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투갈 총선에서
    '극우 돌풍', 캐스팅보트로
    [세계] 주류 양당 혁파의 수혜자는?
        2024년 03월 13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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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 총선에서 극우 정당이 상당한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이번 의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전망입니다.

    총선이 치러진 이유는?

    국가 정보에서 보신 것처럼, 포르투갈은 이원집정부제 국가입니다. 하지만 이원집정부제는 그 형태가 워낙 다양해, 포르투갈도 권력 구조가 조금 독특합니다.

    포르투갈의 이원집정부제는 의원내각제 쪽에 가깝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면, 의회에서 총리를 선출하죠.

    총리는 의회 과반의 지지를 얻어 정부를 꾸립니다. 주로 다수당의 대표가 총리가 되죠. 여기까지는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와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에는 대통령도 직선으로 뽑습니다. 대통령이 없거나, 있더라도 간선으로 선출하는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들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죠.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되니, 당연히 권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행정부 업무에 힘을 발휘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포르투갈의 대통령은 법안 거부권이나, 위헌법률심판 제청권 등의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덕분에 입법, 사법, 행정부를 아우르는 중재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포르투갈은 주로 중도좌파인 사회당과, 중도우파인 사회민주당이 의회를 양분합니다. 물론 자유당이나 공산당, 인민당 등의 소수 정당도 의석을 상당 부분 가져가지만, 정부 구성에서는 이 두 정당과 연대하는 경우가 많죠.

    원래 포르투갈의 정권은 사회당에서 쥐고 있었습니다. 사회당의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는 2015년 총리에 취임했고, 8년째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2026년에 다시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 정부는 최근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포르투갈의 리튬 광산 개발, 친환경 수소 생산, 데이터 센터 건설 등 광범위한 문제에서 정부의 비리가 발각된 것입니다.

    총리 비서실장까지 구속되면서 사태는 확산됐습니다. 결국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는 사임을 선언했죠.

    사임 후 의회에서 새로 총리를 선출할 수도 있었지만, 스캔들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예 의회를 해산하기로 했습니다. 국회 구성에 대해 국민들에게 의견을 다시 묻겠다는 것이죠.

    대통령은 의회 해산을 선언했고, 새로 총선이 치러지게 됐습니다.

    선거 결과는?

    이번 선거에서는 당연히 집권 사회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셌습니다. 광범위한 부패 스캔들로 인해 다시 치르는 선거였으니까요. 중도우파인 사회민주당의 승리가 예측됐습니다.

    최근 포르투갈은 저임금과 물가 상승을 비롯해 다양한 경제적 문제도 겪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정권 심판의 여론은 강력했죠.

    하지만 거대 야당인 사회민주당 역시 심판 여론을 비껴가지는 못했습니다. 사회민주당에서도 선거 직전 핵심 인사들의 뇌물 사건이 터져나왔습니다.

    결국 두 정당이 관례처럼 정권을 주고받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도 이어졌습니다. 양당 체제에 대한 비판이었죠.

    거대 양당 체제의 변화, 기성 정치 세력의 타파, 정치적 다양성의 확보는 모두 좋은 바람입니다. 포르투갈의 선거 제도 역시 100%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다당제에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죠.

    하지만 양당제 혁파라는 유권자의 열망과 다당제를 보장하는 선거제도의 이점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극우 정당이었습니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포르투갈은 유럽에서는 아주 늦은 사례죠. 이미 유럽 곳곳에서는 이와 유사한 현상이 10여 년 전부터 계속해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선거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중도우파 사회민주당이 1당으로, 전체 230석 중 79석을 가져갔습니다. 29.5%를 득표한 것입니다.

    2당은 심판론의 대상이었던 중도좌파 사회당이었습니다. 얻은 의석은 77석, 득표율은 28.6%였죠. 뇌물 스캔들로 심판의 대상이 된 것 치고는 사회민주당과 유사한 득표율입니다.

    하지만 지난번 선거에서 사회당은 120석을 얻었습니다. 이번에는 의석이 43석이나 줄어든 것입니다. 포르투갈은 과거부터 좌파정당의 세력이 강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합니다.

    이외에는 자유주의 정당인 ‘자유주의 이니셔티브’가 전과 같은 8석, 급진좌파 정당인 ‘좌파 블록’이 역시 전과 같은 5석을 득표했습니다.

    포르투갈 공산당-녹색당의 연합정당 CDU는 2석 줄어든 4석, 생태주의와 유럽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리브레’가 3석 늘어난 4석, 동물권 정당인 PAN이 직전 선거와 같은 1석을 기록했습니다.

    재외국민에게 배정된 4석은 아직 개표 중에 있으나, 선거 판세가 변화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근소한 차이였지만, 사회당 측은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우리는 야당이 되어, 사회당에 불만을 품은 포르투갈인을 되찾겠다.” (페드로 산토스 / 사회당 대표)

    그리고 3당은 극우정당인 ‘셰가(Chega)’가 차지했습니다. 원래 12석에 불과했던 의석은 48석으로 4배나 늘어났습니다.

    셰가는 2019년 창당한 신생 정당입니다. 반이민 정서와 임신중단권(낙태권) 반대, 사형제 도입 등 극우 정책을 내걸고 성장하고 있죠. 이번 선거 결과에 가장 반색한 것이 셰가였습니다.

    “양당제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안드레 벤투라 / 셰가 대표)

    프랑스, 헝가리, 스페인 등의 극우 정당 지도자들도 셰가의 선거 약진 소식에 환영과 축하의 뜻을 표했습니다.

    셰가의 안드레 벤투라 벤투라

    앞으로의 전망은?

    포르투갈 국회의 전체 의석은 230석입니다. 이 가운데 과반인 116석 이상을 얻어야 단독으로 정부를 꾸릴 수 있죠.

    하지만 1당인 사회민주당이 얻은 의석은 79석에 불과합니다. 37석이나 부족한 것이죠. 마침 극우정당 셰가가 얻은 의석이 48석입니다.

    현재로서 사회민주당은 극우정당과 손을 잡을 생각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선거 과정에서도 같은 입장을 보였었고요.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 포퓰리즘을 가진 극우정당에 정부 운영을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루이스 몬테네그루 / 사회당 대표)

    하지만 선거 결과가 나온 지금,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어쨌든 사회민주당도 사회당도, 셰가의 도움 없이는 과반을 얻을 수 없습니다.

    물론 사회민주당과 사회당이 대연정을 꾸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최근의 부패 스캔들로 서로에게 거리를 두던 양당이 함께 정부를 구성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특히 극우정당이 ‘양당 체제 심판’을 내걸고 사상 초유의 선전을 기록한 지금, 대연정을 꾸리는 것은 ‘기성 정치권 카르텔’이라는 이미지를 굳히는 결과만 낳을 수도 있겠죠.

    일단 사회민주당은 소수 정부 구성에 나서겠다는 방침입니다. 다른 정당을 내각에 참여시키지는 않되, 총리와 내각 인준에만 일회성으로 찬성표를 던지도록 설득하겠다는 것이죠.

    현재 대통령인 마르셸루 헤벨루 드 소자 역시 사회민주당 출신 인사입니다. 소자 대통령 역시 극우정당의 정부 진입을 최대한 막아보겠다는 입장입니다.

    포르투갈의 정부 구성 협상은 대통령의 주재로 이루어집니다. 소자 대통령은 3월 20일까지 각 정당과 협상을 진행하고,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협상의 길은 어려워 보입니다. 일단 사회당이나 셰가를 설득해 내각 구성에 일회성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양보해야 할 것이 많겠죠.

    설령 소수 정부가 세워지더라도, 이 내각이 활동하며 제출하는 법안에 국회의 동의를 받는 것도 매번 난항이 되겠죠.

    특히 10월에 통과되어야 하는 내년도 예산안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국가의 재정 운용 방향을 두고 사회민주당과 사회당, 셰가는 모두 입장이 다를 테니까요.

    포르투갈은 헌법상 국회 개원 이후 6개월 내에는 총선을 치를 수 없습니다.

    이번 총선에 따라 구성된 국회는 이달 말 개원합니다. 그렇다면 9월 말까지는 이 구성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이번 국회 구성대로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미죠.

    사회민주당이 극우 정당과의 연대라는 ‘쉬운 선택지’에 흔들릴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배제할 수 없겠습니다.

    ————

    유럽의 극우 열풍이야 이제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죠.

    프랑스의 마린 르펜은 이미 기성 정치인의 반열에 올랐고, 이탈리아의 총리는 극우파 조르자 멜로니입니다.

    독일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이 상당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오히려 극우 반대 운동이 거리로 나와 광장을 메웠습니다.

    동유럽에서는 이미 극우파의 집권이 일상이 되었고, 북유럽에서도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극우파의 약진이 두드러졌습니다.

    이제 극우파의 성장은 어느 나라든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포르투갈의 경우는 그 시점이 조금 늦었을 뿐입니다.

    다만 역설적인 점은, 그 극우파의 성장을 막아세운 것이 강력하고 규율화된 양당이 정치권을 강력하게 장악하고 있는 포르투갈의 정치적 특징이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포르투갈도 다당제와 연립정부 구성이 안착해 있는 국가입니다. 하지만 주변 유럽 국가에 비해서는 양당의 세력이 강력했죠.

    기성 정치의 타파, 다당제의 안착, 정치 엘리트와 카르텔에서 벗어나는 정당. 모두 좋은 말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필요한 일이죠.

    하지만 그 제도를 가장 잘 이용한 이들이 극우파였다는 사실도, 우리가 인정해야 할 현실입니다. ‘기성 정치권의 타파’라는 구호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가 ‘부유한 백인 중년 남성’인 트럼프라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당제를 부정하는 것도, 기성 양당의 부패를 옹호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제도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하죠. 이것은 한국의 비례대표제도 다르지 않은 것 같군요.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65%로, 지난번 총선에 비해 14%p나 오른 수치였습니다. 그 열망이 향한 곳이 극우정당이라는 사실도, 유럽 정치를 바라보는 우리가 인정해야 할 현실입니다.

    * 위 글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연재되는 <세계의 소식들>을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과 다른 소식들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앞 회의 <세계> 칼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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