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가해자로 남고 싶습니까?"
        2007년 03월 20일 04: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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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준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정 의원님께서 이사장으로 계시는 울산과학대학에서 3월 7일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을 지켜보면서 저 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 박노자 교수  
     

    정 의원님께서 상징하는 것처럼 돼 있는 현대의 제품은 -자동차부터 선박까지- 제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를 비롯한 유럽 각 국, 세계 각 국에서 널리 애용되고 있으며, 제가 근무하는 오슬로대학교만 해도 현대의 자동차들을 타고 다니는 교직원과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만약 정 의원님께서 이사장으로 계시는 울산과학대학에서 비정규직 중년, 노년 여성들이 5~7년의 성실한 근무에 대한 ‘보상(?)’으로 해고를 당하고, 이것도 모자라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대우를 당하여 알몸의 상태로 밖에 끌려나오는 것을 안다면 과연 정 의원님께서 상징하시는 현대의 제품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세계 소식에 밝으신 정 의원님께서도 잘 아시고 계시겠지만, 노조에 대한 불허방침 내지 탄압 등으로 누명을 얻은 월마트(Walmart)나 맥도널도(McDonalds) 등의 업체들이 수많은 나라들에서 소비자, 시민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심지어 ‘부도덕한 자본’ ‘악덕 기업’의 상징적인 존재로 낙인 찍혀 있는 것입니다.

    정 의원님께서, 상점의 진열대에서 현대 제품들을 보는 세계인들의 머리에 알몸으로 저항하는 50대의 여성 노동자들의 절규가 허공을 찌르는 모습이 당장 떠오르는 상황이 현실에 옮겨지는 것을 바라시고 계십니까?

    정 의원님께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을 잘 아실 터인데, 지금 70만원도 안되는 몇 분의 비정규직의 월급 액수와 그 가치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것을 잃고 계시다는 것을 어찌 모르십니까?

    아마도 정 의원님께서 이번 사태가 현대 산하의 기업체도 아닌 학교에서 일어났다고 말씀하시고 본인과 ‘현대 재벌’의 책임이 없다고 답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 의원님이 이사장으로서 책임지시고 계시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더욱 더 경악스럽고 더욱더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힘센 이에게 대들 수 없지만 약한 이를 짓밟아도 된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배우고 익히는 것을 지금 바리고 계십니까?

    수업뿐만 아니고 학교의 교정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가르침’이 되고 사회의 초년생으로서의 ‘경험’이 되는 것인데, 과연 어머니 같은 여성분들이 알몸의 상태로 지하에서 끌려나오는 것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입니까?

    학생들이 학교 시절부터 이 사회에서 정의가 멀고 주먹이 가깝고, 힘센 이에게 대들 수 없지만 약한 이를 짓밟아도 된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배우고 익히는 것을 지금 바라고 계십니까?

    학생들 중에서 소수라도 이번 일을 계기로 약자를 동감하는 마음을 키워 폭력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소외를 당한 자와 함께 하기를 익히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만, 만약 이 일이 학생들에게 폭력의 만능을 가르쳐 학생들이 ‘힘이 곧 정의’라고 믿게 돼버리면 이것이 심히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힘만이 숭배되는 사회는, 평화스럽고 조화롭게 꾸려가는 법이 없으며, 늘 사기, 범죄, 배임, 불성실의 온상이 되게 돼 있습니다. 아니, 정 의원님께서 의원님이 자손들이 살 나라에서 홉스가 이야기한 ‘모두와 모두들의 전쟁’이 하루마다 현실이 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면 학생들의 배움터에서 약자 노동자들을 폭력이 아닌 이성과 법, 그리고 화해의 정신으로 대해주시고 ‘노조 가입’이 노동자의 기본 인권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몇 명의 울산과학대학의 학생들이 이미 폭력을 당한 여성 노동자들에게 ‘수업을 방해한다’고 항의했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들었을 때에는 일명의 교육자로서 저는 심한 허탈감을 느꼈습니다.

    10대후반∼20대초반에 이미 이 정도로 인간 본연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잃어 남이 사형선고와 같은 해고 통지를 받아 절망적으로 마지막의 남은 힘으로 저항해도 이를 자신에 대한 ‘방해’로만 볼 정도로 이기심에 젖어 있다면 과연 다 커서 명실상부한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어떤 인간이 될 것입니까? 정 의원님께서 ‘나’만 알고 ‘남’을 모르는 부류들이 미래 대한민국의 ‘주류’로 군림할 것을 행복한 미래로 보시는 것입니까?

    정 의원님, 한 가지를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외의 노동자, 시민의 대다수는 알몸으로 끌려나오는 나이 드신 여성분의 절규를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정도로 인간의 마음을 잃은 이들이 아닙니다. 이것이 이웃에 대한 사랑 내지 자비심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공동 이해관계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4~50대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승리’가 ‘영광’이라 보십니까?
    노동자, 시민 사회의 심판, 그리고 역사의 심판에 눈을 떠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날에 이 나이 드신 여성분들이 비정규직이 되어서 이렇게 희생이 되시지만 내일은 같은 노동자인 나도 얼마든지 그 다음의 희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번의 울산과학대학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농성을 수많은 이들이 열심히 지켜보고 동참하고 연대할 것이며, 농성 중의 노동자들의 요구가 관철되기 전까지는 정 의원님을 비난하는 소리도 잠잠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정 의원님께서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나아가서는 역사책에서 ‘가해자’로 남고 싶어하십니까? 40∼50대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승리(?)’가 영광이라고 보십니까?

    부디 노동자, 시민 사회의 심판, 그리고 역사의 심판에 눈을 떠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모두들이 다 그렇지만 정 의원님께서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시고 다른 세상으로 가시게 돼 있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사람이 자기 인생의 모든 크고 작은 사건들을 ‘영화처럼’ 다시 떠올려보게 돼 있다고 하는데, 이승을 하직하시는 이 순간에 정 의원님의 귀에 지금 울산과학대학에서 고생하시고 계시는 여성분들의 신음이 안들리시리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남에게 악이 아닌 선을 행하는 자만이 평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가게 돼 있는데, 부디 어떤 일에 대한 결정을 하시기 전에 인간이 결국 스스로 심는대로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거두게 돼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기를 바라고 마지않습니다.

    —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대학 동방언어및 문화연구학과(한국학) 교수 박노자 (Vladimir Tikhonov)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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