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에게 '민주노조'는 없다
        2008년 05월 01일 10: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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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환은행에서 A지점에서 3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B씨. 그는 결혼 10년 가족들과 여행이라도 다녀오려고 5월 2일 연차 휴가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하루만 휴가를 내면 5일 연휴이기 때문에 모처럼 가족들과 쉬고 싶었던 그의 오랜 꿈은 물거품이 됐다. 그는 “만약 제가 정규직이거나 노조원이었다면 거절하지 못했겠죠”라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해 7월 1일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후 외환은행 노사는 1,572명의 비정규직 중에 ‘1천명 고용보장’에 합의했다. ‘고용보장’은 정규직화가 아닌 ‘무기계약직’이었다. 회사는 면담을 통해 1천명을 선발했고, 남은 572여명은 기간제노동자(계약직)으로 남아있었다.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은 없어졌지만 정규직과의 차별은 똑같다. 단체협약은 정규직에게만 적용된다. 무엇보다 금융노조 외환은행지부에 가입할 수가 없다. 노조원이 아니기 때문에 지난 해 지부위원장 선거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외환은행지부 한 관계자는 “노조 가입보다 단체협약을 먼저 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과 부산은행 정도에서만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같은 회사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

    다른 은행들은 아직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노조 가입은 금융노조 ‘비정규직지부’에 가입할 수 있을 뿐이다.

    정규직의 연대와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비정규직 별도노조’에 선뜻 가입할 비정규직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2년 넘게 목숨을 건 투쟁을 전개했지만 결국 해산하고 말았던 하이닉스 사내하청의 예처럼 정규직과 별도의 노조에 가입한 비정규직노조의 생존 확률은 대단히 낮을 수밖에 없다. 정규직 노조조직율 10.3%, 비정규직 2.8%는 이를 보여주는 증거다.

    사실 은행권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행복’한 조건에 속한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노동절이 쉬는 날인지조차 모른 채 고단한 노동을 계속하고 있다. 2003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월차를 냈다는 이유로 관리자가 아킬레스건을 절단한 충격적인 사건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몸이 아파도 휴가조차 낼 수 없는 처지다.

    노조원이 될 수 없는 비정규직

    계약직(기간제) 노동자들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사내하청, 청소 경비 식당 같은 파견업체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노동조합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이주노동자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상급단체의 규약은 열려 있지만 사업장 단위에서는 철저하게 봉쇄되어 있다.

    4월 초 금속노조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저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하는 경비직원인데요, 금속노조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노조 홈페이지에 있는 가입원서를 쓰시면 되는데요, 근데 어디 회사죠?”

    “금속노조 소속의 C회사예요. 거기에 가입하려고 했더니 정규직이 아니면 가입할 수가 없다면서 이 번호를 알려주더라구요. 다른 건 몰라도 비인간적인 대우를 견딜 수가 없어서요. 4명이 먼저 가입을 하려구요.”

    “네. 노조가입원서 써서 팩스로 보내주세요. 단, C지회에서 6월말까지 지회 규칙을 개정해서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자까지 모두 조합원으로 받을 테니까 나머지 분들은 기다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규직의 지원이 중요하잖아요.”

    무늬만 산별노조?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금융노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별노조들이다.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가입을 원하는 노동자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게 산별노조다. 그러나 별도의 비정규직 노조는 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노조(지부, 지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금속노조는 가입을 희망하는 모든 노동자는 정규직과 동일한 조직에 가입한다는 ‘1사1조직’ 규약을 가지고 있다. ‘1사1조직’이란 하나의 사업장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무직과 이주노동자를 가리지 않고 하나의 조직에 가입한다는 노동자 단결의 정신을 구현하는 규약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대자동차 지부 규칙 제 2장 7조에는 “지부는 현대자동차(주)와 현대모비스(주)에 종사하는 노동자로 구성한다”고 되어 있다.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지만 정규직 계약관계에 있지 않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 청소 경비 식당 노동자들은 현대차지부에 들어갈 수 없도록 ‘가입의 문’이 봉쇄되어 있다.

    특히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많은 사업장에서 노조 가입의 문이 닫혀 있다. GM대우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완성차와 한진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STX조선 등 조선소, 현대제철, 현대하이스코 등 철강사업장 등이 대표적이다.

    늙어가는 공장, 젊어지는 공장

    1987년 노조민주화 운동 이후 20년이 흘렀다. 특히 IMF 구제금융사태 이후 회사는 정규직 신규채용 대신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를 대거 늘렸다. 노동조합은 늙어가기 시작했다. 1987년 20~30대 생기 넘치는 조합원들로 들썩거렸던 민주노조운동은 2008년 40~50대 ‘늙은’ 노동자들로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진취적이고 변혁적이었던 노동자들은 이제 대학생 자녀를 둔 중년의 가장이 됐다. 지출이 가장 많은 나이인데 직장을 잃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원들은 보수화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확산법 반대, 노사관계로드맵 반대, 한미FTA 반대 파업은 하지만 집회에는 나가지 않는 상황이 됐다.

    지난 4월 7일 전북 군산에서 트럭을 만드는 타타대우상용차를 방문하자 노동조합 사무실은 젊은 노동자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비정규직이었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30대 초반의 젊은 노조 간부들이 공장에 생기를 불어놓고 있었다.

    타타대우상용차 노사는 2003부터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매년 40여명씩 정규직화했고, 2005년 금속노조 중앙교섭에서 ‘불법파견 정규직화’가 합의된 이후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134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2003년 450명이던 조합원은 2008년 4월 현재 752명으로 늘었다. 300여명이 비정규직 출신이다.

    노사는 매년 10% 정규직 전환을 합의했고, 지회는 아직 남아있는 3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시작된 아름다운 연대

       
     ▲금속노조 대구지부 삼우정밀지회에 소속된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사진 금속노조)
     

    식당과 경비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대한이연지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노조로 싸우고 있는 이랜드일반노조,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22명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인 삼우정밀지회 등 ‘아름다운 연대’는 점점 확산되고 있다.

    2007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기아자동차지부는 지난 4월 14~25일까지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 분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규칙을 개정했고, 2~3차 하청노동자, 식당, 경비노동자들까지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2008 비정규직 단협 요구안을 마련해 하청업체 사측에 전달하고 하청업체 집단교섭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기아자동차는 3,800여명의 비정규직 중에서 기아차지부 1,400여명, 비정규직지회에 600여명 등 2천여명이 노조에 가입해있고, 통합을 앞두고 있다. 노동운동의 ‘맏형’격인 현대자동차지부도 6월 말까지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노조가입의 문을 활짝 열겠다는 계획이다.

    제2의 산별노조-노조민주화운동

    금속노조는 6월말까지 산하 사업장의 노조가입 범위를 “조합 규약에 따라 가입승인을 얻고 ○○○○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로 구성하며, 직접고용 비정규직(임시, 일용, 단기계약직), 간접고용 비정규직(사내하청, 용역, 파견 등), 이주노동자를 포함한다”로 고치기로 했다.

    2006년 자동차 4사의 산별노조 전환이 제1의 산별노조운동이었다면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여 진정한 산별노조를 만들어가는 ‘1사1조직’ 운동은 제2의 산별노조 운동이다.

    20년 전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꾼 운동이 제1의 노조민주화운동이었다면 제2의 노조민주화운동은 바로 비정규직을 같은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노조 가입의 문호를 활짝 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로 뭉쳐 신자유주의에 맞서야 한다.

    한진중공업 고위 임원은 한 노조 간부에게 “1사1조직 하면 우리 회사 망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이라는 방증이다.

    118주년 노동절, 민주노조운동 20년, 비정규직 850만, 그리고 이명박 재벌정권 시대에 민주노조운동이 가야 할 길의 첫 출발선은 비정규직을 같은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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