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행상담일기①
    닷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행칼럼] 이럴 땐 어떻게 하나요?
        2023년 10월 26일 03: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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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 칼럼’ 코너를 시작하며

    이주민센터 ‘동행’은 베트남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도록 상담, 통역, 교육 등을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원옥금, 나하늘 이 두 명의 베트남 여성은 상담과 통역을 통해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매일매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주민들이 살아가기에 한국사회의 장벽은 높고 이주민의 삶은 팍팍합니다. 이주노동자를 괴롭히는 사업주 때문에 하루에 몇 번이나 분노가 솟아 오르고, 또 도움이 되지 못해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결혼여성이민자이면서 이주 활동가인 우리는 상담사례를 통해 이주민이 겪고 있는 상황들을 알리고 함께 살기의 방법론을 찾기 위해 이 칼럼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필자>

    닷 씨에게 전화가 왔다.

    여름 휴가 중이었다. 그동안 누적된 피로에 휴가를 꼭 지켜야 했다. 지금은 상담을 못한다고 제발 연락하지 말라고 누차 페이스북에 당부했건만 어디선가 끊임없이 연락이 왔다. 어떤 연락처는 여러 번 연락이 왔다가 받지 않아 포기한 듯 싶었는데, 한 번호만 계속 포기할 줄 몰랐다. 뭔가 급한 일이 있구나 싶어 전화를 받았다.

    남자였다. 그는 이름이 ‘닷’이고 베트남 노동자로 병어 잡는 어업노동자라고 했다. 한국에 온 지 4개월 되었다는 그는 고흥 나로도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일하는 배에는 닷씨 외에도 3명 베트남 미등록 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닷씨를 포함해서 총 4명 선주까지 합하면 총 5명이 조업하는 곳이었다.

    닷씨의 사연은 그랬다. 처음 한국에 와서 첫 달 월급은 1,914,000원, 최저임금을 받았다. 배를 타고 출항하면 4,5일간 바다에 있다가 입항하여 병어를 판다. 하루 정도 육지에서 쉬었다 다시 기름과 얼음을 채우고 다시 바다로 나간다. 바람이 불고 날씨가 궂은 날에는 항구에서 잡일을 하고 선주 집에서 쉬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처음에 일 시작할 땐 누구나 220만원을 받는 게 관례인데 자기한테는 190만원만 줬다고 했다. 하루에 최소 12시간, 많을 땐 16시간 일한다.

    그는 베트남 중부 지방에서 갈치, 멸치 등 물고기 잡는 조업을 해 온 선원이었고 업무의 경력이 있으니 급여를 좀 더 올려 달라고 선주에게 요구했다. 그래서 두 달째부터 250만원을 받기로 하였다. 그 금액은 같은 어선에서 일하는 미등록 노동자들이 받는 평균임금이었다

    두 달째 월급날, 그의 통장엔 약속했던 250만원이 아니라 219만원이 입금되었다. 그 금액은 식비와 숙소비, 만기보험료를 공제한 금액이었다. 일반적으로 외국인 선원의 식비는 선주가 제공하고 근로계약서에서도 식비를 조중석, 하루 3끼 제공으로 되어 있다. 만기보험료는 퇴직금이기에 원래 납부 의무는 선주에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주는 닷씨의 급여에서 매월 숙소, 식비와 만기보험료를 공제했다.

    닷은 힘들게 같은 노동을 하면서 왜 자신만 식비와 숙소비를 제외한 금액을 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다른 미등록 노동자와 같은 월급을 요구했지만 선주는 안 된다고 했다.

    8월 22일 저녁, 7시에 그물을 끌어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노동자 닷씨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 월급과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고민 때문에 전날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닷씨는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날 밤 몸이 안 좋은 닷씨를 제외한 베트남 미등록 노동자 3명이 선주와 일했다. 9월이 되면 굴비, 오징어 계절이 온다. 그런데 그날 미등록 노동자 3명은 다른 곳으로 가면 굴비 잡는데 13일에 3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면서 이곳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9월이 되면 굴비, 오징어 계절이 온다. 여기는 15일 190만원만 받고 있는 데다가 더욱이 선주가 욕설을 많이 하는 편이라 더 이상 여기서 머물지 않겠다고 했다. 그 밤에도 선장이 배를 항구에 바짝 붙일 수 있게 끈을 제대로 묶어 놓지 않았다고 이주노동자들에게 ‘씨발놈 새끼’ 등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그 일이 있고 바로 다음 날, 3명의 베트남 미등록 노동자들은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그 바람에 조업할 인원이 부족해 배는 출항할 수 없게 되었다.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게 된 선주는 난데없이 닷씨의 근로계약 해지를 제안했다. 그런데 그 조건이 이상했다.

    사모(선주의 아내)는 닷씨에게 700만원을 주면 근로계약 해지를 해주겠다고 한다. 닷씨가 근로계약 해지 비용을 주지 않으면 이탈신고를 해서 ‘불법체류자’로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닷씨가 한국말을 못해서 여수에서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친형을 불러와 통역으로 선주와 대화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700만원이 너무 큰 금액이라 깎아 달라고 애원도 했지만 사모가 끝까지 안 된다고 했다. 화가 난 친형이 ‘불법체류자’를 채용한 사실을 신고할 거라고 했다. 그 때문에 사모(선주의 아내)가 더 화가 나 ‘제주도는 계약해지 비용을 천만원을 줘야 가는데 나로도에서는 적어도 700만원은 줘야 한다’고 소리쳤다. 닷씨가 한국에서 번 돈은 4개월 동안 대략 800만원이다. 근로계약 해지를 위해 선주에게 700만원의 돈을 지불하면 닷씨는 4개월간 100만원을 번 셈이고, 선주에게 거의 공짜로 조업을 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근로계약해지의 금액은 대체 누가 정한 것이며 왜 줘야 하는 것인가.

    합의를 하는 동안 나는 통역을 위해 전화를 했지만 선주의 아내는 나의 전화를 차단시켰다.

    노동부는 법에도 없는 근로계약 해지에 관한 돈이 오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업자와 노동자끼리 알아서 하라고 한다. 과연 닷씨에게는 출구가 있는 것일까?

    나는 통역과 상담을 하면서 답답한 마음이 점점 차올랐다.

    여러분,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원옥금(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한국생활 26년차 결혼이주민이면서 이주 활동가이다. 베트남, 한국어 통역을 하면서 한국 사회의 제도를 알아야 제대로 된 상담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법 공부를 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법무학과를 졸업했다. 이주민의 현실이 늘 불안해 ‘안 安’이라는 글자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오늘도 상담에 임하고 있다.

    필자소개
    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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