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내 폭행과 괴롭힘, 
    그는 벗어날 수 있을까요?
    [동행일기-④] 험난한 '사업장변경'
        2024년 01월 25일 12: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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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노동자는 힘들고 위험한 일을 아무 불평 없이 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봅니다. 힘들어도 아파도 말할 수 없고, 위험한 일을 강요 당해도 그저 참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힘들게 용기를 내어 하소연을 하면, 잘못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단 괴롭힘과 폭행 징계까지 해가며 이주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현실,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노동자를 외면하며, 규정을 들어 겁박하는 공무원들, 도대체 이주노동자들은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호안 씨는 광주광역시의 한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이주노동자입니다. 작년 초에 이 회사에 들어온 호안 씨는 냉동고의 큰 고기 덩어리를 작업장으로 운반하거나, 고속 톱날이 회전하는 골절기로 고기덩어리를 자르고 소분 포장하여 다시 냉동고로 옮겨 보관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워낙 위험한 일이라 골절기에 안전장치를 설치해줄 것을 회사에 요청했지만 번번이 사장님은 ‘네가 오기 전에 팀장님, 대리님, 이사님들이 다 하던 일이야.. 하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어.’라고 답했습니다.

    호안 씨는 이후 늘 불안한 마음으로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호안 씨는 혹시 모를 사고가 염려되어 팀장에게 고기 절단 업무 말고 다른 업무를 시켜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습니다. 거절뿐만 아니라 이야기 중에 팀장에게 폭행을 당해 손목과 허리를 다쳤습니다. 험악한 상황에서 112에 신고를 했고 경찰관이 출동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폭행 중에 다친 팔목의 통증이 너무 심해 사장에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이야기 했지만 사장은 비아냥거리며 동의해주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호안 씨는 조퇴하고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후에 회사는 지속적으로 그를 괴롭혔습니다. 병원에서 약 2주간 치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병가를 신청했지만 회사는 병가를 내줄 수 없다며 일을 하면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쉴 수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상태는 호전될 수 없었고 일주일이 지나도 손목은 여전히 붓고 멍들어 있었습니다. 

    회사는 출근한 그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사장과 팀장은 ‘일하고 싶으면 경찰서에 가서 고소를 취하하라.’고 압박하며 합의서에 서명을 강요했습니다. 그는 일을 시켜줄 것을 요청했지만 차마 서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형식적인 사과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일을 하게 되었지만 팔과 손목이 아직 낫지 않은 그에게 무겁고 차가운 고기 덩어리를 다루는 일을 시켰습니다. 아픈 손목으로 위험한 기계를 다루다 다칠까 걱정되어 다른 업무를 시켜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업무지시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업무정지라는 징계를 내려졌습니다. 처음에는 이틀 정지시켰다가 업무에 복귀한 후에 다시 위험한 업무를 시켜서 일을 못한다고 하니 한 번 더 2주간 업무정지를 시켰습니다. 

    결국 호안 씨는 이런 사연을 가지고 우리 센터에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고용센터에 구직등록(사업장변경)을 요청하고 담당자에게 이 사건과 관련한 ‘약식명령’을 제출했습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이 사업장에서 계속 일하면 직장 내 괴롭힘을 지속적으로 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고용센터의 직권으로 사업장변경을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담당자는 폭행을 한 피의자의 형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장 변경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폭행을 당한 상사 밑에서 계속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노동자의 처지를 감안하여 임시사업장변경이라도 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담당자는 호안 씨에게 ‘사실 확인서’에 서명을 요구하였습니다. 그것은 조사 후에 사업장변경 사유가 본인의 귀책사유라면 알선 및 고용관계 해지 후 출국 당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입니다. 이것은 이주노동자에게 큰 심리적 부담을 줍니다. 노동자가 사업장변경 신청 시 사유가 잘못되었다면 그에 맞게 제재 처분을 하면 그만이지, 근거 없는 출국조치라는 것을 들먹이며 이주노동자를 겁박하는 것입니다. 고용노동청은 노동자의 요청에 대해 적극적인 사업장변경 조치를 해주기는커녕 피해자인 노동자가 가해자에 대한 벌금형의 약식명령까지 제출하였음에도 새로운 사업장에 취업하는 것을 사실상 방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알선 과정에서 새로운 사업주에게 외국인근로자의 진정·소송 중임을 밝히고 나중에 진정·소송의 결과에 따라 출국조치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노동자에게 매우 불리한 것입니다. 실상 국내 사정에 어두운 이주노동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어 아무리 폭행과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사업장변경을 신청하지 못하게 하는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이것은 결국 이주노동자에게 또 다른 불안한 노동환경을 야기시킵니다.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변경 사유”가 있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노동자가 본인 잘못이 없다고 증명해야 되는 일이 이주노동자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잘못이 없는 노동자가 자신의 잘못이 없음을 증명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만약 증명할 수 있다 해도 그 후에 다른 사업장으로 갈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절차와 정신적인 압박을 당해야 할까요?

    여러분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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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하늘 (이주민센터 동행 사무국장)

    한국 생활 8년차 결혼이주민이면서 이주 활동가이다.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 학사, 사회복지 실천 석사 졸업을 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차츰 한국 사회와 인권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한 독서 모임에서 원옥금 대표를 만나 그녀의 열정적인 마인드에 끌려 이주민센터 동행에서 일하게 되었다. 상담을 하면서 이주민노동자들이 타국에서 겪는 문제들을 접하고, 조금이라도 그들을 위해 힘을 보태줘야겠다고 매번 다짐한다. 

    필자소개
    이주민센터 동행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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