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후보 북인권 등 인도적 문제 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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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25일 07: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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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정 예비후보는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길>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최근 여러 정치권 인사들이 개성을 방문하고, 한반도 평화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의 평화체제론은 분단고착형이다. 이들은 군사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고, 남북한을 상이한 국가적 실체로 고착화하며, 한반도 호혜적 발전의 장애물인 분단을 극복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다.”

    심상정 정책의 신선함과 의문점

    타당한 지적이다. 사실, 현재 한반도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많은 이들이 평화를 얘기하지만 그 ‘평화를 어떻게 이루고, 또한 어떤 평화를 말하고 있는가’라는 점에 있어서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도 바로 그것이다.

       
      ▲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석했던 북한 응원단  
     

    그러나, 다른 한편 현재의 정치적 균열선이 ‘분단 vs 통일’이라는 단층선 위에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심상정 예비후보가 말하는 것처럼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을 ‘분단세력’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일반 국민들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분단세력이라고 보십니까? ‘예’라는 대답이 얼마나 되돌아 올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심상정 예비후보가 제시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경제론’이 갖고 있는 신선함이 그와같은 인식에 의해 가려져 버리지 않을까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심상정 예비후보의 ‘한반도 평화경제론’은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의 공약과 그동안의 진보진영이 내놓았던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과 비교해 보면, ‘진보적인 한반도 평화-통일의 정치경제학’ 정립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사실, 이 부분은 진보진영이 제대로 손도 대보지 못하고 공백상태로 남겨 놓았던 부분이다. 그러나, 그 기본 인식이 1970, 80년대를 풍미했던 ‘분단 vs 통일, 통일 vs 반통일’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면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평화통일 정치경제학에 큰 기여

    ‘어떤 통일인가’, ‘통일은 왜 필요한가’라는 문제제기가 정치 현실과 일반 국민들의 정서에 더 부합되지 않을까? 군사력에 기반한 불안정한 평화인가, 아니면 군축을 통한 지속가능한 평화인가? 결국은 남측이 주도하는 ‘흡수통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통일론인가, 아니면 남북 상호 공존과 공생을 보장하는 통일인가? 통일은 왜 필요한 것인가? 라는 질문이 오히려 핵심이 아닌가라는 점이다.

    즉 분단이냐 통일이냐가 아니라, 오히려 어떤 평화인가, 어떤 통일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민주노동당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서, 권영길 예비후보는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 시대를 열겠습니다>에서 “<한반도 시대 국가 비전>은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상생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새로운 그릇이어야 하며, 대미 의존적이고 남북대결적인 낡은 국가비전은” “변형된 분단과 냉전의 악몽만을 되새길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앞서 제기한 질문에 충분한 대답을 주고 있지는 않다.

    반면에, 세 명의 예비후보 중에서 노회찬 예비후보는 <P+1코리아 구상>의 ‘<P+1평화체제>의 3대 원칙’에서 진보진영에서 말하는 ‘평화란 무엇이며, 또한 통일은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의미 있는 총론을 제시하고 있다.

    “구조적 폭력까지 사라진 적극적 평화”, “국가안보의 개념에서 벗어난 인간안보의 개념으로 확장한 평화체제”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평화체제 수립의 과정이 정전체제가 낳은 “남과 북 내부의 비정상성을 극복하는” 과정이 되어야 함을 제안하고 있다. ‘어떤 평화(체제)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남북분단 상태의 평화는 온전하지 못하며, 조그만 충격에도 깨져버리고 만다. 돌이킬 수 없는 평화는 분단을 넘어 통일을 움켜잡을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평화를 지속가능하게 하고 공고화하기 위해서라도 통일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통일을 그저 당위로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라도 통일이 달성되어야 할 목표라는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고자 한다고 보인다.

    통일국가의 형태는 다양한 가능성에 열려있어야

    이것은 통일방안에 대한 정책과도 연결된다. 권영길 예비후보는 ‘연합연방통일공화국안’을 제시하고 있다. ‘연합연방통일공화국’은 1국가-2체제-2정부로 시작하며, 2개의 지역정부가 자체의 군사권과 외교권을 행사하다가 점차 중앙정부로 그 권한을 이양하는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그런데, ‘연합연방통일국’은 연방헌법에 기초한 통일국가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사실상의 ‘연방제’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연합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다보니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2개의 지역정부가 자체의 군사권과 외교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유럽연합(European Union)과 같은 국가연합(confederation)에 가깝다. 그러나, 1국가 단계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북한이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 자체가 이와같은 개념상의 혼란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연합연방통일공화국안도 마찬가지의 문제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이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노회찬 예비후보의 코리아연합안이 솔직해 보인다. 이에 비해, 심상정 예비후보의 한반도 평화경제공동체안은 국가연합과 연방에 대해 개념적, 시기적 구분을 명확하게 하고 있지 않다.

    노회찬 예비후보는 국제법상 2개의 국가이지만 하나의 국가를 준비하는 통일 1단계(코리아연합)를 상정하고 있다. 현재의 유럽연합과 같은 국가연합의 단계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구성과 운영도 유럽연합과 비슷하다. 가장 현실적 실현 가능성이 높은 모델이다.

    또한,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감안한다면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그 단계를 지나 남북통합의 단계에 접어든다고 해도 그와 같은 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 모델은 남북한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또한, 그러한 전제가 있다면 향후의 통합국가의 형태는 열려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통일방안(사실, 통일국가의 형태)을 두고 너무 많은 논쟁을 벌여왔다. 남북정부가 제시한 통일방안만 들더라도 만만치 않다. 그 이면에는 통일방안 경쟁을 통해 체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남북 양측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러한 통일방안 논쟁에 대해 ‘잠정적 유보’를 한 것이, 6.15 남북공동선언의 제2항 정신이다. 많은 통일방안이 제시되고 토론이 진행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일방안의 백가쟁명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뿐만아니라, 통일방안, 아니 통일국가의 형태는 다양한 가능성에 열려 있을 필요가 있다. 국가연합을 거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바로 연방제 통일국가로 갈 수도 있다. 혹은 국가연합을 오랜 시간 거치다가, 아예 ‘하나의 국가’로 통합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아무리 국가 형태에 대한 ‘그림 그리기’를 한다고 해서 그대로 진행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 드러나고 있는 모습은 남북이 경제공동체를 통해 정치공동체로 발전해 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그 정치공동체의 구체적인 양태는 평화, 공존, 공생의 원리에 입각한다면 다수의 선택지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형태에 대한 논의를 무엇이 더 ‘통일지향적인가’를 논하는 것은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격’이다.

    통일은 지상과제가 아니고,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와 민중의 복리 증진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특히, 두 개의 국가권력을 하나로 합쳐 ‘1민족1국가’를 이루는 것)을 모든 판단의 준거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준거는 무엇이 평화와 인권, 한반도 민중의 복리 증진에 도움이 되는 과정인가가 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정치경제학

    이번에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로서 출사표를 던진 세 명의 예비후보가 내놓은 외교안보 분야 정책공약의 가장 주목해 볼 만한 특징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과 관련한 ‘경제론적 접근’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2년 민주노동당의 대선공약과 비교해 보면 커다란 진전이 아닐 수 없다. 2002년 민주노동당이 제기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군축의 경제적 효과를 LG경제연구원의 연구결과로 예시하는 수준에 머물렀었다.

    군비경쟁과 불안정한 한반도 정전체제가 낳은 부정적 효과를 밝히고,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그 비용절감 효과에 대한 논리를 제시한데 그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세 명의 예비후보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더욱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구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심상정 예비후보의 정책이 눈에 띤다. ‘한반도 평화경제론’이라는 명칭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자신의 장점을 최대로 살려 그동안 진보진영이 갖고 있었던 약점을 극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평화경제론’을 국내적 수준의 서민경제론, 동아시아적 수준에서의 호혜경제론과의 연관 속에 위치시키고 있다는 점과 한반도 평화경제에 대한 영역별 구체적 추진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점은 특히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직 ‘서민경제-평화경제-호혜경제’ 3자 관계의 연관 고리를 구체화해야 할 과제가 남겨 있는 듯하지만, 이와같은 시도는 향후 진보적-민중적 관점에 입각한 ‘한반도 평화의 정치경제학’을 정립함에 있어 큰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두 명의 예비후보 뿐만아니라, 진보진영 전체가 ‘한반도 평화경제’ 구상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정치경제학적 의미를 풍성하게 하는데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권영길 예비후보 또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분단과 사회양극화로 점철된 한반도의 경제를 38선을 넘나드는 새로운 한반도 경제공동체로 회복시키겠다”고 하면서 “남북통합경제권”과 “북방대륙 경제권 개척”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남북통합경제권”과 “북방대륙 경제권 개척”을 한미FTA에 대한 ‘진보적 대안’과 한반도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협력하는 기회의 지역’으로 전환하는 의미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발상이 그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방대륙경제권 개척”이 한미FTA에 대한 ‘진보적’ 대안이 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권영길 예비후보는 사람경제론의 ‘국제적 버전’으로서 “사회주도 협력국가론”을 제창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 내용에 있어서는 상대국가의 빈곤문제, 문맹타파, 교육, 인프라 등의 협력과 공동번영의 원칙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좀더 가혹하게 평가해 본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창했던 ‘철의 실크로드 구상’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필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철의 실크로드 구상’은 탁월한 발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구상이 한미FTA에 대한 ‘진보적 대안’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심상정 예비후보의 ‘한반도 평화경제론’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진보적 정치경제학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 경제를 단순히 시장화, 민영화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북한 실정에 맞는 협동조합, 공동경영체제 등 다양한 운영형태를 개발”하고 “한반도 풀뿌리 경제네트워크를 형성할 필요성을 예시”하고 있지만 구체성은 여전히 부족하다.

       
      ▲ 2006년 11월 민주노동당 방북단 (사진=민주노동당)
     

    ‘북한인권’과 남북한 사이에 온존하는 인도적 문제 우회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과정 속에서 한반도 민중들의 이해가 관철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수구보수 세력의 ‘흡수통일론’이나 자유주의 세력들의 ‘남북경협론’은 차이점도 있지만, 통일을 ‘남측 체제의 북으로의 단순 확산’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스탈린주의 모델의 변형태인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도 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남북한이 평화와 통일의 과정에서 모두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즉 평화, 인권, 민중의 복리가 함께 진작될 수 있는 평화와 통일의 과정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더 많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할 듯하다.

    이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심상정 예비후보가 제안한 ‘남북한 사회헌장(Korea Social Chapter)’ 제정이다. 사회헌장은 “기초생활 보장, 최저임금, 기본 먹거리, 공공의료 등 사회기본권을 남북한에 단계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취지이다.

    이 사회헌장은 남북한 평화와 통일의 과정과 인권, 민중복지 향상의 병행추진을 위한 준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사회헌장을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않고 동북아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발상을 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또한, 노회찬 예비후보의 <P+1 코리아 구상>에 담겨있는 “남북노동협약 체결”도 남북 노동자의 인권과 생존권을 보장하고, 남북한 민중들이 ‘피고용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능동적인 참여 주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세 명의 예비후보 모두가 ‘북한인권 문제’와 남북한 사이에 온존하고 있는 인도적 문제들을 우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제사회와 국내정세에 대한 민감성의 부족을 보여 주는 것이며, 또한 기존 진보진영의 딜레마와 한계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현 정부 들어 납북자 문제와 국군포로 문제 등이 해결을 향한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진보진영은 수수방관해왔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북한인권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진보진영이 우회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미 한국 시민사회의 진보적 부분은 ‘북한인권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 ‘북한인권의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로 그 논의를 진전시켜 가고 있다.

    그동안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진보진영이 ‘높은 신뢰’를 얻지 못한 이유를 행태와 내용 양 측면에서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그 행태와 내용이 1980년대 사구체 논쟁 혹은 NL-PD 대립 시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행태와 내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의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북한 인권과 남북한 사이에 엄존하고 있는 인도주의적 이슈에 대한 진보진영의 입장임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도, 북한인권 문제와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등의 인도적 문제는 대선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의 후보들이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우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보진영의 대선 후보가 또다시 ‘모든 인권의 기본은 먹고 사는 문제다’라는 박정희식 논리를 구사한다면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북)아시아의 평화

    또한, 세 명의 예비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외교안보 정책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가 한반도의 평화 통일의 과정을 동북아시아 차원의 평화질서 구축과 연관 속에서 구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 대선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통해 다자안보협의체와 동북아시아 비핵지대, 그리고 동아시아 피스라운드(평화를 위한 원탁회의. 정상 수준의 피스라운드, 장관 수준의 피스라운드, 시민사회의 피스라운드)를 제시한 바 있다. 세 명의 예비후보 모두 한반도 문제의 해결과 통일의 과정을 동(북)아시아 수준에서의 대안적 안보협력 질서 구축과 연관 지어 제시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무엇보다도, 노회찬 예비후보와 심상정 예비후보가 6자회담의 성과를 동(북)아시아 차원의 다자안보협의틀로 전환한다는 ‘원칙적인 입장 표명’에 그치지 않고, ‘동북아시아 비핵지대 조약’ 체결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동북아시아 비핵지대 논의는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만이 아니라, 국제반핵운동 진영 내에서도 이미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비핵지대 조약의 체결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 뿐만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체가 핵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진보외교의 이슈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작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핵 군비경쟁의 위험성이 도래하고 있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핵무장 움직임이 초래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대한 영향을 고려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를 넘어 ‘동북아시아 비핵지대’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권영길 예비후보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남한 선도군축과 주한미군

    같은 맥락에서,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들이 공통적으로 군축을 평화협정 및 평화체제와 병행추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은 적확한 현실 인식이다. 당위적 측면에서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남북한 상호군축과 병행 추진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도 남북한 상호군축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한반도의 통일이 가능할지 예측불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단한 예를 든다고 하더라도, 남북을 합쳐 2백만의 대군을 거느린 통일국가의 등장을 달가워할 주변국가가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다만, 군축의 과정에서 꼭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가 있다. 우선, 예비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제안하고 있는 남측의 선도군축의 내용과 그 효과와 관련된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가동되고 있는 6자회담과 관련해서, 현재는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와 6자회담에 종속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관계 축을 어떻게 복원하고 확대 심화해갈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남북한 당사자주의로 협애하게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주변국가들과 북한, 주변국가들과 한국 사이에 창출되는 공동이익과 남북한 사이에 창출되어야 할 공동이익은 같을 수가 없다.

    특히, 북한 핵의 폐기에 한정되지 않는 지속가능하고,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더 나아가 통일을 비전으로 갖고 있는 남북한 민중들의 입장에 설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남북한의 민족적-민중적 공동이익을 구성해내기 위해서는 남북 축의 복원과 확대 심화는 필요불가결하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태도 변화가 관건이다. 군사문제에 관한 한 아직도 북한은 미국과의 담판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남측의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 명의 예비후보들은 각각 이에 대한 복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해 볼 것은 선도군축(노회찬, 심상정)을 통해 남북한의 상호군축으로 발전갈 수 있을 것인가이다.

    진보적, 평화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군축’의 의미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세계 10위권안에 들어 있는 군사강국인 한국이 자체적으로 제한적으로라도 군축 조치를 취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에 있어서 ‘선도군축’이라는 표현은 북한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의도를 내포한다.

    그렇다면, 남측의 병력감축과 무기도입사업 중단 등과 같은 움직임이 ‘선도’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냉정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북한은 오히려 남한의 ‘군축’보다 주한미군의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을까? 이미 주한미군은 미국의 변화된 군사전략에 따라, 한반도 남쪽을 북한을 포함한 적대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 능력을 제고하는 군사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변화하고 있다. ‘전략적 유연성’을 핵심으로 하는 주한미군 재배치에 북한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도군축이 정말 ‘선도적’이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해 위협적이지 않도록 변하는 것이 핵심일지도 모른다. 즉, 주한미군의 ‘군사 태세’가 방어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군축은 선도적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 명의 예비후보 모두가 이미 궤도에 오른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제출하지 않은 점은 의문이다. 궁극적으로는 한미동맹의 해소를 지향하면서도 평화체제 과정에 들어서기 이전에 ‘주한미군 문제’를 건드리겠다는 후보는 아무도 없다.

    특히, 미국의 핵우산(한국에 대한 적극적 안전보장 조치) 제거에 대한 언급도 보이지 않는 것은 문제점이라고 보인다. 이미 예전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진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은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수립 이전에도 문제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현가능성’이라는 문제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 한 가지를 더 보탠다면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들 중에서 국방 개혁과 방위정책의 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한 후보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은 국방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라는 기초상식도 있다. 그러나, 이 분야에 관한 한 민주노동당 뿐만아니라, 진보진영 전체가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분야에 대한 정책을 조만간 확인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공약에 대해서 가장 흔한 비판은 그 ‘실현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의 문제는 결코 고정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해 두고 싶다. ‘실현가능성’이라는 질문은 대부분 현실을 주어진 것으로 보고, 고정된 것으로 전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민주노동당이 현실을 주어진 것으로, 고정된 것으로 전제하는 관점에서 제기되는 문제제기에 구속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관건은 탄탄한 논리와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 그리고 일관된 실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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