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과급제...삼성 노동자,
    고과평가 ‘불신’ 응답 76%
    학연·지연·친분 작용, 불투명성 지적
        2023년 02월 06일 06: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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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임금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미 성과급 임금제를 적용 받고있는 삼성전자·SDI 노동자들은 성과급제가 불공정한 임금체계라고 평가했다. 특히 10명 중 7명 이상은 고과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6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토론회를 열고 삼성 성과급 임금제도 현황과 폐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삼성전자와 삼성SDI 직원 445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삼성전자 354명(79.6%), 삼성SDI 91명(20.4%)이 참여했다. 성별로는 남성 86.7%, 여성 13.3%였고, 노조 가입 여부는 조합원 42.9%, 비조합원 52.6%였다. 연구에는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 활동가, 이종란 노동자권리연구소 연구위원,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등 5명이 참여했다.

    임금 지급과 승진 자료로 활용되는 삼성의 고과 평가는 탁월(EX), 매우 잘함(VG), 잘함(GD), 개선이 필요함(NI), 불만족(UN)으로 나뉜다. NI 이하 등급을 받게 되면 임금이 동결되고 승급에 영향을 미치는 식이다.

    응답자들은 고과제도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고과평가가 개인의 노력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응답이 응답자의 76%에 달했다. ‘고과평가 시 관리자들이 학연이나 지연에 영향을 받는다’는 응답은 49.3%, ‘평가자와의 친분을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응답도 66.3%나 됐다.

    승격(승진)이 투명한 절차에 의해 이뤄지는지에 대해선 70.3%로 긍정적인 응답(8.2%)에 비해 7배나 많았다. 임금공정성 문항에서도 대체로 부정적인 인식은 70%에 육박했고, 긍정적 인식은 한자릿수에 그쳤다.

    응답자들은 고과 평가의 목적을 ‘관리자에게 평가 권한을 주어 회사에 충성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69.2%)이라고 답했다. 반면 ‘개인성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통해 객관적으로 보상한다’는 응답은 30.8%에 불과했다.

    삼성전자·SDI 노동자 22명이 참여한 심층 면접조사에선 고과제도에 대한 높은 불신이 생겨난 원인과 구체적인 사례들이 제시됐다.

    연구진은 “삼성 고과제도가 사회적 차별을 그대로 투영하고 실천하는 제도가 되고 있을 가능성이 확인됐다”며 “이런 사례들은 상당수 현행 노동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면접조사 결과에 따르면 육아 휴직, 병가나 휴가 후 하위 고과를 받은 사례가 속출했다. 육아 휴직을 다녀온 뒤 낮은 고과를 받았다는 증언은 삼성전자와 삼성SDI에서 모두 나왔다.

    육아 휴직 외에도 병가나 휴직 후에는 낮은 고과를 받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증언을 비롯해 병가를 쓰거나 휴직을 하거나 하면 낮은 고과를 받기 때문에 ‘써라 써라’ 해도 쓸 수 없다는 답변이 많았다.

    성차별로 인한 하위 고과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에는 ‘여자 고과 챙겨주면 욕 먹는다’는 얘기를 직접 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다. 특히 ‘여성들이 (사내에서)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남성 노동자들도 ‘여사원들은 고과에서 거의 빠진다’, ‘여자는 고과를 한두 명 받아갈까 말까 하다’고 답했다.

    산업재해를 당해 하위 고과를 받는 사례도 있었다. 연구진은 “최근 안전에 대한 회사의 강조가 늘어나면서 산재 은폐는 더욱 큰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은폐 시도 자체가 줄었다고 하지만, 안전 사고 발생이 곧바로 고과로 이어지는 것은 더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한다”고 우려했다.

    중간관리자의 절대적인 평가 권한은 고과제도가 불공정하다는 문제제기의 핵심으로 지적됐다. 상위 고과를 받기 위해 관리자가 하는 농사를 돕거나 대리운전을 하는 등 ‘줄서기 경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여러 면접자들이 ‘삼성의 줄 서기 문화’를 지적했다. 고과제도에 고과권자인 중간관리자의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이것이 ‘줄 서기 문화’로 형성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고과제도는 노동자들의 정신·신체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낮은 고과 혹은 납득하기 어려운 고과를 받은 뒤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는, ‘울었다’, ‘잠이 안 온다’, ‘며칠 동안 술만 마셨다’ 등과 같은 증상으로 나타나고, 이런 경험은 ‘삼성 임직원 모두 겪어봤다’ 싶을 정도로 흔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일과적으로 지나가는 스트레스를 넘어 불안증, 우울증 등을 호소하거나 진단받는 사례, 심지어 자살을 고민하거나 계획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견됐다”고 전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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