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라, 노가다들의 한맺힌 절규를"
        2007년 11월 07일 01: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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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세월을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봇대를 오르내리며 맨 몸뚱이 하나로 살아온 건설노동자 정해진 씨가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며 분신 자결한 지 11일째 되던 날. 전국에서 ‘정해진처럼’ 살아가는, ‘노가다’라는 이름의 노동자 6천여명이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강남대로에서 경찰의 철통같은 봉쇄와 물대포에 온몸으로 맞서며 피맺은 절규를 토해냈다.

       
     
     

    6일 오후 2시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앞에서 열린 ‘열사정신 계승! 유해성 구속! 불법하도급 철폐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 얼굴에 주름이 깊이 패인 늙은 노동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불어났다. 경찰 추산만으로 5천여 명이었다.

    집회 참석이 파업인 노동자들

    멀리 여수와 포항에서부터 수도권까지, 타워크레인,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노동자부터 전기원노동자, 일용노동자, 토목노동자까지 ‘노가다’라고 불리는 건설노동자 5천여 명과 화물연대, 금속노조, 공공노조 등 민주노총 조합원 6천여명이 이날 분신자결한 정해진 열사의 넋을 달래기 위해 한국전력 앞으로 모였다.

    건설노동자에게 전국노동자대회 참석은 곧 하루 파업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노동자들이기에 하루 일당은 목숨과 같이 소중했지만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남은 목숨마저 던져버린 정해진 열사의 죽음 앞에 건설노동자들은 주저없이 ‘파업’을 감행했다.

    건설연맹 출신의 민주노총 나기주 대외협력실장은 “올해 초 출범한 건설노조가 전 조직 역량을 동원해 싸우는 첫 번째 싸움”이라며 “2만 명의 조합원 중 5천 명 이상이 모였다는 것은 건설노조가 사활을 걸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됐다고 떠들어대지만 정해진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우리 투쟁 정당하다며 숨져갔다”며 “노동자는 죽어야 하고 가진 놈은 계속 가지는 이런 세상이라면 우리가 확실하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백석근 전국건설노조 위원장은 “전기원 동지들은 한전 협력업체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며 “그들이 합법적으로 노조를 만들고 단협을 체결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투쟁을 하고 있는데 그게 죄라면 죄”라고 절규했다.

    한전 협력업체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비정규직의 죽음

    올 2월부터 10차례 넘는 교섭을 했지만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했던 사람. 용역깡패에게 한국노총 조끼를 입혀 농성장에서 폭력을 사주한 사람. 그가 바로 영진전업 유해성 사장이었고, 건설노조 정해진 열사는 “유해성을 구속하라”며 온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분신자결한 것이었다.

    정해진 동지를 죽음으로 내몬 곳은 또 있었다. 업체의 불법행위를 용인하고 눈감아주었고, 결국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 몬 곳이 바로 원청회사 한국전력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이곳으로 모였다.

    남궁현 건설연맹 위원장은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노동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저들에게 박탈당하고 무자비한 탄압과 폭거에 짓밟혀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며 “37년 전 전태일 열사 분신한 지 37년후 2만 달러 시대라고 큰 소리치는 이 사회, 건설노동자는 무엇이 달라졌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우리는 전 국토에 거미줄처럼 걸려있는 철탑 고압선과 전깃줄 등 시설물을 설치했고, 한전이 발주해 시설물을 설치하고 보수도 한다”며 “한전이 유해성과 같이 그들의 공범이 되지 않겠다고 한다면 불법 탈법에 대한 진상조사를 통해 한전의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물대포 앞에 맨 몸뚱아리로 맞서다

       
      ▲ 6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삼성역 4거리에서 경찰이 노동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는 모습(사진=민주노총)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은 한전 본사 건물을 한바퀴 행진한 후 삼성역 사거리 앞에 멈춰섰다. 경찰병력과 물대포가 늙은 노동자들의 행진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4시 57분. 100여명의 건설노동자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5분이 지난 5시 2분. 경찰은 2대의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분노한 노동자들이 물병 등을 던지며 저항했지만 경찰은 방패를 휘두르며 앞으로 진격했다. 평생을 몸뚱아리 하나로 살아왔던 건설노동자들이 맨 몸으로 절규했지만 경찰은 이들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지하철 삼성역으로 내려가 강남역으로 이동했다. 건설노동자 2천여 명은 오후 5시 40분 경 강남역 사거리를 점거한 채 기습시위를 벌였다.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은 정해진 열사의 시신이 안치된 한강성심병원으로 이동, 고인의 뜻을 기린 후 현장으로 내려갔다.

    평생을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봇대를 오르내리며 살아온 비정규직 건설노동자의 죽음 앞에 원청회사인 한전도, 불법을 처벌해야 할 경찰과 정부도, 그리고 그 잘난 대통령 후보들도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자들의 동네 강남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은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더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기 위해 일어서고, 더 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올 때 저들의 입이 열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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