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불복 2년동란'
    [기고] 총선과 운동권의 '세태·풍속'
        2024년 03월 25일 1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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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소영 선생의 과천연구실에서 2024년 출간하기 위해 준비 중인 책의 일부 내용을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21년 12월 지난 대선 직전에, 문재인 정부 5년에 대한 비판 내용을 담고 있는 인터뷰 전문(관련 글 링크)의 연장선에서 윤석열 정부 2년에 대한 정세와 흐름을 평가하고 향후 전망을 예상한다.

    윤석열 정부 2년을 포괄적으로 ‘대선 불복’이라는 규정이 큰 틀에서는 유효하다고 평가하고 4.10 총선의 의미, 성격, 전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민주당과 친민주당 노동계와 시민사회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며, 윤석열-한동훈 관계에 대해서도 보호자와 후견인이라는 틀로 살펴보기도 한다. 최근 가장 중요한 이슈인 의대정원 문제에 대한 의사집단의 대응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또 총선을 앞두고 소위 ‘운동권’을 둘러싼 담론들이 부상되기도 했는데, 그 배경과 의미, 운동권의 ‘풍속과 세태’에 대해서도 중국의 작가 위화 소설 등을 살피면서 발본적으로 접근한다. 마지막 보론에서는 세계정세의 경과에 대해서 연준의 통화완화정책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 등까지 언급하고 있다.

    늘 그러하듯이 상당한 논란꺼리를 담고 있고 이견들의 진폭도 제법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우리 사회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화두들을 비껴가지 않고 있다. 생산적인 비판과 토론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다소 긴 글이지만 나누지 않고 한번에 게재한다. 게재 동의에 감사 드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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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불복’이라는 화두

    『한국사회성격 논쟁 세미나 (III)』에 실린 「2022년 3‧9대선 전후」의 서문에서 저는 친문-친명 세력의 ‘대선 불복’이 내란을 방불케 할 대혼란을 예고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과제는 ‘문재명 정부 10년동란’을 막은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김영삼 정부의 ‘하나회’ 척결처럼 정관계‧법조계‧학계의 ‘불량배’(깡패‧사기꾼)라는 똑같이 30살 먹은 적폐를 청산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적폐 청산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재명 정부’와 운명을 같이하려는 민주당 지지자, 즉 지역적으로는 전라도-경상남도 출신과 세대적으로는 40-50대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윤석열 후보의 당선에 기여한 부동층의 이반도 심상치 않았는데, 그들의 기회주의적 불안정성이나 윤 정부의 과제에 대한 몰이해 이외에도 윤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에 대한 거부감이나 김건희 여사에 대한 비호감도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지난 2년의 대선 불복에 대해서는 지지율 추이 등을 참고한 정세분석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모아둔 자료를 대부분 폐기해버렸는데, 5년 만에 권력을 상실하자 그 ‘금단 증상’이 광기의 발작과도 같았거든요. 내란을 방불케 할 대선 불복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로서는 민주당 지지자의 그런 행태가 의문투성이였어요. 그래서 대선 불복이라는 ‘화두’(話頭)를 들고 그것을 깨려는 공부가 불가피했던 것이고요.

    국민의힘은 2022년 3‧9대선과 6‧1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자중지란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의 이준석 대표가 4개월 동안 ‘자해 난동극’을 벌였거든요. 반면 송영길 대표의 양보로 이재명 후보가 그의 지역구에서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다음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대선과정에서 공언한 대로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닌 ‘이재명의 민주당’이 현실화되기 시작했지요. 이렇게 대선 불복이 본격화된 결과 적폐 청산은 민주당의 ‘해편’(해체적 수준의 개편)과 동일시될 수밖에 없었고요.

    그런 혼란의 와중인 10월 29일에 이태원에서 핼러윈축제를 즐기려던 159명의 20-30대 청년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날 밤 윤석열 대통령이 취한 조치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신속하다는 것이었는데, 세월호침몰사건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결의를 엿볼 수 있었지요.

    반면 민주당 지지자는 이태원압사사건을 세월호침몰사건에 버금가는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박원순 시장이 세월호침몰로 희생당한 단원고 학생들에게 그런 것처럼 이재명 대표도 역시 이태원에서 압사당한 청년들에게 ‘고맙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들의 희생을 윤석열 대통령 퇴진운동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단지 사건이 아닌 참사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사고(accident)라고 부르고, 그런 일이 형사사법의 대상이 될 때 사건(case)이라고 부르지요. 참사(disaster)란 참혹한 재해라는 의미인데, 여기에는 자연재해 이외에도 화재‧산업재해 같은 인재도 있어요.

    사건‧사고이든 참사이든 가해자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가해자란 원인제공자나 예방책임자라는 의미이고요. 반면 피해자의 원한 때문에 없는 가해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마녀 사냥’인데, 박근혜 대통령이나 윤석열 대통령이 세월호나 이태원의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그런 경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세월호와 달리 이태원에서는 부분적이겠지만 피해자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 수밖에 없고요.

    물론 이태원압사사건의 가해자라는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을 퇴진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2023년 2월에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을 탄핵한 것인데, 국무위원을 탄핵한 헌정사 최초의 사례였어요. 2021년에 임성근 부장판사를 탄핵한 것이 법관을 탄핵한 헌정사 최초의 사례였고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권력을 ‘줍다시피 한’(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이한주 교수) 민주당의 ‘탄핵 중독’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지요.

    이태원압사사건에 이어 11월의 화물연대파업과 12월의 민주노총총파업 같은 정치파업이 감행되었습니다. 민주노총이 대선 불복과 대통령 퇴진에서 민주당과 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문재인 정부 5년간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조합원이 65만명에서 121만명으로 배증하여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1노총이 될 수 있었던 데다, 이석기 의원의 외대용인분교‧경기동부연합 후배인 양경수 위원장 역시 친북중러‧반한미일 성향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화물연대파업‧민주노총총파업은 물론이고 이태원압사사건에도 개입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민주노총을 통해 ‘세월호참사진상규명투쟁과 같은 정세국면 조성’을 지시하면서 ‘퇴진이 추모다’라는 구호까지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태원압사사건과 유사한 것이 2023년 7월 19일의 해병대원익사사건이었습니다. 당시 폭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에 동원된 해병대원 3명이 급류에 휩쓸렸는데, 우연히도 전라도 출신인 1명이 수영을 할 줄 몰라 익사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육군이나 공군이 아닌 해군이나 해병대에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군인이 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해군육전대라고 불리기도 하는 해병대는 해군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고 독립되어 있기도 하는데, 남한의 경우 1973-87년에는 해군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신속대응부대이자 기동타격부대로서 해병대의 진가는 태평양전쟁에서 드러났는데, 태평양전쟁의 전환점인 미드웨이해전은 일본해군에 대한 미국해군의 승리였던 반면 과달카날공방전은 일본육군에 대한 미국해병대의 승리였거든요. 조직론적 관점에서 미국해병대의 역사를 개관한 노나카 이쿠지로의 『무한혁신』(1995; 국역: 비즈니스맵, 2007)을 참고하세요.

    이재명 대표는 이태원압사사건과 해병대원익사사건이 윤석열 정부의 양대 실정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태원압사사건 이상으로 해병대원익사사건을 ‘실정’(失政, 정치‧정책의 실패)으로 규정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어요. 그래서 민주당도 이종섭 국방부장관을 탄핵하지 못하고, 또 노동자운동도 정치파업을 감행하지 못한 것 같고요. 이 대표가 추가한 세 개의 실정은 윤 대통령 처‧처가의 비리이므로 논외로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도 실정인지 의문이기도 하고, 이 대표가 자신의 비리는 무고라고 강변하면서 윤 대통령 처‧처가의 비리를 거론하는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거든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응하면서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군부독재보다 더 잔혹한 ‘검찰독재’라고 주장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정부 같은 군부독재의 법치와 김영삼 정부 이후 문민정부의 법치는 다른 것인데, 재량이 작용하던 법치(rule by law)인 전자와 달리 후자는 예외가 없는 법치(rule of law)이기 때문에 더 잔혹할 수도 있겠지요. 문민정부의 법치를 검찰독재라고 규탄하는 것은 이재명의 민주당이 ‘마굴’, 즉 양산박 같은 비적(도적떼)의 소굴로 전락했다는 증거일 따름이에요.

    어쨌든 이재명의 민주당은 양산박 같은 저항을 지속했습니다. 먼저 2023년 2월에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는데, 그 혐의는 대장동개발비리였어요.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말처럼, 이 대표는 ‘지역토착비리’의 주범이었는데, 2021년 9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중 이낙연 후보 측이 검찰에 고발한 지 1년 반 만이었지요. 그러나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과반인 149명에 미달하여 국회에서 부결되었어요. 다만 찬성이 반대보다 1명이 더 많은 139명이었지만요.

    반면 김성태 쌍방울회장을 통한 불법대북송금 등의 혐의와 관련해서 9월에 제출된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은 149 대 136으로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창훈 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바람에 이 대표는 구사일생으로 생환했지요. 그 후 2024년 4‧10총선을 둘러싸고 ‘비명계 공천학살’ 또는 ‘비명횡사‧친명횡재’라고 불린 민주당 내분이 폭발하게 된 것이에요.

    김성태 회장은 호남 조폭의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신상사파를 제압하고 서울을 접수한 호남 조폭은 김태촌파와 조양은파로 양분되었는데, 후자가 사익만 추구하는 본래의 깡패였던 반면 전자는 정치깡패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김성태 회장은 본래의 깡패인 동시에 정치깡패입니다. 게다가 호남 출신 대통령을 만드는 데 진력한 김태촌 씨와는 달리 언필칭 호남인의 소원인 남북통일에 투신했다는 차이도 있고요.

    김성태 회장은 도박사업과 투기사업을 통해 기업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김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부터 당시 초선 의원이었던 이화영과 교류했고 그 덕분에 실세 총리였던 이해찬과도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2004년에 출시된 도박성 게임인 바다이야기사건과 관련해서 2006년에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았던 것이 그 증거이지요.

    2007년에 사채업에 진출하여 자본을 축적한 김성태 회장은 2010년에는 쌍방울을 인수할 수 있었습니다. 김 회장은 쌍방울의 확대를 위해 적대적 인수‧합병에 매진했는데, 급기야 그 재력을 이용하여 이해찬 의원의 후견 아래 이화영 부지사와 함께 이재명 지사의 방북 추진과 대선 승리에 매진했던 것이지요.

    김성태 회장이 호남 출신이 아닌 영남 출신의 이재명 대표를 지지한 것에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호남 민심과 다를 바 없거든요. 이낙연 후보 같은 호남 출신보다 영남 출신의 정치인이, 게다가 결함이 많은 정치인일수록 호남인의 지지에 대해 훨씬 후한 대가를 지불하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이래 호남인은 영호남동맹 하위파트너를 자임하면서 영남 출신의 대권 후보를 지지해온 것이에요.

    방금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유창훈 판사를 언급했는데, 사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과오는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보다 폐해가 더 큰 ‘사법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the judiciary)였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자신을 발탁해준 문재인 정부에 충성하여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포기했고, 나아가 사법행정을 포기하고 ‘사법적극주의’(judicial activism, 법관활동가주의)를 허용했던 것이지요. 그 결과 대법원의 징용노동자 배상 판결 이외에도 이재명 대표, 조국 교수, 윤미향 의원 등에 대한 하급심 재판의 비정상적 진행이 초래되었던 것이고요.

    이 대목에서 제가 인민주의자인 조국 교수와 대비해서 자유주의자로 주목했던 김도균 교수의 법치론을 잘못 이해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의 법치주의」(『지식의 지평』, 13호, 2012)에서 김 교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닌 ‘법의 지배’(rule of law)로서 법치는 ‘법을 초과하는 법’(ein Mehr an Recht)의 지배이며 ‘법조정’(法曹政, juristocracy) 내지 ‘정치의 사법화’는 아니라고 강조했지요.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로서 법치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반면 김도균 교수가 ‘어떤 법’의 지배인가라면서 ‘(제정)법을 초과하는 법’이 지배해야 한다고 할 때 그 법이 자연법이라는 사실을 제가 오해한 것이었지요. 저는 그 법이 관습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기야 법의 초월이 아닌 법의 토대로서 관습법이라면 법을 ‘초과하는 법’이 아니라 ‘근거짓는 법’이라고 해야 했겠지만요.

    또한 김도균 교수가 법의 ‘어떤 지배’인가라면서 ‘정치의 사법화’ 를 비판한 것도 제가 오해한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법치는 ‘정치의 사법화’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법의 정치화’였고,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비판했던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이었거든요.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이 검찰을 소외시키고 법원과 경찰을 중심으로 사법부를 재편했다는 것이 이른바 ‘전체주의’ 개념의 핵심이에요.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을 장악하여 ‘이재명의 민주당’이 출현한 것처럼 대선에서 승리한 윤석열 대통령도 국민의힘 장악에 성공하여 ‘윤석열의 국힘’이 출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민주당 내 비명‧반명 세력에 비해 국힘 내 비윤‧반윤 세력이 강력했던 데다가 이재명 대표와 친명 세력에 비해 윤석열 대통령과 친윤 세력이 취약했기 때문이지요.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의 결함도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런 결함은 결국 검사 특유의 직업병 탓이라는 것이 제 생각인데, 자기가 옳다는 검사 앞에서 누가 이론을 제기할 수 있겠어요. 다만 진짜 그런지는 판사가 판단하겠지만요. 공부까지 잘한 부잣집 외아들다운 독불장군 기질 탓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나 이런 기질 덕분에 단기필마로 ‘문재명 정부 10년동란’을 막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결함은 후보 시절 다양한 ‘설화’로도 나타난 바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이 말꼬리를 잡거나 말귀를 못 알아들어 트집을 부리는 일이 많았고요. 법조인이나 그에 준하는 지식인 같은 엘리트를 상대로 논쟁하고 설득하던 윤 후보가 갑자기 대중을 상대로 발언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지요.

    그러나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그런 결함을 교정하지 못한다면 단순한 설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정책의 실패를 초래할 것입니다. 제가 윤석열 정부에 기대한 국민전선의 형성이 난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김한길 위원장이 주도한 국민통합위원회가 유명무실한 것이 그 방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국민의힘 지지자, 민주당 지지자, 부동층이 유권자를 3분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부동층의 향배가 여론과 정국을 좌우하기 마련이에요.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은 사실적 판단이나 법률적 판단과는 다른 차원인 정치적 판단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한의 이른바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 즉 디지털 콘텐츠에서 사실과 의견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하위권이라는 상황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고요. 비록 학생 간 비교이지만 남한은 그런 능력을 가진 학생의 비율이 최하위 25%인 반면 미국은 최상위 70%, 일본은 평균인 50%이거든요.

    윤석열 대통령의 결함은 이념 논쟁에서 드러난 바 있습니다. 법조인의 논쟁이란 범죄자에 대한 판단을 둘러싼 논쟁인데, 범죄자에는 일반범죄자인 상사범(常事犯, criminal) 외에 특수범죄자인 국사범(國事犯, state prisoner), 즉 정치범(political) 내지 사상범(prisoner of conscience, 양심수)이 있지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상사범이 아닌 국사범을 판단할 능력이 있는 법조인이 존재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박원순 시장이나 조국 교수처럼 국가보안법을 형법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던 것이고요.

    1991년 여름 서울사회과학연구소사건 당시 대통령비서실이 소집한 이른바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 저의 구속‧수감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고 제 고등학교 선배이자 당시 법무부 검찰과장인 이사철 의원이 전해주었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공안검사 중에는 고등학교 친구도 있어서 제 글을 읽었으나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라는 말도 전해 들었는데, 하기야 사법고시에 합격한 실력만으로 제 글을 비판할 수는 없었겠지요.

    윤석열 대통령이 섣부르게 제기한 이념 논쟁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2023년 8월 홍범도 장군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핵심 쟁점은 1921년 ‘자유시사변’에서 홍 장군이 보인 석연치 않은 행동이었지요. 홍경래의 후예인 홍 장군은 상해파에서 이르쿠츠크파로 전향했는데, 그가 사변에 직접 연루된 것은 아니었으나 사변 이후 이르쿠츠크파의 입장을 대변한 것은 사실이에요.

    레닌이 전시공산주의를 종료하고 신경제정책을 개시하는 1921년 3월 직전 독립군이 자유시로 이동하면서 일본 정부가 러시아 정부에 그들의 무장해제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조선독립을 우선시한 상해파가 무장해제에 반대하자 러시아혁명을 우선시한 이르쿠츠크파가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아 대량 학살을 자행한 것이 바로 6월의 자유시사변이었고, 그 덕분에 1922년 10월에 일본군이 연해주에서 철수한 것이지요.

    자유시사변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설명은 노무현 정부가 2008년 광복60주년에 맞추어 기획하고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2009년에 펴낸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전60권) 중의 『초기 사회주의운동』(42권)인데, 저자는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사 권위자인 임경석 교수였지요. 비매품인 이 책들은 웹사이트에서 찾아 읽을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나아가 자유시사변 연구를 개척한 윤상원 교수의 「홍범도의 러시아적군 활동과 자유시사변」(『한국사 연구』, 178집, 2017)도 참고할 필요가 있고요.

    홍범도 장군에 대한 논란은 사실 2021년에 문재인 정부가 홍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여 대전현충원에 안장할 때부터 이미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얄궂게도 자유시사변 100주년의 해였는데, 당시 언론에서 홍 장군의 자유시사변 관련 여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지요. 문 정부는 당연히 오불관언이었지만요.

    초기 사회주의운동의 자중지란을 상징하는 자유시사변과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는 당연히 우파보다 좌파가 비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윤상원 교수는 홍 장군이 상해파가 아니라 이르쿠츠크파에 동조하기는 했으나 자유시사변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다는 식으로 변호했고, 임경석 교수도 대동소이한 입장인 것 같아요.

    2024년 4‧10총선

    2024년 4‧10총선을 100여일 앞두고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2023년 10월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패배한 데다가 인요한 교수가 위원장으로 활약한 혁신위마저 좌초한 상황에서 국힘의 ‘비장의 카드’라고 할 수 있는 한 위원장이 등판한 셈이었지요. 원내외 당협위원장의 연석회의에서 2:1의 찬반으로 추대된 것인데, 찬성은 주로 수도권 등지의 원외위원장인 반면 반대는 주로 영남의 현역 의원이었어요.

    민주당 지지자의 광기 어린 대선 불복을 지켜보면서 저 역시 적폐 청산을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에 이어 한동훈 정부가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27년 대선에서 마지막으로 세 번째 투표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그러니 한 위원장의 대권 도전의 발판이 될 이번 총선에도 생애 처음으로 투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요.

    한동훈 위원장은 ‘여의도 사투리(訛語, 그릇된 말)’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로는 비대위원장 수락연설에서 언급한 ‘선당후사’가 아닌 ‘선민후사’를 꼽을 수 있지요. 여기서 ‘민’은 ‘동료국민’(fellow national, 종족으로서 국민, 즉 동포)이 아닌 ‘동료시민’(fellow citizen, 시민으로서 국민)을 의미하고요.

    장관 시절 이민청 신설에 매진했던 한동훈 위원장의 국민 개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동료시민은 조금 이따가 설명할 ‘민주화운동동지회’도 사용한 민주정의 핵심 개념일 뿐만 아니라 한 위원장이 믿는 가톨릭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지요. 초등학교 시절에 메리놀수도회(유럽계가 아닌 미국계 가톨릭) 성당의 복사(服事)였던 그의 세례명은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하지요.

    한동훈 위원장은 이재명의 민주당이 상징하는 ‘운동권 특권정치’의 청산을 호소하면서 이번 총선의 쟁점을 정권심판론에서 운동권심판론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면서 민경우 씨와 김경율 회계사를 비대위원으로 발탁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민 위원이 막말 논란으로 중도에 탈락한 다음에 김 위원도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반대로 공천을 받지 못해 그 대신에 공천된 함운경 씨가 정청래 의원에게 도전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관련해서 건국75주년인 2023년 8월 15일에 발기인대회가 열린 민주화운동동지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엔엘 성향의 함운경 씨(서울대 물리학과 82학번)와 민경우 씨(서울대 의예과 83학번/국사학과 84학번)가 주도하고 피디 성향의 주대환 씨(서울대 종교학과 73학번)도 동참한 동지회는 민주당에 참여한 운동권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만든 [인간]쓰레기는 우리가 치우자’고 호소한 바 있지요.

    그런데 한동훈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지 1개월이 되던 날 윤석열 대통령과의 갈등이 폭발했습니다. 김경율 위원이 JTBC유튜브에 출연하여 이른바 ‘명품백 스캔들’에 연루된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것이 사단이었지요. 바로 이 스캔들이 이재명 대표가 주장한 처‧처가의 비리 세 개 중 하나였거든요.

    김경율 위원의 발언은 2016년 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의 뒤풀이에서 어느 역사학 교수가 박 대통령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것을 상기하면서 ‘[국민의] 감정선이 건드려졌을 때 이성의 문은 닫힌다’는 취지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가짜뉴스는 프랑스혁명을 촉발할 정도로 위험한 것이므로 ‘한국계 미국인 친북 목사의 몰카 공작’이라는 해명 이상으로 대통령실이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말이었지요.

    김경율 위원 덕분에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왕비의 복권을 위한 평전으로는 예의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평범한 여성의 초상(Bildnis eines mittleren Charakters)』(1932)이 유명한데, 1979년에 이미 까치에서 국역되었지요. 그런데 국역본의 부제 ‘베르사유의 장미’는 왕비와 페르센 백작의 러브 스토리가 중심인 이케다 리요코의 만화(1972-73) 제목으로 츠바이크의 작의(作意, 창작의도)와는 거리가 있어요.

    츠바이크가 밝힌 작의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혁명을 위해 ‘왕비, 그리고 왕비 내면의 여성에 대한 공격’을 자행하면서 ‘데마고기적 목적’을 위해 ‘진실과 정의’(Wahrhaftigkeit und Gerechtigkeit)를 포기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지요. 프랑스혁명의 가부장제적 성격에 대한 린 헌트 등의 비판을 선취한 셈인데, 관련해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공격을 볼 때 민주당 지지자의 여성주의는 역시 페미니즘이 아닌 인민주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둘째로 ‘불행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누군지 진실로 알게 되는 법입니다’(Erst im Unglück weiß man wahrhaft, wer man ist)라는 왕비의 유언에서 평범한 여성이 수난 속에서 성숙하여 마침내 자아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유언은 1791년 여름 망명미수 사건 직후에 주불 오스트리아 대사 메르시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었지요.

    츠바이크에 후속한 최신작으로 안토니아 프레이저의 『마리 앙투아네트』(2001; 국역: 현대문학, 2006)가 있습니다. 프레이저의 작의는 왕비에 대한 ‘잔인한 신화와 외설적 가짜뉴스(distortion)’를 해명하면서 ‘그녀의 약점이 명백하기는 해도 그녀의 불행과 비교해볼 때 하찮은 것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었지요. 국왕의 처형이 ‘사랑하는 부모의 때이른 죽음’ 같은 비통함을 야기한 상황에서 혁명의 ‘희생양’으로서 오스트리아라는 ‘외국/적국 출신의 여성’인 왕비의 처형이 불가피했다는 것이에요.

    촛불혁명을 프랑스혁명의 계승으로 미화한 ‘대가’로 2020년에 『한겨레신문』에 ‘프랑스 역사산책’을 연재한 바 있는 주명철 교수도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과 마리 앙투아네트 신화』(책세상, 2004)라는 책을 집필했습니다. 김경율 회계사가 언급한 역사학 교수가 그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데, 그러나 주 교수조차 시누이에게 보낸 왕비의 편지를 ‘유언’ 격으로 싣고서 ‘슬픈 처지에 연민을 느낀다’고 고백한 바 있어요.

    츠바이크나 프레이저는 방대해서 읽기에 부담스러운데, 다행히 두 작품 모두 영화화되어 시중에서 구해볼 수 있습니다. 프레이저를 영화화한 것이 소피 코폴라 감독의 『마리 앙투아네트』(2006)인데, 프랑스혁명의 발발까지만 다루었지요. 대신 왕비의 평범한 모습을 부각할 수 있었지만요. 반면 츠바이크를 영화화한 것이 밴다이크 감독의 『마리 앙투아네트』(1938)인데, 전반부는 지루한 반면 후반부는 혁명을 전후해서 왕비가 성숙해가는 모습을 부각한 바 있어요.

    한동훈 위원장과의 갈등 직후에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방송공사(KBS)와의 대담에서 명품백 스캔들과 관련된 김건희 여사의 처신에 대해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유감이나 사과가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역시 국어 실력의 문제였지요. ‘섭섭하다’나 ‘못마땅하다’와 통하는 아쉽다는 말은 유감과 비슷한 말이거든요. 하기야 그들은 2020년 9월 해수부공무원사살사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표명한 유감이 사과라는 억지를 부리기도 했으니까요.

    총선 기간 중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이 극적으로 드러난 또 다른 사례로 의대 정원을 대폭 확대하려는 정책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노태우 정부가 건강보험을 확대한 반면 김대중 정부는 의대 정원을 축소하면서 의사에 대한 수급불일치가 점차 확대되어온 것이 20년이 넘었거든요. 전공의(인턴‧레지던트)의 총파업에 이어진 의대생의 동맹휴학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조차 실패한 정책을 성공시켜보겠다는 결의를 엿볼 수 있었지요.

    전공의의 총파업이 대형병원(상급종합병원), 중형병원(종합병원‧전문병원), 소형병원(병원‧의원) 사이의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전공의에 의존하는 대형병원이 전문의와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에요. 특히 ‘빅5’는 낮은 수가(원가의 80%)를 전공의의 ‘저임금‧장시간노동’(월400만원‧주80시간)으로 보충했는데, 2022년에 서울대병원은 5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바 있지요.

    브레히트는 의사처럼 다른 지식인도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은 책임윤리(ethic of responsibility)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의사집단의 행동을 보면서 ‘인간생명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utmost respect for human life)을 맹서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그들에게는 요식행위일 따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나아가 ‘법비’(法匪, 법률비적)에 이어 ‘의비’(醫匪, 의료비적)까지 출현했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기야 의사가 변호사를 능가하는 새로운 엘리트로 부상하면서 초등학교부터 의대 진학을 준비한다는 황당한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요. 서양은 몰라도 중국이나 한국에서 법률가나 의사는 중인의 직업이었는데, 현대화 이후에도 직업에 대한 ‘의식향상’(consciousness-raising)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여전히 소명이 아닌 생업에 머물 따름이거든요.

    그런데 전공의의 면허정지와 의대교수의 집단사직 직전에 한동훈 위원장이 중재에 나섰습니다. 또 윤석열 대통령도 이런 노력에 화답하여 한덕수 총리에게 당‧정과 의료계의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하여 대화를 추진할 것’을 지시하면서 미증유의 의료 파국을 회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지요.

    선거과정 중에 한동훈 위원장이 제안한 국회의원 세비 인하와 정원 감축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 대비 국회의원 세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고수준인데, 일본‧이탈리아와 함께 5.5배 내외이거든요. 회원국 중 최저수준은 스웨덴‧노르웨이의 1.5배 내외이고, 미국‧독일‧영국‧프랑스는 중간인 3배 내외이지요.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이 정치인의 생업이 아닌 소명이라면 최소한 3배 내외로 인하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중위소득(보건복지부 기준 2.3배, 통계청 기준 2.9배)과 엇비슷한 수준이 되겠지요.

    나아가 국회의원의 정원도 감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기 2년의 미국 하원의원은 1929년에 435명으로 고정되었고 주별 인구에 따라 분배‧조정되지요. 또 일본 중의원의원은 임기 4년에 465명(지역구의원 289명 비례대표의원 176명)이고요. 현재 국회의원은 4년 임기에 300명인데, 인구 비례로 조정할 때, 대통령제인 미국을 기준으로 하면 65명, 의원내각제인 일본을 기준으로 하면 186명이 되지요. 그러나 미국이 아닌 일본을 따라 200명으로 감축하는 안이 역시 현실적이겠지요.

    국회의원의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것은 소선거구제를 ‘광역화’한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서 국회와 시‧도의회를 구별하자는 것인데, 국회의원은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고 시‧도의원은 지방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국가와 지방의 이익을 혼동하지 않을 정도로 민도가 상승할 필요도 있고요. 그 밖에 ‘투표가치의 등가성’에서 도농 간 역차별의 조정이라든지 임기 단축 등등의 문제는 일단 논외로 하겠어요.

    그러나 민주정의 표준인 미국(또는 영국)에서 채택하지 않는 비례대표제는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 야당이 정치자금을 동원하는 경로로 활용되었던 전국구제로 소급하는 비례대표제는 일본의 병립형과 독일의 연동형이 존재하지요. 병립형은 양당제에 유리한 반면 연동형은 다당제에 유리한데, 2020년 총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대표의 도움을 받아 민주당이 채택한 이른바 ‘준연동형’은 임시로 ‘위성정당’을 활용하는 ‘위장병립형’으로 양당제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어요. 비례대표제를 폐지할 수 없다면, 역시 국민의힘의 당론처럼 병립형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겠지요.

    어쨌든 한동훈 위원장의 등장으로 4‧10총선의 쟁점이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중간선거로서 국정안정론에 반한 정권심판론을 제기한 것에 대해 한동훈 위원장은 지난 대선의 연장전인 동시에 다음 대선의 전초전으로서 정권심판론에 반한 운동권심판론을 제기했던 것이지요. 달리 말해서 민주당의 공세에 대해 수세로 일관하는 대신 역공세로 맞받아친 것인데, 그 덕분에 총선 승리를 낙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어요.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총선을 3주 앞둔 시점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의 갈등이 재연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이종섭 국방부장관의 오스트레일리아 대사 임명 등과 관련된 갈등이었어요. 2020년 총선 참패가 반복되리라는 수도권 위기론이 제기되자 한 위원장 등은 ‘윤석열 정부는 뜻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끝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요.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양보하면서 갈등은 수습되었습니다. 동시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동훈 위원장은 비대위원회가 출범할 때나 지금이나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라는 마음’이라면서 4‧10총선은 이재명 대표가 주도한 ‘범죄자 연대’와 싸우는 ‘질 수 없는 선거’라고 강조하고 나치와 인민주의자를 언급했지요.

    이 인터뷰에서 언급된 범죄자 연대가 ‘범죄 신디케이트’(criminal syndicate)를 의미한다면, 이재명의 민주당에 대한 한동훈 위원장의 비판은 ‘이권 카르텔’이라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윤석열 후보의 비판을 한층 더 심화시킨 것입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 즉 ‘범죄 신디케이트가 통치하는 수직통합적인 부정‧부패체제’를 지향한다는 비판인 셈이거든요.

    두 차례의 갈등을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보호자’(patron, 오야붕)가 아닌 ‘후견인’(tutelar/tutor)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기심/질투심을 버려야 하지요. 후견인으로서 선배/선생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의 후배/제자를 기쁨/즐거움으로 받아들여야만 하거든요. 제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박현채‧정운영 선생은 후견인형이었던 반면 김수행 교수는 보호자형이었어요.

    윤석열 대통령에 반대하여 끊임없이 난동을 벌이다가 탈당한 이준석 대표가 결성한 개혁신당, 2심에서 2년 징역형을 선고하고서도 법정구속을 면해준 김우수 재판장 덕분에 조국 교수가 결성한 조국신당 등등은, 한동훈 위원장의 개탄처럼 ‘상식이 그다지 일반적이지 않다’(le sens commun est fort rare, 볼테르)고 할지라도, 마르크스주의적 정세분석에는 적합하지 않아 논외로 하겠습니다. 조선왕조 사대부가 『악학궤범』을 편찬할 때 일부 속요를 제외하고 ‘사리부재’(詞俚不載, 가사가 천박하여 싣지 않는다)라고 한 것처럼요.

    운동권의 ‘풍속과 세태’

    앞에서 언급했듯이, 민주화운동동지회가 운동권 출신 ‘[인간]쓰레기’(scum, 人渣)를 치우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친문 운동권과 친명 운동권의 차이를 전대협과 한총련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대협으로 상징되는 1990년대 중반 이전의 운동권과 달리 한총련으로 상징되는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운동권에는 마르크스가 라보엠(la bohème, 보헤미안)이라고 부른 불량배, 심지어 레닌이 숙청하자고 제안한 출세주의자(careerist)와 투기꾼(adventurer)이 많았다고 할 수 있거든요.

    사실 1989-91년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에도 남한에서 운동권이 존속해온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역사적 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필요를 절감한 계기가 있었는데, 사회진보연대에서 과천연구실에 대한 반대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기 때문이지요. 과천연구실과 사회진보연대는 서울사회과학연구소와 노동계급으로 소급하는 특수관계인데, 다만 사회진보연대에는 스탈린주의자‧트로츠키주의자 같은 구좌파에 이어 아나키스트‧포스트구조주의자 같은 신좌파가 침투하기도 했지요.

    특히 포스트구조주의화된 아나키스트라는 의미에서 ‘포스트아나키스트’의 책동은 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2차 대불황’을 예고하는 2007-09년 금융위기 이후 급기야 『사회운동』이라는 기관지를 『오늘보다』라는 ‘매체’(일종의 소셜미디어)로 대체하기에 이르렀지요. ‘오늘보다’는 물론 ‘더 나은 내일’이라는 의미인데, 최근에 조폭을 미화한 홍콩누아르의 원조 격인 『영웅본색』(1986)의 영어 제목이 ‘A Better Tomorrow’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물론 우연일 것인데, 그러나 구좌파와 달리 신좌파는 무협소설을 읽을 능력도 없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 대목이지요.

    사회진보연대의 포스트아나키스트가 추수한 선배/선생은 진태원 교수였는데, 제가 알튀세르와 발리바르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반면 저로서는 마르크스주의는 물론이고 경제학이나 사회과학(정치학‧사회학)도 공부한 적이 없는 니체주의 철학자인 진 교수가 주장하는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에 대한 포스트아나키즘적 해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으므로 그와 논쟁할 생각도 없었지요. 하기야 과학이 아닌 철학에 대한 논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알튀세르의 주장이기도 했고요.

    어쨌든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전후한 운동권의 세대교체와 그로 인한 운동권의 ‘풍속과 세태’(ethos/mores/custom)의 변화는 여전히 제 관심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5년동란’을 비판하면서 백방으로 해답을 구해보았는데, 위화라는 중국 작가를 읽으면서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지요.

    1960년생으로 문화혁명 세대의 막내 격인 위화는 개혁‧개방 이후 이른바 ‘선봉파’(전위주의자)의 대표이기도 했는데, 일찍이 백기완 선생의 딸인 백원담 교수 등에 의해 소개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몇 권의 소설과 중‧단편집을 갖고 있었지요. 물론 장이머우 감독과 공리 주연의 『인생』도 본 적이 있고요. 그러다가 이번에 우연히 중국사회의 변화를 축약하는 열 개의 단어에 대한 에세이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2011; 국역: 문학동네, 2012)를 읽고 문혁과 개혁‧개방의 풍속과 세태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지요.

    문혁을 특징지은 단어로 ‘혁명’과 ‘풀뿌리’(草根)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위화에 따르면, 모택동은 「호남농민운동 조사 보고서」(1927) 이래 혁명이란 ‘폭동’이자 ‘폭렬(暴烈, 난폭‧격렬)한 행동’이므로 ‘문질빈빈’(文質彬彬)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지요. 『논어』에서 공자가 군자를 특징지은 문질빈빈이란 ‘꾸밈과 바탕이 어울려 빛난다’, 즉 ‘예(禮)와 인(仁)의 조화’라는 의미인데, 발리바르가 말하는 시빌리티와 통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폭동주의’(putschism) 내지 ‘혁명적 폭력주의’를 고취하는 이런 혁명관은 모택동의 공산당이란 결국 풀뿌리(빈농‧고농‧객가) 출신의 비적, 즉 공비(共匪, 공산비적)일 따름이라는 비판을 자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련의 모택동 연구를 집대성한 알렉산더 판초프의 『마오쩌둥 평전』(2007; 국역: 민음사, 2017)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고요.

    그런데 위화는 바로 이런 혁명관 때문에 문화혁명기에 ‘반역은 정당하다’(造反有理)라는 구호 아래 ‘어떤 불량배짓(胡作非为)이더라도 혁명적 행위로 간주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4인방’의 졸개(瓜牙, 발톱과 이빨)에 불과한 조반파가 그 사례였는데, 급기야 풀뿌리(하층민) 출신의 ‘불량(光棍) 조반파’, 즉 문혁판 ‘바닥빨갱이’까지 등장했다는 것이지요.

    위화는 ‘정치지상의 시대’인 문혁에서 ‘경제제일의 시대’인 개혁‧개방으로의 전환을 특징짓는 단어로 ‘산채’(山寨)와 ‘홀유’(忽悠)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본래 양산박 같은 ‘비적의 소굴’을 뜻하던 산채에 사이비(似而非)라는 뜻이 추가되었고, 본래 ‘흔들린다’라는 뜻의 홀유에 사기라는 뜻이 추가되었는데, 개혁‧개방으로 인해 사이비와 사기가 일반화된 풍속과 세태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류짜이푸는 개혁‧개방 이전에는 불량배가 주변화되면서 ‘비굴한 자’(奴人, 노예처럼 주인에게 종속된 자)가 주류화되었다가 개혁‧개방 이후에는 불량배가 주류화되면서 비굴한 자도 합세하게 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위화는 항상 불량배가 주류였으며 다만 그 형태상으로 차이가 있어서 문혁기의 깡패와 개혁‧개방기의 사기꾼을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셈이지요.

    그 밖에도 위화는 문혁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제기합니다. 그는 문혁을 ‘책 없는 시대’로 특징짓는데, ‘문투’(文鬪, 이론투쟁)가 아닌 ‘무투’(武鬪, 폭력투쟁)의 시대였기 때문이지요. 1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은 5.7만건, 1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은 1만건이었던 문혁기 무투의 절정은 1968년에 광서성에서 발생한 4‧22참안(慘案, 참사)이었는데, 17.5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심지어 수백명의 ‘식인희생자’도 발생했다고 하거든요.

    문혁기 무투의 결함은 청소년의 ‘가두화’(街頭化)에서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가두화란 가두시위와 패싸움(群架)이라는 의미이므로 ‘폭력화’ 내지 ‘불량배화’라고 할 수도 있고요. 또 대자보투쟁도 무투의 변종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대자보집필자를 ‘간자’(杆子, 몽둥이 내지 무장대오)라고 불렀던 것이지요.

    문혁과 개혁‧개방의 풍속과 세태에 대한 비교를 통해 전대협과 한총련의 풍속과 세태를 비교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대협의 엔엘 운동권은 깡패 같았고 한총련의 엔엘 운동권은 사기꾼 같았기 때문이지요. 전대협과 한총련의 불량배에 대항한 피디 운동권은 역부족이었던 데다가 스스로도 점차 불량배화되었는데, 사회진보연대에서조차 포스트아나키스트가 등장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지요.

    어쨌든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읽고서 위화의 소설도 읽게 되었습니다. 먼저 이 책과 유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형제』(2006; 국역: 휴머니스트, 2007)를 구해서 읽었지요. 이광두와 송강이라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른 재혼가정의 형제가 주인공인 이 소설의 작의는 중국혁명의 희비극에 대한 풍자였는데, 이광두를 불량배(流氓)의 후예, 1년 연상인 송강을 사대부의 후예로 해석할 수 있지요.

    『형제』의 배경은 가상의 유진(劉鎭)인데, 위화의 고향 격인 해염현 무원진이 모델이라고 합니다. 해염현은 상해시와 항주시의 중간지점인데, 알다시피 상해는 문화혁명과 개혁‧개방의 진원지 중 하나였기도 하지요. 상권은 이광두가 1세(1959) 때부터 15세(1973) 때까지이고, 그 절반은 그가 8세(초등학교 1학년) 때 시작된 문화혁명기이지요. 또 책의 2/3를 차지하는 하권은 개혁‧개방기로 이광두가 20세(1978) 때부터 43세(2001) 때까지이고요.

    상권의 절정은 지주의 후예이자 중학교 선생으로 ‘회개한 부르주아’(이문열 작가) 격인 계부가 타살되는 장면입니다. 그 밖에도 중학생 홍위병 등의 불량배짓이 묘사되는데, 『푸른색 연』(藍風箏, 1993)과 달리 이 작품이 영화화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일 것 같아요. 또 혁명투기꾼의 출몰에도 주목하고 있는데, 그들은 방금 인용한 「호남농민운동 조사 보고서」에서 모택동이 ‘혁명은 한턱내기(請客吃飯)가 아니다’라고 한 말을 혁명사업도 ‘돈벌이’(掙錢)라고 곡해했지요.

    하권에서 이광두와 송강의 운명은 엇갈리게 됩니다. 장애인복지공장(福利廠) 공장장에서 개인사업자(個體戶)로 변신한 이광두가 폐품재활용회사를 창업하고 일제중고양복을 수입하여 치부에 성공한 다음 의류공장‧백화점‧호텔‧건설사 등을 지배하는 지주회사를 설립한 것은 34세(1992) 때이지요. 반면 국영금속공장이 도산한 다음 부두하역인부, 각종 임시대행직, 시멘트공장 노동자를 전전하던 송강이 결국 인공처녀막과 짝퉁비아그라 등을 파는 떠돌이사기꾼(江湖騙子)의 졸개로 전락한 것은 그가 41세(1998) 때이고요.

    그런데 송강이 사기꾼을 따라 복건‧광동‧해남도를 떠도는 사이 이광두는 자신의 첫사랑이자 송강의 처인 임홍과 불륜을 저지르게 됩니다. 상‧하권에서 임홍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광두와 송강의 여러 에피소드가 묘사되는데, 관심이 있으시면 직접 읽어보세요. 어쨌든 귀향하여 이 사실을 알게 된 송강이 철로에서 자살하는 것이 대단원이지요. 문혁으로 부친이 피살된 다음 개혁‧개방으로 송강이 자살하면서 사대부의 후예는 소멸한 셈이에요.

    『형제』는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기 직전에 끝납니다. 따라서 2000년대에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가 대두하고 급기야 2010년대에는 ‘중국몽’과 ‘강군몽’을 제기하면서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시진핑이 출현하는 상황에 대한 위화의 입장을 알 수는 없어요. 다만 그의 오랜 친구인 왕후이가 시진핑을 지지하면서 개혁‧개방의 대안을 문혁에서 발견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개혁‧개방과 문혁을 모두 비판하는 위화가 시진핑을 지지할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요.

    『형제』를 읽은 다음 내친 김에 이미 갖고 있던 『인생』(1993; 국역: 푸른숲, 1997)과 『허삼관 매혈기』(1996; 국역: 푸른숲, 1999)도 읽었습니다. 전위주의에서 리얼리즘으로의 전향을 개시하는 소설이 바로 『인생』인데, 포스터의 「올드 블랙 조」처럼 ‘원한 서린 말 한 마디 없이’ 인생을 돌이켜보는 것이 위화 자신이 밝힌 작의였지요. 포스터의 포크는 로져 와그너 합창단이 취입한 음반이 좋은데, 10개의 보너스 트랙이 추가된 EMI 레이블로 구할 수 있어요.

    ‘인생’의 원어는 ‘活着’인데, 직역하면 ‘살아간다는 것’(to live)입니다. 이런 제목을 붙임으로써 위화는 인생 내지 역사에는 그 이외의 목적이나 의미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니체식 ‘운명과의 사랑’(amor fati)이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셈이에요. 중국혁명의 희비극이 목적론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함께 목적론과는 무관한 헤겔-마르크스식 ‘운명과의 대결’에 대한 (부당한) 비판을 초래한 것이지요.

    4만여평의 전답을 소유한 강남 대지주 집안이 몰락한 것은 부자 이대가 파락호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재산 절반을 탕진한 다음 아들인 주인공 서복귀가 나머지 절반을 탕진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국공내전기에 소작농으로 전락한 서복귀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중국혁명 직후 토지개혁의 와중에 처형되지 않고 살아남았어요.

    따라서 『인생』은 서복귀라는 사회주의적 ‘하층민’(subaltern)의 관점에서 중국혁명을 풍자할 수 있었습니다. 또 그런 관점이 지식인의 관점보다 더욱 비판적일 수 있었고요. 예를 들어 대약진기에 제철‧제강운동을 위해 드럼통으로 만든 ‘재래식 용광로’(土法爐)를 설치할 때 풍수가를 동원했다는 황당한 에피소드가 나오거든요. 초등학생인 외아들이 출산하는 교장에게 헌혈하다가 사고로 사망하여 대가 끊겼다는 에피소드도 나오고요.

    반면 문화혁명기에 대한 비판은 아직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국공내전의 와중에 열병으로 농아가 된 딸이 결혼 직후 출산 중 사고로 죽고, 이어서 부인도 병으로 죽고, 나중에는 사위와 외손주도 사고로 죽는 일련의 불행이 연속되었지요. 결국 외톨이가 된 서복귀는 도살 직전의 늙은 소를 사서 ‘복귀’라고 이름 붙이고 같이 살게 되었고요. 역시 ‘살아간다’는 제목에 적합한 대단원인데, 책을 덮으면서 「올드 블랙 조」를 듣고 싶은 생각이 들지요.

    알다시피 『인생』은 장이머우 감독과 공리 배우 콤비 작품의 절정 격으로 1994년 칸영화제의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습니다. 서복귀 역으로 캐스팅된 거유는 남자배우상을 받기도 했고요. 그런데 영화는 장이머우 감독의 개인사를 반영해서 대약진에 대한 비판 대신 문화혁명에 대한 비판을 부각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기노름꾼에게 빼앗긴 집을 촌장이자 인민공사 생산대장인 공산당 간부가 차지한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재래식 용광로 에피소드도 생략되었거든요.

    또 외아들도 자동차사고로 죽은 것으로 처리되었는데, 대신 문혁기에 딸이 죽게 되는 경과가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장이머우 감독은 사위의 지위를 짐수레꾼이 아니라 조반파노동자로 격상시켰지요. 그런데도 딸이 출산 중 죽게 되는데, 이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반동학술권위’ 교수를 대신한 홍위병 학생 때문이었어요. 말하자면 산파보다도 못한 홍위병 학생이 딸을 죽였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문혁에 대한 비판을 완화하기 위해 장이머우 감독은 부인과 함께 사위와 외손주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복귀로 하여금 외손주는 ‘점점 더 잘살게 될 것’(越來越好)이라고 말하게 했고요. 그래서 멜로드라마화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검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그 전해에 나온 『푸른색 연』과 마찬가지로 상영이 불허되어 비디오로 유포될 수밖에 없었어요.

    『인생』에 후속하는 작품이 『허삼관 매혈기』인데, 여기서 문화혁명에 대한 비판이 제시되었습니다. 주인공인 허삼관은 생사공장 노동자로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매혈을 했는데, 1회 매혈대금은 반년 동안 밭일을 해도 못 버는 큰돈이었지요. ‘땀 흘려 번 돈’(汗錢)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피 흘려 번 돈’(血錢)으로 결혼자금 등을 마련한다는 것이에요. 위화의 부친은 의사였는데, 그 역시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매혈을 했다고 하고요.

    혁명 초기에 결혼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3회 매혈한 허삼관은 대약진기에 기근 때문에 1회 매혈합니다. 그러나 소설의 1/3을 차지하는 문혁기에는 무려 6회나 매혈하는데, 위화의 작의가 문혁 비판임을 알 수 있지요. 게다가 불량배 출신 혈두(血頭, 매혈브로커)가 나중에 공산당원으로 변신한다고 풍자하기도 했고요.

    그 밖에도 문혁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개인적 원한’(私仇)을 풀기 위해 대자보를 쓰는 자가 있었다든지, 농촌으로 하방된 아들을 위해 그 지방의 생산대장에게 뇌물을 주려고 매혈을 했다든지 하는 등이지요. 그러나 개혁‧개방이 시작되자, 허삼관의 처인 허옥란의 말처럼, ‘이젠 가진 게 돈뿐이어서’ 매혈을 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고요.

    중국사회주의에서 매혈이 일반화되었음을 고발하는 『허삼관 매혈기』가 영화화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대신 2015년에 한국에서 하정우 배우가 감독과 주연으로 활약하고 각본에도 참여한 영화가 제작되어 100만 관객을 동원했는데, 그러나 작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소재만 차용했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영화의 배경은 한국전쟁 말기인 1953년부터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와 베트남파병으로 경제개발이 시작되기 직전까지의 공주였습니다. 영화에서는 불량배 출신의 혈두가 나오지도 않고 문혁기의 매혈에 해당하는 매혈의 이유도 달리 설정됩니다. 허삼관의 친아들이 아닌 큰아들의 뇌염 치료 때문에 목돈이 필요했다는 것인데, 그러나 허삼관이 수차례의 매혈로 치료비를 구하는 동안 친어머니 허옥란이 신장 이식에 동의하면서 치료비를 대신하게 되었지요.

    사실 서울에서도 매혈이 성행했는데,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 후반에 서대문 사거리의 적십자병원에 길게 줄 서 있는 광경을 본 적이 많았습니다. 또 서울대병원이나 백병원 역시 매혈병원으로 유명했다고 하고요. 1980년대 중반의 이른바 ‘3저호황기’까지는 매혈이 흔했는데, 그 후에는 헌혈이 매혈을 대체하게 되었지요.

    따라서 위화의 작의를 반영하여 이승만 정부 또는 박정희 정부에 대한 비판적 묘사가 가능할 수도 있었는데, 아쉬운 일입니다. 물론 박정희 정부 덕분에 경제개발에 성공하여 ‘이젠 가진 게 돈뿐인’ 시대가 왔다는 변호론도 없었지만요. 결국 매혈이라는 소재만 채택한 ‘탈정치적’ 영화가 된 셈이었지요.

    ‘촛불혁명’이라는 화두

    저의 화두가 대선 불복이라고 한 것은 민주당 지지자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이 대선 패배의 일차적 책임자인 이재명 후보를 민주당 국회의원이자 당대표로 부활시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추진하고 차기 대선에서의 승리를 도모하는 것이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4‧10총선 직전에 김영수 교수의 『조선일보』 칼럼과 이기홍 대기자와 송평인 논설위원의 『동아일보』 칼럼을 읽고 백낙청 교수에게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 백 교수가 유튜브 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선 불복을 선전‧선동해왔다는 것인데, 그래서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그의 글을 찾아보았지요. 또 이미 2023년 말에 『조선일보』 송의달 에디터가 백 교수의 행적을 정리한 장문의 기사도 찾아볼 수 있었고요.

    이렇게 백낙청 교수의 글과 백 교수에 대한 글을 찾아 읽으면서 그가 2022년 3‧9대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이른바 ‘촛불혁명’을 화두로 제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백 교수가 이이화 선생처럼 촛불혁명을 동학농민전쟁과 3‧1운동으로 소급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요.

    백낙청 교수는 ‘4기 민주당정부’가 아닌 ‘2기 촛불정부’를 주장했는데, 민주당정부가 반드시 ‘민주정부’는 아닌 반면 촛불정부가 바로 ‘민중 주도의 민주정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4기 민주당정부를 추구할 따름인 이낙연 후보가 아니라 2기 촛불정부를 지향하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백낙청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1기 촛불정부가 실패한 것은 그가 아니라 그가 발탁한 고위관료와 민주당의 전통적 주류 정치인이 촛불혁명을 배반한 탓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는 물론 윤석열 검찰총장과 이낙연 후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윤석열 후보가 아닌 이낙연 후보가 당선되었어도 피장파장이었다는 말인데, 어차피 두 정부 모두 촛불혁명에 대한 배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백낙청 교수가 이재명 후보의 낙선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부활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대선 패배 이후 백 교수는 이 후보를 ‘김대중 이후 최고의 지도자’로서 2기 촛불정부의 적임자라고 찬양하면서 그가 국회 입성과 당대표 취임을 통해 민주당을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거든요. 나아가 세월호침몰사건과 이태원압사사건을 동일시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운동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요.

    백낙청 교수는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경(오)’도 불신하는 것 같습니다.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조차 불신하는 것은 친명과 비명이 혼재하기 때문인 반면 『오마이뉴스』는 얼마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쨌든 ‘한경(오)’보다는 친명 유튜브 채널을 선호하는 백 교수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 직접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지요. 디지털 문해력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유튜브가 흑색선전‧선동이 판치는 블랙 저널리즘이라는 것이 오히려 상식일 것 같은데 말이에요.

    백낙청 교수는 2023년에 이어서 2024년에도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발표한 이른바 ‘분단체제론적’ 신년칼럼에서 촛불혁명을 계속하여 2기 촛불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4‧10총선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퇴진운동이 지지부진한 것을 자인하는 것 같은데, 이재명 대표가 이태원압사사건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양대 실정으로 거론한 해병대원익사사건을 백 교수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인 것 같아요.

    백낙청 교수의 분단체제론은 장준하 선생의 분단체제론을 이론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강만길 교수의 분단사관이 분단체제론의 사론화(史論化)에 성공한 것처럼요. 어쨌든 백 교수의 분단체제론은 남과 북의 ‘적대적 공생’을 비판한다면서도 주로 북이 아닌 남을 비판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달리 말해서 분단체제론을 활용해서 김정은 위원장보다는 이명박‧박근혜‧윤석열 대통령의 비판에 주력한다는 것이에요.

    백낙청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점진 쿠데타’를 추진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른바 ‘87년체제’ 이전, 즉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로의 복귀를 시도했다는 것이지요. 반면 문재인 정부는 이런 쿠데타를 저지했을 뿐만 아니라 87년체제의 지양을 시도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1기 촛불정부라는 것이고요.

    2기 촛불정부를 좌절시킨 반혁명정부로서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도 미달한다는 것이 백낙청 교수의 주장입니다. 윤 정부는 박정희‧전두환 정부 이전 이승만 정부로의 복귀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군부독재에도 미달하는 클렙토크라시라는 것이에요. 게다가 친일적이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반일적인 이승만 정부에도 미달한다는 것이고요.

    백낙청 교수가 클렙토크라시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시진핑 정부까지는 몰라도 푸틴 정부를 비롯해 김정은 정부 역시 클렙토크라시라고 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윤석열 정부가 클렙토크라시라고 주장하거든요. 앞으로 설명할 푸틴의 ‘분열증적 파시스트’ 이데올로그 두긴처럼 ‘전복적 선전‧선동’을 한다는 해석은 백 교수를 과대평가해주는 것이고요. 나아가 일제강점기에 의사와 법률가 출신 관료로 신분상승에 성공한 평안도 중인 집안의 후예로 온갖 혜택을 누린 다음에 별다른 ‘자기비판’도 없이 무슨 자격으로 일본을 비판한다는 것인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에요.

    급기야 4‧10총선 직전에 백낙청 교수는 ‘다시 이재명의 시간이 왔다’면서 이 대표의 공천 파동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 내 반촛불세력이거나 윤석열 정부의 탄생에 기여한 현역 의원과 정치인을 대거 탈락시켰다는 점에서 오히려 ‘공천혁명’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주장한 것이었지요. 게다가 한술 더 떠 조국 교수는 서울대 동료였고 부인은 영문과 제자였다는 개인적인 연고까지 들먹이면서 조국(혁)신당이 원내3당이 되리라는 기대를 표명하기도 했고요.

    ‘지식을 초월하는 지혜’가 존재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성격 논쟁에서 분단체제론를 주장한 이래 백낙청 교수의 지론이었습니다. 동시에 백영서 교수를 앞세워 월러스틴의 ‘역사사회과학’에 비견되는 ‘사회인문학’을 주장하기도 했지만요. 그러나 말년에 이르러서는 결국 사회과학(사회학‧정치학)이나 경제학과의 교류를 포기하고 동학과 그 후예인 원불교의 ‘후천개벽사상’이라는 종말론에 귀의한 것인데, 천지개벽이라는 의미의 ‘선천개벽’과 구별되는 이른바 ‘후천개벽’이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동란’이라는 의미이지요. 그리하여 백 교수가 파시즘을 특징짓는다고 할 수 있는 ‘종교전쟁적’인 역사관과 정치관을 채택하게 된 것이고요.

    강준만 교수는 김어준 씨를 ‘정치무속세계’를 대표하는 ‘정치무당’이라고 불렀는데, 백낙청 교수도 그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 ‘경제적‧정치적 문맹’이면서도 ‘돈 많고 잘살고 싶은’ 사람에게는 김 씨의 영향이 크겠지요. 반면 지식인에게는 백 교수의 영향이 클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한겨레신문』조차 그의 의견을 무시한 탓에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뻔했지요.

    말년의 백낙청 교수를 보면서 홍명희 선생의 ‘구명도생’(苟命圖生, 구차하게 살아남다)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또 진보적 지식인의 ‘사상의 스승’으로 추앙받던 이영희 교수를 대신하려는 노욕 때문인가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상의 스승이란 사상의 표준으로서 스승을 의미하는 ‘maître à penser’(master for thinking)의 번역어인데, 그러나 이 교수는 사상을 오도하는 스승인 ‘maître penseur’(master thinker)였을 따름이지요. 그런데 사상을 오도한다는 점에서 백 교수는 이 교수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례라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촛불혁명을 화두로 삼은 백낙청 교수와 대선 불복이라는 화두를 든 제가 얻은 깨달음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동학과 원불교를 신봉하는 백 교수와 달리 저는 불교의 ‘큰스님’이자 나라의 ‘큰어른’(박완서 선생)이신 성철 스님을 존숭하는 입장인데, 스님의 화두가 바로 ‘이 뭐꼬’(是甚磨)이지요. 그래서 저도 지난 2년 동안 ‘대선 불복,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들었던 것이고요. 반면 백 교수의 촛불혁명이라는 화두는 모택동의 ‘조반유리’(造反有理) 같은 ‘폭동주의적’ 구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사실 동학의 후예인 원불교는 불교를 참칭하는 신종교이거든요.

    촛불혁명이라는 화두를 깨는 백낙청 교수의 종말론 공부와 대선 불복이라는 화두를 깨는 제 공부가 같을 리 없습니다. 앞으로 설명할 제 공부를 개관해보면 다음과 같아요.

    세계정세: 경제위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아랍-이스라엘 전쟁
    바이마르공화국의 쇠망과 나치의 집권
    자유주의적 헌정과 법치
    자유주의자와 인민주의자의 대결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영국과 프랑스의 비교, 러시아의 사례, 일본의 사례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서술의 순서가 연구의 순서와 반대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제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서술의 순서와 반대인 공부의 순서는 지식인이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서 자유주의자와 인민주의자의 대결을 거쳐 그 쟁점으로서 자유주의적 헌정과 법치, 나아가 그 역사적 사례로서 바이마르공화국의 쇠망과 나치의 집권에 이른 것이었어요. 그러나 서술의 전제가 되는 세계정세를 먼저 개관해둘 필요가 있겠지요.

    보론: 세계정세의 경과

    먼저 2007-09년 금융위기를 1930년대 대불황의 예고로 간주했던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Fed)이 실행한 통화완화정책(ME)의 경과부터 개관해두겠습니다.

    2008년 제로금리정책(ZIRP)과 수량완화정책(QE) 개시
    2015년 출구전략을 개시하는 제로금리정책 종료
    2017년 2차 반도체호황 개시를 전후로 수량완화정책 종료
    2018년 2차 반도체호황 종료와 함께 미중간 무역전쟁 개시
    2019년 출구전략의 속도 조절
    2020년 코로나19발 경제위기로 제로금리정책과 수량완화정책 재개

    문재인 정부 1-2년차에 2차 반도체호황이 세계경제를 성장시켰던 것과는 정반대로 윤석열 정부 1-2년차의 세계경제는 호전될 기미가 없었습니다. 2022년 2월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재개로 식량‧에너지가격이 급등한 데다가 3월에는 제로금리정책과 수량완화정책까지 종료되었거든요.

    2022년 12월에 4.25-4.5%에 도달한 연방기금금리는 2023년에 들어와 인상 속도가 완화되었고 7월에 5.25-5.5%에 도달한 다음에는 결국 동결되었는데, 2001년 이후 최고치였기 때문입니다. 금리는 2024년 하반기부터 인하되어 12월에는 4.5-4.75%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요. 2022년 9월부터 시작된 수량긴축정책(QT) 역시 그 속도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 1-2년차의 세계경제가 호전될 수 없었던 것이고, 그것을 기화로 이재명 대표가 가구당 평균 100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떤 것이에요.

    2023년 5월에 코로나19의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의 전환’이 선언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2022년 3‧9대선을 앞두고 전환의 ‘초기단계’를 선언한 후 1년 2개월여가 지난 다음이었고, 그 사이 1만5천여명의 사망자가 증가한 다음이었지요. 코로나19에 대한 정책, 특히 위드코로나 선언 및 엔데믹 조기선언과 관련해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에 준하여 누군가는 사법적 내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제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어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동아시아의 외교안보정세도 급변했습니다. 러시아에 이어 북한이 핵전쟁을 예고한 데다 중국도 강군몽의 첫 단계로서 대만 침공을 공언한 상황이거든요. 북한과 중국, 나아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해 미국과 일본은 억지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고요.

    그래서 2023년 1월에 미일방위협력지침이 개정되었던 것인데, 그 근거가 바로 북한의 핵무력 완성으로 인한 ‘임박한(差し迫った) 위협’, 중국의 강군몽으로 인한 ‘전략적인 도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강한 우려’(懸念)였습니다. 핵심은 ‘전수방위’를 선제타격을 의미하는 ‘반격’으로 전환한 것인데, 비유컨대 ‘방패’에다 ‘창’을 추가한 셈이었지요.

    미일방위협력지침의 개정과 함께 주일미군의 지위도 변경되어 7함대와 5공군의 합동지휘권을 하와이 인도-태평양사령부에서 주일 미군사령부로 이양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 신설 예정인 자위대합동사령부의 카운터파트로 미일연합사령부를 설치할 것이라고 하고요. 이렇게 미일 간 ‘군사일체화’가 더욱 심화되는 셈이지요.

    취임 1주년을 전후한 윤석열 정부의 최대의 공적이 한미‧한일‧한미일 간 일련의 정상회담을 통한 외교안보관계의 복원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친북‧연중‧비미‧반일 성향을 정상화한 셈인데, 그래서 ‘문재명’을 지지하는 인민주의자들, 특히 친북중러‧반한미일 성향 운동권의 격렬한 반대가 초래되었던 것이지요.

    한미일 외교안보관계의 복원 내지 강화는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재명 대표처럼 대선에 불복한 트럼프 대통령을 기소하라고 의회가 법무부에 권고했는데도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여전하거든요. 의회가 법무부에 전직 대통령 기소를 권고한 것은 헌정사 최초의 사례라고 합니다. 게다가 그 혐의는 ‘내란 선동’ 등이었고요.

    트럼프가 나토(NATO) 회원국의 ‘무임승차’(delinquency, 의무불이행/비행)가 지속될 경우 러시아의 침공을 ‘독려하겠다’(encourage)고 한 자신의 2020년 발언을 공개하면서 국제적으로 파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당시 트럼프가 말한 무임승차란 국방비가 국민소득의 2%에 미달한다는 의미였는데, 이번에 재선에 도전하면서 4%로 인상하라고 요구하기도 했고요.

    트럼프의 출마자격 논란은 미국 수정헌법 14조의 내란관련자 공직금지 조항의 적용 여부였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봉기(insurrection) 또는 반란(rebellion)에 가담하거나 원조(aid) 또는 찬양‧고무‧선전‧동조(comfort)를 제공한 자’에 대해 ‘공직(office)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조항인데, 연방의회가 바이든 후보의 당선을 확정한 2021년 1월 6일 그에 불복한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storm)을 선동한 것이 문제였지요.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내란관련 혐의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습니다. 사법적극주의의 대표적 사례였던 연방대법원조차 정치의 사법화에는 소극적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트럼프의 출마자격에 대한 판단은 대법원이 아닌 의회의 권한이기 때문인데, 하기야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탄핵할 때도 소추는 하원이 담당하고 심판은 대법원이 아닌 상원이 담당하거든요.

    『한국전쟁 전사(全史)』(2002)가 국역된 기념으로 2023년 8월에 방한한 와다 하루키 교수의 인터뷰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대통령실의 이도운 대변인이 논설위원으로 재직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와다 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부활한 북중러의 전제정과 한미일의 민주정의 대립에서 전자가 아니라 후자에 대한 지지와 함께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한 지지를 완곡하게 표명한 바 있지요.

    10월에 대법원이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2013) 사건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는 사실에도 물론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7년 1월의 1심에서 ‘학문의 자유’로 무죄가 선고되었고 10월의 2심에서 학문적 의견이 아닌 ‘허위사실’을 통한 명예훼손으로 1000만원 벌금형이 선고되었다가 결국 6년 만에 또다시 ‘학문의 자유’로 무죄가 선고된 셈이었지요.

    박유하 교수 사건은 문재인 정부와 김명수 사법부가 ‘사상의 자유’, 그 중에서도 ‘학문의 자유’를 탄압한 국제적 스캔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와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을 비롯해 오에 겐자부로 작가와 와다 하루키 교수 같은 일본의 친한파 인사는 물론이고 촘스키 교수와 커밍스 교수 같은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도 ‘학문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박 교수를 옹호했던 것이지요.

    2024년 1월 총통선거에서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어 2000년 이후 대만의 문민화를 민진당이 주도하고 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2000-08: 민진당의 천수이볜 총통
    2008-16: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
    2016-24: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
    2024- : 민진당의 라이칭더 총통

    군부독재뿐만 아니라 문민화와 관련해서도 대만과 한국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장개석 총통은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중소기업을 육성했고, 천수이볜 총통은 노무현 대통령과 달리 구속‧수감을 감수했거든요.

    2023년 10월 50년 만에 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정상화를 방해하려는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테러를 자행했기 때문이지요. 하마스의 배후가 이란이라는 추측은 이번 전쟁의 목적에 우크라이나를 항복시키기에 역부족인 러시아를 지원하려는 ‘제2전선’의 형성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고요. 그 덕분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주춤하기도 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나토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공론화하기도 했는데, 트럼프의 재선에 대비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요.<끝>

    필자소개
    과천연구실. 전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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