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 밀레이,
    취임 한 달만 대규모 시위
    [국제] 정부 출범 후 역풍, 중대 국면
        2024년 01월 03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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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에 신임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입니다. 벌써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밀레이 대통령의 당선과 취임?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의 기성 정치권에서 벗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며, 선거 기간에는 돌출적인 행동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죠.

    그는 아르헨티나의 어려운 상황을 기반으로 당선됐습니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몰락한 것은 20세기 내내 벌어진 현상이었지만, 근래에는 상황이 더 심각했거든요. 아르헨티나는 최근 수십 년 사이 10여 차례 국가 부도를 경험했습니다. 작년 물가 상승률은 200%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죠.

    아르헨티나는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았습니다. 올 4월까지 갚아야 할 빚만 100억 달러가 넘습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폭락했습니다. 정부가 환전을 막아세우자, 달러가 암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했죠.

    밀레이 대통령은 통화 정책의 개혁과 급진적인 정부 구조 개편을 주장했습니다. 아르헨티나를 장악한 ‘카르텔’을 청산하겠다고 나섰죠. 대표적인 공약이 페소화 자체를 폐지하겠다는 것이었죠. 대신 미국 달러화를 들여와 쓰겠다는 것이죠. 중앙은행도 폐쇄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했습니다. 취임 당일부터 18개였던 정부 부처를 9개로 줄였죠. 정부 보조금도 대폭 줄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기성 정치권과의 거리두기도 계속됐습니다. 밀레이 대통령은 의회에서 취임 선서를 한 직후, 관례를 깨고 의회 연설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의회 앞에 운집한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을 했죠.

    정부의 핵심에 있는 비서실장 자리에는 다른 정치인 대신 자기 여동생을 임명했습니다. 대통령 친족을 공직에 임명할 수 없는 법률까지 바꿨습니다.

    “페론주의 정부는 ‘정치 카르텔’에 불과하다.” (하비에르 밀레이 / 아르헨티나 대통령)

    하비에르 대통령은 공공 지출을 현재 GDP의 40% 수준에서 15%까지 줄이겠다고 공약했습니다. 항공사나 에너지 기업의 민영화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외교 노선의 전환도 예고되어 있죠. 그간 아르헨티나는 중국과 브라질 등과 교류를 확대해 왔습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전임 대통령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브릭스(BRICS) 가입을 요청하기도 했죠. 실제로 지난 8월 아르헨티나는 남미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브릭스 가입을 승인받았습니다. 원래는 이달 안에 가입이 완료될 계획이었죠.

    그러나 밀레이 대통령은 브릭스 가입 절차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미 정부 출범 전부터 몇 차례 예고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브릭스(BRICS) 블록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디아나 몬디노 / 아르헨티나 외교부 장관)

    아르헨티나 신정부의 정책은?

    지난 한 달 동안 밀레이의 아르헨티나 정부는 파격적인 행보를 계속했습니다.

    언급했듯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정부 부처를 감축했습니다. 이후 공무원 수천 명을 해고하겠다고 나섰죠.

    밀레이 대통령은 2023년 1월 1일 이후 고용된 공공부문 계약직 공무원에 대해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따라 해고되는 공무원은 최대 7천여 명에 달합니다. 2023년 이전에 채용된 공무원도 심사 대상에 오를 계획이라, 그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무원들을 거리로 내던질 것이다.” (하비에르 밀레이 / 아르헨티나 대통령)

    물론 공무원들은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필수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공무원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다.” (아르헨티나 공무원노조)

    여기에 밀레이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를 50% 이상 평가절하했습니다. 그동안 정부가 억지로 낮게 유지한 환율을 높인 것이죠. 물론 공식 환율을 시장 환율에 맞게 조정한 것은 나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식이 지나치게 급진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신정부의 정책에 따라 기름이나 전기 등에 지급되던 정부 보조금도 대거 삭감됐습니다. 물가는 폭등하기 시작했죠.

    그의 당선 가능성이 점쳐진 11월부터 물가가 전달 대비 12.8% 올랐고, 12월도 30% 가까운 물가 상승이 예고됐죠. 이렇게 되면 12월 물가지수는 작년 대비 180% 상승하는 것입니다. 휘발유는 일주일 만에 가격이 60% 상승할 정도였죠.

    수많은 규제 철폐도 이루어졌습니다. 임대료 상승폭 제한, 국영기업의 민영화 제한 등 생활과 밀접한 규제 대부분이 해제될 전망입니다.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대규모의 개혁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세금, 사법, 선거, 정당 등 정책 분야에서 664개 조항을 개정하겠다는 것이었죠. 이 법안에는 비례대표제의 폐지, 시위대에 대한 도로교통법 적용 강화, 정부의 시위 제한권 부여, 의회 일부 권한의 대통령 이양 등이 담겼죠.

    “의회는 국민이 원하는 나라를 위해 일할 것이지, 변화를 거부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실)

    아르헨티나 의회는 이달 말까지 임시회의를 열어 개정안을 심의합니다.

    그러나 밀레이 대통령의 자유전진당은 하원 257석 중 40석, 상원 72석 중 7석을 점하고 있습니다. 의석 과반은 좌파 페론주의 정당이 차지하고 있죠.

    따라서 이번 법안이 실제로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이에 밀레이 대통령은 의회가 법안을 거부한다면 국민투표에까지 나서겠다는 입장이죠.

    이번 시위는?

    그러나 밀레이 대통령이 의회의 반대를 국민투표로 뚫을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개혁 조치가 시작되면서, 한 달 만에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죠.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 11월 결선투표에서 55.7%를 득표해 당선됐습니다. 취임 직후에는 지지율이 결선투표 득표율을 넘어서기도 했죠. 하지만 지난달 28-29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밀레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44%까지 떨어졌습니다. 유례없이 빠른 지지율 하락입니다.

    특히 밀레이 대통령의 개혁에 따른 고통을 기득권층이 아닌 서민들이 짊어지고 있다는 응답이 70%에 달했습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된 것은 밀레이 대통령이 이어가고 있는 ‘시행령 정치’입니다.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360여 개의 규제를 시행령을 이용해 한꺼번에 철폐했습니다.

    노동법, 의료법, 관광산업 관련 법률 등 여러 법안이 개혁 대상이 되었죠.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이 시행령을 통해 법률의 효력을 정지하는 사태는 국민적 반발을 촉발했습니다.

    규제 개혁의 혜택을 보게 된 기업인과 경제 단체는 이 조치를 크게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이 조치가 위헌이라는 비판이 나왔죠.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령에는 필요성도 시급성도 보이지 않는다.” (안드레스 힐 도밍게스 / 헌법학자)

    아르헨티나 야권에서는 이들 시행령에 대해 아르헨티나 대법원에 헌법소원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취임 한 달 만에 밀레이 정부는 대규모 시위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시행령 발표 직후 국민 수천 명이 거리에 나와 국회로 행진하기도 했죠. 특히 시행령 가운데, 외국인의 토지 매입 규제를 완화하는 부분에 대해 국민들의 분노가 모였습니다.

    “조국을 팔아넘길 수 없다.” (아르헨티나 반정부 시위대)

    규제 개혁의 영향을 받는 직업단체도 행동에 나섰습니다. 약국이 아닌 곳에서도 약 판매를 허가하는 개정안에 항의해, 약사단체는 지난 29일 1시간 동안 약국 영업을 중단했습니다.

    시위에는 노동조합도 결합했습니다. 지난 주말부터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아르헨티나 전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경찰과 시위대 사이 충돌도 있었죠. 아르헨티나 노조총연맹은 결국 오는 24일 총파업을 결의했습니다. 연맹은 12시간 동안 시위에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할 것이라 예고했습니다.

    이렇게 밀레이 정부는 취임 18일 만에 노동조합의 총파업 예고를 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시위 참여자를 고발하는 것으로 맞섰습니다. 밀레이 정부는 시위 대응에 투입된 경찰 작전 비용 75,000여 달러도 시위 참여 단체에 부과할 전망입니다.

    결국 지난 한 달 동안 밀레이 대통령은 자신이 공언한 대로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중입니다. 모든 것이 밀레이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이미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아르헨티나 사회의 저항도 강력했습니다. 의회도, 법조계도, 노동조합도, 시민들도 이제 명시적인 반정부 투쟁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취임 한 달 만에 이런 역풍이 부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밀레이 정부가 아르헨티나 정치에는 이례적인 정부이기는 했으니까요.

    결국 밀레이 대통령이라는 인물도 아르헨티나 국민 과반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인물입니다. 그가 한 달 만에 이렇게 지지를 잃어가는 것도, 아르헨티나 정치의 비극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제는 비극의 무게를 재야 할 때가 왔습니다. 밀레이가 정부가 만들어낼 비극과, 그 정부가 한 달 만에 역풍에 마주함으로써 만들어질 비극 사이,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를 판가름해야 하는 것입니다.

    밀레이 정부의 급진성은 독자적 외교 노선의 붕괴, 해외 자본의 개방, 물가의 폭등, 부도덕한 규제 해제로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조차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오를 수정하는 일에 나서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한 달 만에 아르헨티나 정치는, 다시 중요한 길목에 몰려 있습니다.

    * 위 글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연재되는 <세계의 소식들>을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과 다른 소식들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앞 회의 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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