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글라데시 여당,
    야당 보이콧 속 총선 압승
    [세계] 민주화의 상징이 권위주의로
        2024년 01월 10일 12: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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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글라데시에서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 집권여당의 승리였습니다.

    선거의 배경은?

    2024년 ‘선거의 해’의 포문을 여는 방글라데시 총선이 지난 7일 치러졌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의원내각제 국가입니다. 현직 총리는 셰이크 하시나입니다. 하시나 총리는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과 2대 총리를 역임한 셰이크 무지부르의 장녀입니다.

    셰이크 무지부르는 방글라데시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했다가 군부의 저항을 받았고, 쿠데타가 벌어졌습니다.

    쿠데타 과정에서 셰이크 무지부르와 일가족은 모두 사살됐습니다. 유럽에 방문 중이었던 두 딸만 살아남았죠.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셰이크 하시나였습니다.

    셰이크 하시나는 서독의 방글라데시 대사관으로 피신했다가 인도로 망명했습니다. 방글라데시에는 군부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셰이크 하시나는 6년 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1981년 방글라데시에 돌아옵니다. 군부정권 아래에서 야당 지도자로 활동했죠. 가택 연금을 비롯해 여러 탄압이 있었지만, 1990년 방글라데시는 국민적 저항을 통해 민주화에 성공합니다.

    셰이크 하시나는 1996년 총리에 올랐습니다. 2001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했죠. 이후에도 야당 지도자로 활동했고, 2009년 다시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하시나 총리는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습니다. 2014년과 2019년 치러진 총선에서 연임에 성공했죠. 1996년 선거까지 포함하면, 벌써 네 번의 총리 임기였습니다.

    그리고 2024년, 이제 하시나 총리는 5선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한때 하시나 총리는 군부정권에 저항하는 민주세력의 지도자였습니다. 집권 초기에는 빠른 경제성장으로 10년 만에 국민소득을 세 배나 늘리기도 했죠.

    하지만 그 명성은 빛이 바래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커졌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방글라데시 정부의 야당 탄압, 인권 침해와 언론 개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시위도 빈발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주력 산업인 의류 노동자를 중심으로 파업이 벌어졌죠. 야당에서도 반정부 시위를 벌였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야당은 하시나 총리가 선거에 개입할 우려가 있다며, 선거 전에 중립 내긱의 구성을 요구했습니다. 야당 인사들도 적절히 정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선거의 신뢰도를 높이자는 것이죠.

    하지만 하시나 총리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대신 하시나 총리는 반정부 시위에서 폭력을 저질렀다며 야당 지도자와 지지자를 대거 체포했습니다. 체포된 사람만 1만 명에 달한다는 인권단체의 보고도 있었습니다.

    결국 주요 야당인 방글라데시 국민당을 비롯한 상당수 정당이 선거 ‘보이콧’에 나섰습니다. 아예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유권자에게도 투표에 참여하지 말 것을 독려하고 있죠.

    그러나 하시나 총리는 선거의 신뢰성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지 그 여부다.” (셰이크 하시나 / 방글라데시 총리)

    선거 결과는?

    야당이 선거 거부에 나선 만큼, 이번 선거의 결과는 예측 가능했습니다. 하시나 총리가 이끄는 방글라데시 인민연맹의 승리가 명확했죠.

    방글라데시 의회는 총 350석입니다. 이 가운데 300석을 소선거구제로 선출합니다. 나머지 50석은 의석 비율에 맞춰 각 당에 배분되는 일종의 비례대표로, 모두 여성으로만 구성되는 여성 할당 의석입니다.

    이번에 치러진 선거에서는 의회 300석 모두를 선출합니다. 여성 할당 50석은 어차피 의석 비율에 맞춰 배분되는 것이니, 300석에서 과반을 차지하면 의회 전체에서 과반을 차지하게 됩니다.

    전체 300석 중 2석은 선거가 연기되어 이번에 선출되지 못했습니다. 나머지 298석 중 223석을 여당인 인민연맹이 차지했습니다. 61석은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선거에 참여한 소수 정당들이 나머지 의석을 메웠습니다.

    선거에 승리했으니, 하시나 총리는 이제 5선의 총리직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미 방글라데시 역사상 최장수 총리인 그가 임기를 더 연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41.8%에 불과했습니다. 2019년 총선의 투표율이 80.2%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투표율은 크게 낮아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야당이 주도한 선거 보이콧의 영향입니다. 투표장을 향한 공격도 수 차례 발생했습니다. 정주는 군경 80만 명을 투표소에 배치했지만, 투표소 공격으로 1명의 사망자가 나올 정도로 상황은 격화됐습니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야당은 이번 보이콧이 상당히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투표소에 가지 않음으로서 정부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압둘 모인 칸 / 방글라데시 국민당 대표)

    앞으로의 정국은?

    하시나 총리와 인민연맹은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반면 야당인 국민당은 낮은 투표율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문제는 선거 이후입니다. 승리를 선언한 두 정파의 힘겨루기는 민주적인 투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되겠죠. 그것이 방글라데시라는 민주주의 국가 앞에 놓인 비극입니다.

    하시나 총리는 현재 76세입니다. 이번 5년의 임기를 수행하고 나면 81세가 되죠. 아직 공식적인 언급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하시나 총리의 ‘후계자’ 문제도 언급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시나 총리가 2029년에도 선거에 도전할지는 아직 알 수 없겠죠. 하지만 국회 의석 대부분을 점유한 인민연맹 안에서는 물밑의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제1야당이었던 국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기반으로 하시나 총리에 대한 반정부 투쟁을 더욱 격화시킬 것입니다. 투표 전후로 국민당의 강력한 지지 세력을 확인한 것도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이제 국민당은 의회에 의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5년 동안 국정에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참여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선거 보이콧이 가진 무게감입니다.

    그렇다면 국민당의 투쟁은 당연히 장외 투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앞으로 5년 동안 계속해서 야당의 장외 투쟁과 대규모 시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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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시나 총리는 그간 방글라데시의 민주주의를 서서히 침식해 왔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한때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그의 정권은 권위주의적으로 변해 갔습니다.

    그런 정권의 결착은 야당의 선거 보이콧이었습니다. 야당은 방글라데시의 민주주의를 신뢰하지 못하고, 이는 곧 가까운 시일 내의 정치 위기를 불러올 것입니다.

    예정대로라면 하시나 총리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여성 국가 지도자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인물이 됩니다. 영국의 대처 총리나 독일의 메르켈 총리보다도 오래 집권하게 되죠.

    하지만 그 정권은 정말 그런 안정적인 결말을 맞을 수 있을까요? 야당 없는 선거의 승리는 쉬웠지만, 그 이후도 쉬운 길만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 위 글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연재되는 <세계의 소식들>을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과 다른 소식들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앞 회의’ 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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