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시다파 아베파 등
    일 자민당 파벌 해산 선언
    [세계] '정치자금 스캔들'의 후폭풍
        2024년 01월 23일 12: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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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자금 스캔들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자민당의 기시다파가 파벌 해산을 선언했습니다.

    정치자금 스캔들은?

    이번 정치자금 스캔들의 핵심은 자유민주당 파벌의 정치자금 보고서 기록 누락입니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정치자금 파티‘라는 일종의 후원회 모임을 개최합니다. 정치인 개인이 주최할 수도, 혹은 여러 정치인이 모여 개최할 수도 있죠. 이 정치자금 파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파티 입장권을 구매합니다. 이 돈은 곧 정치인들의 정치자금이 되죠. 정치인들은 대신 파티에 온 이들에게 다과를 제공하고 인사를 나눕니다.

    후원회 모임에서 후원비를 걷어 정치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이니, 사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 후원비를 숨기지만 않았다면 말이죠.

    하지만 후원비를 숨기는 일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자민당 내 각 파벌이 ‘정치자금 파티’를 벌이면서 입장권 판매 수익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았다는 폭로가 나온 것이죠.

    해당 내용을 조사한 고베가쿠엔대학의 가미와키 히로시 교수에 따르면, 자민당 내 5개 계파가 3년 동안 은닉한 금액은 4,168만 엔에 달합니다.

    특히 아베파는 이 가운데 1,952만 엔을 차지해 은닉 자금의 규모가 가장 컸습니다. 아베파 소속 미야자와 히로유키 의원은 파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장부 조작을 지시했다는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각 파벌은 이렇게 파티 입장권 수익을 누락했을 뿐만 아니라, 의원들에게 파티 입장권 판매 할당량을 부여했습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의원들은 입장권을 사비로 구매해 판매량을 메워야 했고, 할당량을 넘긴 의원들에게는 판매 대금이 비자금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문제가 불거지자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자민당 내에 정치쇄신본부를 발족시키기도 했습니다. 본부장은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총리 본인이 맡기로 했습니다.

    검찰도 수사에 나섰습니다. 자민당의 이케다 요시타카, 오노 야스타다, 타니가와 야이치 의원은 검찰에 의해 구속됐습니다. 이외에도 검찰은 아베파, 기시다파, 니카이파의 전현직 회계 책임자를 기소했습니다.

    자민당의 파벌 해산?

    상황이 심각해지자 자민당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습니다. 자민당이 내린 결론은 ‘파벌의 해산’이었죠.

    일본 정치는 과거 중선거구제를 운영했다는 점과, 정치인의 세대 교체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민당의 일당 독주 체제가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독특한 ‘파벌 정치’가 자리잡았습니다.

    자민당 안에서도 여러 계파가 나뉘어 서로 경쟁하는 것이죠. 당 내에 계파가 나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각 계파가 뚜렷한 조직을 갖추고 경쟁하면서도 분당이나 탈당이 적은 것은 일본 정치만의 특징입니다.

    기존 자민당의 최대 파벌은 아베파였습니다. 의원 98명이 속해 있었죠. 아베파의 공식 명칭은 ‘세이와 정책연구회’입니다.

    아베파는 2000년 이후 모리 요시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까지 네 명의 총리를 배출한 최대의 계파입니다. 특히 아베 신조 총리가 장기 집권하던 때에는 자민당과 정부의 요직을 아베파가 대부분 장악했었죠. 아베 총리는 2022년 사망했지만, 파벌의 영향력은 여전했습니다.

    아베파의 뒤로는 의원 56명을 보유한 아소파가 있습니다. 아소 다로 부총재가 이끄는 파벌이죠.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이 이끄는 모테기파도 의원 53명을 보유한 큰 계파입니다.

    그 뒤로 의원 46명의 기시다파, 38명의 니카이파, 8명의 모리야마파 정도가 자민당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물론 파벌에 속하지 않은 의원도 있고요.

    그런데 이번 정치자금 문제의 원인으로 ‘파벌 정치’가 지목되자, 각 파벌이 속속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9일 기시다파의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기시다 총리

    “국민들이 파벌을 ‘돈과 자리를 요구하는 곳’으로 의심하고 있다. 정치적 신뢰 회복을 위해 기시다파를 해산한다.“ (기시다 후미오 / 일본 내각총리대신)

    기시다파의 공식 명칭은 ‘고치카이(宏池会)‘로, 자민당에서 가장 오래된 파벌입니다. 1957년에 만들어졌고, 그만큼 일본의 전통적 보수주의를 상징하는 파벌이었죠. 현재 가장 많은 의원수를 가진 아베파 역시 총회를 열고 해산을 결의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배반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 (시오노야 류 / 전 문부과학상, 아베파 좌장)

    2021년 12월 6일 아베파 정치자금 모금 행사

    니카이파도 같은 날 해산을 선언했습니다. 하루 만에 자민당의 파벌 세 곳이 해산한 것입니다. 세 파벌 소속 의원과 원래부터 파벌이 없던 의원수를 합하면 261명입니다. 자민당 의원 374명 가운데 70% 가까이가 무파벌 의원이 된 것이죠.

    하지만 각각 2위와 3위 파벌인 아소파와 모테기파는 파벌을 해산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현재 기시다 정부는 기시다파와 아소파, 모테기파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아소 부총재나 모테기 간사장과 논의 없이 기시다파 해산을 발표했다고 하죠.

    아소 부총재와 모테기 간사장은 기시다 총리의 이런 행보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파벌을 해산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소 부총재는 기본적으로 이번 사안을 아베파의 문제로 보고 있으며, 자신들은 자금 관리를 철저하게 해 왔다는 입장입니다.

    “입건된 사람도 없는데 파벌을 해산할 수는 없다. 파벌을 그만두지 않는다.” (아소 다로 / 자민당 부총재)

    모테기 간사장 역시 파벌의 ’해산‘ 대신 ’쇄신‘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파벌이 돈이나 인사를 위한 집단으로 보이지 않도록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낼 것이다.” (모테기 도시미쓰 / 자민당 간사장)

    모리야마파를 이끄는 모리야마 히로시 총무회장은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본 뒤 결단을 내릴 전망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파벌 해산 문제는 각 파벌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문제라며, 아소파와 모테기파의 존치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일단 자민당은 정치쇄신본부를 통해 개혁을 계속할 방침입니다. 당이 파벌의 해산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거나, 정치자금 모금의 투명성을 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죠.

    내각 인사에 파벌의 추천을 받지 않고, 정치자금 보고서에 대한 외부 감사 도입도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국민적 신뢰 회복은 요원합니다. 당장 정치쇄신본부의 본부장은 기시다 총리이고, 최고 고문을 아소 다로 부총재가 맡았습니다. 모테기 간사장도 본부장 대행직을 수행합니다.

    정작 쇄신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파벌의 수장들이 쇄신본부를 이끌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자민당의 정치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가능성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파벌의 재결성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소란이 어느 정도 지나가고 나면, 각 파벌이 다시 뭉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니카이파는 해산을 결의하면서도, 재결성의 여운을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모일 수밖에 없다.” (니카이 도시히로 / 자민당 전 간사장)

    실제로 과거 자민당은 누차 파벌 해산을 선언했습니다. 1989년과 1994년에도 중진 정치인의 뇌물수수로 인해 파벌 해산을 결의한 바 있었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파벌 정치는 재개됐습니다. 많은 파벌이 ‘정책연구회’를 표방하고 있는 것도, 당시 ‘파벌 재결성‘이라는 비판을 피해 연구 모임을 표방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민당 내 체제의 개선 없이는 파벌이 언제든 다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파벌을 모아야 승리할 수 있는 총재선거나 공천 방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파벌의 원천적 해산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또한 기시다 총리의 ‘파벌 해산’ 선언이 가진 저의에 대한 의심도 있습니다.

    원래 자민당은 각 파벌의 이합집산에 따라 총재 선거 결과가 결정되곤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 파벌에게 권력이 분점될 수밖에 없었죠. 자민당의 총재나 간사장 등 권력을 가진 직책은 있지만, 이들의 권력도 각 파벌의 의사를 수렴한 뒤에만 정상적으로 발휘될 수 있습니다.

    세 파벌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기시다 정부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기시다 총리가 총리이자 자민당 총재이지만, 그 권력은 당의 지지 위에서만 성립합니다.

    그러나 각 파벌이 해체된 뒤에는, 자민당의 총재인 기시다 총리가 별다른 제재 없이 당의 모든 의원을 직접적으로 장악할 수 있습니다.기시다파와 함께 정권을 꾸린 아소파나 모테기파가 기시다파 해산 소식에 반발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기시다 총리가 파벌 해산을 압박해, 각 파벌 수장의 힘을 약화시키고 당을 직접 장악하려 하는 것 아니냐 의심하는 것이죠.

    결국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도 반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각 지지율은 여전히 최저 수준입니다.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는 내각 지지율이 23%를 기록했습니다. 전달과 같은 수치입니다. 요미우리신문 역시 지지율을 24%로 집계했습니다.

    ——

    사실 자민당 안에 파벌이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투명성 때문입니다.

    음성적으로 존재하던 파벌이 수 차례 부패 혐의를 받자, 아예 파벌을 공식화해 양지로 끌어올린 것이죠. 대신 파벌의 정치자금을 기록하고 공개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공식적으로 등록된 파벌조차 부패의 주체가 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상황에서 파벌을 해체하는 것조차 과거의 음성적 파벌정치를 되돌리는 일이 될 수 있겠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파벌정치가 필요치 않은 당 권력 구조를 만드는 것이죠. 총재 선거와 내각 인선에 파벌의 뒷받침이 필요 없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시다와 아소, 모테기가 이끄는 정치쇄신위원회가 그 구조적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큰 기대는 들지 않습니다.

    그 사이 지지율은 20%대까지 주저앉았습니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심판은 국민들의 몫이 될 것입니다.

    * 위 글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연재되는 <세계의 소식들>을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과 다른 소식들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앞 회의 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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