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방형 경선제 반대한 어느 당원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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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5월 18일 11: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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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0일 민주노동당 당대회. 당원인 나는 그 날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날 대의원으로서 행사한 한 표에 대해 아직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 날 대회장에서 개방형 경선제를 반대했던 대의원들은 최근에 와서 자신이 그 날 했던 선택이 정말로 올바른 것이었느냐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당내 정파 구도나 정치적 소신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대선 승리라는 명제 속에서 고민한 사람들이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도 나의 한 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나는 그날 당당하게 개방형 경선제도를 위한 당헌 개정에 반대했다. 다만 ‘개방형 경선제’가 아니라면 기존 ‘당원직선제’를 가지고 폼나게 후보 경선을 치러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답하지는 않았다.

    이 생각의 기저에는 당의 정신과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또한 어차피 민주노동당의 경선은 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이 없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도 전제되어 있었다. 이러한 고민을 전제로 나는 과감히 “후보 선출을 빠르게 하는 것이 정답이다.” 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바램과는 달리 선출 일정은 8월로 미뤄지고 8월까지 경선 분위기를 어떻게 띄울 것인가에 대한 숙제가 우리에게 던져졌다.

    최근에는 대중 조직 내 대선 분위기가 뜨지 않는다는 이유로 민주노총 위원장이 선출 방식의 문제를 다시 거론해 문제가 되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당대회에서 결정한 사안을 바로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해 뒤집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데다가 이러한 행동 자체가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노동당 당원을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이 부당한 요구는 분명 관철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재 대선 후보 경선 분위기가 워낙 가라앉아 있어 당 외부만이 아니라 당 내부에서도 ‘개방형 경선제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는 계속해서 제기될 것인만큼 이 분위기를 일신할 방법에 대해서는 다같이 머리를 열어놓고 사고해야 한다. 경선제 아닌 한미FTA 저지를 중심으로 하는 진보대연합으로 이 위기를 돌파하기에는 이번 대선에 걸린 민주노동당의 명운이 너무나도 무겁다.

    오히려 이러한 분위기로 계속 진행되다가는 3월 10일 당대회에서 개방형 경선제를 막아낸 대의원들이 진보정당사의 영원한 역적으로 몰릴 공산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 2007년 당대회 사전행사에서 내외빈과 당대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3인의 대선 예비후보 (사진=레디앙 문성준 기자)
     

    정책의 과잉, 정치의 부재가 반복되고 있다

    요즘 대선주자들의 행보를 보면 정책의 과잉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한국 사회 대안 모색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대선주자들을 통해 민주노동당의 미래 비전이 만들어지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중앙당에서 근 4년 동안 손도 못댄 한국 사회 미래 대안에 대해 당내 대선주자들이 짧은 시간 내에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민주노동당 대선주자들의 저력에 대해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과정이 꼭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국회에 처음으로 입성한 민주노동당의 의정 활동이 보여준 가장 큰 문제는 ‘정책의 과잉-정치의 부재’에 있었다고 평가한다.

    법안 발의 숫자나 정책 생산 관련 활동에서는 타 당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과시했지만 의회라는 공간을 활용해서 민주노동당을 부각하고 우리에 걸맞는 정치적인 위상을 설정해나가는 과정에서는 상대적으로 미숙함이 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 대선 주자들의 행보도 예전 의정활동 시절의 오류를 답습하고 있다고 본다. 시기에 맞추어 정책을 발표하는 것(여성의 날 여성정책, 스승의 날 교육정책 발표 등)이야 기본기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서, 지금 대선주자들은 나무랄 데 없이 잘해주고 있다. 핵심 정책에 대한 발표도 꼼꼼하게 잘해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 정책은 내부 경선에서 보다는 본선에서 큰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어서 당원들의 시선을 끌지는 못하고 있다. 더구나 세 후보가 근본적으로 비슷한 이념적 지평 위에 서 있기 때문에 본질적인 차이를 느낄 수가 없어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정작 후보간의 차별성은 후보가 어떠한 활동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느냐에서 드러나기 마련인데, 현재의 상황에서는 세 명 다 같은 투쟁 사업장을 가기도 하고 유사한 논평을 내놓고 비슷한 정책을 발표하는 등 평이한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어 국민뿐만 아니라 당원들한테까지도 관심을 멀어지게 하고 있다.

    이제 이들의 차이가 자신의 정체성의 차이에 기인한 정치로서 드러나야 한다. 적어도 민주노동당 당원과 핵심 지지층 내부에서라도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이 다른 활동을 하고 있고 차별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정치 기획이 절실하다.

    당원들은 대선주자간의 대결을 원하고 있다

    3월 10일 대의원대회 전에 개방형 경선제에 찬성했던 한 당원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과연 현재의 민주노동당에서 대선 관련해서 할 수 있는 기획이 뭐가 있겠나.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선출 방식인데 그거라도 잘해서 내부적인 분위기라도 띄워야 되는 것 아니냐?"

    그의 문제 제기는 다소 거칠지만 우리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만약 이 분위기대로 9월까지 흘러간다면 우리는 분명 지난 3월 10일의 결정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당의 근간을 뒤집는 민주노총 위원장의 돌출행동도 문제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죽도 밥도 되지 않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 경선 분위기에 있다.

    올 초 ‘카드 수수료인하운동’을 중심으로 촉발된 민생 정치 기획의 후속타들이 대선주자들의 손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아쉽다. 뭔가 상승되고 있던 분위기가 축 처진 것은 신명나는 활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작년 ‘사회연대전략’을 내세운 권영길 대선 주자가 이 안을 들고 전국의 대기업 노동조합 사업장을 돌며 현장 노동자들을 설득한다고 하자. 이를 반대하는 일부 노동조합과 현장에서 치열한 토론이 있을 것이고, 권영길 의원은 이 토론 과정을 당내 외로 알려내어 사회연대전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모아내는 것이다

    만약 심상정 국회의원이 한미FTA 투쟁의 재점화를 위해 ‘한미 FTA 반대 민생 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하면 어떨까? 전농과 합작해서 제주도 감귤 농가, 전라도 축산 농가, 경기도 화훼농가 등 전국의 피해 농가를 방문해 주요 농민회 간부들과 만나며 그들의 목소리 담아내고 지역구 의원들을 설득하는 가운데 이러한 분위기를 모아 국회에서 한미 FTA 저지 시국회의 구성을 위한 기자회견을 주도한다면 사그라든 불꽃이 재점화 될지도 모른다.

    노회찬 국회의원이 각 지역별 굵직한 현안(인천시 계양산 골프장 건설 문제, 경기도 하남시 광역화장장문제, 성남시 시민병원문제, 강원도 부도임대아파트 문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문제 등)들에 대해 지역을 순회하면서 지역위원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도지사와 시장과 면담을 하면서 민주노동당의 대안을 제시한다면 어떨까? 단순히 강연회를 하러 지역에 가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위의 예들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예일 뿐 현재 대선주자들에게 적합한 예는 아니다. 다만 나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아마 얼마되지않아 우리의 대선주자들의 발칙한 정치 기획이 세련되게 포장되서 멋지게 등장할 것이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쭉쭉쭉 끌어올려 당원들과 국민들을 흥분에 도가니로 몰아넣을 것이라 믿는다.

    대선주자들이여, 이제 발칙한 ‘SHOW’를 하라

    본격적인 선거 기간에 들어가려면 아직 3개월 가까운 시간이 남았다. 이 기간동안 대선주자들이 지역 활동가들을 강연회를 통해 만나는 것이 효과적인 것인지 테마가 있는 현장 대장정 속에서 만나는 것이 효과적인지 판단하는 것은 대선 개별 캠프의 몫이다.

    하지만 남은 기간 동안 대선캠프에서 별다른 변화 없이 지금과 같은 평면적인 기획으로 일관한다면 12월 대선의 결과는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중앙당은 주요 대선 주자간 방송 토론회 및 후보 선출 대회, 여론조사 및 대선 지원을 위한 외곽 조직 구성 등 기본적인 대선 준비 일정만 해도 벅차다고 한다. 당의 주요 역량들이 대선 후보 캠프에 집중되어 있는 이상 대선 분위기를 띄우는 공은 결국 대선 주자들에게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나는 우리의 대선 주자들이 과감하고 발칙한 ‘쇼’를 보여줄 것을 요청한다. 옆에 있는 당원들과 지지층을 함께 놀라게 할 재미난 쇼를 말이다. 민주노동당 대선주자들의 발칙한 ‘쇼’가 기성 정당들의 3류 정치드라마를 누르고 언론의 한편을 차지할 때 비로소 우리들의 꿈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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