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러리스트 아줌마와 수다를 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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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7월 10일 11: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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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꿈이 그저 꿈에 머물지 않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머니하고 떠는 수다라 그런지, 이렇게 저렇게 오가던 얘기는 아무래도 아이들 교육 문제로 흘러들었다. 시험 때만 되면 거식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딸아이 걱정으로 시작하던 얘기는, 남매가 너나 할 것 없이 만화책을 너무 좋아해 다른 책을 읽힐래도 정작 마땅한 책 고르기가 쉽지 않더라는 푸념으로 이어졌다.

    오고 가는 맛이라고, 학교가 문턱의 높낮이를 떠나가면 갈수록 학비를 내기는커녕 외려 통학임금을 받아내도 시원찮을 만큼 학생들을 혹사하더라고 맞장구를 쳤다. ‘고래가 그랬어’처럼, 에누리 없는 정답보다는 좋은 질문이 담긴 책을 훨씬 더 일찍 접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개인적 울분의 경험도 아울러 말씀드리면서.

    뭣보다, 만화책 얘기에 ‘급반색’한 나머지 그만, 종류 불문하고 만화책이 얼마나 알찬 교육적 미덕을 머금고 있는지부터 역설했다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머니나 나나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잘 알고 있었던지라, 얘기는 거의 판소리마냥 서로 장단 넣고 추임새 받는 분위기였다는 거. 그렇게, 초여름 밤 공기의 눅눅함을 수다로 말렸더랬다.

       
      ▲ 사진=민주노동당
     

    어디서, 누구랑 떤 수다냐고? 며칠 전,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으로 지난 1일부터 무기한 직장 점거 농성 중인 홈에버 상암점의 어느 조합원 어머니하고였다. 어머니는 팍팍한 형편 탓에 자신의 재능을 미처 펼쳐보지도 못한 개인사적 굴곡이 아이들한테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그 자리에 있다고 했다.

    고분고분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한, 자신은 물론 아이들이 꿈꾸길 바라는 ‘다른 삶’마저 결국 몽상에 불과해지리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이 분만이 아니다. 조합원 어머니들이 매장을 점거한 이유는 간단했다. ‘매출 증대’와 ‘수익률 제고’란 이름 아래 테러 뺨칠 만큼 삥을 뜯겨야 했던 악몽 같은 삶이 아닌, 누구나 그렇듯, 소박하면서도 존엄한 삶에 대한 열망, 바로 그것이다.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들, 아니 대한민국에 사는 장삼이사 누구라도 누려 마땅한 이런 열망에 대해, 사측인 이랜드 그룹에선 지난 8일 공식 성명을 냈다. “노조의 테러가 여전한 상황에서는” 어떤 경우든 “굴복할 수 없다”고 했다.

    공식 성명이 이 정도니, 비공식적으로 경영진 내부에서 노조나 조합원 어머니들은 필시 사탄에 미혹된 ‘마녀들의 소굴’로 규정되고도 남았을 게다. 이래서야, “대화하겠다”는 이랜드 그룹의 의지란 결국 사탄과 마녀들을 회개시키거나 “사냥하겠다"는 심판의 의지일 게 뻔하다.

    주의 뜻이라며 적아의 전선을 긋고 이를 문제삼는 행위는 죄다 ‘테러’ 딱지를 붙이는 게 확실히, 미국 백악관만의 독특한 감각은 아닌 모양이다. 적어도 사랑의 교회 신도들이야, 작년도 십일조 액수만 무려 130억이라는 ‘신앙의 증거’를 봐서라도 “아멘!”이라 열렬히 화답해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설사 주류 기독교도 대다수가 한목소리로 “아멘!”을 외쳐도, 풀려야 할 의문은 그대로 남는다. 같은 기독교도들인 직원들을 삥 뜯어온 게, 주의 말씀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는 의문 말이다.

    외려 혹 떼려다 혹 붙인다고, 예수가 섬기지 말라 했던 돈의 신 맘몬을 앞세워 주를 능멸하는 건 박성수 장로 아니냐는 물음만 덤으로 따라붙을 게 확실하다. 정연하고 합리적인 이윤 논리로 테러급 삥을 뜯고도 되려 억울하다며 “가난하고 짐진 자들”을 더더욱 가난하고 짐진 자로 닥아쳐왔으니 말이다.

    이랜드 그룹에선 “정연한 논리를 한 번 더 펼쳐볼” 참이라지만, 기독교도도 아닌데 괜히 안쓰러워지려구 그런다. 박성수 장로를 위시한 ‘주류’ 기독교도들, 본의 아니게도 기독교도가 아니라 맘몬교도들이었다는 게 정연하게 밝혀질 듯싶어서다.

    이런 이들한테 자진 회개를 바라는 건, 마치 민물로 염전할 수 있다는 얘기를 곧이 듣는 격일 게다. “가난하고 짐진 자들”로 이뤄진 영혼의 네트워크, 또는 이랜드 일반 노조에 깃들어 있을 주 예수의 힘으로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업 손실액이 얼마가 됐든 그거야 이랜드 그룹 경영진이 치러야 할 죄값이고, 조합원 어머니들의 존엄한 삶을 맘몬한테 팔아넘긴 일이야말로 테러 행위가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런 테러에 대한 ‘심판’에는 본디 끝이 없는 법이다. 주제 넘은 소린지는 몰라도, “아멘”이란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지 싶다.

    9일 이상수 노동부 장관도 긴급 기자브리핑을 갖고 매장 점거 사태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밝혔다. 근데 “정당”하지도 합법적이지도 않은 만큼,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폭력적인 방법”을 쓰는 건 나쁘다는 세심한 충고까지 빠뜨리지 않았다.

    뭣보다 “이번 사태가 비정규직법의 부정적인 지표처럼 보이는 것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노조 집행부는 물론 집행부가 아니더라도 불법행위를 주도한 세력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이 따르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참여정부 입장에서야 물론 언짢을 게다. 시민들 상대로 부채까지 돌려가며 비정규직 법안의 취지가 얼마나 멋진지 기껏 홍보해놨더니, 초장부터 스타일만 구기게 생겼으니까. 애초 실효성 제로에 오직 생색용이라 평가받았던 법안인 만큼, 면 자체가 안 서는 현 상황은 꽤 난감한 일일 거다.

    다만 우스운 건, 비정규직 법안을 ‘활용’해 지속가능한 삥뜯기의 방도까지 도모하는 이랜드 그룹 이하 기업법인들의 크고 작은 변칙 플레이는 여태껏 좌시해놓더니, 정작 법안의 실효성을 따져묻는 조합원들은 좌시하지 않겠다며 알량한 입법 취지마저 스스로 뭉개고 있는 정부의 엄정 대응이다. 엄정할수록 얼굴이 서는 줄 알겠지만 웬걸, 그럴수록 모양새 우스워지기 십상이라는 감은 통 없는 모양이다.

    백 번 양보해, 대한민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데 필요한 “법과 원칙”이 우선이라 해도 그렇다. 명색이 민주공화국 행정부의 노동부 장관이라는 자가, 이랜드 그룹에 위탁받아 움직이는 사설 보안서비스 업체 사장 같은 균형 감각으로 앞으로 어떻게 ‘공공의 안전’을 운위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군사독재 시절 떴던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이라는 노랫말 가사, 이제 더는 기만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인데, 과연 그럴까? 지난 일요일 대한민국 경찰이 홈에버 상암점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네들이 지키겠노라는 “시민의 자유와 안전”이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존엄한 삶을 지키려는 자유와 안전에 대한 열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뜨겁게 보여줬다. 애꿎게 “칼받이”로 나와 직싸게 욕만 들어먹은 의·전경들한테는 꽤나 미안한 마음이지만 말이다.

    근대국가라는 조직이 아무리 자본법인과 자웅동체를 이뤄 굴러가는 맘몬의 화신으로 탄생·발전했다지만, ‘선진화’를 이뤘다는 데서조차 쇼맨십이나마 이런 숭악한 태생을 뭉개고자 애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민주화’ 세력의 적자임을 그 누구보다 자부한다는 이 참여정부에서는 과두적 궁정 질서 유지에 남은 기간 올인할 참인지, 대한민국을 글로벌 권세가-엘리트들의 ‘태평천하’에 적합한 사냥터 내지 살벌한 임상 실험장으로 재편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인다.

    그럴 거면 차라리 이참에 당당히, 대한민국 정부라는 조직이 그토록 싸고 도는 시민의 안전이 특정 부류만 누리게 돼 있는 온갖 권세의 자유를 지키는 것임을 밝히시라.

    1980년, 1987년의 기억은 허풍만 잔뜩인 참여정부의 무용담 내지 화장용 소재로 써먹기나 하고, 자본의 권능이 불어날수록 어째 신산해지기만 하는 장삼이사들의 삶을 선진화 과정에 따르기 마련인 ‘성장통’쯤으로 치부하고 말 깜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면 아마, 근대 일본령 조선 시절에 이뤄진 ‘문명화’와 ‘경제발전’ 덕에 조선 민족의 삶이 그만해졌다는 논지와 얼개가 겹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민주화의 전위라는 엉뚱한 자의식 과잉에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나 “FTA시리즈”에 대한 자족적 교리문답으로 뒤엉킨 현 정부의 강력한 경제적 성공 의지가,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의 살림살이엔 기껏해야 닥쳐올 정치적 ‘대실패’의 징후로밖엔 보이지 않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이렇듯 대한민국 행정부와 기업 법인들이 스텝 맞춰가며 법률 안팎을 넘나드는 이런저런 테러의 기예로 (비정규)노동자들한테 농간을 부렸고 또 그렇게 하고 있는 마당인 이상, (비정규)노동자들이 ‘정당 방어’ 차원에서 구사하는 반테러의 기예가 법률적 테두리 안에만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다.

    도대체 뭐가 부당하고 불법이라는 건지부터가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하나, 아무튼 구한 말~일본령 조선 시절의 ‘비도匪徒’ 내지 ‘불령선인’들마냥 “불법행위를 주도한 세력”으로 규정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뜯어말릴 도리는 없겠다.

    정부의 감각으로야, 서울올림픽 때 월계동이 미관상 불결하다며 ‘정화’했던 것처럼, 엄정 대응하면 “깨끗이 해결”되리라는 심산도 있는 모양이다. 당장은 그리 보일지 모르겠다.

    다만 요거 하나는 분명히 알아두시라. 멕시코 민간 전승이 전하는 바, 맘몬의 신전으로 화한 이 거지 같은 현실과 씨름하는 “투쟁은 둥근 원과 같”아서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거. 조합원 어머니들과 더불어 “우리”가 저마다 꿈꾸는 존엄하고도 소박한 삶이 그저 꿈에 머물지 않으려면, 확실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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