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선 출마 금지'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 논란
    [세계]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이 결론
        2023년 12월 27일 02: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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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막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선거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이번 판결은?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현지 시간으로 지난 19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입후보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주체는 미국의 정치 감시 시민단체인 ‘워싱턴의 책임과 윤리를 위한 시민들(CREW)’입니다. 수정헌법 14조 3항에 근거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이죠.

    쟁점이 된 수정헌법 제14조 3항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미국 정부의 공직자로서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선서한 뒤 미국에 대한 반란에 가담한 자는 누구라도 다시 공직을 맡을 수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공직자로서, 취임식에서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선서했습니다. 그러나 2021년 국회의사당을 공격한 폭동에 가담했죠.

    그렇다면 이 조항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시 공직인 대통령직을 맡을 수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앞서 콜로라도 지방법원은 다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당시 지방법원에서는 2021년 국회의사당 폭동이 내란 행위이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기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콜로라도 지방법원은 “다시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부분을 문제삼았습니다. 이 조항에 대통령직이 정확히 언급되지 않았으니, 대통령은 이 헌법 조항의 예외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죠.

    시민단체 ‘CREW’는 상고했습니다. 콜로라도 주법에 따라 사건은 바로 주 대법원으로 올라갔죠. 대법원에서 다시 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트럼프 측 변호인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1년 국회의사당 폭동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의 의견은 달랐죠.

    7명의 재판관 중 다수인 4명이 지방법원의 판단을 뒤집는 데 찬성했습니다. 이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란에 직접적으로 가담했으며, 이에 따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관 3명은 지방법원의 판단에 동의했습니다. 이들은 개인이 공직을 맡을 권리를 박탈하기 위해서는 더 엄정한 법적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죠.

    수정헌법 제14조 3항은 미국 남북전쟁 이후에 만들어진 수정 조항입니다. 남부연합에 가담해 미국에 반란을 일으킨 이들을 의회와 정부 요직에서 축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죠.

    그러니 제정 당시에는 이 조항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제퍼슨 데이비드 남부연합 대통령을 비롯해 여러 인사들이 미국의 의회와 정부에 축출되었죠.

    하지만 그 뒤로 이 조항이 적용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느 공직자가 미국에 대한 반란에 가담했다가 다시 공직으로 돌아온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특수한 경우니까요.

    특히 전직 대통령에게 이 조항이 적용되는 것은 이례적일 수밖에 없겠죠.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을 습격하는 내란을 주도하고, 다시 대통령직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전례가 있기 힘든 일입니다.

    이미 뉴햄프셔, 미네소타, 미시간 등에서도 같은 소송이 이어졌지만, 모두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의 승소로 끝났습니다. 대통령 선거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중대한 선례가 될 것이 분명하니까요.

    물론 이번 판결은 콜로라도주 대법원에서 나온 판결이니, 그 효력도 콜로라도주 안에서만 발생합니다. 콜로라도주는 민주당이 크게 우위를 가진 지역이니,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포기할 수 있는 지역이겠죠.

    하지만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례를 따라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이어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결론을 가볍게 내리지 않았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의 무게를 알고 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

    공화당의 대응은?

    우선 당연히 트럼프 캠프는 반발했습니다. 사건을 연방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죠. 주 대법원에서 판단한 사안은, 그 사안의 중대성과 범위에 따라 연방법원에 항고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상고한다면,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결까지 주 법원의 판결은 효력을 잃습니다. 그러니 사실 최종 결정권은 연방대법원에 있는 것이죠.

    이번 대선에 관련해, 콜로라도에서 처음 있는 선거는 공화당의 대선 후보 경선입니다. 경선은 3월 5일에 치러지죠. 3월 5일 전까지만 상고한다면 아무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연방대법원이 콜로라도주 대법원과 같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은 낮습니다. 연방대법관 9명 중 3명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접 임명했으니까요. 미국의 연방대법관은 종신제로, 스스로 사임하거나 사망하기 전까지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3명을 포함해 보수적인 대법관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최근 연방대법원에서는 보수적인 판단이 많이 나오고 있죠. 이번 판결의 결과도 예상 가능한 수준입니다.

    나아가 꼭 보수적인 법관이 아니더라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후보를 법원이 막아세우는 데 대한 반발도 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투표장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을 극히 꺼릴 것이다. 연방 대통령의 후보 자격을 주에서 결정하는 것은 민주적 질서의 파괴다.” (새뮤얼 이새커로프 / 뉴욕대 로스쿨 교수)

    트럼프 전 대통령 외에도, 공화당에서는 이번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결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신속히 상고를 제기할 것이다. 민주당 지도층의 편집증적인 증세에 불과하다.” (스티븐 청 / 트럼프 캠프 대변인)

    공화당 의원들도 반발의 목소리를 더했습니다. 현재 공화당의 당권을 극단적인 친 트럼프계 의원들이 쥐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죠.

    “정치 소속과 무관하게, 공화당의 모든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는 인물을 선거에서 베제해서는 안 된다.” (마이크 존슨 / 연방하원의장)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싸워야 하는 경쟁 후보들도 목소리를 더했습니다. 역시 다들 콜로라도주 대법원에 반대하는 주장이었습니다.

    “누가 출마할 수 있고, 출마할 수 없고를 결정하는 것은 판사의 일이 아니다.” (니키 헤일리 /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비벡 라마스와미는 아예 트럼프가 출마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콜로라도주 경선에서 사퇴하겠다는 강수를 뒀습니다.

    콜로라도주 공화당은 주 경선 절차를 당원과 비당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당원만 폐쇄적으로 참여하는 ‘코커스(당원대회)‘ 형태로 변경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이번 판결이 자신에 대한 정치적 박해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바이든은 나에 대한 모든 가짜 기소를 중단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 미국 전 대통령)

    대선의 향방은?

    민주당 측은 이번 판결에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콜로라도주의 판단만으로는 대선의 판세를 바꿀 수 없는 데다, 섣부른 발언이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실제로 미국 정가에서는 이번 판결이 반대로 트럼프 진영에 호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옵니다.

    트럼프 캠프는 벌써부터 이번 판결을 ’정치적‘이라 비판하며 기부금 모금에 나서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특정 후보의 입후보를 법원이 막아세운 데 대한 비판도 진영을 불문하고 만만치 않습니다.

    상대 후보가 될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도 쉽게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로,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의 3년차 말 지지율과 비교해 봐도 낮은 수준입니다. 트럼프는 44%, 오바마는 48% 수준을 기록했거든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상 대결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1~2%p 차이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밀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역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선거 결과를 전복하려 한 혐의로 조지아주에서 1건, 연방정부에서 1건 등 총 91개 혐의로 4건의 형사 기소를 당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은 당시 대통령으로서 ’면책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며,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것은 모두 선거의 공정성을 위한 공무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는 조작된 선거를 폭로하고 조사하기 위해 의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 미국 전 대통령)

    하지만 이달 초 연방지방법원은 이번 사안이 ’면책 특권‘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선고했습니다. 선거 개입은 대통령의 공무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항소했습니다. 특검 측은 사건을 연방대법원에서 바로 판단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는 기각됐습니다. 따라서 사건은 내년부터 연방항소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런 상황인 만큼 공화당 내에서도 ’대안 후보‘에 대한 주장이 나옵니다. 특히 최근에는 니키 헤일리 전 주 UN 미국 대사가 지지를 확장하고 있죠.

    니키 헤일리 전 대사는 트럼프 정부 시절 주UN 대사로 임명됐습니다. 하지만 이 인선은 인도계 여성을 앞세워 미국 정부의 성평등과 인종 다양성을 보여주려는 의도에 가까웠죠.

    니키 헤일리 대사는 대선 전부터 대표적인 반 트럼프 인사였고, 퇴임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니키 헤일리는 국회의사당 난입 폭동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죠.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역사의 엄중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니키 헤일리 / 전 주UN 미국 대사)

    여전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화당 내 지지율은 압도적입니다. 하지만 최근 뉴햄프셔주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33%, 헤일리 전 대사는 29%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차이는 오차범위 안으로 좁아졌습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헤일리 전 대사를 부통령 후보로 영입할 것을 고민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캠프 외부 인사들에게 헤일리 전 대사의 영입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는 것이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수정헌법 14조에 의해 출마할 수 없다는 주장은 이미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제기된 주장이었습니다. <세계의 소식들>에서도 몇 차례 소개해 드린 적이 있었죠.

    하지만 이 주장이 법원에 의해 인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실제로 이 판결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든, 그 의미를 쉽게 평가절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특정 후보의 입후보를 막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독재국가가 정부와 법원의 입후보 방해로 그 권력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입후보 금지는 민주정치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그 직위를 이용해 선거에 개입하고, 개표 절차를 방해하기 위해 폭동을 선동한 것은 그 이상으로 강력한 위협이었습니다.

    입후보 금지에 면밀한 사법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선거 개입을 방치하는 것에는 어떤 ’면밀한 사법적 판단‘이 있는 것일까요? 법원의 판결 이상으로 면밀한 사법적 판단이 이 사회에 존재할까요?

    어찌됐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정치인입니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겠죠. 그러나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짊어지게 될 것은 꼭 지금 투표권을 가진 미국의 유권자만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위 글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연재되는 <세계의 소식들>을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과 다른 소식들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앞 회의 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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