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행상담일기②
    "나는 기계가 아닙니다"
    [동행] 아프다고 하소연해도 '불허'
        2023년 11월 24일 11: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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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휴가를 앞두고 만씨에게 전화가 왔다. 사실 처음 만씨에게 연락을 받은 것은 작년 이맘때였다. 나는 만씨와 함께 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를 방문했었다. 그 당시 담당자가 써준 만씨의 업무적합성평가 결과서에는 “현재 하고 있는 업무를 계속하는 것은 병을 악화시키거나 더 심각한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여전히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하던 만씨는 병이 더욱 악화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일을 하기 어렵다는 전화를 나에게 한 것이다.

    만씨는 4년 10개월 동안 의류 부자재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했다. 그동안 아주 성실하게 일했던 것이 참작되어 이후 성실근로자로 같은 회사에 재고용되었다.

    만씨가 이 회사에서 주로 하는 업무는 코팅된 원단 롤을 포장하고 팔레트로 운반하여 적재하는 일이다. 자동포장기로 들어가는 컨베이어벨트에 원단을 올려놓고, 무거운 롤들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포장을 한다. 무게는 주문에 따라 다르지만 20-40-60kg의 무거운 원단을 계속 운반한다.

    만씨는 언젠가부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장기간 무거운 원단을 나르는 일 때문이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지경이 된 만씨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계속 무거운 원단 롤을 운반하는 작업은 계속되었고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그는 일을 계속하면 허리가 아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만씨는 사장에게 이 일이 너무 힘들어서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고 말하고 이직을 요청했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를 사장에게 보여줬지만 사장은 만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게다가 사장은 만씨에게 치료를 해보고 나으면 회사에서 계속 일하고, 낫지 않는다면 베트남으로 출국시키면 시켰지 사업장 변경에 동의해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만씨는 그동안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해 왔고 나름 오랫동안 회사에 기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서운한 감정과 답답한 마음에 몹시 괴로웠다. 일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몸이 지금보다 더 망가지면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너무 답답하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나는 기계가 아닙니다.’라고 만씨는 말했다. 사업주 동의 없이는 절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허리통증으로 혼자서 끙끙 앓던 만씨는 결국 우리 센터에 찾아와 다시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노동자가 아무리 아프다고 하소연해도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의 말을 쉽게 믿어주지 않는다. 병원과 노동부 기관의 전문가가 써준 서류가 있어도 사업장 변경을 허락해 줄까 말까이다.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데 사업주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결국 고용센터에 진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용센터 측에는 진단서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이 받아 업무적합성 평가서도 함께 제출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작년 만씨와 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에 동행해 전문가로부터 업무적합성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업무적합성평가서에 나와 있듯이 하던 업무를 계속하면 병이 악화되고 더 심각한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허리에 부담이 가지 않는 직종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즉 사업장 변경이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그렇지만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와 업무적합성평가서를 첨부해 진정하고 사업장 변경을 원한다고 했지만 고용센터 담당자는 이를 불허했다. 이유는 ‘치료 기간이 짧아 추가적인 치료 노력이 필요하며, 사업장에서 업무전환 배치 가능함으로 사업장 변경은 불허한다.’ 라는 답변을 보냈다.

    사업장 변경이 되지 않았지만 만씨가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지 않는 부서로 옮기게 된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회사 측은 전체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만씨에게 부서를 옮기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딱 2주일뿐이었다. 정확히 2주일이 지나자 만씨는 예전처럼 정해진 생산량에 맞춰 무거운 원단을 나르고 포장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함께 일하던 외국인 동료들이 귀국하는 바람에 여러 명이 하던 일을 만씨 혼자서 모두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만씨는 허리 통증뿐만 아니라 다리가 저리고 발바닥까지 밤낮없이 따끔거렸다. 만씨의 증상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이러면 큰일나겠다 싶어 만씨는 병가를 내고 치료를 받았다. 일을 하지 않고 치료만 열심히 받았는데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만씨는 혹시나 심각한 병일까봐 걱정되어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추간판 전위, 디스크’였다.

    그는 2022년 7월부터 다시 우리 센터에 찾아올 때까지 병원에 가서 총 31번에 걸친 꾸준한 치료를 받았지만 통증이 사라지기는커녕 같은 업무를 계속해온 탓에 증상이 더욱 심해진 상태였다. 만씨는 MRI 결과를 사장에게 보여줬지만 사장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장은 만씨의 건강상태는 업무와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만 내세우면서 만씨의 상태와 아무 상관 없는 폐 엑스레이를 찍자며 병원에 같이 가자고 했다.

    전화를 받고 나는 만씨와 함께 동부근로자건강센터에 가서 다시 한번 더 업무적합성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회사 측은 업무적합성평가에 별 의미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나는 만씨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회사측에 연락했지만 사장은 우리 센터와 상대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만씨와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다시 제출했다. 1년 동안 만씨의 상태는 더 나빠졌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우리는 근로자건강센터와 고용노동부를 왔다갔다 하면서 같은 서류를 발급받고 제출했다. 신속하지 않은 업무 상황에 우리는 노무사의 도움으로 산재신청을 겨우 했다. 회사는 만씨와 우리에게만 적대적이지 않았다. 이 일을 하는 동안 우리를 도와준 노무사도 회사 측으로부터 엄청난 욕을 먹어야 했다.

    요통 때문에 밤마다 잠을 이룰 수 없는 만씨는 악화되는 허리에 폐인이 될까 봐 혼자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1년 동안 똑같은 이야기를 사장에게 전달하고, 똑같은 서류를 발급받고 제출하고, 근로자건강센터와 고용노동부를 왔다 갔다 하면서 달라진 것은 점점 더 악화되는 만씨의 허리였다.

    여러분, 이럴 때는 어떻게 하나요?

    *앞 회의 글 링크 “동행상담일기① 닷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하늘 (이주민센터 동행 사무국장)

    한국 생활 8년차 결혼이주민이면서 이주 활동가이다.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 학사, 사회복지 실천 석사 졸업을 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차츰 한국 사회와 인권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한 독서 모임에서 원옥금 대표를 만나 그녀의 열정적인 마인드에 끌려 이주민 센터 동행에서 일하게 되었다. 상담을 하면서 이주민노동자들이 타국에서 겪는 문제들을 접하고, 조금이라도 그들을 위해 힘을 보태줘야겠다고 매번 다짐한다.

    필자소개
    이주민센터 동행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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