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돼지고기 때문에 국경을 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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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19일 12: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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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에메랄드 푸른빛의 에게해를 꿈꾸었을지 모르겠다.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둘러싼 수많은 신화와 영웅담들이 고스란히 잠긴 에게해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여행본능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찍는 사진마다 한 장의 엽서가 되는 산토리니(사실 우리에게는 포카리스웨트라는 음료수의 광고 촬영지로 더욱 유명하다), 풍차의 마을 미코노스 등 보석 같은 아름다운 섬들을 둘러볼 수도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 터키에서 바라본 에게해 전경
     

    에게해의 음식문화

    이 지역 먹거리 또한 다채롭고 재미있다. 이중 가장 이색적이었던 맛은 산양 젖으로 만든 페타치즈이다. 페타치즈는 오이, 토마토가 싹뚝 썰어진 그리스 샐러드는 물론 빵을 먹을 때 등 거의 그리스 음식에 곁들여 진다.

    마치 우리나라의 고추장처럼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고 보면 된다. 페타치즈의 생김새는 두부처럼 하얗게 생겼는데, 그 맛을 보면 "아~ 이게 지중해 맛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에게해는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만나는 접경 지대이다. 그러한 까닭에 멀리는 페르시아군이 아테네를 공격했던 페르시아 전쟁에서부터 최근의 크고 작은 잦은 충돌이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있던 동네이기도 하다.

    그런데 에게해를 둘러싼 이 두 개의 문화는 서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서로 이질적인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원형경기장을 그리스보다 터어키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두 문화가 서로 같은 문화권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언어적인 측면에서 보면 터어키어는 우리와 같은 어순을 가지는 우랄알타이 어족이나 그리스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해 있어 서로 다를 뿌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음식문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음식인 지로(Giro)로 페타 브레드라는 빵 사이에 소고기, 양고기 등을 각종 채소와 함께 먹는 것인데, 이 음식의 재료는 물론, 형태, 조리 방법까지 터어키의 대표음식 케밥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그리스의 음식문화와는 달리 터어키에서는 돼지고기를 재료로 하는 음식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터어키가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인데, 이렇게 두 문화는 서로 공통의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서로 다른 음식문화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위해 국경을 넘는 사람

    이러한 이 지역의 음식문화 때문에 겪었던 재미있는 경험이 하나 있다. 그리스에서 터어키로 여행할 때였다. 그리스에서 터어키로 가기 위해서는 보통 그리스의 사모스(Samos)라는 섬을 거쳐 터어키의 쿠사다시 (Kusadasi)로 가는 길이 가장 일반적인 여행길이다. 사모스와 쿠사다시의 거리는 페리를 타고 불과 30분 정도밖에 안 걸릴 정도로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필자가 터어키로 가기 위해 사모스에서 머문 적이 있었는데, 때가 비수기인 겨울이었던 탓일까? 유명한 수학자 피타고라스의 고향이기도 한 사모스 섬에는 관광객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추운 날씨 탓에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었다. 날은 춥지 언제 떠날지 모르는 배를 기다리다 보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감과 초조함이 엄습해 왔다.

    결국 한밤중에 터어키로 가는 배편이 마련되어 페리에 오르고 보니 승객이 모두 합쳐 5명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갑자기 내가 여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났다. 그런 불안감은 5명의 승객 중 한 명인 중년의 동양 남자에게 눈길을 주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와 자주 눈을 마주친 끝에 서로 같은 말을 하는 한국인임을 알아 채고는 어찌나 반갑고 안심이 되든지…^^;; 그 중년 남자는 터어키 이즈밀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분이었는데, 그의 사모스 방문 목적이 참으로 재미있었다. 아니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그의 방문 목적은 그가 한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검은색 비닐봉투였다. 그 봉투에는 여행 기념품도, 귀중한 선물도 아닌 돼지고기 몇 근이 전부였는데, 그는 고작 이 돼지고지를 사기 위해 터어키에서 그리스로 왔던 것이었다.

    그의 말인즉 각종 채소에 돼지고기 뭉청 썰어 고추장을 풀어 끓여낸 얼큰하고 푸짐한 돼지찌개가 그리워서 돼지고기를 사러 그리스에 왔다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인 터어키에서는 돼지고기를 구할 길이 없는 탓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이런 행동이 이상하게 여겨지기보다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야들야들 바싹 구워진 삼겹살과 얼큰한 돼지고기 찌개는 한국인인 ‘우리’가 서슴없이 국경을 넘게 만드는 힘이자 우리의 먹거리였던 셈이다.

    돼지고기의 친근함과 두려움

    아무튼 돼지고기는 우리나라 서민들이 가장 좋아하고 많이 먹는 육류 가운데 하나이다(우리나라 사람들의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돼지고기 16.5kg, 소고기 8.5kg, 닭고기 6.9kg 순이라고 한다). 다른 고기에 비해 값이 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되어 있기 때문이다.

       
     ▲ 불판위의 삼겹살과 김치
     

    ‘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 한잔’으로 대표되는 음식문화는 노동의 고달픔을 한잔 술과 이야기로 풀어내는 우리의 서민 문화의 한 단면이 아닐까? 그러기에 돼지고기는 ‘국경을 넘을 만큼’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깊은 맛을 남겼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돼지고기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면, 돼지고기가 우리에게 그렇게 친숙한 모습만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여름철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이나, ‘돼지고기는 바싹 익혀 먹어야 한다’라는 등 돼지고기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사회에 이슬람 지역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돼지고기에 대한 혐오의 문화가 있다는 증거이다.

    나는 이러한 혐오의 문화 까닭에 돼지고기가 서민음식으로 발전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단백질을 둘러싼 계급간 투쟁 속에서 지배계급은 ‘우수하다고 인정되는’ 소고기에 더욱 강한 독점욕을 보였을 터이고, ‘혐오’의 돼지고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 ‘한우’에 대한 뿌리 깊은 동경은 이를 반증하는 사례가 아닐까?

    어떤 이는 다른 육류와는 다른 돼지사육의 경제성이 값싼 돼지고기 생산과 대중적인 보급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서구사회에서 돼지고기와 소고기 값을 비교해보면 둘 간에 값 차이가 별로 없음을 볼 수 있다.

    삽겹살 맛에 대한 이야기

    돼지고기에 대한 ‘혐오’는 현대 위생수준과 영양학적으로 고찰해 볼 때 근거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방학적으로 돼지고기는 원래 성질이 차고 맛이 달기 때문에 뜨거운 열기에 몸이 상하기 쉬운 여름철에는 허한 기운을 북돋워 줄 수 있는 대표적인 음식이 될 수 있다. 더구나 냉장고가 보편화된 현대에 있어 돼지고기가 부패하기 쉽다는 것도 한갓 기우에 불과할 뿐이다.

    ‘돼지고기는 바싹 익혀먹어야 한다’ 라는 의미는 돼지고기가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다는 걸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돼지고기의 기생충이라면 갈고리촌충을 떠오르기 쉬운데, 이 갈고리촌충이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된 때는 1989년이다.

    갈고리 촌충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더구나 사료를 먹이는 돼지 사육과, 위생적인 도축 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돼지고기가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사실 기생충 감염의 확률은 모든 육고기는 물론 물고기에서도 가능하다. 특별히 돼지고기만 감염되기 쉬운 것은 아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돼지고기에 대해 이런 위생에 대한 강한 혐오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러한 돼지고기에 대한 ‘혐오’의 문화와 서민의 강한 단백질 섭취 욕구가 맞물리면서 우리의 ‘삼겹살’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하는 추정을 해본다.

    즉 돼지고기를 바싹 익혀 먹는 음식문화는 그야말로 돼지고기의 맛을 떨어지게 하는 요인이었을 터이다. 그러니 목살, 안심과 같은 지방이 거의 없는 질 좋은 부위를 먹는다면 그야말로 과자 먹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부드러운 지방층이 고루 섞여 있는 삼겹살은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최적의 부위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삼겹살은 서민들이 단백질을 둘러싼 투쟁과정에서 ‘맛’과 ‘영양’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지혜를 발휘한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여하튼 이 가설이 맞든 틀리든 이러한 음식문화는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소비행태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돼지고기 수요는 대부분은 삼겹살이다. 이런 까닭에 태부족한 삼겹살은 대량 수입되는 실정이라고 한다. 반면에 일본이나 서양에서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안심, 등심, 뒷다리 등 지방이 거의 없는 부위를 좋아하고 즐겨 먹는다.

    기다려라! 그리하면 맛있는 고기를 먹을지니…

    친구들과 삼겹살을 먹을 때, 불판에서 지글지글 읽는 고기를 뒤적이게 된다. 그런데 방금 뒤집은 고기를 옆에 있는 친구가 이내 다시 뒤집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이럴 때는 필자는 내심 ‘맛있는 고기 먹기는 틀렸구나’ 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 ^^;;

    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가능한 센 불 위에서 짧은 시간에 구워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고기의 육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기를 바싹 익혀 먹는 것이 ‘맛’하고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여튼 고기를 자주 뒤집지 말고 기다려라,그리하면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 수육을 하는 경우, 돼지고기의 누린내를 없애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필요한 것이 된장과 생강이다. 된장을 엷게 풀은 국물에 돼지고기를 삶아 내면 고기의 누린맛도 없어질뿐더러 육질도 부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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