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만개 촛불', 축제 끝냈으니 이제 행진
        2008년 06월 10일 10: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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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의 행렬은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작해 한국 프레스센터 건물을 지나 덕수궁을 넘어 이어졌다. 시청광장에도 우익단체의 기도회 집회를 경계로 사람들로 채워졌고 청계천을 비롯해 골목골목 가득 차 있었다. 종각역 부근에 까지 이어지는 시민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

    문화제의 시작 시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깃발을 앞세운 대학교, 노조들도 속속 들어오고 손 피켓과 촛불로 무장한 가족단위 시민들도 계속 이어졌다. 40여만 명의 시민들의 촛불은 서울 주요 도심지인 광화문과 시청 주위를 불타는 도시로 만들었다. .

       
    ▲ 새시대 예술연합에서 준비한 ‘닭장차 투어'(사진=정상근 기자) 
     

    이들은 광우병 대책위원회가 진행하는 행사와 독립적으로 ‘나름의 행사’를 이어갔다. 공공노조, 언론노조 등 각 노조는 모여 앉아 구호를 외치고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온 시민들역시 각자의 집회를 이어갔다.

    이들 중 시청역 인근에서 길게 플래카드를 걸고 있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87년 6월 항쟁의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들로 ‘늦어서 미안하다’는 글귀를 가슴에 걸고 비슷한 내용의 플랫카드를 길게 늘어뜨린 채 시청역에서 나오는 청소년들을 맞았다.

    재협상 성공하면 민주주의 획기적 발전

    이 한가운데 있던 이동오(47)씨 역시 6월 항쟁 한 가운데 있었다. 이 씨는 “여기 와서 플래카드를 보고 이 행렬에 동참했다”며 “내가 알기론 이 분들은 명동성당에서 출발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87년 6월과 오늘의 차이점을 묻자 “87년은 미완의 민주화운동이라 불렸다. 그래서 혁명이 아닌 항쟁이었다. 그때는 누군가 우리를 이끄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참여하고 있다. 이것이 성공하면, 재협상이라도 관철한다면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더욱 획기적으로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가족과 함께 온 김선규(37)씨는 “아이가 아직 어리지만 이 아이에게 이 역사적인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87년 6월에 나는 학생이어서 참여를 못했다. 그때의 짐이 아직도 남아있다. 비록 퇴근 후 피곤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그 마음의 짐을 덜고자 왔다”고 말했다.

       
    ▲ ‘아이들이 편히 웃게 해주세요'(사진=정상근 기자)
     
     

    집회 현장 중간 중간에는 다양한 미술품 전시, 퍼포먼스 등이 벌어졌다. 이곳에는 이명박 가면과 어청수 경찰청장 명찰을 달고 닭장차 리어카를 몰며 퍼포먼스를 벌이던 ‘새시대예술연합’이 있었다.

    물총과 진짜 닭장차

    이들은 앉아있는 시민들 사이사이를 돌며 물총을 쏘고 그들을 ‘연행’해 닭장차 리어카에 싦었다. 이들에게 물총세례를 맞은 시민들은 “폭력경찰 물러나라”, “이명박은 물러나라”를 외치며 웃었다.

    어청수 명찰을 달고 있던 황금미영씨는 “경찰에서 무단으로 하고 있는 연행에 대해 항의하는 뜻에서 이런 퍼포먼스를 계획했다”며 “또한 엄숙해 보이는 것을 재미있게 접근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풀고 대리만족을 하시라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시장’도 번성했다. 문화제 현장 곳곳에 자리 잡은 노점 상인들은 닭꼬치, 핫도그 등을 팔고 있었다. 한 상인은 “나도 광우병 쇠고기를 반대하는데 먹고살기 바빠서 여기서 장사하고 있다. 민망하지만 많이 팔아주어서 고맙기만 하다”고 말했다.

    촛불문화제 중간중간 야당 정치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미온적인 참가에 지탄받았던 통합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문화제 한 쪽에서 뒤늦은 ‘쇠고기 수입 반대’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진보신당 심상정, 노회찬 상임공동대표는 시청 광장 진보신당 부스 앞에서 시민들과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었다.

       
    ▲ 동호회를 통해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즉석 기타공연을 벌이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촛불문화제가 끝나갈 때 쯤 광화문 인근 컨테이너에서 스티로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부 시민들이 스티로폼을 계단삼아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아고라>깃발을 든 시민들이 몸으로 가로 막고 주위 시민들이 비폭력을 외치면서 스티로폼은 곧 치워졌다.

    이후 경찰이 해산방송을 시작했고 시위대는 세갈레로 나뉘어 행진을 시작했다. 한 갈래는 서대문쪽, 한 갈래는 안국동 쪽으로 향했고 나머지 한 곳은 서울역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광화문 컨테이너 앞에 남아있는 시민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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