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하원, 난민 추방
    '르완다 계획'에 길 열어줘
    [세계] 극단주의-이민자 혐오 확산
        2024년 03월 20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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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정부가 난민을 르완다로 추방하겠다는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의 ‘난민 추방’ 계획?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22년 4월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보리스 존슨이 영국 총리직을 맡고 있었죠.

    보수파 정치인으로 국가주의와 배외주의의 성향이 짙었던 보리스 존슨은, 당시 영국이 고민하고 있던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극단적인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

    영국으로 들어오는 난민을 모두 제3국으로 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난민을 보낼 땅은 영국에서 6,400km 떨어진 동아프리카의 르완다로 설정하겠다는 구체적인 안까지 나왔습니다.

    그해 연말에 취임한 리시 수낙 총리도 보리스 존슨의 정책을 이어받았습니다. 영국은 이 정책을 시행하는 대가로, 르완다에 1억 4천만 파운드(한화 약 2,300억원)를 지급하기로 했죠.

    르완다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내전 이후 전쟁 복구에 영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이후 르완다는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했고, 영국의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로는 이례적으로 영연방에까지 가입했습니다.

    영국은 르완다에 일종의 ‘난민 수용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영국으로 들어오는 난민들은 전부 르완다로 일단 이송됩니다. 여기서 심사를 거쳐서 본국으로 송환되거나, 제3국으로 망명 신청을 하게 됩니다.

    심사 결과 난민으로 인정되어도 제3국행이나 르완다에 남는 선택지만 있고, 영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차단했습니다.

    정책이 시행되면, 영국 입장에서는 채널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들어오는 난민을 영국 땅에서 쫓아낼 수 있습니다.

    무작정 난민을 받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할 수 없는데, 생활과 주거 여건이 만들어진 르완다의 난민 캠프로 보내면 그 비판을 우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겠죠.

    반면 르완다는 빈 땅을 영국에 제공하고, 큰 돈을 영국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두 나라는 이 계획을 실현하는 데 적극적이었죠. 영국은 벌써 1억 4천만 파운드를 르완다에 보냈습니다.

    정책은 실현될 것인가?

    하지만 양국 정부의 입장과 달리, 실제로 목숨을 걸고 모국을 떠난 난민의 입장에서 이 계획은 절망적입니다. 국제사회는 영국이 ‘돈으로 난민을 파는’ 비윤리적인 정책을 실시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영국은 르완다가 난민이 거주하기에 충분히 안전한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0년 폴 카가메 대통령의 집권 이후, 르완다는 경제 성장과 치안 강화로 안정적인 정국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폴 카가메 대통령의 독재와 인권 탄압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르완다로 이송된 난민들이 제대로 된 난민 인정 심사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르완다와 친한 국가에서 온 난민이라면, 르완다 정부에 의해 본국으로 강제 송환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르완다에서 정치적 탄압을 피해 온 이들이 영국에 입국하면, 심사도 없이 다시 본국인 르완다로 송환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모두 난민협약 위반 소지가 명백합니다.

    실제로 2022년 6월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 계획에 따라 난민을 르완다로 보내려 하자, 유럽인권재판소가 개입해 르완다행 비행기의 이륙을 불과 몇 분 전에 막아세우기도 했습니다.

    영국 법원도 제동을 걸었습니다. 2022년 12월 영국 법원은 ‘르완다 계획’을 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6월 항소법원은 이 판결을 뒤집어, ‘르완다 계획’이 불법이라고 지적했죠. 11월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결국 법원에 의해 ‘르완다 계획’은 시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법원은 르완다로 추방된 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내세웠죠.

    그러나 리시 수낙 총리는 법원 판결을 우회하는 수를 냈습니다. 난민의 생명과 자유를 보장하도록 르완다와의 협약을 개정하고, 르완다를 ‘안전한 국가’로 명시하는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것입니다.

    르완다가 의회에서 만든 법에 따라 ‘안전한 국가’가 된다면, 르완다의 안전을 문제 삼은 대법원 판결을 우회할 수 있다는 것이 리시 수낙 총리의 판단이었습니다.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 하원을 통과했습니다. 법안에는 난민 추방에 관해 유럽인권재판소의 명령과 영국 인권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조항까지 포함됐습니다.

    여기에 다시 제동을 건 것이 상원이었습니다. 영국은 하원의원만을 직선제로 선출하고, 상원의원은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상원은 일반적으로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상원에게도 법적으로 하원의 법안을 거부하고, 수정안을 제출할 권한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권한이 행사되는 경우는 드물죠.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하원에 대해 상원이 반기를 드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것이 영국이 지금까지 관례적으로 쌓아 온 민주주의의 전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상원이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 법안이 국제법을 완전히 준수하도록 하거나, 르완다가 난민의 안전 보장을 완전히 이행해야만 난민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수정안을 낸 것입니다.

    상원이 만든 10개의 수정안은 다시 하원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어제, 영국 하원은 이 수정안을 전부 거부했습니다.

    향후 전망은?

    하원이 다시 한 번 ‘르완다 계획’에 대한 분명한 지지를 받으면서, 이제 르완다 계획은 실행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상원이 하원의 법안에 제동을 거는 것은 언급했듯 영국 민주주의의 위기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상원이 행동에 나서더라도, 법적으로 하원이 통과시킨 법안을 상원은 1년 이상 유예시킬 수 없습니다.

    영국 정부는 올해 전반기 안에 르완다로 향하는 첫 비행기를 띄운다는 계획입니다. 이미 난민 심사에서 탈락한 이들에게 지원금을 주고 르완다로 보내겠다는 계획도 수립했습니다.

    영국의 ‘르완다 계획’은 다른 유럽 국가들도 하나둘 따라하고 있습니다. 독일 야권에서도 유사한 목소리가 나왔죠.

    독일의 제1야당인 기독민주당은 지난해 12월, 난민 신청자들을 가나, 르완다, 몰도바, 조지아 등으로 보내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극우파가 집권하고 있는 이탈리아는 아예 알바니아와 손을 잡고 정책 추진에 나섰죠. 다만 이탈리아는 심사를 통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면 이탈리아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 영국의 ‘르완다 계획’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알바니아 헌법재판소 역시 이 같은 협약이 절차상 위헌이라고 판단해, 현재 정책 실시는 보류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난민의 외주화’를 실행하는 첫 타자는 영국이 될 가능성이 높겠죠.

    이러한 움직임이 유럽연합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최초 입국한 국가에 난민 신청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사실상 폐기했고, 지난해 말 망명 심사 기간 동안 난민 신청자를 국경 밖에 머물도록 할 수 있다는 협약을 타결했습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튀니지, 모로코, 이집트, 나이지리아 등과 난민 관련 협력 조약 체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예 유럽연합 전체가 ‘난민 추방’을 진행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죠.

    물론 반발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영국의 정책이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수차례 지적했습니다.

    당장 영국 보수당 안에서도 이번 법안을 두고 반대 목소리가 나왔죠. 보수당 내 중도파 의원모임 ‘원 네이션’은 유럽인권협약 무력화에 크게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수엘라 브레이버만 전 내무부 장관을 비롯한 보수파 인사들은, 아예 유럽인권협약과 난민협약 등에서 탈퇴할 것을 주장할 정도로 강경한 입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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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극우파가 준동하고 있는 유럽의 정치 환경에서, ‘난민 추방’이 본격적인 정치 의제가 된 것은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처음 시작되는 것이 이 문제로 유럽연합까지 탈퇴한 영국인 것도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식입니다. “르완다는 안전한 나라”라고 법률을 통해 선언한다고 해서, 르완다에서 국가 폭력과 인권 침해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수사로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유럽인권재판소의 명령을 받지 않는다”거나, “영국 인권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법안의 문구로 법률과 협약의 강제성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법안이 가진 정당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일입니다.

    이 법안의 문제는 결국 영국이라는 국가가, 국적이나 입국 목적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기로 한 약속을 파기했다는 점입니다.

    난민협약이나 유럽인권협약에서 탈퇴했다면 모를까, 합의를 유지하면서 그 합의정신을 법안으로 파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영국 의회가 국가 간의 합의를 비준했다는 사실이 갖는 무게감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통제해야 하는 합의의 주체들조차, 내부적으로 극단주의와 이민자 혐오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 문제겠죠. 극우파가 난민 문제를 적극적으로 언급하며 표를 가져가는 상황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습니다. 내어줘서는 안 되는 전선이 있습니다. 한 발자국을 내어주면, 다시 또 두 발자국을 내어줘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죠.

    분명 난민 문제는 유럽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결국 모두가 사람으로서 존중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흐려져버린 그 본질을 다시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

    * 위 글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연재되는 <세계의 소식들>을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과 다른 소식들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세계> 지난 회의 칼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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