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팀 여성감독 '제로' 벽을 뚫겠다
        2007년 06월 02일 07: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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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농구 국가대표 사령탑 출신인 박명수 전 우리은행 감독(45)의 성추행 피소 사건이 지난 30일 박 전 감독의 구속(성폭행 미수 혐의)으로 논란이 매듭지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배경에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 여성 농구계의 대모 박찬숙씨(47)가 입을 열었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농구 코트의 영원한 여왕’ 박찬숙씨는 1975년 16세의 나이로 처음 국가 대표에 뽑혀 1979년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시작으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은메달의 주역이 되고 제7회 아시아선수권대회 이후 4차례 연속 우승을 이끌어 내는 데 빼놓을 수가 없는 선수이다.

    은퇴 후에도 실업팀 태평양화학 코치, 염광여중 감독에 이어 2004 아테네올림픽 KBS 해설위원, 2006 존스컵 국제여자 농구대회 대표팀 코치 등의 활약을 통해 농구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과시하며 최근에는 프로팀 감독에 여자 선수 출신으로서 도전장을 내밀고 있어 관심이 모아진다.

    박씨는 1일 <레디앙>과 만나 민감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것과 관련해 “(후배 일을 지켜보며)정말 통탄할 만큼 가슴이 너무 아팠다”면서 “박 전 감독 개인의 실수로 모든 문제가 마무리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토로했다.

       
      ▲ 한국 여성 농구계의 대모 박찬숙씨
     

    박씨는 “이번 사건을 통해 여자 운동 선수들의 고충과 인권 문제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면서 “성적지상주의의나 남성 감독의 의식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또 다시 재발 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여성 지도자들의 육성이 절박하고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박 감독도 문제지만, 박 감독의 행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구조가 더 문제”라며 “프로 농구가 생긴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단 한 명의 여자 감독이나 코치가 없는 ‘현실’과 절대 권력을 가진 남자 감독이, 그 권력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여자 선수들을 성추행하는 ‘구조를 받쳐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씨는 프로 스포츠 여성 감독에 도전하고 있는 선배로서 “만약 박찬숙도 안 되면 후배들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사명감을 갖고 있다”면서 “막상 직접 현장에서 부딪쳐보니 현실은 많이 힘들었고 이런 어려움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면 안 되겠다는 오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찬숙씨와의 일문일답.

    – 프로 여자 농구 감독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번 취재는 민감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인터뷰인데 응해줘서 고맙다. 

    (감독의 후배 선수 성추행과 관련해)경악스러웠고 정말 깜짝 놀랐다. 여자이자, 같은 농구인이며 또 프로팀 여자 감독에 도전하고 있는 선배 중 한 사람으로서 정말 통탄할 만큼 가슴이 아팠다. 또 성추행한 박 전 감독 개인의 실수로 모든 문제가 마무리 되는것이 안타까웠다.

    – 왜 그러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는가?

    일단, 선수에게 감독은 영원히 군림하는 신이자 군주이다. 게다가 박명수 전 감독(우리은행) 같은 경우는 계약직인 다른 프로팀의 감독과 달리 우리 은행의 정직원이었다. 그러한 감독의 지배력과 이에 대항할 아무런 힘없는 선수의 불합리한 관계가 드러난 것이다.

    딱히, 운동 외에 별 다른 길이 없는 선수들은 구조상 무조건 참아야 한다. 또 ‘성적만 잘 나오면 모든 것이 용서 된다’는 구단주의 의식도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 외에 감독의 도덕성이나 인격 등 다른 문제들에 대해선 관리 감독하지 않고 소홀히 한 것이다. 이윤을 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결과적인 ‘우승’ 만 중요하지, 그 과정은 주 관심사가 아니다. 

    만약 팀 내에서 힘을 가진 실질적인 여성 지도자가 있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생겼을까 싶다. 프로 농구가 생긴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단 한 명의 여자 감독이나 코치가 없는 현실과 절대 권력을 가진 남자 감독이 그 권력에 전적으로 의존 할 수밖에 없는 여자 선수들을 성추행하는 구조를 낳는다.

    절대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박 감독도 문제이지만, 박 감독의 행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구조가 더 문제이다. 도대체 선수들이 무슨 도리로 감독의 횡포에 저항할 수 있겠나?

    – 이러한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은폐한 우리 은행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은행은 박 감독의 성추행 사실을 알고 사임을 결정했으나 언론에는 ‘고위층과의 마찰이 있었다’고 둘러댔다)

    기자가 직접 우리 은행에 가서 왜 그랬는지 물어봐달라.

    – 구체적으로 선수와 감독의 불합리한 구조는 어떻게 형성되나?

    감독은 선수에게 ‘절대적인 신’이다. 한 사람의 ‘선수 생명’은 물론 연봉과 관련된 금전 문제 더 나아가 인생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존재이다. 이런 신에게 거역한다는 건 운동을 접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운동을 접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사나? 현실적으로 선수들에겐 그 후 대안이나 탈출구가 없다.

    특히, 여자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과 달리 은퇴 후 갈 곳이 더 없는데, 그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바로 남자 감독들이다. 특히, 프로 전향 후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모든 권한을 가진 감독과 그렇지 못한 선수와의 불합리한 관계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 밖에서는 그런 일을 잘 모른다. 여자 운동 선수들의 고충이나 어려움에 대해 말해 달라

    일단, 여자 운동 선수는 팀 내 지도부에 같은 여자들이 없어 깊은 고민이나 문제는 스스로 알아서 해결한다. 나이 많은 남자 감독님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때문에 이를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는 친구들은 많이 힘들어한다.

    솔직히 선수 시절엔 그 고충을 잘 몰랐는데, 은퇴하고 나서 동료들이나 후배들에게 얘기를 듣고 정말 많은 문제점이 있는 걸 알았다.

    감독님 방 청소를 하고, 속옷을 빨고, 친근감의 표시로 감독님에게 원하지 않는 뽀뽀를 해야 하는 등 남성 중심의 지배 구조 속에서 가끔은 여자 운동 선수들이 거부 할 수 없는 노예 같은 생활을 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또 일부는 감독의 무서움을 참지 못해 결국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운동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 이런 구조가 만들어 질 동안 박찬숙씨를 비롯한 선배 농구 선수들과 연맹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나름대로 모두가 노력했는데, 이번 일이 생긴 걸 보면 모두가 함께 더 노력을 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제가 여성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다른 선배들과 함께 프로 팀 여성 지도자 도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농구 연맹도 구단의 운영 방식을 관리 감독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연맹도 구단이 농구팀을 해체할까봐 섣불리 각 팀의 지배 구조나 운영 방식에 관여할 수 없는 어려운 사정이 분명히 있다.

       
     
     

    – 언론의 보도가 ‘명 감독 망신살, 성추행’ 등에 집중해 한 개인의 문제로만 그쳐, 사회적으로 여자 운동 선수들의 여려움이 공론화되지 않았다. 이를 어떻게 보나?

    그게 정말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기자들이 무슨 압력이라도 받았는지 궁금하다. 여러 가지 구조 문제나 열악한 여자 운동선수들의 처우 등에 대해 언론들이 사회적으로 환기시킬 것들이 많았는데, 그냥 단순히 박 감독 한 개인만의 책임으로만 끝나버려 아쉽다.

    – 이런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가장 시급히 취해야 할 조치가 있다면?

    지도부의 의식이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긴 세월 간 지속했던 문화가 하루 아침에 달라 질 수 있겠나? 게다가 프로화되면서 감독과 선수의 관계는 권력을 전부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상하 관계가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런 맥락의 일환으로 이젠 지도부에도 실질적인 힘을 가진 여성들이 진출해야 한다. 그 조치가 재발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고, 또 그간 남성 감독들이 만들어 놓은 지배 의식이나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내 프로 스포츠에는 단 한 명도 여성 감독이 없다. 세계 기록을 갱신하고 제 아무리 국가에 공헌한 선수 일지라도 은퇴하면 그냥 끝이다. 운동밖에 모르는 사람들인데, 사후 관리가 전혀 안된다.

    미국 여자 농구같은 경우는 80%가 여성 코치이고 30%가 여성 감독이다. 이게 할당제로 정해져 있다. 근데 우리는 선수들이 은퇴 후 경험을 활용 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전혀 없다.

    공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할 사회가 이러한데,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구단주)이 여성 지도자를 육성하는 건 더욱 쉽지 않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선배들이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여성 지도자에 도전하는 있으며, 남자 선수들처럼 기회를 준다면 최선을 다해 정말 잘 할 자신도 있다.

    – 프로 팀 감독에 도전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느낀 소회가 궁금하다

    프로팀 감독에 도전하기 위해 면접도 보고 별도의 ‘싱크탱크’를 구성해 연구 자료를 만드는 등 다방면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근데, 어떤 두꺼운 벽이 느껴진다. 매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다. 왜 안 되는지 논리적인 근거를 정확히 단 한번도 제시한 적이 없다.

    그저 남자 감독들에 비해 "결단력이 떨어진다", "검증되지 않았다", "경험이 없다", "불안하다"는 등의 ‘막연한’ 이유를 제시 할 뿐이다. 여러 번 감독 면접을 볼 때마다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별도의 브리핑을 준비한다. 면접장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유일하게 지금껏 저 혼자뿐이다.

    우리에게 경험이 없다고 하는데, 실전에서 뛴 경험이라면 (현재 감독으로 활동하는) 남자 후배들보다도 저를 비롯한 많은 여자 선배들이 훨씬 더 다양하고 많다. 또 검증이 안 됐다고 하는데, 단 한 번이라도 여자 선수들에게 기회를 준 다음에 검증 얘기를 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나?

    만약, 박찬숙도 안 되면 후배들에게 과연 무슨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서 기꺼이 희생타가 되고싶다.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다른 선배들과 함께 될 때까지 계속 도전할 거다.

    한국 프로 스포츠 팀 가운데, 여성 감독이 탄생한다면 이는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과 ‘희망’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직접 현장에서 부딪쳐 보니 현실은 많이 힘들었고, 그래서 더욱더 이런 어려움을 후배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생긴다.

    – 박 감독을 고소한 후배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없나?

    정말 큰 용기를 냈고, 어려운 결심을 했다. 선수가 감독을 고소한다는 건, 그 사정이 무엇이든 간에 그야말로 선수 인생을 전부 걸었다는 걸 의미한다. 오죽했으면 모든 걸 각오하고 고소를 했겠나 싶어 안타까웠다.

    또 같이 딸을 키우는 입장으로써 부모님의 마음에 남의 일 같지 않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운동에 다시 매진하라고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충분히 대성할만한 재능 있는 선수이기에 지혜롭게 잘 극복해 낼 거라고 믿는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일이 단순히 그저 한 남자 감독 개인의 실수로만 끝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번 사건을 통해 여자 운동 선수들의 고충과 인권 문제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지배 구조나 의식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또 다시 재발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지도자의 육성이 더욱 절박하고 시급하다.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될 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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