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과 비정규직의 어려운 만남
        2008년 08월 06일 11: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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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는 잘 몰랐어요.” 말 한 마디 해놓고 눈물부터 쏟는다. 딸아이는 초롱한 눈망울로 엄마 곁에 서 있다. 40여 개의 작은 촛불들이 켜진 6일 밤 기륭전자 촛불집회에서 그녀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투쟁 1079일, 단식 57일이라는 숫자 앞에서 “나 당당히 연대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저 모두 죄인인 듯 고개를 들지 못했고, 죄송하다는 말도 쉬이 꺼내지 못했다. 단식 57일 수수깡처럼 말라버린 김소연, 유흥희 두 여성노동자의 핏기 없는 얼굴 앞에서 모두가 죄인이었다.

    “기륭 동지들이 1000일을 버틴 게 아니라 우리가 1000일 동안 외면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현대차 전주 김형우 비정규지회장의 얘기는 그래서 우리 모두를 아프게 한다. 80만 조직을 자랑하는 민주노총, 최대의 투쟁력을 자랑한다는 15만 금속노조도 단식 57일 앞에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 단식 57일째를 맞고 있는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부회장, 유흥희 조합원이 8월 6일 오후 4시 기륭전자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를 바라보고 있다.(사진 기륭전자분회)
     

    투쟁 1079일 단식 57일 앞에서 모두가 죄인

    “저도 서민의 딸이었지만 4년제 대학 나왔고, 정규직 직장 얻었고, 정규직 남편 만나서 소위 중산층으로 살고 있었어요. 1년 전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살려달라’고 씌여진 피켓을 들고 농성을 할 때도 저는 고객으로 있었어요. 그 때 처음 알았죠.”

    그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어렵게 말을 잇는다. 그녀는 촛불집회 이후 조선일보 불매운동으로 유명해진 여성들의 요리 싸이트 ‘82cook.com’ 회원이다. 그가 처음으로 딸아이를 데리고 기륭 공장을 찾았다.

    “저희 사이트 촛불집회 얘기는 많이 해도 비정규직 얘기는 잘 하지 않아요.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비정규직이어도 우리 아이는 비정규직이 되지 않을 거라고 자위하고 있는 거죠.”

    어디 그녀 뿐일까. 20년 동안 민주노조를 경험하며 자동차공장에 다니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우리 아이는 좋은 대학 보내서 좋은 직장 얻게 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잔업 특근에 목을 맨다. 학생운동을 하는 대학생들도, 노조 간부들도, 시민사회운동을 한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 아이는 비정규직 안 될 거야”

    지난 5월 외환은행은 정규직 70명 공채에 9764명이 지원해 139.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들 중 석ㆍ박사가 522명이었고, 토익 900점 이상 고득점자가 1086명, 미국 공인회계사 등 특수자격증 소지자가 129명이었다. 기업은행, 우리은행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시절 우리는 상업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은행 정규직으로 갈 수 있었다. 이제는 석박사가 돼도, 토익을 900점 이상 받아도 정규직 채용이 보장되지 않는다. 은행은 정규직, 중규직(무기계약직), 비정규직이라는 3단계 착취구조가 됐다.

    지난 시절 우리는 공업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제조업 공장에 정규직이 될 수 있었다. 이제는 자격증 몇 개를 가지고 있어도 웬만한 공장에 정규직 노동자로 들어갈 수 없다. 아예 정규직을 뽑지 않는다. 기아차 ‘모닝 공장’처럼 아예 생산라인에 정규직 0명 공장이 늘어가고 있다. 대기업은 사내하청 일자리도 뒷돈을 줘야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은행과 제조업 뿐이 아니다. 사무직, 서비스업, 공공부문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고용구조가 정규직에서 비정규직 중심으로 바뀐 지 오래다. 당연히 정규직을 채용해야 할 자리에 비정규직을 쓰는 불법행위가 만연한 사회다. 제조업의 기륭전자, 공공부문 KTX 여승무원, 사무직 코스콤비정규직, 서비스 이랜드노조가 그 증거다.

    비정규직 중심의 ‘미친’ 고용 구조

    “촛불집회를 통해 조금 눈을 떴어요. 힘내시라고 얘기하는 것도 사치스러운 것 같아요. 동참하지 못해 죄송하고, 앞으로 죄송하다는 말 안하도록 노력할게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울림은 깊었다. 누리꾼과 비정규직의 어려운 만남이었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작은 촛불문화제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떨구게 만들고 눈물을 쏟게 했으며 부끄러움에 눈시울을 빨갛게 만들었다.

    기륭 릴레이 동조단식을 제안하고 이날 첫 단식농성을 벌인 인터넷까페 ‘영화와 책’의 ‘씨니or요사’는 “기륭과 함께 하는 것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실천이자, 두 개의 싸움을 연결하기 위한 노력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들은 ‘누리꾼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비정규직과 촛불 누리꾼의 만남은 이렇게 끝이 났다.

    박노자 교수는 “미친 소 먹고 죽을 확률보다 미친 고용 때문에 굶어죽을 확률이 더 높다”며 촛불집회와 비정규직 문제가 결합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촛불과 비정규의 만남, 누리꾼과 비정규 투쟁의 만남이 중요했는데 민주노총을 비롯해 노동운동은 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광우병 쇠고기, 비정규직 문제 모두 먹고 살 권리, 생존할 권리다. 우리 아이들의 먹고 살 문제를 위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지금 쓰러져가고 있는 비정규직과 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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