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대통령선거,
    수비안토 국방장관 당선
    [세계] 17,000개 섬, 2억7천만 인구
        2024년 02월 20일 03: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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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에서 대통령선거가 치러졌습니다. 1차 투표에서 당선자가 결정됐습니다.

    선거 후보는?

    선거는 지난 14일 치러졌습니다. 5년의 임기를 두 번, 총 10년 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후임자를 뽑는 선거였습니다.

    주요 후보는 세 명이었습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장관이었죠.

    수비안토 장관은 2014년과 2019년 대통령선거에서 위도도 대통령과 상대 후보로 맞붙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정적으로 꼽혔죠.

    그만큼 위도도 대통령과 수비안토 장관은 삶의 궤적도 달랐습니다. 위도도 대통령은 서민 가정 출신으로, 친근하고 소탈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인물입니다.

    반면 수비안토 장관은 전직 장군입니다. 수하르토 독재정부 시기 특수부대를 이끌며 야권 인사를 납치·살해하고, 소수민족 학살에도 동참한 인물이죠.

    수비안토는 이 문제로 군에서 불명예 제대했습니다. 2008년 귀국하기 전까지는 요르단에 망명하기까지 했죠.

    두 번째 주요 후보는 간자르 프라노워 후보입니다. 여당인 민주항쟁당 소속의 인물이죠. 프라노워 후보는 중부자바 주지사를 지냈습니다.

    민주항쟁당 소속 인물인 만큼, 프라노워는 수하르토 정권에 대한 반독재 투쟁으로 정계에 입문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수하르토 정권의 친위대였던 수비안토 장관과는 분명 다른 길을 걸어온 인물이죠. 프라노워는 민주항쟁당과 인도네시아 민주화 세력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후보는 아니스 바스웨단 후보입니다. 전직 자카르타 주지사로, 위도도 정부에서 교육문화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바스웨단 후보는 과거에는 온건 보수파에 속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카르타 주지사를 역임하며 보수 이슬람세력의 손을 잡았죠.

    특히 바스웨단 후보는 자카르타 주지사로서, 인도네시아의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동칼리만탄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두고 위도도 정부와 갈등했습니다.

    바스웨단을 위시한 이슬람 강경파는 타 종교를 믿는 정치인들을 신성모독으로 고발하는 등, 소수 종교 신자들에게는 위협적인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위도도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인물이 선거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죠.

    선거 결과는?

    형식적으로는 위도도 대통령이 프라노워 후보의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같은 민주항쟁당 소속의 인사니까요.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정치 구도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같은 정당 안에서도 어떤 계파에 속하느냐가 중요하죠.

    다른 정당과 손을 잡는 것도 그리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인도네시아에는 다당제가 정착해 있고, 어차피 원활한 정치 운영을 위해서는 야당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특히 ‘정치 가문’의 등장이 빈번한 인도네시아에서는, 소속된 정당보다는 가문과 그 후계자 구도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위도도 대통령이 직접 지지 의사를 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위도도 대통령은 한때 정적이었던 수비안토 장관의 손을 잡았습니다.

    수비안토 장관은 위도도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부통령 런닝메이트로 위도도 대통령의 아들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를 지명했죠.

    기브란은 위도도 대통령의 장남으로, 수라카르타 시장을 맡고 있던 인물입니다. 수라카르타 시장은 위도도 대통령 본인이 정치 경력을 시작한 자리이기도 하지요. 사실상의 세습이었습니다.

    게다가 기브란 시장은 만 40세가 되지 않아 부통령 출마도 헌법상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선출직에 오른 경험이 있다면 나이 제한 없이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는 상식 밖의 결정을 내리며 그의 출마를 허용했죠.

    같은 민주항쟁당 소속의 간자르 후보는 민주진영의 원로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메가와티는 전직 대통령이자 민주항쟁당의 현직 총재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입니다.

    그러니 간자르 후보는 수카르노라는 강력한 ‘정치 가문’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위도도 대통령은 그 정통 세력에서는 벗어난 인물이었죠.

    오히려 위도도 대통령의 선택은 자신만의 ‘정치 가문’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정치적 수싸움은, 정적과 손을 잡은 위도도 대통령의 큰 승리로 끝났습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선거는 결선투표제로 치러집니다. 전국적으로 50% 이상 득표하고, 각 주에서 20% 이상 득표해야만 1차 투표에서 승리를 확정지을 수 있죠.

    만약 조건을 만족하는 후보가 없으면 1위와 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러야 합니다. 결선투표는 6월 26일에 치러질 예정이었죠. 1대1 승부에서 판세를 뒤집기 충분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선거에서 수비안토 후보는 의외의 선전을 거두었습니다. 60%에 가까운 득표를 통해 1차 투표에서 승리를 확정지었습니다. 프라노워는 17%, 바스웨단은 25%를 얻었죠.

    수비안토 후보는 승리를 선언하며 자축했습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하지만, 오만해져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도네시아 국민 모두의 승리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 인도네시아 대통령 당선인)

    앞으로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는 인도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하루 만에 치러지는 선거로는 인도네시아 대선이 가장 큰 선거죠.

    특히 인도네시아는 17,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입니다. 이 모든 곳에서 선거를 치르고 개표하는 과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결과가 대부분 확정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최종 개표 결과 확정까지는 1개월 여가 더 소요될 전망입니다.

    그러니 그 사이 선거 결과를 둘러싼 시비도 이어지겠죠. 애초에 기브란 시장의 부통령 후보 지명부터 잡음이 많았으니, 부정선거 문제가 떠오를 것도 분명합니다.

    벌써부터 프라노워와 바스웨단 후보는 대선 기간에 대규모 부정행위가 발견됐다며, 선거 불복 의사까지 시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부정선거 문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더러운 투표(Dirty Vote)>가 만들어져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중부 자바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죠. 중부 자바 지역과 주변의 욕야카르타는 인도네시아 민주화운동의 상징과 같은 지역이기도 하고요.

    대선과 함께 치러진 총선 결과도 지켜봐야 합니다. 다당제 국가인 인도네시아 의회에서는 선거 이후 다양한 합종연횡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요.

    특히 대선과 달리 총선에서는 민주항쟁당이 많은 의석을 차지하면서, 새로 출범할 정부로서는 민주항쟁당의 협조를 구하는 것도 필수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수비안토와, 부통령이 될 기브란 사이 관계 설정에도 잡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는 양 진영의 연합으로 치렀지만, 앞으로는 변수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수비안토는 분명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는 욕심은 점점 커지겠죠. 기브란에 대한 견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수비안토는 독재정권에 함께한 군인 출신의 권위주의적 지도자입니다. 그가 아무 조건 없이 이 협력 관계를 이어가리라고 기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니켈을 비롯한 지하자원과 여러 천연자원을 주로 수출하는 국가입니다.

    조코위 정부는 지하자원을 팔아 만든 부를 기반으로 인프라를 건설하고 경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니켈 가격은 하락하고 있고, 이것은 인도네시아에게 부정적인 신호입니다. 특히 수비안토 당선인은 위도도 대통령과 달리 해외 투자 유치에도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죠.

    수비안토 당선인은 이미 국방부 장관 시절부터 예산 문제로 재무부와 자주 충돌했습니다. 그의 출마 소식을 듣고 재무장관이 사임하려 했다는 소식까지 있었을 정도죠.

    이런 상황에서 수비안토 정권은 위도도 정권이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수도 이전과 인프라 건설, 대규모 빈민층 복지 정책까지 계승해야 합니다.

    위도도 대통령에게는 자신의 공약 사항을 추진하면서도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기득권층과 타협해 예산을 가져올 정치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비안토는 어떨까요. 아직 그의 정치력은 충분히 시험받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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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정치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오랜 기간 군사 독재를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반대파에 대한 잔학한 탄압이 있었죠.

    수하르토 이후 인도네시아는 민주화에 성공했지만, 정치의 경직성은 해소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조차 긴 독재가 남긴 흔적이라면 흔적이겠죠.

    하지만 위도도 대통령은 그 경직된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10년 동안 성공적인 임기를 치러냈죠.

    그러나 그 결말에 이르러, 위도도 대통령 역시 새로운 ‘가문 정치‘의 길을 여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정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수비안토는 한때 정적이었던 위도도 대통령의 손을 잡고 당선됐습니다. 그의 당선에 위도도 대통령의 공은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앞으로 이어질 5년 간의 정치에 위도도 대통령의 책임도 작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위 글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연재되는 <세계의 소식들>을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과 다른 소식들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앞 회의 칼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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