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대들의 대통령, 서태지도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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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01일 08: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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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나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흔했던 팬 레터 한 장 보내보지 못하다가 이렇게 지금에 이르러서야 편지를 띄워보는군요. 우리는 당신의 사진을 여기저기에 붙여 놓았었고, 내 방문에는 참으로 오래도록 당신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새 앨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벅차오르는 설렘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당신의 앨범이 발매되는 날이면, 우리가 늘어선 줄은 끝이 안 보였으며, 당신의 앨범을 구입해 손에 들고 환호했습니다.

    혁명이었던 노래

    당신은 이미 데뷔 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당신의 노래들은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우뚝 서 있었지만, 당신을 확고부동한 ’10대들의 대통령’으로 만든 노래는 ‘교실 이데아’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입시에 대한 부담감에, 그 실체조차 명확히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막연히 짓눌려져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당신이 부른 ‘교실 이데아’는 차라리 혁명이었습니다.

    일탈의 출구조차 차단되어 있었던 우리가 그 노래를 귀가 찢어져라 크게 틀어놓고, 목이 떨어져 나가라 머리를 돌리는(헤드뱅잉) 순간은 그 어떠한 무엇과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눈물 나는 카타르시스였습니다.

    ‘교실 이데아’를 백워드 마스킹하면 ‘피가 모자라’라는 사탄의 음성이 들린다는,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는 괴담까지 떠돌 만큼, 당신은 살아있는 신화 속의 주인공이자 현존하는 전설이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제 꽤나 오래 전 일이 되어 버린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일명 ‘빨치산’이라고 불렸던 패거리가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 속에 만화책을 숨겨 놓고 읽다 걸린 녀석들은 만화책으로 머리를 두들겨 맞았지만, 우리는 교과서 속에 마르크스나 레닌의 책을 숨겨 놓고 읽다가 걸려서 선생님들이 오히려 더욱 당황해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전설이 된 97년 프랑스 학생들의 시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학생들도 거리로 몰려나와서, 우리의 선배들이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던 것처럼, ‘입시 철폐, 서열 타도’를 부르짖는 것을 매일같이 꿈꾸었습니다.

    마르크스 레닌을 읽던 고교생들

    그러나 그저 꿈으로만 그쳤을 뿐이었습니다. 프랑스 학생들의 영웅적인 투쟁은 너무나도 먼 나라의 일로만 느껴졌습니다. 우리에게는 빛나는 혁명의 전통도, 듬직한 조력자도 없었고, 특히 우리 스스로의 교육혁명을 전개할 만한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교조 조합원이셨던 문학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반 아이들에게 97년 프랑스 학생들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학생들은 상당히 동요했습니다. 얌전하게만 보였던 녀석들도 각자 나름의 분노를 토해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가시던 선생님은 이렇게 읊조리셨습니다. “너희는 기계다. 너희는 노예다. 왜 이런 말을 듣고도 저항하지 못하냐?”

    쉬는 시간에 우리는 사뭇 진지하게 토론을 벌였습니다. 나를 비롯한 ‘빨치산’들의 선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어떻게 하는지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놀라울 만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학생들에 의한 자발적인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뜨거운 반응들이 나왔습니다. 평소에는 얌전하게만 보였던 녀석이 열변을 토하며 “거리로 나가자!”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어찌 하면 좋을지, 무엇을 할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거리로 나가자!”, “PC 통신에 글을 올려서 우리와 뜻을 함께 할 녀석들을 모아보자!” 등의 의견이 계속 들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빨치산’을 위시한 반 학생들의 결론은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답지 않게 너무나도 현실 순응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자고?”, “그래서 어쩔 건데?”라는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젊은 날의 비굴한 타협과 변명

    무엇보다도 우리는 두려웠습니다. 거리로 나서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데모를 하다가 교사들과 부모들에게 붙들려 처벌을 받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입시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크게 사고 쳐 봐야 우리에게 좋을 건 하나도 없어.”, “우리가 모두 거리로 나와서 싸우자고 해도 책상 앞을 떠나지 않고 공부하는 애들이 있을 테고, 그러다가 우리만 대학도 못 가고 낙오자가 될 거야.”

    마르크스를 읽고 레닌을 읽은 우리도, 끓어오르는 분노와 혈기로 “거리로 나가자!”며 열변을 토했던 친구들도, 입시와 대학 서열화라는 틀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는 그 틀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육 혁명을 꿈꾸는 것은 그저 반항이고 낭만이었을 뿐, 우리는 입시 철폐와 대학 평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일단 대학에 간 뒤에 지금의 마음을 잊지 말고 계속 입시 철폐와 대학 평준화를 위해 싸우자고 다짐했습니다.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그것은 어린 날 경험했던 사회와의 비굴한 타협이었고 비겁한 변명이었습니다.

    ‘교실 이데아’가 발표된 지 13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우울하게도 그 당시에 청소년들이 느꼈던 절망은 조금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우리를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는 교육 현실은 세월의 흐름이 무상할 만큼 비참하게도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아니 오히려 어쩌면 요즘 청소년들은 우리 때보다 더욱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상품화된 교육 체계는 무한 경쟁을 통해 “좀 더 비싼”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친구들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야만 ‘죽음의 트라이앵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숨 막히는 현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교육 현실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덜어내지 못한 기분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뒤로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되고 노동운동을 했지만, 민주노동당이 집권하여 교육 체계를 완전히 다 뜯어고치기 전까지는 뾰족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서태지, 당신도 동참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무거운 마음의 짐을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입시 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준)가 출범한 것입니다. 도저히 민주노동당의 집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기에, 평범한 사람들의 단결된 힘으로 입시 폐지와 대학 평준화를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것입니다.

    자식 과외 시키고 학원 보내느라 등골이 휜다는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은 이 운동에 동참해야만 합니다. 사교육비 걱정으로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는 모든 신혼 부부들과 예비 부부들도 이 운동에 동참해야만 합니다.

    물신화된 세상에서 참된 인간의 가치를 지키고 이어가기 위한 참교육을 열망하는 모든 교사들도 이 운동에 동참해야만 합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 한 판 싸움을 꿈꾸었지만 ‘대학 가야 사람 된다’는 주문에 빠져서 잠시 사람이 되는 것을 미루어왔던 대학생들 역시 이 운동에 동참해야만 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조금 특별한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바로 서태지, 당신도 이 운동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물론 당신은 당신의 음악을 하느라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대들의 대통령이었던 당신의 영향력은 변함없이 어마어마합니다. 당신이 ‘교실 이데아’처럼 교육 제도의 모순에 대한 곡을 새로 만든다면, 아니 그저 사람들과 함께 ‘교실 이데아’를 부르며 사전 심의 제도에 맞서 싸웠던 그 패기로 입시 철폐 대학 평준화를 위해 싸워준다면, 모두가 이 운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우리의 운동은 바야흐로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조류가 되어, 그 당시에 사전 심의 제도를 무너뜨렸던 것처럼 입시와 대학 서열을 박물관으로 보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왜 남이 바꿔주기만 바라고 있나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당사자인 중고등학생들의 동참입니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갇혀 있는 그들은 스스로 그 껍질을 깨고 나와야만 합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비겁하게 싸움에 나서지 못했던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깨뜨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자신들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입시 철폐 대학평준화를 당론으로 하는 정당의 국회의원이 9명이나 있고 ‘입시 철폐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까지 생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실 이데아’에 공감했던 20~30대가 그들의 싸움에 기꺼이 함께 할 것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 싸움은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싸움입니다. 교육을 바꾸는 싸움은 세상을 바꾸는 싸움의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청소년들과 꼭 함께 듣고 싶은 당신의 노래 가사 가운데 일부를 전하며 편지를 마치고자 합니다.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기를 바라고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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