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무장 모녀' 저격 살해
    '민간인 인질' 오인 사살
    [세계]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거세
        2023년 12월 20일 09: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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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스에 억류됐던 민간인 인질 3명을 이스라엘군이 오인 사살했습니다. 국제적 비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의 인질 사살

    하마스는 전쟁 초기 이스라엘인 240여 명을 인질로 억류했습니다. 지난 휴전의 대가로 인질 다수가 석방됐지만, 여전히 하마스는 100여 명의 인질을 억류하고 있죠.

    이 인질 가운데 세 명이 가자 시티 셰자이야 지역에 나타났습니다. 요탐 하임(28), 사메르 탈랄카(22), 알론 샴리즈(26)였죠.

    이 세 사람은 모두 지난 10월 7일 하마스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이들이 하마스의 억류에서 탈출한 것인지, 아니면 하마스가 이들을 풀어준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세 사람은 흰색 천을 매단 막대기를 들고 항복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무기를 들고 있지도 않았고, 전투 복장을 착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수십 미터 앞의 이스라엘군은 이들이 ‘테러리스트들’이라며 총격을 가했습니다. 두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한 사람은 부상을 입은 채 건물 안으로 도주했습니다.

    그는 건물 안에서 히브리어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군 지휘관은 사격 중단을 명령했습니다.

    총성이 멎자 부상당한 인질은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시 항복 의사를 전하고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었겠죠.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그에게 사격을 가했고, 결국 그 역시 사망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이스라엘군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스라엘군 역시 이 사건이 교전수칙을 위반한 것으로,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했습니다.

    “항복하는 이에게 총을 쏘는 것은 금지돼 있다. 나를 포함한 이스라엘군이 모든 일에 책임이 있다.” (헤르지 할레비 /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사건이 발생한 셰자이야 지역은 최근 이스라엘군과 하마스 사이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군은 이 때문에 높은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었죠.

    오인 사격으로 숨진 요탐 하임은 헤비메탈 밴드의 드럼 연주자였습니다. 사메르 탈랄카는 베두인 출신의 농업인으로 내년 여름 결혼을 앞두고 있었죠. 알론 샴리즈는 사피르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려 한 학생이었습니다.

    전쟁의 피해는?

    아직 남아 있는 100여 명의 인질. 자국군에 의해 숨진 세 명의 민간인. 전쟁의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개전 이후부터 가자 지구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1만 8천명을 넘어섰습니다. 이 가운데 3분의 2는 민간인이었고, 여성과 어린아이가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이번에 살해당한 것은 이스라엘인 인질이었을 뿐,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군인과 구분하지 않고 살해해 왔습니다.

    지난 16일에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내 교회에서 무장하지 않은 모녀를 저격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딸은 노모를 모시고 수녀원으로 피란하던 중이었습니다.

    전쟁 발발 이후 가자 지구의 기독교인은 대부분 교회로 피란했습니다. 유대교 중심의 이스라엘과, 이슬람 중심의 하마스 사이에서 소수파인 기독교도는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었죠.

    사건 발생 당일만 해도 교회에 대한 총격으로 7명이 다쳤습니다. 인근 수녀원에는 이스라엘 탱크가 발사한 포탄이 떨어지기도 했죠.

    “그들은 교전자가 없는 본당 경내에서 냉혹하게 총격 살해됐다.” (예루살렘 로마 가톨릭 라틴 총대주교청)

    이번 사건에 프란치스코 교황도 애도를 표했습니다.

    “가자 지구에서 매우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소식을 계속 받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아랍권의 대표적인 언론 매체인 <알 자지라>의 기자도 숨졌습니다. 피해자는 촬영기자 사미르 아부다카입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5일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의 학교를 폭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촬영기자가 숨졌고, 특파원 와엘 다두도 중상을 입었습니다.

    알 자지라는 이 사건을 언론인에 대한 의도적 살해로 규정하고, 이스라엘군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언론인들을 고의로 사살한 일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언론인을 고의로 겨냥한 일은 없다. 전투 지역에 남아있는 것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르는 것이다.” (이스라엘군)

    이미 전쟁 개시 이후 64명의 언론인이 가자 지구에서 숨졌습니다. 지난 17일에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프랑스 외무부 직원이 숨졌고, UN 직원 중 사망자도 100명을 넘어섰습니다.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

    인질 오인 살해 사건은 그 동안 이어지던 민간인 피해에 대한 규탄의 불씨를 당겼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규모 공습을 중단하라고 촉구할 방침입니다. 대신 하마스를 정밀 타격하는 군사작전으로 전환하라는 것이죠.

    미국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을 이스라엘에 파견했습니다. 오스틴 장관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 지역을 순방했고, 이스라엘 방문에는 찰스 브라운 합참의장도 동행했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정예 병력을 동원해 하마스 지도부 제거, 인질 구출, 지하 터널 파괴 등의 정밀한 작전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튀르키예 역시 미국을 통해 이스라엘 압박에 나섰습니다.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미국의 영향력 행사를 요청한 것이죠.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을 멈추도록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 (하칸 피단 / 튀르키예 외무장관)

    프랑스 역시 외무장관을 이스라엘에 파견했습니다. 프랑스는 하마스의 테러를 규탄하면서도, 외교부 직원 살해에 대한 이스라엘의 진상 규명을 요구했죠.

    프랑스의 카트린 콜로나 외무장관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의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휴전을 촉구했습니다.

    이스라엘 내의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질 오인 살해 소식이 알려지자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에는 수천 명 규모의 시위가 열렸죠.

    시위대는 휴전 없이는 인질의 안전한 석방이 불가능하다며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습니다. 시위에는 인질 가족과 하마스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이들도 참가했습니다.

    결국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몰린 셈입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희생자를 추모하면서도 강경한 입장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국제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까지 계속한다. 무엇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베냐민 네타냐후 / 이스라엘 총리)

    하지만 실제로는 휴전 협정이 재개될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7일간의 휴전이 끝나고 한 번도 접촉하지 않았던 이스라엘과 중재국 카타르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죠.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국장 다비드 바르니아는 지난 15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카타르 총리를 만났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에 관한 즉답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협상팀에게 지침을 주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죠.

    휴전 협상에 대한 하마스의 대응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스라엘군의 즉각적인 공세 중단을 나머지 인질의 석방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것으로 보이죠.

    따라서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이른 시일 내 타결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협상도 오랜 기간의 진통을 거쳐 나온 것이었으니까요.

    특히 현재 남은 여성 인질들은 군인으로 알려져 있어, 하마스로서는 석방에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번 사건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닙니다. 이미 팔레스타인 민간인 1만 명이 사망한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의 민간인 살해에 더 놀랄 이유도 없겠죠.

    다만 이스라엘군은 자신들이 행하던 전투의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 것뿐입니다. 이제까지 항복 의사를 표시하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없었을까요? 그들을 이스라엘군은 어떻게 대했을까요? 1만 명 넘는 숫자에 그들이 포함되지는 않았을까요.

    이번 사건으로 이스라엘군의 공세 방식이 변화할 수 있다면 분명 의미 있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전쟁범죄에 별다른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마스와 테러리즘, 반유대주의를 제거한다는 명분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명분이 모든 것을 가려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명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전쟁은 더욱 이런 방식이어서는 안 됐습니다.

    전쟁은 수만 명의 피해자를 내고 오늘도 이어집니다. 전쟁이 이어질수록 중동 문제라는 실타래는 더 엉켜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의 승패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위 글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연재되는 <세계의 소식들>을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과 다른 소식들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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