프)도 섞어서 복합 CDO로 합친 뒤 다시 쪼개 전 세계에 풀었다.

    범위는 한없이 넓어졌고 천문학적 연봉을 받는 연금술사들조차도 자신들이 어떤 시료를 넣었는지 알 도리가 없게 되었다. 스티글리츠는 ‘신자유주의의 종언’이라고, 그리고 루비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체제의 위기’, 즉 금융시스템 자체의 위기라고 부르는 그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2) 자본에 의한 물질생활의 포섭

    저 위의 이런 사태가 우리의 삶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90년대 초반까지도 그것은 저 멀리 있는 ‘금융시장’, ‘외환시장’의 일이었지 일반인의 삶, 브로델의 ‘물질생활’까지 스며든 것은 아니었다. 물론 주식에 주기적으로 열광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부동산이 파생상품과 연결된 것이야말로 이번 사태의 특징이다. 이제 자본은 노동과정에 노동자를 형식적으로 포섭하고, 뒤이어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실질적 포섭을 넘어 생활과정에서도 시민들의 ‘물질생활’을 포섭하게 된 것이다.

    90년대에 이르러 이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등 거대 신흥국가들의 제조업을 시야에 넣을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의 신조대로 임금을 억제하고 복지를 삭감하면 당연히 소비가 줄어든다.

    과소소비의 위기를 해결한 것이 바로 중국이었다. 값싼 제조업 상품의 물결은 낮은 실질임금을 보충하고도 남았고 여기서 생긴 세계적 잉여를 연금술사들은 노렸다. 보통 사람의 물질 생활에 연금술이 만들어낸 각종 증권이 끼어들기 시작했고 이제 파생상품은 삶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나아가서 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일상의 물질생활을 영위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자본, 시민들의 ‘물질생활’까지 포섭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에 낀 거품은 일반인이 일상적 소득을 아무리 저축해 봐야 주거와 교육, 의료 등 필수서비스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 홀로 이 게임을 외면할 수는 없다. 결국 타짜와, 이들을 고용한 부자들, 또는 기관투자자가 이기는 뻔한 게임을, 오로지 대박의 희망에 목숨을 걸고 치를 수밖에 없다.

    보통사람의 삶까지 포획한 이 게임은 금융의 위험을 끝없이 분산시켜야만 유지되는 것이다. 폭탄을 키우면서도 끝없이 쪼개서 돌려야 하는 게임이었고 폭탄 버블이 꺼지는 순간 잘게 쪼개진 폭탄은 금융기관이라는 화약고에 들어 있던 안전한 기름까지도 타오르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위험의 불투명한 분산은 기실 위험의 은폐였고 불신이 팽배해진 순간 폭발할 수 밖에 없다. 1조 달러가 훨씬 넘는 구제금융의 물줄기라 해도 과연 이 폭발을 막을 수 있을까? 이제 가족의 삶, 그리고 TV 프로그램에 더 관심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도 전 세계적 사건에 휘말릴 수 밖에 없다.

    2. 흔들리는 팍스 아메리카나

    1) 쌍둥이 적자 해결책의 유지가능성

    그 동안 미국경제를 유지해 왔던 국제질서도 의심스러워졌다. 이 역시 80년대 부터 발효되기 시작하여 30년간 농익은 문제이다.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는 차례로 대규모 감세정책을 시행하고 군비 강화를 꾀하다 그예 이슬람권을 상대로 전쟁까지 벌였다. 80년대말 소련이 무너진 후, 경제력의 현저한 약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수퍼파워로 존재했다.

    전비 조달을 위해 달러 강세를 유지해야 했고 미국인의 자존심을 세우다 보니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동시에 부풀어 올랐다. 중국 등 아시아는 미국의 소비도 살렸지만 동시에 그 무역흑자로 미국 재무성 증권을 사들임으로써 미국의 재정적자 또한 메워주고 있다. 달러 헤게모니가 미국의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날이 확대되는 거대 불균형 마저 간단하게 해결하는 미국의 힘을 믿고 세계의 돈이 모여들었고 연금술사들이 만든 각종 금융상품은 세계를 누빌 수 있었다. 일반인의 물질생활 뿐 아니라 웬만한 나라들은 마법에 끌려들어갔다.

    이제 미국의 투자은행 뿐 아니라 미국경제 그 자체가 대마불사의 도덕적 해이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불신은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미국 의회마저도 의심하는 7천억달러의 소화기를 믿고 세계의 돈은 앞으로도 미국으로 몰려 들 것인가? 미국의 연금술에 대한 믿음은 그래도 사라지지 않을까?

    2) 공격적 무역정책이라는 단기 해결방식

    80년대에는 미국 상품의 수입을 강요하거나(공격적 무역정책) 상대국들의 통화를 절상하는 동시에 이자율을 내리도록 하는 ‘반강제적 국제협조’로 이 난제를 미봉했다. 80년대 중반 미일반도체 협정, 그리고 플라자협정이 대표적인 조치였고 일본의 장기침체의 뿌리는 역사의 이 지층까지 닿아 있다. 과연 이 방법은 이번에도 통할 것인가?

    한편 미국 정부는 증권거래위원회의 미약한 규제만 받던 투자은행을 상업은행과 묶어 조금 더 강한 FRB의 규제를 받도록 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가 세계를 지배하는 구조 자체에 손을대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만으로 보통사람들의 물질생활,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경제체제에 파고든 이 불안정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다음의 위기는 기어코 상업은행마저 집어 삼키지 않는 것일까? 예금을 받는 상업은행마저 문제가 된다면 그야말로 사람들의 삶은 맨 밑바닥까지 흔들리게 된다.

    또한 중국은 과연 80년대의 일본처럼 행동할 것인가? 중국의 동부는 이미 부동산 거품에 시달리고 있는데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미국보다도 이 이자율을 낮춰서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의 위험을 감수할 것으로 보이는가?

    3. 신자유주의의 종언?

    1) 포스트 브레튼우즈?

    스티글리츠는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선언했고, 그 누구보다 이 사태를 정밀하게 예견한 루비니는 지금은 서브프라임 사건이 아닌 ‘서브프라임 체제의 위기’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사태를 야기한 주범 중 한명인 그린스펀 마저도 40년 동안 맞아온 자신의 이론이 ‘100년만의 위기’로 심각한 결함을 노정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어디로 간다는 것인가? 우선 시스템은 붕괴했다.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하리라는 시장만능을 몸에 새겨 놓은 폴슨 미 재무부장관이 투자은행의 팔을 비틀어 금융기관의 부분 국유화를 관철시키는 데까지 몰린 것이야말로 그 상징이다. 몇 십년간 경제학자들을 사로잡아 온 시장만능의 세계에서는 도대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자들이 이번에 인정한 건 도대체 어찌 할 수 없는 긴급상황일 뿐일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연금술사들은 형편없이 싸진 유수의 투자은행들을 인수할 시나리오를 짜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왜 가장 효율적이라는 시장이 긴급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달러 본위체제 해체에 대한 회의

    우리가 교통신호등을 보고 거리를 건너는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완전경쟁과 완전정보의 세계라면 사거리의 신호등부터 없애야 할 것이 아닌가? 전쟁이 일어날 때 왜 우리는 국가의 명령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러나 반성은 여기까지다. 자유의 천국에 이미 도달한 금융시장을 어디까지 규제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간명한 토빈세마저 정말 온 나라가 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 10년 전 클린튼 대통령이 50년만의 위기라고 이름지었던 동아시아의 경제위기 때도 그랬듯 국제규제기구의 창설은 말만 무성하다 흐지부지되는 것이 아닐까?

    더 근본적으로 브라운 영국총리나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제안한 포스트 브레튼우즈 체제는 과연 가능할까? 현재의 기괴한 달러 본위체제를 바로 잡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아이켄그린이 강조한 세계 단일 통화체제가 불가능하다면 기껏해야 아메리카-유로-아시아의 복합 통화 바스켓 체제일텐데 그마저 과연 가능할까?

    2) 패권국가의 교체?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이론적이거나 기술적인 차원 이상을 사고해야 한다. 바로 패권(hegemony)의 문제이다. 최소한의 이론적 합의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미국이라는 패권국가가 그 합의에 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가 그 다음의 더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브로델이나 아리기, 또 왈라스타인처럼 ‘기나긴’ 역사를 눈에 담고 있는 학자라면 ‘기나긴 16세기’의 네델란드를 대체한 영국이나. 세계대전을 거치고 나서야 영국을 대체한 미국 다의 헤게모니가 무너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이들의 이론에 따르면 현재의 미국발 금융위기는 패권 이행의 마지막 단계인 "금융팽창"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의 두 사례에 비춰 볼 때 과연 미국을 대체할 헤게모니국가, 또는 국가군은 준비돼 있는 것일까? 1920년대에 미국은 이미 생산력 수준에서 영국을 능가했지만 실제로 패권이 이동하기 위해서는 파시즘의 출현과 뒤이은 세계대전을 거쳐야 했다.

    아마도 차기 패권국가의 대표적 후보일 중국은 그런 조건을 전혀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화평굴기를 내세웠던 후진타오 스스로도 다시 도광양회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반대로 스스로 패권을 놓을 리 없는 미국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진데, 예컨대 미국 외교정책의 첫 번째 위치를 차지하는 대 중국 포위 전략과 현재의 위기를, 유력한 차기 대통령 오바마라고 어떻게 짜맞출까?

    미국, 대체할 나라 아직 안 보여

    오히려 더 분명해 보이는 건 단기적인 미국의 해법이다. 80년대 중반에 그랬듯 다자간의 플라자협정, 또 양자간의 미일반도체 협정 같은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80년대의 일본과 같은 만만한 대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일본이 두 사건을 계기로 광란의 부동산 투기붐과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다는 사실을 다 아는 중국이 과연 그런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일까?

    결론을 말하자면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다음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역사가 보여 주듯 오랜 혼돈의 시기가 이어질 것이다. 10년 내지 20년을 크고 작은 무역전쟁(환율전쟁, 이자율 전쟁)으로 메운 뒤에야, 어쩌면 전쟁을 겪고 나서야 가닥이 잡힐지도 모른다.

    첫째, 1929년 대공황 이후 케인즈는 소득재분배를 해법으로 내세웠고, 루즈벨트는 위기와 전쟁에 힘입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지배계급의 양보를 끌어냈지만, 지금은 예컨대 자산재분배의 이론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계급간 역관계의 재편을 끌어낼 리더십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미국, 아니 월스트리트가 아직 덜 망해서 자신의 패권을 스스로 넘겨 줄 수 없다.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되면 월스트리트가 약간의 수정을 가한 ‘신신자유주의’를 들고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패권 이양만이 살 길’이라는 판단을 할 정도로 위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셋째 국제 권력 다툼에서도 미국을 대체할 나라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4. 이명박 정부의 선택, 그리고 우리의 미래

    1) 유동성공급과 부동산 붐을 위한 전방위 조치

    지난 6개월 동안 "이미 선제적 조치를 취했으니 안심하고 투자하라"던 이명박 정부는 10월 들어 이른바 ‘선제적이고 충분한 조치’를 숨 가쁘게 들이댔다. 도대체 무엇이 ‘선제적’이라는 것일까? 정확히 말하면 유동성 공급을 위한 전통적 방책들은 모두 미국과 유럽의 조치에 질질 끌려간 것이다.

    다른 나라가 모두 경쟁적으로 이자율을 내리고 은행 간 대출에 대한 지급보증까지 하니 그제서야 따라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또한 선진국들의 ‘지푸라기 잡기’를 믿고 흉내냈을 뿐이니 현재 세상 돌아가는 꼴을 봤다면 그 때마다 호언장담만은 삼갔어야 했다.

    몇 달 전부터 반복적으로 "우리는 선제적 조치를 취했으니 안심하고 펀드를 사라"던 대통령과 고위 당국자들의 말을 떠올리고 이솝의 양치기 소년을 저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이 참에 실천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촛불에 밀려 주춤했던 경기부양 정책이 ‘충분히’ 쏟아지고 있다. 7% 성장을 위해 기획됐던 금리인하, 감세, 규제완화까지 그 다양한 성장 정책의 화살촉은 일제히 부동산 붐을 겨냥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석기시대로 되돌리다

    문제는 9조원 이상 쏟아 부어 부동산 공급을 살리면 지금 눈치만 보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바야흐로 급전직하할 것이라는 데 있다. 답은 투기를 일으켜 수요곡선을 신속하게 오른 쪽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종부세의 사실상 폐지를 위해 두 달 만에 재정부가 180도 말을 뒤집는 코미디는 물론, 양도세도 인하하고 과감하게 수도권 규제도 풀어야 한다.

    우리의 토종 투자은행을 키워야 한다는 5년 넘은 목표도 이번 기회에 조기 달성해야 하니 자본시장통합법을 빨리 통과시키고 금산분리의 경계선을 깨끗이 지워야 한다. 미국이 흔들린다고 해서 우리 금융이 “구멍가게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다음 번 위기에 이 나라를 석기시대로 돌아가게 할 재벌계 은행은 이렇게 위기 속에서 탄생할 것이다.

    감세정책이 가져올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네트워크 공기업을 팔고 민간보험을 확대하여 건강보험을 무너뜨리면 주식 붐 또한 일어날 것이니 환상의 쌍둥이 투기경제도 가능하다. 이대통령이 불을 끄기 위해 들이부었다는 것은 물이 아니라 ‘기름’이다.

    인내하며 잡았어야 할 울타리 밖의 불을, 내부의 장기 실물위기로 옮겨 붙이기 위해 ‘충분한’ 기름을 부어 ‘선제적’으로 거품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2) 우리의 미래

    서민들의 삶이 최우선이라는 원칙을 꺼내 들면 풋사과의 생명력이 눈에 보인다. 일반 국민에게는 연금술로 더 이상 현혹해서는 안된다. 성실한 근로만으로 안락한 삶을 누리도록 해야 하며 더욱이 아이들의 생명까지 위협해서는 안된다.

    파생시장을 포함한 금융시장의 존재가치는 정보의 제공과 위험의 분산에 있다. 그러나 그 모두를 포함한 가격이 널뛰어서는 가격이 오히려 합리적 결정을 방해한다. 오로지 자본이득을 노리는 한, 아니 위기 시에 살기위해 행동하는 한 떼거리 행위(herding)는 필연적이다. 시장은 미세조정의 기구가 아니라 폭력적 조정의 괴물이 된다.

    너무 복잡해서 불투명한 위험의 분산은 오히려 위험을 은폐한다. 부동산과 돈 자체, 그리고 사람이라는 사이비 상품(폴라니), 정확히 말해서 상품이 되어선 안 되는 생명의 자산들이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전문가들과 상층이 금융시장의 순기능이 발휘되도록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말릴 수 없지만 보통 사람의 삶을 뒤흔드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전통적 소득-자산재분배 정책 시행돼야

    이러한 관점에서 시스템의 규제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금융은 원래의 기능대로 축소되어야 하며 세심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소득재분배와 함께 자산재분배 정책도 시행해야 한다.

    미국이 과도하게 누리는 현재의 경제 패권은 분산되어야 한다. 세계 정부가 요원하다면 EU와 아시아 공동체가 이 권력을 분점해서 적어도 배째라식 우격다짐이 더 이상 통해서는 안된다. 이제 국제경제체제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특히 아시아는 치앙마이 협정을 발전시킨 AMF 설립, 나아가서 ACU(아시아 통화)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아무런 비전도, 전략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현 정부가 과연 살릴 수 있을까?

    현재의 위기가 미봉돼서는 안된다. 국제적인 움직임이 불가능하거나 너무 더디게 이뤄진다면 아시아에서, 그리고 우리부터 경제를 보는 시각부터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외국자본 이탈이 무서워서 일반 국민의 삶을 보호하는 정책을 한없이 미룬다면, 아니 실은 관료까지 합세하여 글로벌 스탠다드를 내걸어 상층 금융자본가의 이익만 도모한다면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넘어 ‘자본주의의 종언’은 불가피하다.

    미래 세계의 새로운 표준

    더 나쁜 것은 새로운 세계의 모습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채 밑그림조차 흐릿하다는 사실이다. 우선 우리부터 바깥에서 오는 충격을 흡수하는 방어벽을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내부의 불평등을 해소하여 안으로부터의 성장, 밑으로부터의 성장을 꾀해야 한다. 그러한 시스템을 가진 나라의 경제 성과가 월등할 것이고 장차 세계의 표준이 될 수 있다.

    눈 앞의 헛된 이익만 좇으며 눈을 들지 않는 한, 작아도 밝게 빛나는 저 꽃사과는 보이지 않는다. 시장만능의 빨간 색안경을 쓴 사람에게 사과가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또한 보이더라도 그 생명의 의미를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눈 앞에 닥친 서민 삶의 위기가 느껴지지도 않을 수 있다.

    바로 우리 정부의 이야기다.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종언, 시장만능 정책기조의 폐기라는 세계의 흐름과 정확히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부 위기의 대처에서도 완전히 거꾸로 짚고 있다.

    부동산 금융이 문제라면 그 실체를 밝혀서, 정 필요하다면 제2금융권에 구제금융이라도 집어 넣어 ‘선제적으로’ 불씨를 꺼야 할텐데, 버블 붕괴의 시대에 나 홀로 버블을 일으켜 폭발적 붐을 이루겠다는 독창적 꿈을 꾸고 있다. 또 다시 일반 국민들을 버블 속으로 밀어 넣어 기어이 죽음으로 몰아 넣겠다는 것이다.

    정확히 1년 전에 나는 당시 이명박 후보의 정책이 실행되면 3년 내에 망할 것이라며 이민을 가든가, 안 되면 시골로라도 가시는 게 낫겠다고 조언했다. 강만수 장관의 경질로도 이젠 부족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야말로 나와 내 가족만은 살 수 있을 것이란 환상을 버리고 모두 같이 살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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