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행진 다시 불붙어 10만 물결
        2008년 07월 01일 02: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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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이 다시 뜨거워졌다. 총만 안 들었을 뿐 전쟁 같은 폭력 진압과 색깔 공세를 비웃기라도 하듯 7만여 명의(주최 측 추산) 시민들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장엄한 촛불행렬을 이어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화로운 행렬에 시민들 스스로도 감탄하며 ‘시민만세’, ‘민주주의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서로 격로하고, 퇴근하는 시민들도 즉석에서 합류해 인파는 10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 사진=노동과 세계 이기태 기자
     

    이같은 촛불의 기운은  2일 민주노총 총파업, 3일 개신교 기도회, 4일 불교계 시국법회에 이어 5일 100만 국민대행진까지 이어져 이번 주가 촛불 정국의 또 다른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촛불행진은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촛불이 이긴다’,’대통령의 교만과 무능이 민주주의를 짓밟는다’라고 적혀있는 현수막과 십자가를 앞세운 사제단을 선두로 시작해 남대문을 거쳐 을지로에서 다시 시청 광장으로 돌아올 때까지 평화롭되 완강하게 진행됐다.

    행진의 선두에는 깃발 대신 그간 뒤로 물러나 있던 연인들과, 가족, 어린 중고생, 하이힐을 신고 원피스를 입은 여성들, 유모차에서 잠든 아기들, 넥타이 부대 등이 다시 등장했다. 이날 행진은 선두에서 이끄는 대책위 방송 차량 없이 처음으로 진행된 행진이었으나,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 가며 따로 또 같이 제각각 준비한 구호를 외쳤다.

    "이명박은 회개하라"

    이제 시민들은 더 이상  쇠고기 재협상을 외치지 않았다. 사제단이 "이명박은 회개하라","구속자를 석방하라"를 외치는 동안, 시민들은 차분하지만 결연하게 "독재타도, 명박 퇴진", "어청수는 물러나라"를 외쳤다. 시민들이 손수 사인펜으로 써서 만든 피켓에도 ‘나에게는 주권과 민주주의가 있지만, MB 너는 미친소와 전경이 있다’ 는 등의 정권을 압박하는 글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할 처지가 돼버렸다.

    사제단이 평화 시위 분위기 조성을 위해 행진의 선두에 서기는 했으나, 이날 시위를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평화적으로 마무리한 동력은 다름 아닌 시민들 스스로의 자정 능력이었다. 시민들은 모두가 지도부이자 동시에 자발적인 시위대였다.

    이같은 모습에 차미리(21)씨는 "국민들이 힘을 모아 하나가 돼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이 뿌듯하고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담배 연기와 소화기 분말, 피자국이 낭자했던 시청 앞 일대도 다시 토론과 음악회가 만개했다.

    밤 10시께 행진을 마치고 시청에 도착한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즐기고, ‘이명박 아웃’ 등의 촛불 글씨 등을 만들며 12시께 자진해산했다. 무언가 아쉬운 듯 시민들이 시청 앞 광장을 쉽게 떠나지 못하자 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마음의 에너지를 아껴달라며 시민들에게 해산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는 "내일 오시면 정말 재미있는 얘기해드리겠습니다. 오시지 않으면 울화통 터질 겁니다"면서, "여러분을 기다리는 가정으로 돌아가달라"고 말했다.

    그는 미사를 기획한 취지와 관련,"특별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진척시키기 위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참석한 것"이라며, "국민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격앙된 마음을 가라앉혀 국민의 진정성을 더 크고 선명하게 외치게 하려고 나왔다"고 답했다.

    그는 또 "평화적 시위가 격렬하게 바뀐 데에는 정부가 유도한 측면이 있다. 정부는 왜 시민들이 분노했는지 알아들어야 한다"면서, "촛불을 가장 끄고 싶은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국민이다. 우리는 국민이 기쁜 마음으로 촛불을 끄게 돕고 싶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이날 밤 부터 시청 앞 광장 한켠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에 돌입했으며, 매일 저녁 촛불 문화제가 시작되기 전 6시 반에 미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촛불문화제에 사제단이  나선 것과 관련 시민들의 반응은 찬탄일색이었다. 시민들은 자정이 되도록 자리를 뜨지 않은 채 단식을 준비하는 사제단에게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를 외치며 응원했다.

    온 가족과 함게 참석한 주부 이연재(41)씨는 "신부님이 오시니깐 시위도 평화적 기조로 유지되고 신자는 아니지만 마음으로도 상당히 안정된다"면서, "신부님이 있어 우리 시민들을 폭도로 몰고가는 경찰도 함부로 못할 것 같아 힘이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사태의 원인을 잘못 파악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촛불이 꺼져 간다고 하는데, 이는 오판이다"면서, "쇠고기부터 0교시까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이명박 정부가 바뀌지 않는다면 대다수의 시민들은 계속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이 많이 봐준 것"

    어린 고등학생들이 맞는 모습을 보고 참다 못해 시위에 나온 사법고시생 함동희(23)씨는 "과거 6월 항쟁에도 신부님들이 전면에 나서 본격화됐는데, 역사 교과서에서만 보던 얘기가 현실에서 재현되니 기분이 묘하다"면서, "아버지 세대가 피흘려 만들어놓은 소중한 민주주의를 이명박 정권이 100일만에 되돌려 버린 것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가는 점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격렬시위와 관련 "시민들의 자연발생적인 분노가 극히 일부 표현된 것 뿐이다. 국민들이 그간 얼마나 많이 참았는데, 그것도 많이 봐준 것 아닌가?"라며, "이명박 정부가 소수 1%만을 위해 대다수 국민을 희생양삼는 한 시민들은 계속 거리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경찰은 69개 중대 5000여 명의 병력을 도심 곳곳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지만,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또  경찰은 애초 3000여 명 정도가 미사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계속 인원이 불어 대규모 인파로 확산되자 무전기를 통해 수시로 연락하며 인원을 체크하는 등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

    한편, 대책회의는 이날 시국미사가 열리기 전 오후 6시 30분께 서울광장에서 경찰과 시비가 붙은 시민 2명이 연행돼 호송차량에서 집단폭행을 당하고 풀려났다고 밝혔다. 대책회의는 피해자와 목격자의 증언을 종합해 경찰의 불법연행과 집단폭행에 대해 고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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