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인 줄 알았는데 밤이라니?
    [동행상담일기-3] 이주어업노동자의 삶과 노동
        2023년 12월 20일 03:1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코리안드림이라는 부푼 희망을 안고 찾아온 한국에서, 이주어업노동자들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아니 고달프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처참한 현실에 그들은 무너져간다. 

    치엔씨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거제에 있는 선주와 계약하고 한국에 입국하여 일하게 되었다. 그가 한국에 오기 전 서명한 계약서의 근로조건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7시까지 하루에 8시간을 근무하고 하루에 1시간 휴식을 가질 수 있으며 한 달에 총 209시간 근무한다.”고 되어 있었고 이 조건에 동의한 그는 가족 부양을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그러나 그의 코리안 드림은 한국에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깨지고 만다. 

    그가 하는 업무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선상에서 낚시로 갈치를 잡는 일이다. 한 번 출항할 때마다 약 13시간 정도 계속 서서 낚시하고 잡은 갈치를 통에 넣고 다시 서서 낚시하기를 반복한다. 그가 알고 있던 계약조건과는 전혀 다르게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오후 4시나 5시에 출항하고 다음 날 오전 6시 30분까지 밤샘 작업을 시켰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할 뿐 아니라 잠시 쉴 틈도 없이 흔들리는 뱃전에 서서 갈치를 계속 낚아야 했다. 오전에 잠을 자야 했지만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만성적인 두통에 시달리면서 점차 건강이 악화됐다. 허리, 목에서 다리까지 어디 한 군데 편한 곳 없이 통증이 번져갔다. 뿐만 아니라 힘든 노동을 시키면서 사업주는 고작 빵과 우유만 주고 제대로 된 식사도 제공해주지 않았다. 

    그는 이런 열악한 근무환경과 과도한 노동을 견디다 못해 서툰 한국말로 사업주에게 힘들다고 호소하며 사정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할 수 있는데 왜 너만 못하냐’라는 답만 들었다. 힘들고 억울한 치엔씨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수소문 끝에 우리 센터를  찾아왔다. 

    우리가 치엔씨가 보여주는 계약서를 검토해보니 계약서 4-5-6번 항목에서 근무시간, 휴게시간, 휴일 등 근로조건이 치엔씨가 언급한 것처럼 쓰여 있었지만 오른쪽 부분 한 켠에  “<근로기준법 제 63조>에 따라 농림, 축산, 양잠, 수산 사업의 경우 같은 법에 따른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대한 규정은 적용 받지 않음”이라고 따로 쓰여 있었다. 밑에 베트남어로 번역된 부분도 있었다. 치엔씨에게 그 내용을 보여줬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센터 ‘동행’이 법에 정한 내용들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이 제외되는지 열심히 치엔씨에게 설명했지만 그는 계약에서 쓰인 근무시간대로 이행해야 하는 것이지, 왜 이상하고 이해되지 못한 내용을 추가로 넣어서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도록 하는 것은 애초부터 사기를 친 게 아니냐고 우리에게 여러 번 반문했다. 그는 이제야 알게 된 예외조항을 도저히 받아드리기 힘들고 억울해 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다. 차마 그를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우리는 그와 함께 진정서를 작성해 관할 고용센터에 진정했다. 하지만 계약서에 예외조항 때문에 진정서를 보내도 소용없다는 말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받은 고용센터의 답변도 역시 같은 내용이었다..

    얼마 전, 상담한 다른 어업 노동자가 생각났다. 그는 한국에 입국한 후, 5개월 내내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매일 출항하고 조업을 해야 해서 너무 지친 나머지 센터에 도움을 요청해왔었다. 치엔씨와 일하는 환경은 조금 다르지만 같은 것은 사업주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하는 시간이나 쉬는 시간이 계약서에 쓰인 것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고 일이 없어야만 쉴 수 있었다. 일이 있으면 계속 해야 한다. 어업 노동자들은 계약상으로 한 달에 약 209시간 정도 일하지만 사실은 완전 다르다. 우리 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는 노동자들은 적어도 한 달에 계약보다 100시간 정도 더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어업노동자들의 이런 사례는 끝이 없다. 장시간 무리한 노동은 필연적으로 사고로 이어진다. 50여년 전 전태일 열사가 외친 것처럼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도 계속 쓰면 고장 나는데 하물며 이런 고강도의 장시간 노동을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외국인 노동자는 고장 날 때까지 쓰다가 버리면 그만인 소모품이 아니다. 

    계약서 구석에 예외조항을 슬며시 비겁하게 적어 놓고, ‘그런 줄 몰랐냐?’며 조롱하는 것은 기만이며 사기이다. 이를 묵인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인권국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63조>는 비단 외국인 노동자뿐 아니라 내국인 노동자를 위해서도 폐지되거나 개정되어야 한다. 적어도 남들보다 어려운 조건에서 일하는만큼의 합당한 댓가가 보장되어야 하지 않나?

    여러분 어업 노동자들의 이런 현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옥금(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한국 생활 26년차 결혼이주민이면서 이주 활동가이다. 베트남, 한국어 통역을 하면서 한국 사회의 제도를 알아야 제대로 된 상담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법 공부를 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법무학과를 졸업했다. 이주민의 현실이 늘 불안해 ‘안 安’이라는 글자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오늘도 상담에 임하고 있다. 

    * 동행상담일기② “나는 기계가 아닙니다”

    필자소개
    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