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한, 너무도 우울한 책
        2007년 11월 12일 06: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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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이 펴낸 『88만원 세대』가 널리 읽히면서 블로거들의 독후감이 양과 질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와 함께 일부 고교와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토론을 진행했으며, 교수들이 이 책을 텍스트로 삼아 토론을 한 경우도 있었다.

    <레디앙>은 앞으로 ’88만원 세대’는 물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독후감이나 리뷰 등 다양하고 생생한 목소리들을 가려서 실을 예정이다. <레디앙> 독자들께서도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www.aladdin.co.kr)의 마이 리뷰에 실린 것으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레디앙>에 다시 싣는다. <편집자 주>

    이 책을 읽고나서 한동안 만성우울 상태에 푹 잠겨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이것이 나의 현실이야,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랬다.

    나 스스로는 다른 내 친구들처럼 개인적으로 노력하면 이 개미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는 낙관적인 희망을 갖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학부 2학년 때부터 공무원 시험에 올인할 때 나는 전공서적을 뒤지면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다고 ‘자뻑’하고 있었는데, 그 희망마저 이 책을 읽고 나서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가 돼버렸다.

    지금 나는 부모님 등골 빼먹는 흔한 20대 학생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백수다. 그래도 책 욕심은 많아서 책값은 꼬박꼬박 받아내는, 주변에서는 공부 때려치우고 취직하라는 말도 무시하는 통에 천하태평인(것처럼 보이는) 그런 20대의 전형이다.

    나는 ‘지방대를 나온 20대 여성’

    즉,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88만원 세대다. 현재 20대이고 앞으로 30대, 40대, 50대가 되어도 평균 88만원 이상의 돈을 벌기 어렵다. 그리고 강조할 것. 나는 20대이자 ‘지방대’를 나온 ‘여성’이다.

    이 책의 분석대로라면 현재 지방에서 살고 있는 20대 고졸 여성은 개미지옥 속에서 먹이사슬 맨 밑에 위치한다. 20대 대졸 여성은 그 먹이사슬에서 약간 위의 위치를 점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의 분석대로라면 큰 이변이 없는 이상 평생 높은 임금을 받기도 힘들고, 그 임금조차도 언제 끊길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20대 대졸 여성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개인주의’적인 해결책은 이 책에 따르면 수도권으로 가서 고시준비를 하는 것이다.

       
      ▲채용 관련 책자를 보고 있는 여성들.(사진=뉴시스)
     

    실제로 주변 내 친구들 중에 내가 살아온 지방에서 직장을 잡은 친구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 뿐이다. 지방은 기본적으로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가 거의 열려 있지 않다. 열려 있더라도 중소기업이나 3D업종인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 지역 언론들은 청년들이 힘들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으려 한다고 청년들의 눈높이가 높음을 질타한다.

    마치 청년들이 더 높은 연봉과 좋은 조건의 직장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지역 경제가 낙후되는 원인이라도 되는 양 말한다.

    새삼 우울해지면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 책이 말해주는 것은 바리케이트와 짱똘이지만…. 이 책의 내용에 깊이 빠지다 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도 아직 연공서열제와 종신고용제가 폐지되지 않은 공무원, 공기업이 희망이라는….

    지금까지 인정하기 싫고, 하고 싶지도 않은 그 길이 그나마 살길이라는, 현실이 이렇단다, 이렇게 저자는 말하는 것 같다. 정말 당장 사는데 위기를 느끼는 20대라면 벌써 이런 시도를 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이게 바로 20대끼리의 배틀로얄인데 말이다.

    한편으로 나는 기존의 노동시장에 뛰어들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는 생협과 같은 협동조합이 하나의 대안적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믿는 낙관론자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현실은 나를 더욱 우울함에 푹 잠기게 했다.

    이 책을 보라, 배낭여행 때 만난 또래들의 자유를 보라

    저자들은 20대는 이전 세대가 만들어놓은 제도들을 하나씩 없애갈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과 같이 그들이 협동하여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없애갈 것이라고 한다. 20대는 협동의 가치를 모르고, 적자생존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에…. 20대는 개별화되어 있고,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뭉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대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지방에 사는 20대, 20대 여성은 특히 읽어봐야 한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 어떤지, 그 구조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미 우리 나라 노동시장은 20대들의 감성에는 매력적인 곳이 아니다. 나는 평생 안정된 임금이 뒷받침된다고 해도 노동시장 자체가 착취적이라면 그곳에 들어간들 내 삶이 행복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외국 배낭여행을 하면서 만난 내 또래의 20대는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세계를 돌아다니고 삶의 가치와 열정을 얻는다. 노동시장의 양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리의 요구조건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당당하게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장은 꿈일까? 저자가 말하는 일자리 나누기 형태와 같은 것은 불가능할까?

    20대의 짱돌, 인터넷

    한편으로 20대에게는 개인주의라는 오명과는 역설로, 우리에게는 네트워크가 무기라는 생각이 든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 네트워크가 인맥일 수도 있고, 웹상에서의 소통일 수도 있다.

    20대에게 친숙한 것들을 무기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인터넷 청원 같은 형태로 보호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좋겠다. 이 책에서는 짱돌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거리에 나가서 ‘으쌰으쌰’ 하는 것만 집단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저자 역시 그렇게만 생각해서 이런 표현을 쓴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에서 20대만의 특이성 있는 저항 형태를 만들어 내라는 의미에서 이런 표현을 쓴 것이라고 본다.

    평생 비정규직,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서 착취당하거나, 구직을 포기하고 부모님께 기생하며 골방에서 외롭게 사느니 발악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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