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총통-입법위원 선거
    [세계] 민진당 라이칭더 당선-전망
        2024년 01월 18일 10: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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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민국(대만)에서 총통선거가 치러졌습니다.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총통 후보는?

    이번 총통 선거에 나선 주요 후보는 세 명이었습니다. 여당 민진당과 야당 국민당, 그리고 새로 성장한 민중당의 후보였죠.

    중화민국의 집권여당인 민주진보당은 중화민국 민주화를 선도해 온 정당입니다. 현직 차이잉원 총통이 소속된 정당으로, 이번에는 라이칭더 후보를 내세웠습니다.

    라이칭더는 국립대만대학 의학부 출신입니다. 졸업 후 물리치료사로 일하다 국립성공대학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했고, 하버드에 유학해 의학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의사 출신인 그는 이른 시기부터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1996년부터 민주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했습니다. 2010년에는 타이난시 시장에 당선됐습니다. 당시 60%의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2014년에는 73%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죠. 2017년에는 중화민국 행정원장에 임명됩니다. 우리로 따지면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자리죠. 그는 2018년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라이칭더는 중화민국 총통 후보 경선에 나섭니다. 경선에서는 현직인 차이잉원 총통에 패배했지만, 결국 부총통에 지명되었죠. 그는 수락했고,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4년의 부총통 임기 동안 라이칭더는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원래 중화민국의 부총통은 부통령에 가까운 자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행정원장보다 권한이 적습니다. 그러니 부총통의 정치적 입지도 좁을 수밖에 없죠.

    그러나 라이칭더는 차이잉원 정부의 협조자이면서 때로 경쟁자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시국을 지나며,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의사 출신이라는 그의 경력은 아주 중요하게 작동했죠. 그러니 이번 총선에서 그가 총통 후보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상대 후보가 없어, 그는 경선 없이 민주진보당 총통 후보로 추대되었습니다.

    “민주진영과 힘을 합해 대만의 안보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 (라이칭더 / 민주진보당 총통후보)

    제1야당인 중국국민당은 오랜 기간 중화민국을 지배해 온 정당입니다. 장제스가 이끌었던 정당이었죠. 이번에는 허우여우이 후보를 내세웠습니다.

    허우여우이는 중앙경찰학교를 나온 경찰 출신의 인사입니다. 경찰 인사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민주화 인사를 탄압한 경력도 있어, 그의 정치적 약점이 되기도 했죠. 허우여우이는 2006년 50세의 젊은 나이로 중화민국 경찰청장에 임명됩니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2010년 은퇴하고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2010년부터는 신베이시의 부시장으로 8년 동안 일했고, 2018년에는 본인이 시장에 당선됩니다. 2022년 재선된 그는 현재까지도 신베이 시장입니다. 중화민국은 한국과 달리 현직 지자체장도 자리를 유지한 채 대선에 나올 수 있습니다.

    허우여우이는 한때 민주화 인사를 탄압했던 경찰 출신 인사이지만, 한편으로는 민주진보당 정부 시절에 경찰청장에 임명된 사람입니다. 그만큼 그는 민주진영 인사들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죠. 이번 선거에서도 허우여우이는 국민당의 보수적 노선을 계승하면서도 중도적인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여러분의 한 표를 대만해협의 안정과 대만 안보를 위해 행사해 주기 바란다.” (허우여우이 / 중국국민당 총통후보)

    제3당인 대만민중당은 조금 독특한 정당입니다. 이 정당은 2019년 타이베이 시장인 커원저가 만든 정당이죠.

    커원저는 라이칭더와 같은 대만대학 의대를 나온 의사 출신의 인물입니다. 다만 라이칭더와는 달리 외과의사로 오래 활동했죠. 커원저는 2014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당시에는 민주진보당과 가까웠고, 민주진보당은 이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커원저를 지지했습니다. 그는 2018년 타이베이 시장에 재선되어 2022년까지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이후에는 올해 총통 선거를 위한 정치 활동에 집중했죠. 하지만 그의 정치적 입장은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점차 국민당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죠. 민진당과는 갈등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번 선거는 새 정치와 옛 정치의 대결이다. 민진당이 국민당으로 바뀐다고 대만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커원저 / 대만민중당 총통후보)

    이렇게 세 사람이 주요 후보로 나온 선거였습니다.

    당연히 국민당 허우여우이 후보와 민중당 커원저 후보 사이 단일화 시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단일화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단일화가 실패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 사이 정치적 견해는 여전히 컸습니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를 두고서는 이견이 컸죠.

    국민당은 기본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통일을 추구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와도 대화와 타협을 강조할 수밖에 없죠.

    최근 국민당의 전직 총통인 마잉주는 “시진핑 주석을 신뢰한다“고 발언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이 발언 역시 중국과의 대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국민당의 이념을 반영한 것입니다.

    반대로 민중당은 ‘대만인’의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대만이 독립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화인민공화국과의 통일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일종의 ‘현상 유지파’라고 할까요.

    민진당의 진보적 노선에 반대하는 것은 같지만, 둘 사이의 차이는 넘을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단일화는 무산되었고, 둘은 각자 선거를 치러야 했습니다.

    선거 결과는?

    그러니 선거의 결과도 예측 가능했습니다.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후보는 40.05%를 득표해 제16대 중화민국 총통에 당선됐습니다.

    중국국민당 허우여우이 후보는 33.49%를 얻었습니다. 대만민중당 커원저 후보는 26.46%를 얻었죠.

    패배한 후보 둘을 합하면 물론 과반을 넘습니다. 하지만 둘의 정치적 지향성이 너무도 다른 상황에서, 단일화를 했다고 해서 승자가 표를 완전히 흡수할 가능성은 낮았겠죠.

    그러니 선거 당일인 13일 밤, 결과는 이르게 발표됐습니다. 예상대로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했고, 다른 두 후보는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총통으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다.” (라이칭더 / 중화민국 총통 당선인)

    언급했듯 라이칭더 당선인은 오랜 기간 정치에 몸담았던 인물입니다. 이것은 현직인 차이잉원 총통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죠. 차이잉원 총통은 원래는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법학자였습니다. 이후에는 관료로 임용되어 활동했죠. 정치계에 들어온 것은 민진당 천수이볜 정권이 그를 양안 문제 담당 위원에 임명한 이후였습니다.

    2004년에 민진당에 입당한 차이잉원은 2008년 민진당 주석이 되었고, 2012년 한 차례 낙선한 뒤 2016년에 중화민국 총통이 됐습니다. 그러니 차이잉원 총통은 민진당을 창당하고 키워온 민주화 원로와는 가깝지 않았습니다. ‘해바라기 운동’을 비롯해 정치 개혁을 요구해 온 청년층의 지지를 업고 빠르게 성장한 인물입니다.

    반면 라이칭더는 긴 시간 민진당에 몸을 담고 다양한 정치 경력을 쌓았습니다. 민진당 창당 세대보다는 어리지만, 원로들의 지지를 받았죠. 그러니 라이칭더의 승리는 단지 민진당이 정권을 연장했다는 의미 정도가 아닙니다. 중화민국의 민주화 세력이 다음 세대 정치인을 총통까지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죠.

    민진당은 이제 자체적으로 정치인을 육성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입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라이칭더 이후에 대해서도 염려할 필요는 없겠죠.

    중화민국은 1996년 총통 직선제를 도입한 이래 계속해서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리덩후이 이후에는 민진당의 천수이볜, 그 뒤에는 국민당의 마잉주, 그리고 다시 민진당의 차이잉원이었죠. 각 총통은 모두 연임에 성공했지만, 정권 재창출에는 실패했습니다.

    이제 민진당은 처음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습니다. 라이칭더라는 정치인의 개인사를 생각하면, 그것조차 가벼운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이번 선거를 민진당의 완전한 승리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라이칭더가 얻은 표는 어쨌든 40%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입니다. 중화민국은 총통선거와 입법위원 선거를 같이 치르거든요. 중화민국의 입법위원은 총 113명입니다. 이 가운데 소선거구제로 73명이 선출되고, 비례대표제로 34석이 선출됩니다. 나머지 6석은 대만 원주민에게 배분되어 있습니다.

    한 지역구에서 한 명만을 뽑는 소선거구제 의석이 많다 보니, 득표율과 실제 의석수가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아예 1당과 2당이 뒤집혔습니다.

    민주진보당은 지역구에서 45%, 비례대표에서 36%를 득표했습니다. 그러나 지역구와 원주민 의석은 도합 38석을 가져오는 데 그쳤죠. 여기에 비례대표 13석으로 51석을 얻었습니다.

    중국국민당은 지역구에서 40%, 비례대표에서 35%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지역구와 원주민 의석은 오히려 민진당보다 많은 39석을 얻었습니다. 여기에 비례대표 13석을 더해 52석입니다.

    그러니 표를 더 많이 가져간 민진당이 오히려 원내 2당으로 밀려나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국회에서 민진당의 영향력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겠죠.

    민중당은 지역구 의석 획득에는 실패했습니다. 대신 비례대표 의석 8석을 얻었죠. 시대역량, 대만기진 등 나머지 정당은 모두 의석을 얻지 못해 원외정당이 되었습니다.

    입법위원 113석의 과반은 57석입니다. 민진당도 국민당도 과반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가운데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민중당의 역할은 중요해질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중화민국은?

    앞으로 라이칭더 총통 당선인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외교입니다.

    라이칭더 당선인은 ‘대만 독립’을 강경하게 주장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의 통일을 지향하지 않고, 독립된 별개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이는 곧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고,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이 합의한 ‘92공식’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물론 이번 선거 결과에 크게 반발했습니다. 이집트를 방문 중인 왕이 외교부장은 현지에서 입장을 냈습니다.

    “대만은 국가였던 적이 없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든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이 있을 뿐이다.” (왕이 /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장)

    라이칭더 당선인은 당선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중국의 반발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이 나라는 앞으로도 올바른 길을 갈 것이다. 돌아서거나 뒤를 돌아볼 일은 없다.” (라이칭더 / 중화민국 총통 당선인)

    라이칭더 당선인과 민주진보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반발을 극복할 방법으로 미국을 택했습니다. 부총통 후보에는 주미대사 출신의 샤오메이친을 지명할 정도였으니까요.

    선거 이틀 만에 미국은 대표단을 파견해 라이칭더 당선인을 만났습니다. 미국 역시 중화민국의 요청에 화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서도 중화인민공화국을 견제하기 위해 타이완 섬의 역할은 핵심적이니까요.

    “미국이 대만을 계속 지지하고,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과 지역 안정을 추구하길 바란다.” (라이칭더 / 중화민국 총통 당선인)

    미국은 선거 결과 발표 직후 라이칭더의 당선을 축하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대만의 강력한 민주적 시스템과 선거 과정을 높이 평가한다.” (앤서니 블링컨 / 미국 국무장관)

    외교뿐 아니라 국내에도 문제는 산적합니다. 특히 입법위원 선거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정에서 야당의 협조는 필수적이죠.

    무엇보다 캐스팅보트를 쥔 민중당의 입장이 중요해졌습니다. 민중당으로서는 국회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몸집을 키워나갈 기회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민중당이 캐스팅보트를 잘 활용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입니다. 민중당은 중도정당으로 꼽히지만, ‘중도‘란 이념이 아닙니다.

    이미 민중당은 정책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민중당이 이 정도로 지지율을 얻은 것은, 대만인 정체성을 강조하면서도 민진당의 진보적 정책에는 반대하는 유권자의 틈새를 파고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민중당만의 색채는 찾기 어렵습니다. 양안 관계에서도 ‘현상 유지’를 정책으로 선택했지만, 애초에 국민당도 민진당도 급진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는 다를 게 없는 것이죠.

    그래서 민중당이 기성정치에 가까워질수록, 그 정치적 입지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지지기반이 현실정치에 대해 염증을 느낀 청년층에 기대고 있었으니까요. 시간이 갈수록 신선함은 사라지고, 모호한 정치적 수사는 인기를 잃을 수 있겠죠.

    그런 정치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라이칭더 정부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 있겠죠. 민중당이 청년층의 지지를 잃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흡수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또 그 사이에서 국민당이 다시 어떻게 자리를 잡고 재기하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지난 세 번의 총통선거에서 패배한 국민당에게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할 것입니다.

    총통선거는 예상대로 민진당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죠. 다만 저는 오히려 그 ‘불완전한 승리’가 민진당과 중화민국의 미래에는 더 나은 결과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흔히 한국 언론에서는 라이칭더의 당선을 ‘반중‘ ’친미‘ ’대만독립’의 키워드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총통이 된 이상, 라이칭더도 급진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차이잉원 총통과도 마찬가지죠.

    사실 중화민국 국민들 사이에는 이미 양안관계의 방향성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양안 통일은 적극적으로 거부하되, 안보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 유지’죠.

    그러니 각자의 방향성은 다르지만, 세 후보가 당선됐을 때 실제로 양안 정책에 큰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차이잉원 정권 8년이 그랬었고요.

    민중당은 대만인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국민당도 대화와 타협이 통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안보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도구라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장제스의 증손자인 장완안도 양안 통일에 반대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중화민국의 진보적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변화와, 그 기조를 포기하지 않은 중화민국 국민들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진영 안에서 정치인을 키워 총통까지 배출할 수 있을 정도로 자리잡은 민진당의 성장에도 주목해 봐야겠죠. 중화민국의 정치는 우리에게 오늘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 위 글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연재되는 <세계의 소식들>을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과 다른 소식들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앞 회의 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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