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너네가 우리공장 점거하고 난리냐
    거리에선 비정규 철폐, 공장에선 외면
        2008년 04월 30일 11: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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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쟤네들이 비정규직 맞아요? 하청업체 정규직이잖아요.”
    “하청업체 정규직이 우리 공장 점거하고 난리를 치는 게 말이 됩니까?”

    2007년 8월 30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도장공장 앞. 기아차비정규직지회 400여명의 조합원들이 도장부를 점거하고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일주일째 파업을 벌이자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비정규직을 성토하고 있었다.

    한 노동자는 농성장 창문을 부수기도 했다. 회사와 가까운 보수적인 조합원들은 다음날 화성공장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결의대회에 참가한 이랜드, 기륭전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공장 밖 수백 미터를 쫓아가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지난 해 8월 23~30일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 4백여명은 화성공장에서 파업농성을 벌였다.
     
     

    7년 전 노동절, 정규직에 끌려나온 비정규직

    정확히 7년 전인 2001년 5월 1일, 노동절이었다. 에어컨을 만드는 광주 캐리어공장에서 농성 중이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용역깡패와 구사대에 의해 공장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 구사대 대열에 소수지만 정규직 조합원들이 섞여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은 이들을 차에 싣고 경찰서로 끌고 갔다.

    “우리 일터를 지키자”는 이야기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대대적으로 유포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는 박살이 난 것이었다. 캐리어사내하청 송영진 조합원은 “형님, 동생하며 같이 일하던 정규직 노동자들이 안정된 고용을 위해 쇠파이프를 들어 우리를 향한 폭행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비극의 정점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사실 캐리어사내하청노조는 캐리어 정규직 대의원들이 노조 가입원서를 들고 다녀 460명을 가입받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의 모범이었다. 2001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회사에 임단협을 요구하고 공동투쟁에 돌입하자 회사는 정규직 요구안만 전폭적으로 수용하면서 비정규직 투쟁을 고립시켰다. 정규직노조는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노동절 사건의 파장은 대단히 컸다. 당시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은 캐리어노조를 제명했고 전노협 시절부터 모범이었던 캐리어노조는 전국 노동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연일 캐리어 광주공장 앞에서 규탄 집회가 열렸다.

    연대의 모범은 현장에서 거부당하고…

    캐리어 제명의 교훈은 광주전남 지역에서 기아차 광주공장(2002~2003년), 금호타이어(2003~2004년)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연대로 이어졌다. 2년 후 캐리어노조는 하청노조 문제를 전향적으로 풀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다시 민주노총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정규직노조의 비정규직 외면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보수언론으로부터 노사화합의 모범으로 ‘칭송받는’ 현대중공업노조 역시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하고 일부 대의원들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2004년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에 제명당했다. 최근에는 코스콤 비정규투쟁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사무금융연맹은 코스콤노조를 제명할 계획이었고, 코스콤노조는 한국노총으로 달아났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 노조를 만들고 모범적인 연대투쟁을 벌였던 GM대우차 창원지부는 2005년 9월 30일 집행부의 비정규직 방침인 ‘도급 반대, 불법파견 전원 정규직화’를 내걸고 임원 신임 투표를 실시했으나 34%의 찬성으로 불신임당해 집행부가 사퇴했다. 정규직의 연대의식은 34%였던 것이다. 결국 비정규직지회는 거의 와해되고 말았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시작으로 전국을 휩쓸었던 민주노조 운동은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의 광폭한 탄압 속에서도 조직을 점점 확대시켰고, 1995년 민주노총 출범과 1996~7년 정리해고 반대 총파업을 벌이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정리해고 될래? 비정규직 받을래?”

    ‘잘 나가던’ 노동운동은 1997년 IMF 구제금융사태를 맞으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전 국가적으로 추진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위축시켰다. 자본은 노동조합에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사용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자본의 역습은 거셌다.

    결국 비정규직 사용을 양보한 자동차 공장은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오른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끼우는 현장이 되었다.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힘든 공정은 비정규직 차지가 됐고, 똑같이 일하면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5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우를 받게 됐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의 ‘고용의 방패막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제조업 뿐만이 아니었다. 외주화와 간접고용의 바람은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식당, 세탁, 청소노동자 등 같은 조합원이었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하청업체로 ‘팔려갔다.’ 은행, 증권 등 사무직 노동자들도 비정규직을 대량 고용했고, 업무를 쪼개 하청업체로 넘겼다. 외주화 공세는 최근 이랜드 사태까지 이어졌다.

    사내하청이 정규직의 4배

    4월 24일 오후 3시 부산 한진중공업 다대포공장. 조합원 교육장 옆에 있는 협력업체 사무실에 15개의 사내하청회사 간판이 매달려 있었고, 간판 밑에는 업체별로 한 명의 여사원들이 경리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이 다대포 공장에 정규직 조합원은 110명, 사내하청 노동자는 1천명이 일하고 있었다.

    한진중공업은 영도, 다대포, 울산공장을 포함해 정규직 조합원은 1,500명, 사내하청 노동자는 3천5백명이 넘는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정규직 조합원 2천명에 사내하청 노동자 8천명, 대우조선은 정규직 6천명에 사내하청은 1만명이 넘는다. 세계 1위 현대중공업은 정규직 1만7천에 사내하청은 2만5천명 규모다. ‘상상초월’이다

    조선업종의 호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자본은 정규직 노동자 대신 하청노동자를 계속 늘려가고 있고, 조선소는 사실상 하청노동자로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하청노동자 착취를 통해 조선분야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청노동자와의 연대는 여전히 미약하기만 하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가 어려워지면 비정규직을 내보내면 된다”는 ‘고용의 방패막이’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다른 회사는 다 비정규직 쓰는데 우리만 안 쓰면 회사 망한다”는 회사 논리도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

    공허한 ‘비정규직 철폐’

    “비정규직 안 됐지. 그렇다고 다 정규직화시키고, 노조 가입을 받으면 우리 고용까지 불안해지게 될 거 아냐? 노조가 나서서 임금도 올려주고, 근로조건도 개선해주면 되잖아.” 지난 3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만난 한 정규직 조합원의 말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곤 있지만 여전히 연대의 대상이 아닌 ‘시혜’의 대상으로 바로보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 결사 투쟁!”
    공장과 거리에서 노동조합 간부들이 구호를 외칠 때 구호 끝에 따라 붙이는 ‘후렴구호’가 어느 샌가 비정규직 문제로 ‘통일’됐다. 2006년 11월 ‘비정규직확산법’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파업에 현대자동차, 한진중공업 등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거리에서 싸웠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응은 박수치고, 빵과 우유를 건넸던 1987년, 1996~97년과는 달랐다. 정권의 ‘대기업노조 이기주의 이데올로기’도 크게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떳떳할 수 없었다. 같은 공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50%도 안 되는 임금과 복지수준에 서러움을 받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외치는 구호는 공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조운동 20년, 850만 비정규직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노동운동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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